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들이 문자와 멀어지다
예전에 들은 말이다. “영상물에 익숙한 세대에게 책에 한가득 실려 있는 글들은 암호문 같은 느낌이예요”라는 말이었다. 학생으로부터 들은 말인지, 인터넷에서 본 것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땐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아이들에겐 이처럼 책을 볼 때, 구멍이 송송 뚫린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인 걸까?
부인할수록 선명해지는 현실
이 말대로라면 아이들에겐 한글로 써 있는 글이 ‘Привет Я печенье учителя(러시아어)’라는 글처럼 깜깜하고 아득하게 보인다는 말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여태껏 한글을 보고 들으며 자라왔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건 마치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물을 두려워한다’는 것과 같은 황당한 말이니 말이다.
그 날 이후로 그건 나에게 던져진 선문답 같은 거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봐도 이해할 수 없고 부인하려 해도 나를 따라다니는 선문답. 그런데 선문답이 꿈 속 상황이 아닌 실제현실이라니, ‘차 한 잔 마시다 가시오喫茶去’라는 화두를 던진 조주趙州(778~897) 선사처럼 나도 차 한 잔 마시며 모든 당황, 집착, 고정관념을 모두 다 내려놓고 싶을 밖에. 그래서 그 때부터 물끄러미 아이들이 글을 대하는 방식을 관찰했다. 여러 날 관찰하다보니, 그제야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서서히 오더라.
▲ 차 한 잔 마시다 가시오.
문자, 가깝지만 먼 그대
아이들도 글을 열심히 본다. 인터넷 스포츠 뉴스의 기사를 보고 친구가 보내온 카톡의 문자를 보며 국어 문제지의 지문을 본다. 이쯤 되면, 문자의 홍수 속에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왜 글과 멀어졌을까?
아이들이 인터넷 뉴스를 볼 때, 기사를 집중해서 읽지 않는다. 제목을 통해 내용을 유추하거나 몇 단어만 보고 기사의 전체 내용을 안다고 착각한다.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는 몇 개 안 되는 한정된 단어로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전자기기의 특성상 빨리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다 보니, 제대로 모양을 갖춘 문자를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다(‘OTL’ 이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카톡 문자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일반적인 언어생활에선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학교의 국어 과목에 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국어를 잘하면 언어생활에도 능하고 문자로 된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어 과목은 글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과목이 아니라 푸는 과목이 된지 오래다. 문제를 풀기 위해 지문을 보지, 지문을 이해한 후에 문제를 풀지 않는다.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최대한 빨리 찾기 위해 숨은 그림 찾듯이 지문을 훑으며, 핵심어 몇 개로 주제를 유추하여 답을 적는다. 글을 이해하려 하거나 암기하는 것은, 현실 국어 교육에선 ‘바보 같은 짓’이 되고 말았다. ‘엽등躐等(겉 넘기)’을 부추기는 국어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글에 대한 흥미를 가지며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글에서 멀어지게 된 데에 황폐한 국어교육으로 언어적 감수성을 싹뚝 잘라버린 교사들의 책임이 크다.
▲ 스마트폰으로 많은 기사들을 보고 많은 텍스트를 보지만 훑고 지나가는 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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