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부를 잘한다는 것의 의미
단재학교는 매년 12월에 학습발표회를 하고 있다. 어떤 때는 한 해에 학기별로 두 번의 발표회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발표회 준비에 많은 시간이 들어가기에, 지금은 한 해에 한 번의 발표회를 하고 있다. 2학기엔 ‘학습발표회’를 하고 1학기엔 ‘작은 발표회’라 하여 학교에서 아이들이 만든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아카펠라 공연을 보여주는 식으로 꾸미고 있다.
▲ 단재학교 학습발표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시시하고 지루한 일에 전념한다는 것
이쯤 되면 당연히 궁금할 게, ‘그럼 단재학교는 평가를 어찌 하나요?’라는 걸 거다. 제도권 학교는 한 학기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같은 정기적인 평가가 있으며 중간 중간에 도학력고사, 일제고사 같은 비정기적인 평가가 있다. 여기에 덧붙여 교사가 개인적으로 수행평가를 실시하고, 쪽지시험을 통한 형성평가를 실시할 수도 있다. 시험을 통해 학생이 제대로 학업을 하고 있는지, 학교는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재학교는 그와 같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개인의 성장과 학력신장은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학력주의사회’라고 부른다. 그래서 ‘학력 높음=능력 있음=지혜로움=인간성 좋음’이란 이미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업계고에 가려는 학생에게 “거기 가면 나쁜 얘들이 많을 텐데, 얘 망치면 어찌해요?”라고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거기엔 ‘공부 못하는 학생=인성이 좋지 못한 학생’이란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이런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건 전혀 별개로 작용하는 것일 뿐인데도 우린 모두 다 얼버무려 그렇게 평가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우치다쌤의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꼬집고 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머리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부와 같은 시시하고 지루한 일에 한해서 특정 리소스를 아끼지 않고 쏟아 부을 수 있다는 일종의 ‘광기’에 걸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타츠루 너는 정신이 이상한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고 형은 입시공부에 매진하는 나에게 동정의 눈길을 던진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선구적인 통찰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형의 지적은 제대로 ‘학력사회’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꿰뚫고 있었다.
-박동섭, Facebook, 2015.11.09.
공부를 잘한다는 건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만한 권한을 누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일 중 ‘시시하고 지루한 일’을 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치다쌤의 형은 그런 일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은 광기일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 2011 학습발표회 |
▲ 2012 1학기 발표회 |
▲ 2012 2학기 발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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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학습발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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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학습발표회 |
▲ 2017 학습발표회 |
▲ 단재학교는 학습 결과를 발표회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위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발표회를 볼 수 있음)
개인의 성장과 학업성장은 별개의 것이다
예전부터 동양의 교육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예악’의 ‘예’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소통을, 음악은 감수성을 기름으로 정감을 함양하는 것이며, ‘사어’는 활을 쏘고 말타기를 하여 몸이야말로 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정신을 다듬고 몸을 단련하여 존재의 역량을 키운 후에야 비로소 실용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나 수를 익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은 ‘시간 의식’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한 풍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은 음악을 감상할 수 없습니다. 악기 연주도 감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이미 사라져버린 소리’가 아닌 들리고 ‘아직 들리지 않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과거와 미래의 확장 속에 자신을 두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우치다 타츠루, 민들레, 2012년, 84쪽
그런데 근대화 이후 서구의 잘게 잘게 쪼개지고 나눠진 학문이 도입되고 학교의 정규 과목으로 정해지면서, 우리가 하는 공부란 ‘서수(정약용이 얘기한 ‘博學’과 같은 의미다)’에만 갇히게 되었다. 그러니 ‘서수’만으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성장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장과 학력은 크게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상반된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공부를 잘한다는 것, 그게 우리 사회든 일본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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