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재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는 이유
단재학교에서 정기적으로도 시험을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시험을 보지 않는 둘째 이유는 시험이 개인을 한계에 가두기 때문이다.
▲ 진규가 만들어준 학습발표회 안내문. 단재학교의 열정을 담아 문구를 만들었다.
하나의 평가기준으로 다양성을 뭉개버리다
아이들마다 언어능력이 뛰어난 학생, 신체능력이 뛰어난 학생, 감정교류가 잘되며 감수성이 뛰어난 학생 등 다양하다. 그런데 학교의 평가시스템은 그런 것들은 모두 등한시하고 오로지 텍스트 이해로 한정된 평가를 하여 학생을 평가하며 ‘잘하는 학생’, ‘못하는 학생’을 나누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분명 다른 부분에선 뛰어난 아이인데도, ‘지필평가에서 나쁜 성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부엔 젬병’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른 가능성은 충분히 많음에도 학교에서 ‘공부엔 젬병’인 학생으로 평가되는 순간, 다른 모든 장점들도 묻혀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런 평가를 받은 학생은 ‘나에겐 다른 장점이 있어’라고 생각하기보다 ‘난 안 돼!’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엊그제 교사 커뮤니티에서 진행된 수련회에 갔었는데, 뒷풀이를 할 때 광주에서 온 초등학교 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쌤은 심양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녔는데, 그곳의 평가가 특이했다고 한다. 평가는 절대평가처럼 Pass 여부만을 가리며, 그게 A~F 등급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그걸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넌 왜 국어만 잘하고 다른 과목은 못하냐? 좀 더 분발해서 다른 과목도 성적을 높여”라고 말할 것을, 그곳에선 “넌 국어분야에 관심이 많고 가능성이 많아”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차이 같지만, 그 안엔 ‘하나만 잘 해도 된다’와 ‘전부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의 차이가 있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해 준다’와 ‘문제를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푸는 능력만을 인정해 준다’는 생각이 기본에 깔려 있었다.
▲ 이 때 나눈 이야기들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역시 모임의 꽃은 역시 뒤풀이다.
시험이 학교를 집어삼키다
셋째, 시험이 모든 교육과정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각 학교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거주민들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교육부 차원의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있고, 각 학교급별로 교육과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시험이 중요한 것이 되면서 모든 학교의 커리큘럼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학생의 성장을 위해서라기보다 모두 다 선망하는 상급학교에 몇 명을 넣을 수 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에 따라 모든 교과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들에겐 수업의 재량권이 있다. 분명 차시에 따른 계획이 있고, 수업 목표가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 자체가 학생을 위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험이 중요해지면 수업의 재량권은 무색해지고 만다. 시험을 위한 공부, 그에 따른 시간 배정, 수업의 내용이 모두 하나로 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시간표는 정해져 있지만, 이미 국영수사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심지어 예체능 시간은 수시로 그런 교과목 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학습발표회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단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고 학습발표회를 통해 일 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부모님들에게 뽐내며, 교사의 교육적 감식안에 기초한 교육비평을 하며 그 학생의 성장 내용을 기록한다.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 그게 긍정적 변화든, 부정적 변화든 그 변화의 양상을 서술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 개인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교사의 공력이 배로 들 수밖에 없다. 학생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며 적은 인원의 학생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니 말이다. 단재학교가 소규모 학교를 지향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번 발표회는 ‘송파청소년수련관’에서 하게 되었다. 2011년에 발표회를 했던 곳인데, 4년 만에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 학습발표회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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