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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 산거(山居)②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서경덕 - 산거(山居)②

건방진방랑자 2019. 11. 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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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살이

산거(山居)

 

서경덕(徐敬德)

 

 

기이(其二)

명시종엔 여러 글자들이 다르게 실려 있다[明詩綜 簇作色 面作近 絃咽作聲到 朝作晨 好作閒]

 

花潭一草廬 瀟洒類僊居

화담일초려 소쇄류선거

山簇開軒面 泉絃咽枕虛

산족개헌면 천현열침허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疏

동유풍담탕 경벽수부소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중유소요자 청조호독서 花潭先生文集卷之一

 

 

 

 

해석

花潭一草廬 瀟洒類僊居 화담의 한 초가집이 맑고 깨끗해 신선의 거처와 유사하네.
山簇開軒面 泉絃咽枕虛 산들 모여 향한 집에 열려 있고 샘을 실 같아 허공을 베고 울리네.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疏 골짜기 그윽해서 바람이 맑고도 넓으며 땅이 외진 곳이라 나무가 무성하네.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그 속에 소요하는 사람이 있어 맑은 아침에 글 읽기 좋아하네. 花潭先生文集卷之一

 

 

해설

화담에 초가집이 한 채 있는데, 맑고 깨끗하여서 마치 신선이 사는 집 같다. 그 집 앞의 산들은 옹기종기 겹쳐 저 멀리까지 펼쳐졌고, 집 앞을 흐르는 샘물 소리는 허공에 울려 퍼지고 있다. 골짜기 그윽하여 깊으니 바람이 돌아 흘러 소슬하게 불고, 그곳이 궁벽한 곳이라 사람의 베임을 벗어나 나무도 울창하게 자랐다. 그 화담에 소요하는 사람인 나는 맑은 아침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한가롭게 독서를 즐긴다.

 

해동잡록(海東雜錄)에 서경덕의 화담에서의 은거(隱居)와 학습과정, ()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본관은 당진(唐津)으로 자는 가구(可久), 스스로 호를 복재라 하였다. 일찍부터 화담에 은거하며,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학자들이 화담선생이라 불렀다. 역리(易理)에 밝았으며 특히 수학에 정밀하였다.

중종 때에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끝내 집에서 작고하니, 후에 특별히 영의정의 벼슬을 증직하고, 시호를 문강(文康)이라 하였다. 어머니 한씨(韓氏)가 꿈에 공부자묘(孔夫子廟)에 들어갔다가 그 후 공을 낳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고 과단성이 있었다.

학문에 뜻을 둘 나이가 되어(15세를 말함) 이웃집 유생한테서 서전(書傳)을 강의받다가 기삼백(朞三百)의 주석(朞 三百有六旬有六日 堯典)에 이르러 선생이 책을 덮고 그 장()을 넘어서 지나가자 공()이 그 이유를 물으니, 선생이, ‘본래 모르는 대목이고 나도 배우지 않았으며 세상 사람이 다 읽지 않는다.’ 하였다. 공이 이상하게 여기고 물러나서 곰곰이 15일을 생각하고 읽고 외기를 몇천 번 하니 자연히 뜻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글이란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의 천성은 효성이 지극하여 상주가 되어서는 예기(禮記)를 읽다가, ‘처음 죽어서는 황급하다.’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여러 번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평생 남에게 모난 행동을 싫어하여 이웃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도 종일 이야기하고 웃고 하여 보통 사람보다 다른 점을 볼 수 없었다. 집은 지극히 빈한하여 혹 며칠 밥을 짓지 않아도 태연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그 덕망에 교화되어 서로 다투는 일이 있으면 관부(官府)에 가지 않고 선생한테 와서 판결을 받았었다. 기묘년 천과(薦科)에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신묘년에 어머니의 명령으로 서울에 가서 사마(司馬)가 되어 돌아와, 후릉(厚陵, 정종과 그 비의 능) 참봉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나이 58세에 죽었다[唐津人 字可久 自號復齋 嘗隱居花潭 不求聞達 學者稱爲花潭先生 明於易理 而數學尤精 我中廟累召不起 終於家 後特贈領議政 謚文康 母韓氏 嘗夢入夫子廟生公 自幼聰明英果 年近志學 授書傳於隣儒 至朞三百註 其師便掩卷踰張而去 公問其故 其師曰 本不知處 吾所不學 世人皆不讀 公怪而退來 精思十五日 讀誦幾千遍 自然通曉 乃知書之可以思得也 公天性至孝 居憂讀禮記 至始死皇皇等語 未嘗不三復流涕 平生惡崖異之行 與隣人處 終日言笑 未見有異也 家至貧 或連日不炊 而常晏如 鄕隣化其德 有爭辨則不至官府 而來咨決焉 己卯薦科 辭不赴 辛卯以母氏之命 到京師 得司馬而歸 除厚陵參奉 不起 年五十八卒].”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24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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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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