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학교 도배하기와 노동착취?
2월에 새학기 개학을 하며 학생주도로 이끌어가는 한 달의 커리큘럼이 시작됐고 ‘학교를 꾸미고 싶다’는 현세의 의견 개진에 따라 학생들은 함께 뭉쳐 도배를 하게 됐다.
▲ 우리의 도배 시작.
학교가 아동들의 노동력 착취를 가로막다
그런데 이때 한 학생이 “이런 모습을 엄마가 봤다면, 아마도 노발대발하셨을 거예요.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을 시키냐고 화내실 게 뻔하거든요.”라고 말을 한다. 그 얘길 듣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불덩이 같은 게 올라왔다. 이 논쟁은 과연 노동을 착취의 개념으로 볼 것인지, 가치 있는 활동의 개념으로 볼 것인지 하는 것에 달려있다.
근대학교의 등장과 의무교육의 제정은 어찌 보면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서였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아동의 노동시간은 10시간 안팎이었다. 저임금으로 긴 시간동안 부릴 수 있었기에 넘쳐나는 산업 현장에선 아동을 데려다 쓰는 게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근대학교가 설립되고 의무교육법이 제정되며 아동을 일하는 장소가 아닌 학교로 가게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 엄청나게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짜여지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노동력 착취가 아닌, 노동주체로 세우는 것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변했고 환경도 변했다. 이제 웬만한 집에선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밖에서의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집 안의 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노동의 가치’란 의미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고, 심지어는 ‘노동은 천박한 것’, ‘노동은 게으른 자가 하는 것’이란 인식마저 가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런 현실이기에 학생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도배를 했다는 사실에 노발대발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모습에 대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 중학생이 네모 칸을 채웠다. 이 학생만이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기에 문제가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생각이 맞는 걸까? 그리고 그걸 단순히 ‘노동력 착취’ 또는 ‘쓸데없는 짓’이라 폄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준다. ‘소비주체’와 ‘노동주체’란 개념으로 대비하며 설명하는데, 지금 아이들은 ‘소비주체’로 자기 스스로를 세웠기 때문에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노동주체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무언가 서서히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였기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는 노동이나 교육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소비주체는 돈을 주면 바로 물건이 내 것이 되는 무시간적인 모델을 몸으로 받아들였기에 노동이나 교육과 같이 시간의 흐름이 중시되는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 언제 걱정스럽게 바라봤냐 싶게 도배 정말 재밌게 신나게 하고 있다. 긍정이 뿜뿜 넘치는 아이들.
인용
1. 교사상이 변하다
2. 학교를 내 손으로 직접 꾸미는 도배 프로젝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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