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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립 - 대인(待人)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최사립 - 대인(待人)

건방진방랑자 2019. 12. 1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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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다리며

대인(待人)

 

최사립(崔斯立)

 

 

天壽門前柳絮飛 一壺來待故人歸

眼穿落日長程晩 多少行人近却非 東文選卷之二十

 

 

 

 

해석

天壽門前柳絮飛
천수문전류서비
천수문 앞 버들개지 나니
一壺來待故人歸
일호래대고인귀
한 술 병 가지고 와 친구 돌아오길 기다리네.
眼穿落日長程晩
안천락일장정만
눈은 지는 해에 뚫어졌고 긴 길로 더디기만 해서
多少行人近却非
다소행인근각비
얼마간 다니는 사람들 가까이 오는데 도리어 친구 아니구나. 東文選卷之二十

 

 

해설

천수문은 개성(開城) 동쪽 취적봉(吹笛峰) 아래 있었던 천수사(天壽寺)의 남문이었는데, 후에 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천수원(天壽院)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천수문은 곧 이 천수원의 남문이 된 셈이다. ‘이란 각처로 통하는 길목에 베푼 행객의 숙소이기에 배웅이나 마중도 자연 그 어름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천수문은 고려 오백 년간의 영빈송객지지(迎賓送客之地)라 기록되어 있다.

 

이 시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같은 작자의 천수원시가 또 있으니, 우선 이를 먼저 살펴봄이 도움이 될 듯하여 옮겨 놓는다.

 

連天草色碧煙昏 하늘에 연한 풀빛 이내랑 아스라하고
滿地梨花白雪繁 땅에 가득 지는 배꽃 우수수 눈보란데,
此是年年離別處 여기 해마다 이별 잦은 곳
不因送君亦銷魂 내임 보냄 아니어도 이리 서러움이여!

 

두 시가 다 꽃 지는 봄날의 송영(送迎)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렇다 할 슬픔도 없이 공연히 언짢아지는 계절이기도 한데, 천수원 앞 길에서 벌어지는, 남들의 애끊는 이별의 장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이란 근본 만났다가는 헤어지게 마련인 존재 같기도 하여 서글퍼진다. 이 결구는 이별의 대리감정(代理感情)이기도 한 동시에, 임을 보낸 지난날의 자신의 슬픔의 반추이기도 한 것이다.

 

그 지난날 이 문 앞에서 배웅했던 그 친구를, 이제 같은 장소에로 마중 나온 것이다. 오늘 온다는 기별이기에, 오는 길이 멀리까지 내다 보이는 이 길목에 일찍부터 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차고 온 술 한 병 부려 놓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린다. 먼 산모롱이로 감도는 길에 행인이 나타나면, 그 윤곽이며 행색이며 걸음걸이 등으로 이리 뜯어보고 저리 훑어보며 식별하기에 골몰한다. 마침내 그다, 그 옛친구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와질수록 점점 기다리는 그는 아니게 되어지다가 결국은 엉뚱한 행인이고 만다. 이제 해도 지고 길도 어둑어둑 저물어 온다. 멀리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눈살을 날카롭게 뚫어지라 내다본다. 그다, 이번엔 틀림없다. 그러나, 가까와지는 그는 또 딴 사람이고 만다. 번번이 이렇게 속고 또 속곤 한다. 기대와 실망, 불안과 초조, 제물에 속다 애꿎은 원망도 하고, 그러다가는 무슨 사고라도? 하는 불길한 생각이 덜컥 들기도 하는 착잡한 심사다. 그래서 예로부터 대인난(待人難) 대인난이라 했던 것인가?

 

고운 정()을 봄구름같이 아지랑이같이 가슴가슴에 피우다가 간 고인들의 그 고운 정이, 거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심금(心琴)에도 곱게 와닿는 느꺼움을 맛보지 않는가?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 131~133

 

 

인용

목차

호곡만필

지봉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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