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는 좋은 문화 풍토에서 저절로 나온다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
성현(成俔)
땅의 조건에 따른 나무의 자람
孝文公卒之明年, 上命裒聚遺詩爲集, 令臣爲序弁其首.
臣竊惟養珍木者得寸根, 必壅之以墳, 灌之以水, 暖之以日. 然後得遂且茂, 所托者淺, 故必用人力以扶植之也.其生於深山大壑之中者, 不賴栽培灌暖, 而自然枝葉敷暢, 卒至上撓靑雲而不見其巓. 此無他. 其托根深, 而元氣厚也.
상황에 따른 사람의 능력
人之有才者亦猶是爾. 凡人之爲學者, 孶孶屹屹, 勞心怵慮, 飽憂患而費工夫. 然後得發爲文, 雕琢務奇, 而其氣像未免有淺近之病. 王公鉅人則不然. 居移氣而養移體, 所處高而所見大, 不務學而自裕, 不鍊業而自精. 恢恢然有餘力, 而其功易就.
然文章之名, 多出於窮困, 而不出於紈袴者. 非窮困之獨工, 而紈袴之獨不能也. 汩於富貴繁華之樂, 而不可爲也.
하간헌왕과 동평왕의 장점과 한계
漢興, 河間獻王修德好古, 邀四方道術之士, 與之講論, 又奉對策於三雍之宮. 東平王蒼, 少好經書, 爲文典雅, 所作書記賦頌歌詩, 爲當時儒士之所錄, 其文章事業, 皆爲兩漢之冠. 然好名矜夸之累, 識者譏之.
효문공의 차별점과 문학의 공
公以宗室之胄, 肺腑至親, 禮義撿身, 動遵繩墨, 斥去紛奢, 務要儉約. 謝絶賓客, 潛心墳典, 發爲詩文, 隨意輒占. 今觀是集, 大篇舂容, 短韻雅健. 不勞埏埴, 而陶範自成; 不要斤斲, 而規矱允合; 不點雌黃, 而文采爛發; 不費御勒, 而跬步不窘. 其淸深醞藉, 一無紈綺之習, 而蕭然有出塵之標. 自非見理之明, 寫物之精, 何以至此? 雖老儒大手有名於文苑者, 莫能攀而倫之, 則彼河間ㆍ東平之儔, 奚足比肩而擬議之耶?
世之身叨富貴, 目不知書, 而心中所存者寡焉, 則年雖多而道則夭. 公則學文富於一己, 而文雅擅乎一代, 敷施煥發, 身雖亡而不亡者存焉, 則雖曰: ‘夭於天年, 而道則未嘗不壽.’ 上以黼黻邦家, 下以資民歌詠, 作爲雅頌, 彪弸琅炳, 垂靑史而不墜, 則其膾灸後人之口, 豈淺淺乎哉?
行成均館大司成臣成俔, 謹序. 『虛白堂文集』 卷之六
해석
땅의 조건에 따른 나무의 자람
孝文公卒之明年, 上命裒聚遺詩爲集,
효문공【효문공&월산대군: 5대 문종의 종손이며 단종의 종질이고, 8대 예종의 조카임.】이 돌아가신 이듬해에 임금께서 효문공의 남은 시를 모아 문집을 만들고
令臣爲序弁其首.
저에게 서문을 지어 첫 머리에 첨부하라고 명하셨습니다.
臣竊惟養珍木者得寸根,
제가 생각하기론 오직 진귀한 나무를 기를 때에 한 마디의 뿌리를 얻으면
必壅之以墳, 灌之以水, 暖之以日.
반드시 기름진 흙으로 덮고 물을 주며, 해를 비춰줘야 합니다.
然後得遂且茂, 所托者淺,
그런 후에야 마침내 나무가 무성해지지만 뿌리내린 땅이 얕기 때문에
故必用人力以扶植之也.
반드시 사람의 힘을 써서 영향을 주어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其生於深山大壑之中者,
그러나 심산유곡 가운데서 자란 나무는
不賴栽培灌暖,
재배하거나 물을 대거나 햇볕을 비춰줌을 더해주지 않더라도
而自然枝葉敷暢,
자연히 가지와 잎사귀가 확 펼쳐져【부장(敷暢): 확 펼쳐져 발휘해짐이 더해진다[鋪敘而加以發揮].】
卒至上撓靑雲而不見其巓.
마침내 위로 푸른 구름을 꺾을 듯 이르고 나무 꼭대기는 보이질 않습니다.
此無他.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其托根深, 而元氣厚也.
뿌리를 내린 곳이 깊어 원기가 두텁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른 사람의 능력
人之有才者亦猶是爾.
사람의 재주가 있다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凡人之爲學者, 孶孶屹屹,
보통 사람으로 배우려는 이는, 힘쓰고 부지런히 하여【흘흘(屹屹): 골골(矻矻)과 같은 말로, 부지런히 분발하여 나태함이 없는 모양[勤奮不懈貌].】,
勞心怵慮, 飽憂患而費工夫.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두렵게 하여, 우환에 젖어들고 공부에 힘을 씁니다.
然後得發爲文, 雕琢務奇,
그런 후에야 쓸 만한 것을 얻어 문장을 짓는데 조탁하기를 기이함에만 힘쓰니,
而其氣像未免有淺近之病.
기상이 천박하고 비근한 병폐를 피하질 못합니다.
王公鉅人則不然.
그러나 왕족과 양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居移氣而養移體,
사는 곳이 기를 움직이게 하고 수양한 것이 몸을 움직이게 하여
所處高而所見大,
거처하는 곳이 높고 보는 것이 원대하여
不務學而自裕,
배움에 힘쓰질 않아도 스스로 유유자적하며,
不鍊業而自精.
업을 다듬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밀해집니다.
恢恢然有餘力, 而其功易就.
넓고도 깊어【회회(恢恢): 관대하고 광활하며 넓고도 큰 모양[寬闊廣大貌].】 남은 힘이 있으니, 그 공은 쉽게 성취됩니다.
然文章之名, 多出於窮困,
그러나 문장으로 이름난 작품은 곤궁한 이들에게서 많이 나왔지만
而不出於紈袴者.
양반 자식에게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非窮困之獨工, 而紈袴之獨不能也.
곤궁하기에 홀로 공교로운 게 아니라, 양반 자식들이 홀로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汩於富貴繁華之樂, 而不可爲也.
부귀영화의 즐거움에 골똘히 빠진 나머지, 하질 못한 것입니다.
하간헌왕과 동평왕의 장점과 한계
漢興, 河間獻王修德好古,
한나라가 일어날 적에 하간헌왕은 덕을 닦고 옛 것을 좋아하여
邀四方道術之士, 與之講論,
사방의 도덕적이고 재술이 있는 선비를 맞이하여 그들과 의론하였고,
又奉對策於三雍之宮.
또한 대학【삼옹(三雍): 한나라 시기의 대학ㆍ명당ㆍ영대를 통칭함[漢時對辟雍ㆍ明堂ㆍ靈臺的總稱].】의 학궁에 대책을 받들어 올렸습니다.
東平王蒼, 少好經書, 爲文典雅,
동평왕 창은 어려서 경서를 좋아해서 문장을 지으면 법도에 맞고도 우아하여
所作書記賦頌歌詩, 爲當時儒士之所錄,
지은 書ㆍ記ㆍ賦ㆍ頌ㆍ歌ㆍ詩를 당시 선비들이 기록했으니,
其文章事業, 皆爲兩漢之冠.
그 문장과 사업이 다 양한(전한과 후한)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然好名矜夸之累,
그러나 명예를 좋아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교만함에 연루됨으로
識者譏之.
식자들은 그 글들을 비난했습니다.
효문공의 차별점과 문학의 공
公以宗室之胄, 肺腑至親,
효문공은 종실의 맏아들이고 왕실의 가까운 친척으로
禮義撿身, 動遵繩墨,
예의로 몸을 검속했고 움직일 때 법도【승묵(繩墨): 법칙과 규칙을 비유한 것[喻規矩、准則]】에 따라 살면서
斥去紛奢, 務要儉約.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분사(紛奢): 매우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지냄】을 없애고 검약함에 힘썼습니다.
謝絶賓客, 潛心墳典,
손님들을 사절하고 고서에만 마음을 써서
發爲詩文, 隨意輒占.
소리를 내면 시문이 되고, 뜻을 따르면 문득 노래가 됩니다.
今觀是集, 大篇舂容, 短韻雅健.
지금 이 문집을 보면, 긴 산문들은 심성이 깊고 밝으며【용용(舂容): 성음이 그윽하고 양양하며 넓고도 밝음[聲音悠揚洪亮].】, 짧은 운문들은 우아하고 굳셉니다.
不勞埏埴, 而陶範自成;
그래서 도야하는 수고로움이 없이도 내외의 법이 모두 완성되었고,
不要斤斲, 而規矱允合;
시문을 고치길 요구하지 않아도 법처럼 맞아떨어졌으며,
不點雌黃, 而文采爛發;
공책에 고치질 않아도 문채가 환히 빛나고,
不費御勒, 而跬步不窘.
굴레(제약)를 씌우지 않아도 조금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其淸深醞藉, 一無紈綺之習,
맑고 심오하며 온축되며 조금도 양반자식의 습성이 없고
而蕭然有出塵之標.
적막하게 세상을 벗어난 표준이 있었습니다.
自非見理之明, 寫物之精,
스스로 이치의 밝음을 보지 않고 사물의 정밀함을 묘사하지 못했다면
何以至此?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雖老儒大手有名於文苑者,
비록 원숙한 선비나 솜씨 좋은 대가로 문단에 이름이 난 사람이라도
莫能攀而倫之,
더위잡고 무리 지을 수 없는데,
則彼河間ㆍ東平之儔,
저 한간헌왕과 동평왕의 무리들이라도
奚足比肩而擬議之耶?
어찌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모의할 수 있겠습니까?
世之身叨富貴, 目不知書,
세상에 온몸으로 부귀를 탐내면서도 눈으론 책을 읽지 않아
而心中所存者寡焉,
내면에 보존된 게 적은 자라면
則年雖多而道則夭.
나이가 비록 많더라도 도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公則學文富於一己,
그러나 효문공께서는 학문이 한 몸에 풍부하고,
而文雅擅乎一代, 敷施煥發,
문아함이 한 대에 가득 차 확 펼쳐져 빛이 나니,
身雖亡而不亡者存焉,
몸은 비록 사라졌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것으로
則雖曰: ‘夭於天年, 而道則未嘗不壽.’
비록 ‘수명으론 요절하였으나 도는 일찍이 장수하지 않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上以黼黻邦家, 下以資民歌詠,
위로는 국가의 문장【보불(黼黻): 관복에 수놓는 무늬로, 유창하고 화려한 문장을 비유함.】에 이바지했고, 아래로 백성들의 문학에 이바지하였으며,
作爲雅頌, 彪弸琅炳, 垂靑史而不墜,
지은 雅와 頌이 밝고도 가득 차며 환하고도 빛나 역사에 드리워져 없어지질 않으니,
則其膾灸後人之口, 豈淺淺乎哉?
후세의 입에 회자됨에 어찌 천박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行成均館大司成臣成俔, 謹序. 『虛白堂文集』 卷之六
성균관 대사성 성현이 삼가 씁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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