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고문이 지어지지 않는 이유와 좋은 고문의 조건
과거공부와 한유와 소식을 모방하는 폐단으로 고문이 발흥하지 않다
我國人最重科業, 雖文詞超羣者, 無不折入於科業, 所製惟表策而已. 曾不着力於古文, 不過以韓ㆍ蘇爲範, 用作科塲館閣酬應之資而已,
선조 때에 고문 작품이 발흥하다
至宣廟朝, 崔簡易ㆍ尹月汀數公, 始崇長古文, 一時習尙頓變, 其功可謂大矣. 國朝典文衡者, 幾且百人, 而知有古文者, 尹月汀ㆍ李白沙ㆍ申象村ㆍ張谿谷ㆍ金淸陰ㆍ李澤堂ㆍ金息菴ㆍ李西河ㆍ金農巖若干人而已. 其餘諸公, 非盡才不及也, 科擧累之也.
지금 사람들의 식견에 고려 때의 기력을 더하면 좋은 고문이 나오리라
大抵我東原初, 未脫夷陋, 全不解古文蹊徑, 至牧老游學中原, 得印可以授諸人, 是後頗勝. 宣廟以後益勝, 然其才具遞减數等. 吾意以近來諸公識見, 兼勝國人氣力則幾矣.
해석
과거공부와 한유와 소식을 모방하는 폐단으로 고문이 발흥하지 않다
我國人最重科業, 雖文詞超羣者, 無不折入於科業, 所製惟表策而已.
우리나라 사람은 가장 과거공부를 중시해 비록 문장과 시가 무리에서 뛰어난 사람이라도 과거공부를 하게 되면 꺾이지 않은 적이 없어 오직 지은 글이라곤 표문과 대책문일 뿐이다.
曾不着力於古文, 不過以韓ㆍ蘇爲範, 用作科塲館閣酬應之資而已,
일찍이 고문에 힘을 쓰지 않고 한유와 소식을 모범으로 삼는 데 지나지 않아 과거시험과 관각의 응수하는 자료를 써서 지었을 뿐이다.
선조 때에 고문 작품이 발흥하다
至宣廟朝, 崔簡易ㆍ尹月汀數公, 始崇長古文, 一時習尙頓變, 其功可謂大矣.
선조 때에 이르러 최간이와 윤월정 여러 공이 처음으로 고문을 숭상하여 장점으로 여겨 한 때의 익힘과 숭상함이 급변했으니 그 공이 크다고 할 만하다.
國朝典文衡者, 幾且百人, 而知有古文者, 尹月汀ㆍ李白沙ㆍ申象村ㆍ張谿谷ㆍ金淸陰ㆍ李澤堂ㆍ金息菴ㆍ李西河ㆍ金農巖若干人而已.
조선조에서 문형을 전담한 사람은 거의 또한 백 명이지만 고문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윤월정과 이백사와 신상촌과 장계곡과 청음 김상헌과 이택당과 김식암과 서하 이민서와 김농암 약간 사람일 뿐이다.
其餘諸公, 非盡才不及也, 科擧累之也.
그 나머지 사람들은 재주를 다해 미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과거에 얽매였던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식견에 고려 때의 기력을 더하면 좋은 고문이 나오리라
大抵我東原初, 未脫夷陋, 全不解古文蹊徑, 至牧老游學中原, 得印可以授諸人, 是後頗勝.
대체로 우리나라가 시작될 때는 오랑캐의 비속함을 벗어나지 못해 고문의 방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색이 중원에 유학하여 인증 받고 사람을 가르치게 됨에 이르러서 이후로는 매우 나아졌다.
宣廟以後益勝, 然其才具遞减數等.
선조 이후로 더욱 나아졌지만 재주는 함께 번갈아가며 몇 등급이 내려갔다.
吾意以近來諸公識見, 兼勝國人氣力則幾矣.
내가 생각하기로 근래 여러 공들의 식견에 고려 사람들의 기력을 겸한다면 고문에 가까워질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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