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질구레한 일상을 남겨야 하는 이유
단재학교는 14학년도 1학기부터 매달 한 번씩 트래킹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시작된 트래킹이 16학년도 2학기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단재학교의 대표 커리큘럼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트래킹은 2014년 3월에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시작되었다.
▲ 첫 트래킹의 시작은 서울 둘레길 걷기였다. 어제 같던 이 시간이 벌써 2년이나 흘렀다.
학교활동을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 했던 이유
지금까지는 학교활동을 대부분 사진 기록으로만 남길 뿐, 여행기를 쓰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던 것이 작년 5월부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기록을 남기게 되었고, 올핸 3월에 떠난 통인시장 트래킹 여행기를 시작으로 검단산 여행기까지 총6편의 기록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도대체 작년 5월을 기점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예전엔 쓰지 않던 기록을 지금은 맹렬히 쓰게 된 것일까?
단재학교는 활동기록을 중시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단일기 같은 것을 쓰며 자기발전을 하길 원하고, 영화를 보든, 여행을 가든 후기를 남겨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길 원한다. 나는 원래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이런 단재학교의 특성과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의 여행은 기록하지 않는다’ 정도의 나름의 원칙은 있었다.
▲ 단재학교는 기록을 중시하는 곳이다. 내 성향이 기록을 하는 스타일이라 잘 맞았지만, 한 편으론 부담감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원칙을 정한 대엔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첫째, 학교는 매일매일 일들이 일어나고 그건 어찌 보면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걸 모두 다 기록에 남겨야 한다면, 아마도 기록에 치여 일상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초임교사로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지만,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어디를 가든 무언가 결과물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세상에 눈을 감게 하는 요소였는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썼을까?
둘째, 나 스스로 떠난 여행의 경우는 그런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나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담아내면 된다. 그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나만이 담아낼 수 있는 여행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떠나는 여행의 경우 학생과 교사가 의견을 조율하여 여행지를 정하고, 내가 원해서 떠나는 여행이기보다 일정에 맞춰 진행되는 여행일 뿐이다. 그 뿐 아니라 이런 여행에선 여행자가 아닌 인솔자로 참여하기에 모든 관심을 학생에게만 두어야 한다. 그러니 여행지에 대한 관심보다,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나의 생각보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건 여행이라기보다 그저 학교활동의 확장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교에서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는 사진에 간단하게 코멘트만 다는 정도로 남길 뿐, 여행기와 같은 기록은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 처음에 갔던 여행이 보길도 여행이었는데, 여행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다.
사라질 것들에 미련은 갖지 말되, 기록은 남기다
그렇게 단재학교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여러 경험들을 했다. 그러다 작년 5월에 블로그를 정리하며 그간 써온 글을 보다 보니, 남기지 않은 시간들은 기억에 희미하게만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재학교 4년 동안 수많은 장소로 여행을 다녔고, 다양한 활동들을 했지만, 기록되지 않으니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기록되지 않는 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이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 구석엔 짠한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욘 없지만, 회고할 기록조차 없다는 건 헛헛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 때 느낀 감정이 나를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단재학교 카페에 있는 과거의 기록들을 블로그에 모으기 시작했고, 그에 발맞춰 ‘이제부턴 웬만한 여행들은 기록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발현된 글이 트래킹으론 남산트래킹이었고, 여행으론 가평 도마천 여행이었다. 자질구레할지라도, 넋두리 같을 지라도 그때부턴 기록해 나간 것이다.
▲ 기록되지 않은 시간은 그렇게 묻힌다.
최민식이 전해준, 일상을 남긴다는 것의 소중함
그렇게 거의 1년이 넘도록 학교생활을 기록한 듯하다. 그래서 도배를 했던 이야기, 축구경기장 스카이박스 체험기, 이사한 이야기, 스마트폰을 바꿨을 때의 느낌과 같은 예전이었으면 절대 쓰지 않았을 글들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상적인 글들을 쓰다 보니, ‘과연 일기처럼 변변치 않은 글들을 계속 기록해 나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빈 공간처럼 완전히 사라진 옛 순간들을 보고서 일상을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게 담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엔 ‘쓰잘데기 없는 내용이지 않나?’하는 회의감이 든 것이다. 그런 갈등 때문에 트래킹을 다녀와서 글을 쓰다가도 한 번씩 멈칫 멈칫 멈추게 되곤 했다. 일상을 풀어내는 거라 ‘이건 일기장에나 쓸 법한 글’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서 도무지 계속 써나갈 명분을 내 스스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이때만 해도 일기로 써야 할 글과 블로그에 써야 할 글은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자질구레 하냐가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갈등에 몇 날 며칠을 앓았던 것 같다. 그러다 최종적으론 ‘그래도 써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작품’, ‘예술’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론 ‘최민식 작가의 사진’들이 큰 도움이 됐다.
2012년엔 단재학교의 커리큘럼 중에 ‘합정동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학생들은 짐을 챙겨들고 나가 전시관을 찾아다니며 예술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시간이다. 이때 나도 인솔교사였기에 함께 다니며 여러 예술품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깊은 울림을 준 전시회는 단연 ‘최민식 사진전’이었다.
최민식 작가는 한국전쟁 이후에 부산에서 활동하며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아냈다. 사진은 현실의 반영이 아닌 작가의 시선이고, 그런 시선을 거쳐 인화된 사진들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해석되며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사진들은 그 당시를 오롯이 담아내며 지금 보면 ‘비루한 옛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려 아등바등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생활력을 느끼게 한다. 분명한 건 그 당시엔 그런 광경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광경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엔 그 당시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도 되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장면도 된다.
▲ 살아가는 건 어찌 보면 비근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대단해보여야 할 이유도, 그럴 듯해 보여야할 이유도 없다.
이처럼 일상의 비루함일지라도 기록으로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보면 일기처럼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른 다음엔 ‘그땐 그렇게 살았구나’, ‘그땐 그런 고민들이 있었구나’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의미가 있네, 없네’라고 생각하며,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르려 할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판이 눌리는 대로 기록을 담아내면 될 일이다. 이런 이유로 2학기 트래킹도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 일상일지라도 담아 내면 그것 또한 언젠가는 필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니 담아내야 한다.
인용
2. 못하게 하면 하고 싶어지고, 하게 하면 하기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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