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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송시열 - 유풍악 차윤미촌운(遊楓嶽 次尹美村韻)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송시열 - 유풍악 차윤미촌운(遊楓嶽 次尹美村韻)

건방진방랑자 2021. 4. 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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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악산에서 유람하며 윤미촌의 시에 차운하며

유풍악 차윤미촌운(遊楓嶽 次尹美村韻)

 

송시열(宋時烈)

 

 

陳編聞有古人心 半世牢關字字尋

却恐埋頭無了日 遂將閒脚逐孤禽

楓山灝氣千年積 蓬海滄波萬丈深

此地只宜南嶽句 每登高處費長吟 宋子大全卷四

 

 

 

 

해석

陳編聞有古人心
진편문유고인심
오래된 책에 옛 사람의 마음이 있다 들어
半世牢關字字尋
반세뢰관자자심
반 평생 문 닫아걸고 글자마다 찾았네.
却恐埋頭無了日
각공매두무료일
도리어 몰두해봤자 끝날 날 없을까주자의 서책에 파묻혀 끝날 날 없네.[書冊埋頭無了日]”라는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걱정이라
遂將閒脚逐孤禽
수장한각축고금
마침내 한가로운 발로 외로운 새를 쫓아 나왔네.
楓山灝氣千年積
풍산호기천년적
풍악산의 너른 기운은 천년 동안 쌓인 것이고
蓬海滄波萬丈深
봉해창파만장심
봉래산 바다의 푸른 파도는 만 길이나 깊지.
此地只宜南嶽句
차지지의남악구
이 땅에 다만 남악의 시구주자가 남악을 여행하면서 남헌(南軒)과 수창한 시구들을 말한다.가 마땅하니
每登高處費長吟
매등고처비장음
매번 높은 곳 오를 때면 부질없이[] 길게 읊조리네. 宋子大全卷四

 

 

해설

이 시는 금강산에서 놀다가 윤미촌의 운에 차운한 시이다.

 

옛 책에 옛사람의 마음이 있다고 들어서, 반평생 동안 문을 닫아걸고 한 자 한 자 열심히 익혔다. 그런데 아무리 학문에 몰두해도 끝날 날 없을 듯하여, 마침내 한가로운 걸음으로 외로운 새를 찾아왔다금강산을 찾은 것은 책에서 고인의 마음을 찾고자 하였지만, 책에만 매달려서는 온전한 학문을 할 수 없어 금강산을 찾은 것이니, 단순히 유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람을 통해 강학(講學)의 방편으로 삼았다는 의미. 금강산의 맑은 기운은 천 년토록 쌓였고 봉래산 바다 맑은 물결은 만 길이나 깊다(천 년과 만 길은 학문의 깊은 세계를 의미함), 이 땅에 주자가 읊었던 시구 읊음이 마땅하니, 높은 곳 오를 적마다 길게 한번 읊었다(유람의 典範은 당연 朱子라는 의미임).

 

수촌만록(水村漫錄)에는 이 시에 대해, “우재 송시열 선생은 도학이 한 세상의 종주인 것뿐만 아니라 문장도 맑고 엄숙하여 또한 마땅히 동방 제일 대가가 되어야 한다. …… 시는 또한 전중하여 법이 있다. 그의 유풍악시에 이르기를, …… 주자의 낭랑하게 읊조리며 축융봉을 날아다닌다.’라는 구절과 기상이 완연히 일치한다[尤齋先生 非但道學爲一世所宗 文章灝噩 亦當爲東方第一大家詩 …… 亦典重有法 其遊楓嶽詩曰 …… 與朱子郞吟飛下祝融峰 氣像宛然一揆).”라 하여, 도학뿐만 아니라 문장도 뛰어남을 밝히고 있다.

 

이 시와 관련해 송시열의 학문에 대해 정조(正祖)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송우암의 학술의 순수하고 바름과 기상의 깨끗하고 트임과 공화(功化)의 넓음은 우선 논하지 않더라도 그가 평생 붙들어 잡은 것은 바로 명의(名義) 두 자였다. 춘추(春秋)의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를 주장하며 인륜이 어두워지고 막힌 변고에 죽었으니, 이것이 그의 큰 절의이다. 비록 아전이나 부인이라 하더라도 나라에 충성하고 가문에서 열녀의 행실이 있을 수 있으면 반드시 표창(表章)하여 미치지 못함이 있을까 염려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항상 존경하는 부분이다. 지금 우암을 칭송하고 본받는 자들은 마땅히 이것을 스승이 전한 유일한 묘법(妙法)으로 삼아 지켜서 실추시키지 않아야 할 것인데, 근래 어쩌면 상반되는 것이 이다지도 심한가? 분수를 범하고 기강을 무너뜨려 크고 작은 일에 꺼림이 없으니, 장차 세도(世道)를 도탄에 빠뜨리고야 말 것이다. 우암의 신령이 아직도 있다면 나의 무리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려 하겠는가[宋尤菴學術之醇正 氣象之光霽 功化之博普 姑無論 其平生秉執 卽名義二字 出以春秋尊攘之義 死於彝倫晦塞之變 此其大節 而雖胥徒婦女 若能忠於國烈於家 亦必表章之 如恐有不及 此予常所尊仰處 今之誦法尤菴者 當作單傳妙符 守而勿墜 近何相反至此甚也 犯分壞紀 小大無憚 將使世道塗炭後已 如尤菴英爽猶存 其肯曰吾之徒有人乎]?”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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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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