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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를 끝내며 - 2. 한국한시사와 자산어보 본문

건빵/일상의 삶

한국한시사를 끝내며 - 2. 한국한시사와 자산어보

건방진방랑자 2021. 5. 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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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한시사와 자산어보

 

 

인생이란 긴 터널을 지나던 중인데 지금도 여전히 좌충우돌하는 순간에 놓여 있다. 한문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맘에 시작한 임용공부도 어느덧 4년 차에 이르렀고 임용시험 기간으로만 따지면 어느덧 9수에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이다지도 시간이 빠르고 맘껏 흔들리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풍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  좌충우돌 써나가는 공부담. 모악산의 정기 받아 맘껏 펴낸다. 

 

 

 

21일 간 머문 한국한시사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맘껏 내지르고 보는, 그래서 그 아저씨 말마따나 그런 기간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415일부터 오늘까지 무려 21일 간이나 꼭 한 번 정리하고 싶었던 것을 기어코 마치고 말았다. 민병수 선생이 쓴 한국한시사(韓國漢詩史)라는 책으로 무려 2006년에 구입하여 보던 책이다. 임용시험은 봐야겠고 한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니, 한문소설에 관련된 책이나 한시에 관련된 책을 무작정 사서 봐야만 했고 그렇게 초심자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나 가능한 얘기이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게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만큼 통사(通史)로 다루어진 책들은 재미도 없으며 시대별로 중요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의 중요한 작품 1~2개 정도를 소개하는 정도이기에 재밌게 볼 수도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중요한 인물 위주로 찾아서 보는 정도로, 마치 사전(辭典)과 같은 방식으로만 활용했던 것이다

 

 

▲ 무려 15년 전에 샀던 책이 됐다. 이제야 일독을 해보네.  

 

 

예전처럼 임용시험이 한문학사(學文學史) 식으로 나오지 않으니 역사적 흐름에 맞춰 한문의 내용을 정리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러니 이런 식의 책들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이 순간에 이 책을 정리하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째는 여러 한시 관련 책들을 정리하며 나름 한시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한시를 읽다한시미학산책16~17세기 한시사 연구를 하나씩 정리하며 대강의 흐름은 익혔고 이런 흐름을 전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이 책을 정리하고 나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역시 공부란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하나씩 정리해나가며 조금씩 알게 되고 그게 계속 누적되다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로 꿰어지는[一以貫之] 것이다. 둘째는 김형술 교수와 소화시평(小華詩評)을 공부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시평을 보는 재미를 알게 됐고 그 후로 다양한 시화집의 원문을 찾게 되었다. 그 중 단연 백미는 시화집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시화총림(詩話叢林)을 모으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책들에서 다루고 있는 시평(詩評)의 내용은 바로 이 책에 인용된 내용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평에 관련된 해당 원문을 찾기 수월해진다.

이러한 두 가지 제반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이런 방대한 한시의 통사를 다룬 책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에 따라 21일 간 열심히 작업하며 오늘 드디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예전엔 책만으로 공부했지만 지금은 바로바로 정리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 공부 능률 업업! 

 

 

 

전범(典範)은 없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영화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최근에 재밌게 봤다. 신유박해(辛酉迫害)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정씨네 삼형제 중 둘째인 정약종(丁若鍾)은 배교(背敎)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했고 첫째인 정약전(丁若銓)과 셋째인 정약용(丁若鏞)은 유배형을 당하게 된다. 이때 정약전은 전라남도의 외딴섬인 흑산도로 유배를 오게 됐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도중 약간의 글을 읽은 젊은 어부인 장창대와 어울리게 되면서 예전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최초의 어류 도감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장창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집필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영화에서 장창대는 출세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청년으로 묘사된다. 그러니 그가 사서(四書: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읽은 이유도 어렸을 땐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고 큰 지금은 사회적인 성공을 하기 위해서라고 표현된 것이다. 그런 그가 볼 때 강진 선생님은 그 사회의 주류 학문인 사서에 주를 달며 성리학을 깊이 공부하는 것은 물론, 일표이서(一表二書: 경세유표ㆍ목민심서ㆍ흠흠신서)와 같은 실용적인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다운 학자로 보이는 반면에 정약전은 쓸모도 없는 물고기 도감이나 쓰고 있는 서학에 빠진 이단 학자로만 보였다. 그래서 초반엔 정약전과 얽히지 않으려 피해 다니고 그가 말이라도 걸라손치면 역병이라도 만난 듯 얼굴을 찌푸리고 내빼기 바빴던 것이다

 

 

▲  창대는 서학에 빠진 약전이 여러모로 못마땅하다.

 

 

하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되지만 철저한 성리학 신봉자인 장창대의 눈엔 여전히 정약전은 성리학이 바로 서지 못한실패한 지식인으로 보일 뿐이다. 그때 바다에 둥둥 떠다니던 지구의(지구본)을 건지게 되고 정약전은 그 지구의를 가지고 장창대를 찾아간다.

 

 

정약전: (지구의를 보며) 이거 본 적 있느냐?

장창대: 그거 바다에서 주워 온 거자네요.

정약전: 너 서양배 본 적 있느냐?

장창대: 봤지라. 어마무시하게 크더만요.

정약전: 이것은 어마무시하게 큰 배를 만든 서양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사는 땅이다.

장창대: 땅이 똥그랗다고라.

정약전: 서양사람들이 그 큰 배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땅이 둥글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먼 바다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겠느냐?

장창대: (서학을 들먹이는 말에 언짢은 듯) 선상님 자꾸 이러시면, 이 동네에서도 못 산당께요.

정약전: 니가 사서삼경을 외우는 시간에 저들은 또 무엇을 연구하고 또 무엇을 알아냈는지 모른다. 무섭지 않느냐? 서양 사람들은 이 땅이 둥글다는 걸 알면서도 천주님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성리학으로 서양의 기하학과 수리학을 받아들였다. 니 그 영특한 머리로 다른 공부를 배워볼 생각은 없느냐?

장창대: 뭔 공부를 또 배워요? 성리학 공부도 겁나게 벅찬디.

정약전: 같이 하면 된다. 성리학과 서학이 결코 적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벗이지.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위의 대화는 창대에겐 하나의 비수와 같은 말이었다.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공부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게 했으니 말이다. 그에겐 성리학의 교재로 불리던 책 외엔 세상의 모든 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 밤에 나가본 바다에서 무수히 흐르는 별을 바라보며 세상에 곧 책이고, 세상을 공부하는 것이 공부의 한 방식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  바다에 나가본 세상은 그제야 일상이 아닌 하나의 배움터로 보였다. 

 

 

이처럼 이 영화를 시종 관통하는 주제는 정약전이 말한 것처럼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벗을 깊이 알면서 정약전은 예전이면 관심도 갖지 않을 어류들에 관심을 갖게 됐고 어류도감을 쓰게 됐으며 흑산도 사람들이 소나무에 매겨지는 세금 때문에 어린 소나무를 뽑아내는 걸 보면서 소나무 세금에 관한 상소문을 쓰게 됐다. 이처럼 장창대도 성리학 공부외엔 하찮게 여기던 생각을 바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만나지 않았으면 만들어지지 않을 변화들이 두 사람이 마주침으로 빚어졌다.

이처럼 한국한시사(韓國漢詩史)를 마친 지금, 어떤 벗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그리고 그 벗을 만나 내가 어떻게 깊어지게 될지 설렌다. 그런 기대와 설렘 속에서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그래서 행복하다

 

 

▲  만남이 빗어내는 향연, 공부가 얽혀내는 인연.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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