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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문임용 기출 - 09년 1차 29~30번(箕雅序, 雲陽漫錄, 陶峽叢說) 본문

기출문제/시화

한문임용 기출 - 09년 1차 29~30번(箕雅序, 雲陽漫錄, 陶峽叢說)

건방진방랑자 2021. 11. 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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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 다음을 읽고 답하시오.

() 南龍翼, 箕雅序
本朝之秀 自鄭三峯 權陽村以後 握靈珠建赤幟者 代不乏人 而乘運躍鱗 莫過於成宣兩朝 方之李唐 則開天之際 比諸皇明則嘉隆之會 或鏗鏘煥燁 擅館閣之高名 或淡泊枯槁 極山林之幽趣 或音調淸婉 咀唐之華 或情境諧愜 奪宋之髓 此外査梨橘柚 各有其味 長短肥瘠 無非本態 下至蟲吟之苦 螢爝之微 皆足爲聲爲色 而亦可見其性情右文之化 猗歟休哉
 
() 李宜顯, 雲陽漫錄
大明文章 大抵務華采而少眞實 此其所以反不及於宋也 然其評隲文詞 極其精確 尋源流 辨雅俗 毫髮不爽 文以先秦爲主 詩以漢魏爲本 一篇之內 規度森然 要非我國人所可企及也 我東雖稱右文之國 於文章 效法不高 識見甚陋 自勝國以來 只學東坡 泝以上之 惟以唐爲極致 豈知又復有漢魏先秦也哉 李文順文章 爲東國之冠 而其論文評詩 多有鄕暗可笑者 況其餘乎 牧隱出於其後 文章深厚 自然有不可及處 本朝諸鉅公 乖崖佔畢其尤也 而不過以韓蘇爲範而已 簡易月汀始以馬班揭示後學 時尙爲之一變 然月汀則功力猶未深 至谿谷澤堂繼之 然後古文詞路徑始開 尤菴專意問學 不屑屑於古文法程 而筆力可與李文順鴈行 農巖爲古文 典雅稱停 深得歐曾體制 詩則如佔畢容齋挹翠訥齋諸公 俱稱名家 而亦蘇黃也 後來湖陰七言律蘇齋五言律 俱膾炙一世 芝川篇什散逸 傳者不多 而其傳者箇箇奇拔
 
() 李宜顯, 陶峽叢說
我國人最重科業 雖文詞超羣者 無不折入於科業 所製惟表策而已 曾不着力於古文 不過以韓蘇爲範 用作科塲館閣酬應之資而已 至宣廟朝 崔簡易尹月汀數公 始崇長古文 一時習尙頓變 其功可謂大矣 國朝典文衡者 幾且百人 而知有古文者 尹月汀李白沙申象村張谿谷金淸陰李澤堂金息菴李西河金農巖若干人而已 其餘諸公 非盡才不及也 科擧累之也

 

 

29. 밑줄 친 ~인물들의 시 경향과 관련 있는 것을 모두 고른 것은?

① ㉠, ② ㉠,
③ ㉡, ④ ㉠, ,
⑤ ㉡, ,  

 

 

30.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2.5]

()에서 말한 古文이라는 용어는 당송고문을 가리킨다.

尹根壽 이후 文衡을 잡은 사람으로 거론된 李恒福 8인은 당송고문을 문단의 주류로 정착시켰다.

崔岦尹根壽韓愈, 蘇軾 중심의 산문 풍조에 새로운 경향을 도입하여 文學史上의 변화를 일으켰다.

조선 전기 成宗, 宣祖 시기에는 다양한 경향의 시가 문학사의 전면에 드러났으나 唐詩風이 지배적이었다.

조선 전기 詩文은 고려 말의 宋風을 이어받아 화려한 수식은 적고 내용은 진실하다는 특징을 지녔는데, 이 점에서는 명나라 시문보다 낫다.

 

 

 

 

 

 

 

인용

목차

09학년도 1

정답

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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