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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프롤로그 - 끊임없이 중심을 이동하며 꽃피운 서양 문명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프롤로그 - 끊임없이 중심을 이동하며 꽃피운 서양 문명

건방진방랑자 2022. 1. 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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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끊임없이 중심을 이동하며 꽃피운 서양 문명

 

 

바람에 날려간 씨앗이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을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말을 쓰지만, 실은 2대 문명이라고 해야 한다. 먼저 하나는 황허 문명인데, 이것은 지금 동양 문명의 뿌리다. 나머지 세 문명은 황허 문명처럼 궤적이 확실하지 않다. 인더스 문명은 도시 유적만 남겼을 뿐 후대에 전승되지 않았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한데 합쳐져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문명은 크게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의 두 가지인 셈이다(물론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아메리카에도 고대 문명이 있었지만, 오늘날과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마이너문명일 수밖에 없다).

 

동양 문명은 곧 중국 문명이다. 중국 문명은 황하 중류의 중원에서 발생해 3000년에 이르는 제국 전사前史와 이후 2000년에 달하는 제국 역사로 진행되는 동안 내내 지리적 중심이 고정되어 있었다. 제국 전사의 기간에 중국 문명은 중원에서 비롯되어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강남과 중원 서부를 아울렀고, 제국 역사에 들어서는 한반도와 몽골 초원, 만주, 서역(중앙아시아), 일본, 동남아시아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문명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는 꾸준히 넓어졌어도 중심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문명이 이동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에 비해 서양 문명은 태어난 곳과 자란 곳, 활동한 곳이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끊임없이 중심이 이동하는 유목적nomadic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서양의 역사는 동양의 역사에 비해 훨씬 역동적인 측면이 있다.

 

우선 서양 문명이 태어난 곳은 오늘날의 서양이 아니다. 지금의 소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이집트 일대, 한마디로 고대에 오리엔트라고 불렀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속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서양의 역사에 속한다(7세기 이후 이 지역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발흥해 유럽의 중세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오리엔트 세계는 고대 문명권의 성립에 결정적인 문자(알파벳)와 종교(그리스도교)를 유럽 세계에 전파했다. 여러가지 면에서 오리엔트는 서양 문명의 씨앗이다.

 

오리엔트에서 생겨난 문명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처음 안착한 곳은 지중해 동부 에게 해의 크레타 섬이었다. 여기서 문명의 씨앗은 최초의 뿌리를 준비하는데, 이것이 미노스 문명이다. 하지만 크레타는 메이저 문명의 커다란 씨앗을 기르기에 충분한 토양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씨앗은 좀 더 서쪽으로 이동해 그리스에서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

 

 

뿌리와 줄기를 키우고

 

그리스와 로마는 서양 문명의 뿌리에 해당한다. 바깥에서 날아온 씨앗이 처음으로 유럽 땅에 내려앉은 곳이기 때문이다(유럽 중심주의에 물든 일부 서양의 역사가들은 서양 문명이 오리엔트와 무관하게 그리스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지만 씨앗 없이 트는 싹은 없다).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서양 문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이때부터다.

 

도식적으로 구분하면 그리스는 주로 사상과 문화의 측면에서, 로마는 언어와 제도, 종교의 측면에서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루었다. 특히 로마 시대 말기인 313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전격적으로 공인한 그리스도교는 이후 1000여 년 동안, 나아가 오늘날까지 서양 문명의 종교적·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뿌리가 튼튼한 줄기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계기가 필요했다. 서양 문명이 뿌리를 내린 그리스와 로마는 지리적으로 남유럽에 치우쳐 있었다. 이 남유럽의 문명을 유럽 전체의 문명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바로 중부 유럽의 게르만 문명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 문명의 빛이 지중해 일대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해서 중부 유럽과 북유럽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그리스인들은 북쪽에 사는 이민족들을 바르바로이(barbaroi)라고 불렀다. 이 말은 원래 부정적인 의미가 없고 그냥 이민족 혹은 이어족(異語族, 말이 다른 종족)이라는 뜻이었는데, 로마인들은 그것을 오늘날과 같은 야만족(barbarian)이라는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은 결국 이 야만족에게 멸망을 당한다. 그들이 바로 게르만족이다.

 

중국의 한족이 북방 이민족들을 총칭해 오랑캐라고 불렀듯이, 로마인들은 중부 유럽과 북유럽에 널리 퍼져 살고 있던 야만족을 굳이 세분하지 않고 게르만족이라는 이름으로 총칭했다(원래 명명이란 문명적으로 앞선 민족이 처진 민족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러므로 게르만족이라는 개별 민족은 없다. 역사서에는 고트족·반달족 롬바르드족·프랑크족 등이 게르만족의 갈래라고 나오지만, 실은 로마인들이 그렇게 여겼을 뿐 그들은 다 서로 별개의 민족들이었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은 로마 문명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인 게르만 문명을 보태 유럽 문명을 로마-게르만 문명으로 발전시킨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게 바로 서양 역사의 줄기에 해당하는 중세다. 이로써 서양 문명은 처음으로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확고한 지리적 세력권을 가지게 되었다.

 

 

꽃을 피워 열매를 맺다

 

중세 수백 년 동안 줄기가 굵어진 서양 문명의 나무는 이제 화려한 개화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14~16세기에 서양의 역사에서는 세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는 역사에 대항해시대라고 기록된 지리상의 발견과 정복이고, 다른 하나는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변동이며, 나머지 하나는 종교개혁으로 알려진 정신사적 변화다. 하나만 해도 역사책의 수십 쪽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변화가 셋이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을 우연으로 돌릴 수 있을까?

 

꽃을 피우는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다. 지리상의 발견과 정복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바라보는 문명권을 탄생시켰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인간을 신에게서 독립시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사물과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켜 바라보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그 개화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자명해진다. 이제 서양 문명은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주의 문명으로 무장하고 바야흐로 세계 정복에 나서는 것이다. 그 과정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해외 식민지 개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중세적 질서가 사라졌으므로 이제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중세의 종교적 통합성이 깨지자 서양 문명 내의 알력과 갈등은 곧장 전쟁의 양상으로 터져 나온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양의 역사에서 세기마다 한두 차례씩 대규모 국제전이 벌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17세기 초반의 30년 전쟁, 18세기의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 전쟁(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진 해외 식민지 쟁탈전), 19세기 초반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의 양차 대전 등은 모두 그 일환이다. 그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30년 전쟁으로 제기된 유럽 국가들 간의 영토 구획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최종적인 전쟁이었으며, 전후에 성립된 국제연합UN은 중세 이후 맥이 끊겼던 서양 세계의 통합적 국제 질서를 400여 년 만에 되찾은 것에 해당한다.

 

한편 안으로 진통을 앓는 동안에도 서양 문명의 서진(西進)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남유럽에 치중되어 있던 로마 문명은 제국이 멸망한 뒤 북상해 로마-게르만 문명의 서유럽 세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유럽의 서쪽 땅끝영국까지 오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던 서양 문명의 이동은 또다시 서쪽으로 이동해 대서양을 건넌다. 16세기에는 에스파냐가 남아메리카를 차지하고, 17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북아메리카에 유럽 문명을 이식한다. 이로써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서양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문명의 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서쪽으로 태평양을 건너면, 미지의 세계는 아니지만 서양 문명의 미정복지가 남아 있다. 서양 문명에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 문명이다. 아메리카처럼 인구가 희박하고 문명의 힘이 약한 곳이 아니므로 서양 문명은 영토적 점령을 꾀하지 않고 경제와 문화를 통해 문명을 확산시킨다. 오랜 역사를 통해 얻은 서양 문명의 최종 산물인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표현이고, 자본주의는 의회민주주의의 경제적 표현이므로, 두 가지라기보다는 쌍둥이와 같다)가 동북아시아에 이식된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동북아시아는 서양 문명권에 편입되었다. 동양의 오랜 전통 문명은 살아 있지만 정치·경제·사회의 기본적 하드웨어는 서양화되었고, 토착 문명은 로컬 문명으로 축소되었다. 이제 서양 문명은 최종 목적지만 남겨두었다. 여기서 좀 더 서진을 계속하면 원래 출발했던 곳(서남아시아)에 이를 것이다. 인류 문명사 5000년은 늘 글로벌화를 지향했다.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의식적으로 추진한 게 아니라 역사 자체가 그렇게 흐른 것이다. 서양 문명이 현재의 이슬람권까지 확산되면 그것으로 비로소 문명의 커다란 한 주기가 끝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서양 문명이라는 지역 명칭을 쓸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고통과 피의 역사

 

서양 문명을 하나의 나무에 비유하는 방식은 편리하기는 해도 뭔가 도식적인 구분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를 읽는 독자로서 서양 문명을 가급적 쉽게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보면 되니까.

 

혹시 서양 문명의 세계화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서양 문명은 지역 문명에서 벗어나 사실상 세계 문명이 되었다. 의회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제도적 측면만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서양식 옷차림을 하는 것 자체가 서양 문명의 세계적 성격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제 서양 문명이 (출발은 로컬이었다 해도) 유일한 글로벌 문명이라는 점은 싫든 좋든, 또 옳든 그르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한 가지, 서양 문명과 서양 역사에 대한 커다란 오해는 빛나는 승리로만 점철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피로 얼룩지지 않은 부분이 없다. 대규모 전염병이 여러 차례나 서양 세계를 덮쳤고, 특히 14세기의 페스트는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반란으로 권력을 잃으면 코와 혀가 잘리는, 죽음보다 못한 참형을 당했으며, 중세의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낙인찍히면 화형을 당해야 했다. 30년 전쟁 중 독일 지역에서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무려 800만 명에 이르렀다. 산업혁명이 절정을 구가하던 19세기 초반의 영국에서는 여섯 살 난 어린이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에 16시간이나 일해야 했다.

 

그런 재앙과 비극을 미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게 서양 문명의 성장과 발달에 기여한 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서양 문명의 총화와 결실이라 할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정착하는 과정은 수많은 사람의 피와 수백 년에 이르는 세월이 필요했다.

 

어쨌든 서양 문명이 세계적인 승리와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이제부터 그 승리와 성공을 향한 서양사의 험난하고 험악한 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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