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를 타고난 장유 선생 시집 간행을 축하하며
석주집서(石洲集序)
장유(張維)
시는 천부적인 자질로 지어진다
詩, 天機也. 鳴於聲, 華於色澤, 淸濁雅俗, 出乎自然.
聲與色, 可爲也; 天機之妙, 不可爲也. 如以聲色而已矣, 顚冥之徒, 可以假彭澤之韻; 齷齪之夫, 可以效靑蓮之語, 肖之則優; 擬之則僭, 夫何故? 無其眞故也. 眞者何? 非天機之謂乎?
석주선생을 알고 그의 시를 보아야 한다
世之人, 以詩觀詩, 不以人觀詩. 若然者, 豈唯不得其人, 幷與其詩而失之, 詩可易言乎哉?
石洲之詩, 談者謂: ‘百年來所未有’ 此固以詩論也. 乃余實得其人焉. 余生後公幾二十年, 弱冠幸得從公游. 爲人廣顙哆口, 疏眉目, 貌偉而氣豪. 言論磊落動人, 間雜詼謔. 性酷嗜酒, 酒後語益放, 傲睨吟嘯, 風神散朗, 卽不待操紙落筆, 而凡形於口吻; 動於眉睫, 無非詩也者. 及其章成也, 情境妥適, 律呂諧協, 蓋無往而非天機之流動也.
公雖以詩酒自放, 然天資甚高; 內行甚飭, 讀濂洛諸書, 見解通明. 雖老師宿儒, 無以遠過之.
세 명의 임금들이 석주선생을 대하는 방식
宣廟聞其名, 命進所爲詩, 大加稱賞, 至以布衣佐儐使. 光海政亂, 屢以危言忤權貴, 竟中蜚語, 坐詩案以死. 及今上踐阼, 命贈某官, 以伸直道.
님은 가셨으나 문집은 남았으니
湖南方伯沈公器遠, 完山尹洪公靌, 皆公門下士. 始鋟公遺稿, 刻成, 屬余序之. 余結髮知慕公, 嘗得一言奬許, 至今未敢忘也, 序卷之託, 又何可辭?
噫! 公以豪傑之資, 用志不分, 專發之於詩. 然其遇於世也, 只一當華使而已. 奇禍之憯, 竟亦繇是致焉, 不知天之畀公絶藝, 榮之歟? 抑禍之歟? 乃今遺集之行, 出於禍釁之餘, 殘膏賸馥, 將沾被寰中. 其視富貴而名磨滅者, 得失何如哉? 逝者而有知, 亦足以自慰矣. 悲夫. 『谿谷先生集』 卷之六
▲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주로 내뺐다. 몽골이 왔을 땐 강화도로, 청이 왔을 땐 남한산성으로, 인민군이 왔을 땐 부산으로 내뺐다.
해석
시는 천부적인 자질로 지어진다
시는 천부적인 자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鳴於聲, 華於色澤, 淸濁雅俗, 出乎自然.
소리에서 나와 빛나는 윤기로 드러나 맑고 흐리며 우아하고 속된 것이 자연에서 발출된다.
聲與色, 可爲也; 天機之妙, 不可爲也.
소리와 얼굴색은 따라할 수 있지만, 천기의 오묘함은 따라할 수 없다.
如以聲色而已矣, 顚冥之徒, 可以假彭澤之韻;
만약 소리와 얼굴색일 뿐이라면, 전도되고 어두운 무리들도 도연명【彭澤: 도연명은 일찍이 집이 가난하여 어버이 봉양을 위해 祭酒가 되었다가 이직을 견디지 못해 사임하였고, 훗날 평택령이 되었으나, “五斗祿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못하겠다.”면서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살음.】의 시를 빌려서 지을 수 있고,
齷齪之夫, 可以效靑蓮之語, 肖之則優; 擬之則僭,
악다구니만 하는 사내들도 이백【李白: 太白. 호 靑蓮居士. 杜甫와 함께 ‘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詩仙이라 불린다.】의 말을 본뜰 수 있지만 닮을수록 배우 같고, 본뜰수록 참람되니,
夫何故? 無其眞故也. 眞者何? 非天機之謂乎?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천기를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석주선생을 알고 그의 시를 보아야 한다
世之人, 以詩觀詩, 不以人觀詩.
세상 사람들은 시라는 작품으로만 시를 평가하지, 작자로 시를 평가하진 않는다.
若然者, 豈唯不得其人,
만약 그런 식으로 한다면, 어찌 유독 그 사람만을 알지 못하겠는가,
幷與其詩而失之, 詩可易言乎哉?
아울러 그 시마저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되니, 시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石洲之詩, 談者謂: ‘百年來所未有’
석주선생의 시에 대해 호사가들은 ‘100년 이래로 있지 않은 작품이다’라고 하는데,
此固以詩論也.
이것은 진실로 시라는 작품으로 시를 논한 것일 뿐이다.
乃余實得其人焉.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 사람을 알고 있다.
余生後公幾二十年, 弱冠幸得從公游.
나의 태어남은 석주선생이 태어난 지 20년 뒤였지만, 20살【弱冠: 二十成人,初加冠,體猶未壯,故曰弱也】에 다행히도 석주 선생을 따라 노닐 수 있었다.
爲人廣顙哆口, 疏眉目, 貌偉而氣豪.
그의 사람됨은 훤칠한 이마와 커다란 입, 사이가 먼 미간으로 겉모습은 위대했고 기상은 호탕했다.
言論磊落動人, 間雜詼謔.
말은 광대하여 사람을 감동시켰고, 간간히 해학을 섞어 이야기를 했다.
性酷嗜酒, 酒後語益放,
성품은 심히 술 마시길 즐겨, 술 마신 후엔 말이 더욱 거리낌이 없었고
傲睨吟嘯.
거만하게 노려보며 읊조렸다.
風神散朗, 卽不待操紙落筆,
그의 문체【風神: 指藝術作品的文采神, “其詞隨語成韻,隨韻成趣,不假雕琢,而意志自深,風神或近楚 魯迅『漢文學史綱要』第八篇”】는 소산하고 명랑하여 곧 종이를 잡고 붓을 대지 않더라도
而凡形於口吻; 動於眉睫, 無非詩也者.
무릇 입에서 드러나고 눈썹과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들이 시가 아닌 게 없었다.
及其章成也, 情境妥適, 律呂諧協,
그 문장이 완성되면 상황에 맞아떨어졌고 음악적인 가락에 어우러져
蓋無往而非天機之流動也.
대개 움직이는 것마다 천기의 유동이 아닌 게 없을 정도였다.
公雖以詩酒自放,
석주 선생은 비록 시와 술로 스스로 멋대로 노시는 듯했지만,
然天資甚高; 內行甚飭,
그러나 하늘이 내려준 자질은 심히 고상했고 안으로 행동은 매우 삼갔으며
讀濂洛諸書, 見解通明.
염락【濂洛: 宋学 4파의 총칭. 이 학통의 시조인 周敦頤ㆍ程顥‧程頤ㆍ張載ㆍ朱熹】의 모든 글들을 읽었기에 견해가 통하고 분명하여,
雖老師宿儒, 無以遠過之.
비록 노련한 스승이나 원숙한 선비라도 원대함이 석주 선생을 넘어서질 못했다.
세 명의 임금들이 석주선생을 대하는 방식
宣廟聞其名, 命進所爲詩,
선조께서 석주선생의 명성을 듣고 지었던 시를 궁궐로 들이라 명하셨고
大加稱賞, 至以布衣佐儐使.
크게 칭찬하셔서 포의임에도 원접사인 이정구를 돕도록 하는 데에 이르렀다.
광해군의 정치는 혼란스러웠기에 석주선생은 자주 곧은 말로 고관대작의 심기를 거슬렀고
竟中蜚語, 坐詩案以死.
마침내는 유언비어에 걸려들어 시로 인한 필화사건의 재판에 연좌되어 죽었다.
及今上踐阼, 命贈某官,
그러다 지금의 인조께서 등극하셔서 모 관리로 추증하길 명하심으로
以伸直道.
석주선생의 곧은 도가 활짝 펼쳐질 수 있게 되었다.
님은 가셨으나 문집은 남았으니
湖南方伯沈公器遠, 完山尹洪公靌, 皆公門下士.
호남의 관찰사인 심기원과 완산윤인 홍보는 모두 석주선생 문하의 제자들이다.
始鋟公遺稿, 刻成, 屬余序之.
처음으로 석주선생의 유고를 판각하게 했고, 판각이 완성되자, 나에게 서문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余結髮知慕公,
나는 머리를 묶어 성인이 된 후로 석주선생을 사모할 줄 알았고,
嘗得一言奬許, 至今未敢忘也,
일찍이 한 마디 말의 칭찬을 받게 된 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히 잊은 적이 없었으니,
序卷之託, 又何可辭?
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또한 어찌 사양하겠는가.
噫! 公以豪傑之資, 用志不分, 專發之於詩.
아! 석주선생은 호걸의 자질로 뜻을 씀에 나누어 쓰지 않고 전일하게 시에만 발산했다.
然其遇於世也, 只一當華使而已.
그러나 그 시대를 만나 쓰여짐은 다만 한 번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것만을 감당했을 뿐이다.
奇禍之憯, 竟亦繇是致焉.
기이한 재앙의 비통함이 마침내 또한 이 때문에 닥쳤던 것이다.
不知天之畀公絶藝, 榮之歟?
알지 못하겠다, 하늘이 석주선생에게 뛰어난 재주를 줌은 그를 영광되게 하고자 해선가,
抑禍之歟?
아니면 그를 재앙에 빠뜨리려 해서인가?
乃今遺集之行, 出於禍釁之餘,
이제 문집을 간행하게 된 것은 재앙의 나머지에서 나왔으니,
殘膏賸馥, 將沾被寰中.
남은 광택과 남은 향기가 장차 우리나라를 적실 것이다.
其視富貴而名磨滅者, 得失何如哉?
부귀하기만 하고 이름이 사라진 자들과 견준다면 득실이 어떠하겠는가?
逝者而有知,
돌아가신 석주선생이 문집이 간행된 걸 아신다면,
亦足以自慰矣. 悲夫! 『谿谷先生集』 卷之六
또한 넉넉히 스스로 위로가 될 만할 것이다. 슬프구나!
▲ 석주 선생의 존영.
인용
이정구 - 石洲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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