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유비의 죽음과 제갈량의 정치
昭烈帝在位三年崩, 太子禪卽位, 年十七, 是爲後皇帝.
丞相諸葛亮, 受遺詔輔政, 昭烈臨終謂亮曰: “君才十倍曹丕, 必能安國家, 終定大事. 嗣子可輔, 輔之, 如其不可, 君可自取”
亮涕泣曰: “臣敢不竭股肱之力, 致忠貞之節, 繼之以死”
亮乃約官職, 修法制. 下敎曰: “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若遠小嫌, 難相違覆, 曠闕損矣”
해석
昭烈帝在位三年崩,
소열제 유비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돌아가셨고,
太子禪卽位, 年十七, 是爲後皇帝.
태자인 유선이 즉위하였으니, 17살이었고, 이가 바로 후황제다.
丞相諸葛亮, 受遺詔輔政,
승상 제갈량은 유비가 남긴 조칙을 받고서 정치를 도우니,
昭烈臨終謂亮曰:
소열제가 임종 때에 제갈량에게 말했다.
“君才十倍曹丕, 必能安國家,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10배가 되니, 반드시 국가를 안정시켜
終定大事.
마침내 대사를 정할 수가 있다.
嗣子可輔, 輔之,
후계자가 보좌할 만한 인간이면 보좌하고,
如其不可, 君可自取”
만약 그런 재목이 아니면 그대가 스스로 촉나라를 다스려다오.”
亮涕泣曰: “臣敢不竭股肱之力,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신하가 감히 어찌 고굉의 힘을 다하지 않으리오.
致忠貞之節, 繼之以死”
충절의 절개를 다하여 계승하길 죽도록 하겠습니다.”
亮乃約官職, 修法制.
제갈량은 곧 관직을 줄이고, 법제를 가다듬었다.
下敎曰: “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그러면서 하교했다. “참서라는 직책은 많은 생각을 모아 충익함을 넓히는 것이다.
若遠小嫌, 難相違覆,
만약 조금 꺼리진다고 멀리한다면 서로 어긋남을 덮기에 어려워져
曠闕損矣”
충직한 신하들이 떠남으로 손해가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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