흩어진 조각들을 모아라
<조각모음집> 서문
임용이란 시험에 연거푸 세 번 떨어졌다. 속도 쓰리고 기도 꺾이고. 솔직히 이렇게 계속 떨어질 바에야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떨어진 이유도 뭘까 생각도 해본다.
맞다, 문장해석능력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타도시에라면 합격했을 점수가 나왔다. 맞다, 괜히 눈만 높아 경기도로 지원해서 그렇다. 그런데 작년엔 광주를 썼는데도 떨어졌다. 즉, 사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 편하자고 어떤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 몰아 분석을 할 순 있지만 그건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왜곡일 뿐이다.
작품집 이름이 ‘조각모음집’인 이유
그렇기 때문에 뭔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선 조각난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별 내용을 담고 있진 않겠지만 그런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전체맥락에 맞춰간다면, 그건 진실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건 세세한 것일지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적극성이고 그걸 다른 것과 연결시켜 생각하려는 창의성이다. 조각의 속성은 낱개일 땐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게 모이면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성과 창의성으로 흩어진 낱개를 모아 내 생각의 결정체를 만들어야 한다. ‘최고의 곡들은 작곡되지 않는다. 그것은 허공을 한 조각 잘라오는 것이다.’ -윤종권 『도올고신』
조각모음집의 여타 작품집과 다른 특징
블로그(개설일 09년 3월 12일)를 운영하게 되면서 나의 색채를 담고 있다. 책에 대한 서평, 영화에 대한 감상평,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내 블로그를 이루는 핵심이다. 예전엔 이런 식의 작품을 쓸 땐 일기장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다 한 번씩 작품을 쓴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블로그를 운영하며 제대로 된 서평이나 감상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기장을 작품으로 도배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일기 쓸 공간도 별로 없다고 불평이 많은 이 때, 그런 불상사(?)가 생긴 것이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결국 이렇게 별도의 작품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작품집이 이게 처음은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독후감 노트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땐 완결된 작품을 만들려 서론과 본론, 결론으로 개요도를 짜고 글을 썼던데 반해 지금은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생각이 가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쓰려고 한다. 그게 이 작품집을 장수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조각모음집에 바라다
이 작품집의 방향은 그렇게 정해졌다. 무겁게 진지하기보다 가볍고 경쾌하길, 의식의 과잉이 아닌 누구나 공감하고 같이 읽을 수 있길 희망한다. 여기에 쓰인 글들은 블로그에도 올릴 것이다. 즉, 모두가 보는 글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문체로 쓰여야 한다. 한자투성이의 고리타분함을 유식함이라 착각하는 예전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소망이다.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도전하는 작품집이니만치 한 권이 다 끝났을 땐 그와 같은 일취월장하는 성취가 있길 바란다.
조각들이 모여 나의 새 작품이 된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단지 어떠한 방식으로 절단, 채취된 신선한 작품이 있을 뿐이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던 내가 이룰 수 있는 결과물은 얼마만큼 일까? 그저 진솔하게 나의 의식을 따라가며 조각들을 모아나갈 뿐이다. 단지 그 재미에 흠뻑 빠져서.
2009년 4월 8일 수요일
중앙도서관 열람실에서 건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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