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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용문산 여행 -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용문산 여행 -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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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비는 내일 새벽부터 내린다고 하던데, 하늘은 벌써부터 흐릿흐릿하여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씻었다. 그리고 나오는 족족 약속이나 한 듯이 쇼파에 달려와 차례차례 앉아,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훑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이게 예전과 달라진 광경이다. 예전엔 채널을 넘길 필요도 없이 게임채널을 켜고 당연하다는 듯 롤 중계를 봤었는데, 최근엔 오버워치라는 다른 게임에 푹 빠지기도 했고 3년 내내 롤만 하다 보니,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동네변호사 조들호, 닥터스를 조금씩 보며 채널을 수시로 바꾼다.

 

 

우리의 고기파티가 열리는 장소.

 

 

 

모두의 파티였고, 모두의 축제였던 1학기 고기파티

 

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살짝살짝 빗방울이 떨어지긴 하지만, 아직은 많이 내리진 않는다. 주인아저씨는 숯불을 두 군데에 붙여줬다. 지금까진 하나의 숯불로만 구웠기에 잘 몰랐지만, 막상 두 군데서 굽다보니 고기 굽는 속도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가 있어서 좋더라.

이번 고기파티에서 관심 있게 보고 싶은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기를 아이들이 구우려 할까?’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기를 굽는 일은 교사의 일이었다. 물론 때때로 고기를 굽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아이가 나와 도와준 적은 있어도, 그 외엔 교사가 했던 것이다. 물론 이건 학교여행 때 그렇다는 것이고, 영화팀에서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나 남한강 도보여행을 했을 때는 민석이가 도맡아서 목살을 맛있게 구워줬었다. 이걸 보면, 상황에 따라 아이들도 자신의 일처럼 하려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요일엔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 그래도 여행 둘째날에 그래서 다행이다.

 

 

하지만 올해 1학기에 떠난 남이섬 여행 때는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여태껏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기에, 그 때는 정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보게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교사된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땐 불도 손수 우리가 붙인 다음에 구워야 했는데,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불을 붙일 때는 누가 더 부채질을 잘 하나 경쟁을 하기도 했고, 고기를 굽고 나르는 일도 아이들이 손수 했다. 그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식탁에 앉아 느긋이 고기파티를 즐길 수 있었고, 배불리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물론 이때 고기를 굽던 민석이는 고기를 거의 못 먹었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바로 이 광경이야말로 1학기 전체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고, 이번 여행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반응할지 기대하게 만든 장면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도보여행 때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는 민석이와 남이섬 여행 때 불을 붙이는 지민과 태기.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원랜 630분부터 고기를 굽고 파티를 하려 했는데, 빨리 숯불을 만들어주셔서 시간이 앞당겨졌다.

그래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식탁이 있는 곳을 나간 것이다. 이미 한쪽에선 승태쌤이 고기를 굽고 있었으며, 다른 쪽은 성민이가 맡아서 굽고 있었다. 거실에서 놀다가 나간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보고 자연히 고기를 굽는 사람 곁에 달라붙어, 잡담도 하며 바통 터치를 할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모두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뿐, 고기를 굽던지 말던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민석이가 성민이 옆에 있기에, 이번에도 민석이가 고기를 구우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마카로니를 구워 먹기 위해 서 있는 거더라. 확실히 1학기 여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현세는 도와주려 했다.

 

 

보다 못해 성민이만 고기를 굽고 있으니, 누군가 교대를 해줘라고 말을 했다. 그건 ‘1학기 여행처럼 함께 고기를 굽도록 하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현세만 반응을 보이더라. 결국 성민이 다음엔 현세가 이어받아 조금 고기를 구운 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에 내가 구울 수밖에 없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이 상황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함께 돌아가며 고기를 굽고,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지금 익은 고기들을 바로 먹지 않으면 식을 텐데, 그러면 맛이 없어져요라는 말을 하며 당장 먹기만을 바랄 뿐이고, 다른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으니 말이다.

 

 

익어가는 고기들이 군침을 다시게 한다. 

 

 

 

함께 먹는 사람이기에, 우린 식구예요

 

역시 두 군데서 고기를 구우니, 고기를 굽는 속도는 엄청 빠르더라. 그와 비례하여 고기는 스마트폰 건빵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듯(학교에서 건빵이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역할을 하기에)’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흔히 중고등학생 시기를 돌도 씹어 먹을 정도로 소화력이 왕성한 시기라고 하는데, 계곡에서 신나게 놀다왔기 때문인지 고기가 사라지는 속도는 우사인볼트급이었다. 더욱이 아이들은 고기만 좋아하다 보니, 채소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고기에만 젓가락질을 집중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함께 밥을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전엔 적어도 저녁 식사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먹곤 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나오는 말(“요즘 성적이 어떠니?”, “밥 먹는데 깨잘깨잘 먹지 마라”, “누가 밥 먹는데 얘기하냐”)이 유쾌하거나, 가족의 화목을 도모할 수 있는 말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무의식중에 우린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꼭 밥을 같이 먹어야 해라는 인식 자체는 희미해져 버렸다. 부모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에 바쁘고, 아이들은 한 자라도 더 공부하기 위해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함께 밥을 먹지 않으면 식구라 할 수 없다. 그저 한 공간에 살아가는 동거인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고 그만큼 가족 공동체라는 의미는 매우 약해졌다.

그에 반해 우리들은 주5일 동안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함께 모여 고기를 먹으니, ‘2의 식구라 할 만하다. 이렇게 먹을 땐 예전 부모들처럼 식사예절을 가르치거나, 어른들이 할 법한 잔소리를 하지 않아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왁자지껄 떠들며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최고의 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게눈 감추듯, 사라지던 고기들. 그래도 함께 먹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다. 

 

 

인용

목차

사진

1. 계획대로 안 되니까 여행이다

2. 여행에 들이닥친 두 가지 변수

3.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느낀 교사의 숙명

4. 슬펐다 기뻤다 왔다갔다

5. 용문 5일장

6. 중원폭포에서 놀다

7. 먼저 자리를 뜬 선배들의 사연

8. 무의미 속에 의미가 있다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10. 잘 먹는 것만큼이나 잘 치우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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