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섭 양응정을 부르며
초공섭(招公燮)
임억령(林億齡)
自吾觀海山 胸中與之壯
자오관해산 흉중여지장
身今脫馽羈 天馬益奔放
신금탈칩기 천마익분방
人皆弔失官 笑指雲來往
인개조실관 소지운래왕
庭樹入秋風 江湖歸意王
정수입추풍 강호귀의왕
長當從此辭 君胡不我訪
장당종차사 군호불아방 『石川先生詩集』 卷之一
해석
自吾觀海山 胸中與之壯 | 내가 바다와 산을 봄으로부터 가슴속이 그것과 함께 장쾌해졌네. |
身今脫馽羈 天馬益奔放 | 몸은 이제 굴레에서 벗어나니 준마(駿馬)【한 무제가 일찍이 『주역(周易)』으로 점을 쳐서 ‘신마(神馬)가 서쪽으로부터 올 것이다.’라는 점괘를 얻었다. 그 뒤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으로 사신 갔다가 오손국(烏孫國)의 말을 얻어서 돌아오자 그 말을 천마(天馬)라고 불렀다】는 더욱 자유분방해졌네. |
人皆弔失官 笑指雲來往 | 사람들은 다 벼슬 잃음을 조문하고 구름처럼 오고 간다 비웃으며 손가락질하지만 |
庭樹入秋風 江湖歸意王 | 정원의 나무에 가을바람 들고 강호엔 돌아갈 마음만 왕성하네. |
長當從此辭 君胡不我訪 | 길이 마땅히 이 말을 따르리니 그대 어째서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石川先生詩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1550년 겨울 고향으로 돌아온 지 5년째 해남을 찾아오던 중 양응정(梁應鼎, 1519~81)에게 준 시로, 호방(豪放)한 시풍을 느끼게 한다.
내가 해남에서 바다와 산을 봄으로부터 가슴이 바다와 산과 더불어 장쾌해졌다. 세속의 굴레를 이제야 벗었으니, 천마처럼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내가 벼슬을 잃은 것을 조문하고, 구름처럼 떠돈다고 웃으며 손가락질한다지. 뜰의 나무에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강호로 돌아갈 마음이 더욱 왕성해진다. 오래오래 마땅히 이로부터 떠날 것인데, 그대는 어찌 나를 찾지 않는가?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 24번에는 임억령의 시(詩)에 대한 일화(逸話)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근래 석천 임억령이란 자가 있는데, 시에 능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어떤 사람이 술을 노래하는 시를 짓기를 청하며 감(甘) 자 운을 부르니, 임억령이 즉시 응하기를, ‘늙어서야 비로소 이 맛 단 줄 알았네’라고 하였다. 또 삼(三) 자 운을 부르니, 응하기를, ‘한 잔 술에도 도통하니 석 잔을 마시지 않으랴’ 하였다. 또 남(男) 자 운을 부르니, 곧 응하기를, ‘그대는 혜강(東晋 때 죽림 7현의 한 사람)과 완적(阮籍, 죽림 7현의 한 사람)이 유계[漢 高祖]를 조롱한 것을 아는가? 공후백자남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작품이다[近有石川林公億齡 以能詩名 有人請賦酒詩 呼甘字韵 林卽應聲曰 老去方知此味甘 又呼三字 應聲曰 一盃通道不須三 又呼男字 應聲曰 君看嵇阮陶劉季 不羨公侯伯子男 眞奇作也].”
윤광계(尹光啓)는 「석천선생집서(石川先生集序)」에서, “근래 시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분방웅양에 이르러 마치 장강과 대하가 주야로 흘러서 마르지 않는 것과 같은 경지는 오직 석천 선생 한 분일 뿐이다[近以詩鳴者不一 而至於奔放雄洋 如長江大河 日夜滔滔而不渴 則唯吾石川先生一人而已].”라 하였고,
김수항(金壽恒)도 「행적기략(行蹟紀略)」에서 “문장은 굉방준일 하였는데, 시에 더욱 뛰어나 붓을 잡으면 곧장 일필휘지로 써 내었으니,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전하며 읊었다[爲文章 宏放俊逸 尤長於詩 揮灑立就 一時人爭傳訟].”라 하여, 임억령의 시에 대해 이러한 평을 한 것은 위와 같은 시를 두고 한 것일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294~295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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