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니 점차 짜임새가 생기다
掘井錄卷之二跋
열심히 우물을 팠다. 물론 물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물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노트에 서문을 쓰고 나서 2년이 흐른 어느 날의 넋두리다.
굴정록 1권의 고민
솔직히 이 노트의 존재 자체가 아리송했다. 원문을 옮겨 적고 그걸 해석하며 하나의 문자라도 충실히 보자는 게 존재 이유였는데 쓰면 쓸수록 의심이 되었다. ‘뭐 하러 금방 뽑아서 볼 수 있는 원문들을 사서 고생하면서 쓰고 있나?’ 괜한 고생이란 생각이 들고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민에 빠질 때부터 여기에 적는 횟수는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봤다. 원문을 적는 게 그렇게 곤욕스런 일이었던가? 그리고 애초에 이 노트를 만든 저의는 무엇이었던가? 힘든 일이긴 하다. 원문을 적는다는 게. 하지만 공부가 하기 싫을 때는 그것만큼 좋은 공부법도 없다. 그저 손에 펜을 들고 한자를 적어간다는 생각만으르도 내 안에 충만감이 있으니까.
더욱이 자주 적다보면 어찌 되었든 하자에 대한 인지능력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단점들은 아무래도 괜찮았던 것이다. 애초에 이 노트를 만든 이유는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였다. 인쇄된 원문을 본다고 제대로 안 하는 건 아닐 테지만, 난 나만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고나 할까. 원문에 자신이 붙어가는 모습을 이 노트를 통해 보고자 했으니 말이다. 이런 두 가지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이 노트에도 탈력이 붙었다. 그래서 결국 마무리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점차 짜임새를 갖춰가다
이 노트에는 네 번의 체질 변화가 있었다. 물론 공부했던 시기에 따라 그 변화가 나타났을 뿐이다. 1기(07년)는 처음 시작했던 때라 우왕좌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기(08년 초반)는 1기와 크게 차이나진 않는다. 3기는 (08년 후반) 체절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읽기에 편하도록 원문을 쓰자는 주의로. 넉넉하게 배치하고 칸을 조정했으며 토를 달았던 건 그 이유다. 좀 더 친밀해지도록 배려한 것이다. 4기(09년 중반)도 3기의 체제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하지만 후반부엔 또 체질이 변한다. 토나 단락 나누기를 없애버린 것이다. 통문장 보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장은 없기 때문이다.
우물파기는 점차 짜임새를 갖춰가고 있다. 우물이 나오는 순간까지 더욱 힘내자.
2009년 9월 17일(목)
503호 14번 자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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