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과거로의 신나는 여행
기출문제 모음집 서문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사는 사람이 있고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사는 사람이 있다. 오늘을 살지만 오늘을 살진 못한다. 이게 웬 말장난인가 싶을 것이다. 꼭 ‘물을 보고 이건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되, 오늘을 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정의는 언제나 실제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만 유효할 뿐 관념적인 것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늘 잘 나가던 당시만을 회상하는 사람,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그리며 지금을 그때의 과정쯤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들에겐 오늘이 오늘일 수 없다. 그건 곧 오늘의 불만족스러움을 해소하려 과거와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괴롭고 힘겨움의 순간이니, 오늘을 살되 오늘을 살려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런 태도가 문제다. 지금 이 순간을 고통의 순간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협소함, 언젠가를 기다리며 오지 않을 순간에 나의 행복의 요소들을 다 저당 잡혀놓은 한심함, 현재를 제대로 들여다 볼만한 담대함이 없는 비하감까지, 이것들이 정립하여 나 자신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거기서부터 인생은 꼬이고 꼬인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상황에 몰리게 된다.
오늘을 살기 위해, 공부하라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린 공부를 해야 한다. 허물어뜨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정립의 삼 요소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그 시작은 역시나 현재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현실이 괴롭고 불만족스럽다’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닌 허위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들여다보면 고통도 사라진다’는 말이 있듯이, 고통이나 아픔은 사실 주사를 맞기 전에 느끼는 고통처럼 우리의 의식작용이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걸 기우라하지 않던가. 그렇게 현실 인식이 제대로 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미래나 과거에 나의 행복을 저당 잡힐 이유도 없어진다. 그저 지금이 순간을 만끽하며 후회 없이 즐기게 되는 거다. 그 순간부터 바로 오늘을 살 수 있게 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출문제 모음집이다. 그런데도 이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신기할 만하다. 왠지 ‘명실괴리’인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기출문제를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곧 있을 시험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 것을 반추해봄으로 올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거는 오지 않은 과거이며 곧 올 과거인 거다. 그런 시간의 상대성에서 노닐 수 있는 책이니만치 이런 이름이 붙은 게 하등 신기할, 이상할 이유가 없다. 또한 그 여행은 오늘을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오늘을 살아가기에 과거를 보며 거기서 유용할 만한 소재들을 추출해내어 미래를 대비하는 재료로 쓸 수 있는 거다. 무게추는 과거보다 오늘에 있는 셈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과거 여행 겸 지금 이 순간의 나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자 하는 공부인 거다. 여행과 공부가 하나가 되는 놀라운 세계, 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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