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천장(爪甲穿掌)
손톱이 손바닥을 뚫을 정도의 굳센 결심을 하다
公, 少時, 卓熒不羈.
至四十始學, 發奮決心, 握左手. 不爲文章, 誓不開手.
讀書于北漢中興寺, 歲餘, 文理貫通, 詩格淸高. 寄詩於其婦翁曰: “書榻燈光暗, 硯池水色淸.. 管城吾所願, 兼望楮先生.” 蓋請四友之意也.
婦翁, 佳其晩學速成, 戱而答之曰: “梁忠義四十, 讀書山堂, 嗚呼! 晩矣.” 世人, 傳爲美談.
後登科日, 始欲開手, 則爪甲穿掌. -『대동기문(大東奇聞)』
조선 중종(中宗) 때 좌찬성을 지낸 양연(梁淵: ?~1542)은 마흔이 되어서야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자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손자였던 양연은 어릴 때부터 빼어난 재주가 있어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했지만 재주만 믿고 공부를 게을리하여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어느 날 양연은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고 평범했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올라 이미 높은 관직에 있는데 자신만 뒤처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왼손을 쥐고 있겠다. 만약 문장을 이루지 않으면 손을 펴지 않기로 맹세하겠다.’
그런 후, 양연은 북한산 기슭의 중흥사(中興寺)라는 절에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에 급제하게 됐고 그 날에 왼손을 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왼손을 꼭 쥐고 있던 날이 얼마였는지 그동안 자란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손등까지 구멍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양연은 늦게 관직에 올랐지만 남들보다 더욱 분발하여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다. 대사헌이 된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장계를 올려 김안로(金安老), 채무택(蔡無擇) 등의 간신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그들을 제거하게 되었다. 이에 영의정 윤은보(尹殷輔)가 “종묘사직이 거의 기울어질 뻔했지만 마침내 안정을 되찾았으니 마땅히 상을 받아야 한다”고 왕에게 주청하여 양연의 품계가 올랐다. 훗날 마침내 관직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겉뜻: 쉽기가 손바닥 뒤집기 같다
속뜻: 매우 쉬운 일을 비유한 것이다.
유의어: 發蒙振落(발몽진락), 낭중취물(囊中取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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