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 오는 여름에도 한문공부 삼매경에 빠지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1년은 11월과 12월, 그리고 그 다음 해 1월과 2월만 기억에 남는다. 나머지 시간은 그저 하염없이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니, 그날이 그날 같고 저날이 저날 같은 무색무취의 시간들로 채워진다. 그러니 1년이란 단위로 놓고 볼 땐 1월이 새해의 시작이란 의미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곧 다가올 2차 시험을 위한 맹렬한 준비기간이자 미련없이 2차 시험을 봐야 하는 시간이며 2월은 그 결과를 봐야만 하는 시간이다. 이때 붙게 되면야 3월부턴 전혀 새로운 인생의 장이 펼쳐질 테지만 나처럼 떨어진 경우엔 또 임용시험을 맹목적으로 준비해야 하니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1차 시험이 있는 11월이 되어서야 다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되지만 이미 1년이란 시간으로 보자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공부만 하다 나이만 먹었다’는 푸념이 결코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이처럼 임용 준비생들의 1년은 무미건조하게 흘러간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 보면 ‘벌써 6월이다’라는 시간이 인식되는 따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2021년도 언제 시작했냐 싶게 벌써 반절이 흘러가고 있고 이렇게 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시험일이 다가올 테고 2021년도 지나갈 거다. 지나가는 시간이 당연히 아쉽기만 하기에, 그리고 나에겐 다시 없을 2021년이기에 이렇게 끄적이며 지금의 느낌을 적어보려는 것이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공부 방법이 바뀌다
임용시험에 첩경 따위는 당연히 없다. 한문공부에 방법 따위도 당연히 없다. 노량진 고시학원의 강의나 임용 특강을 통해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공부방법을 듣게 될지라도 그건 그들이 걸어가며 만들어낸 발자취일 뿐, 그게 꼭 첩경이라든지 누구에게나 적용가능한 방법이라든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도 좌충우돌하며 한 걸음씩 걸어갔듯 나 또한 여러 방법들을 강구하고 여러 공부법을 시험하며 나의 길을 만들어갈 뿐이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 당장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며 하나씩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하나 달라진 부분은 있다. 예전엔 정보를 찾는다든지, 그걸 정리한다든지 하는 모든 것이 노트와 필기도구, 그리고 선배들이나 학원강사가 전해준 자료집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자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고 혹 자료를 찾았다 해도 그걸 정리하는 방식이 고전적인 ‘정리장을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상엔 수많은 책들이 있었고 여기엔 꼭 ‘자전(字典)’이 필수적으로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18년에 다시 공부하겠다고 전주로 내려와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적잖이 놀랐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태블릿의 보급으로 공부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제든 백과사전이나 자료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자료 수집이 용이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자전(字典)을 비롯한 수많은 책들을 꼭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게 바뀐 것이다. 더욱이 언제든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태블릿이 보편화되면서는 언제든 공부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공부할 때도 공부한 내용을 그때 그때 문서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코원Q5라는 PMP나 초창기 아톰 CPU가 들어간 빌립 S7과 같은 기기를 사기도 했지만 PMP는 사용환경에 워낙 제약이 많았고 빌립은 너무도 느렸기 때문에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없었으며 그에 따라 점차 사용빈도가 적어지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태블릿 PC들은 게임만 하지 않는 이상 자료 정리와 같은 것들은 컴퓨터처럼 원없이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예전엔 책상에 앉아 공부한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고 집에 와서 다시 그걸 문서화하는 이중의 작업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책상에 앉아 바로 자료를 검색하고 그 자리에서 문서로 정리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 얼마나 공부하기 좋은 세상이며, 얼마나 공부를 맘껏 재밌게 할 수 있는 세상인가^^
자료를 긁어모으다
그에 따라 2018년부턴 공부한 내용들을 조금씩 문서로 만들기 시작했고 단순히 만드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블로그에 업로드를 하며 체계화시키기 시작했다. 그게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누적되기 시작했으니 이젠 어느 정도 다양한 자료가 쌓였다고 감히 평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계속 머릿속에 있었던 생각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자료는 최대한 많이 모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가 있어야 활용할 수 있고 자료가 있어야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구글이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저변에도 빅데이터의 축적과 그에 따른 활용능력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3년 동안 공부를 하며 모을 수 있는 자료들을 어떻게든 모으는 데에 치중했고 그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통해 언젠가는 갈무리하며 나만의 자료집들을 만들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5월은 책 정리의 달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지금은 정리하고 싶었던 책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4월부터 시작하며 마무리 짓지 못한 『한국한시사』를 그대로 작업하며 5월의 시작을 열었다. 이 책엔 한자어가 많이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일일이 한글로 병기하며 작업을 하려니 무려 21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흐름을 이어받아 늘 정리하고 싶었던 김용옥 선생님의 『노자와 21세기』라는 시작하게 됐다. 무려 3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고 백서 노자와 죽간 노자를 왕필 노자와 비교하며 진행하는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기에 ‘과연 이건 언제 끝나려나?’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막상 시작을 하니 한 권씩 끝내게 되었고 3권을 정리하는 데 12일 정도의 시간만이 걸렸을 뿐이다. 세 권의 책을 다 정리하고 끝냈을 때의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상쾌한 기분이란 미처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다음엔 『효경한글역주』를 골랐다. 김용옥 선생님의 책이기에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면 될 것 같았고 읽을 때마다 통찰을 주는 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 번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자와 21세기』를 정리하며 한문 전문서의 편집법을 조금은 터득했으니 이걸 그대로 활용하여 정리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을 하니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 판본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는데 너무도 전문적인 내용인 탓에 이해하며 정리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해나가자는 마음으로 조금씩 정리하다 보니 8일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로써 5월 한 달 동안 총 3가지 책의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시나브로 정리하고 싶던 책들도 하나씩 정리되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자료집들이 완비되어 가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6월엔 역사서들을 정리하며 초여름의 더위와 한껏 어우러질 테다. 공부하고 싶은 게 있고 알고 싶은 게 있으며 지금처럼 맘껏 해나갈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기만 하다. 이 흐름 그대로 쭉쭉 나가보자. 6월아 반갑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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