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묘(1675)년 1월 24일에 탄핵되어 철령에 오르며
등철령음 을묘정월이십사일(登鐵嶺吟 乙卯正月二十四日)
송시열(宋時烈)
行登鐵嶺顚 我心還如鐵
행등철령전 아심환여철
縱乏器之誠 却耐西山血
종핍기지성 각내서산혈
回首望西方 陰雲壅不決
회수망서방 음운옹불결
願言西方人 丹霞佩明月
원언서방인 단하패명월 『宋子大全』 卷一
患難相從, 聖人亦不能忘, 況此死生在前之時, 艱關跋涉, 千里外相從者哉. 諸君各步鄙韻書在紙上, 而家弟小孫之作, 亦在其間. 他日撫覽, 亦必有感於斯時矣, 然勿以示人, 恐作陳少陽也. 乙卯春日, 纍人書.
해석
行登鐵嶺顚 我心還如鐵 | 가다 철령【남인들이 우암을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국상(國喪) 때 잘못된 예법을 주장했다는 죄목으로 탄핵하자, 1675년 1월 숙종이 우암을 함경도 덕원(德源)으로 유배하였다. 이 시는 우암이 유배를 가던 길목인 철령에 올라 지은 것으로, 철령은 강원도와 함경도의 경계에 있다.】의 꼭대기 오르니 내 마음 도리어 철 같네. |
縱乏器之誠 却耐西山血 | 가령 기지 같은 정성【기지는 송나라 때 문인 유안세(劉安世)의 자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일찍이 장돈(章惇) 등의 간신을 탄핵했다가 그들의 미움을 사서 7년 동안 여러 험악한 지역에 유배되었지만 유배 기간 동안 하루도 병든 일이 없었으므로 어떤 사람이 그 원인을 묻자 오직 정성(精誠)일 뿐이라고 답한 일이 있다. 『宋史』「劉安世列傳」】이야 부족할지 테지만 도리어 서산의 피【서산은 송나라 때 문인 채원정(蔡元定, 1135~1198)의 호이다. 자는 계통(季通)이다. 주희의 제자로 한탁주(韓侂胄)에게 몰려 도주(道州)로 귀양을 가다가 발에서 피가 흘렀다 한다. 『宋史』「蔡元定列傳」】는 감내할 만하지. |
回首望西方 陰雲壅不決 | 머리 돌려 서쪽 방향 바라보니 어둔 구름이 막혀 트이질 않네. |
願言西方人 丹霞佩明月 | 원컨대 서방 사람에게 말하노니 붉은 노을에 밝은 달빛 차시라. 『宋子大全』 卷一 |
患難相從, 聖人亦不能忘,
환란에 상종하는 건 성인 또한 잊을 수 없는데【】
況此死生在前之時, 艱關跋涉, 千里外相從者哉.
더군다나 사생이 앞에 있는 시기에 온갖 고생하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천리 밖에 상종하는 이라면 오죽할까.
諸君各步鄙韻書在紙上, 而家弟小孫之作, 亦在其間.
여러 사람이 각각 내 운을 따라 종이 위에 썼는데 집안의 아우와 손자가 지은 것도 또한 그 가운데 있다.
他日撫覽, 亦必有感於斯時矣, 然勿以示人, 恐作陳少陽也.
다른 날에 더듬어 본다면 또한 반드시 이 때에 느꺼움이 있을 테지만 남에겐 보이지 말아야 하니 진소양【진소양(陳少陽): 송나라 진동(陳東, 1086~1127)으로, 소양은 그의 자이다. 남송 고종(南宋高宗) 원년에 태학생(太學生)으로서 글을 올려 채경(蔡京), 왕보(王黼) 등 육적(六賊)을 베라고 청하다가 구양철(歐陽澈)과 함께 처형되었다. 『宋史』「陳東列傳」】이 될까 걱정되어서다.
乙卯春日, 纍人書.
을묘(1675)년 봄날에 누인【누인(纍人): 구금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암 자신이 유배 중에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이 쓰다.
해설
이 시는 1675년 1월 24일,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아 파직된 송시열이 철령을 넘으면서 지은 시이다.
귀양 가다가 철령 꼭대기에 오르니, 내 마음은 도리어 쇠 같다. 유기지만큼의 정성은 부족하지만, 귀양 가면서 흘리는 피는 채서산의 피처럼 감당할 수 있다. 머리 돌려 임금 계신 서방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자신을 유배지로 보낸 간신인 南人을 비유) 가리어져 걷히지 않고 있다. 서방 사람(임금)에게 말하노니, 붉은 노을에 밝은 달빛 차소서(밝은 마음을 지녀 是非를 잘 가려 달라).
정조(正祖)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송시열에 대한 존모(尊慕)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 이르러서는 여러 왕을 두루 섬기며 몸소 세도(世道)를 자임하여 천리(天理)가 밝아지고 인심(人心)이 바르게 되도록 하여 길이 천하 후세에 할 말이 있게 하였고, 그 남은 여운이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으니, 붙들고 유지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다 이 송시열의 공이다. 이 때문에 내가 이 선정에 대해 오랜 세월을 사이에 두고 느낌이 닿아 가장 깊이 존경하고 사모한다[至於尤菴 則歷事屢朝 身任世道 使天理明而人心正 永有辭於天下後世 遺風餘烈 至今不泯 而凡所以扶植維持者 皆此先正之功也 是以予於此先正 實有曠感而尊慕最深矣].”
“우리나라의 유자(儒者) 중에 조정암(趙靜庵)과 이율곡(李栗谷)은 타고난 자질이 고명하고 뛰어나 이학(理學)과 경륜에 있어 원래부터 대현(大賢)인 데다 왕을 보좌하는 재능까지 겸하였다. 이퇴계(李退溪)는 공부가 극에 달하여 확고부동한 뜻이 있었고, 송우암(宋尤庵)은 많은 훌륭한 자질을 겸하였는데 기품이 강하고 모난 것이 혹 너무 지나쳤다[東方儒者 靜菴 栗谷 天姿高明豪逸 理學經綸 自是大賢 兼王佐之才 退溪工夫到底 有確乎不拔之意 尤菴兼有衆美 剛方或太過耳].”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221~22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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