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힘내라 키팅들이여!
키팅의 이런 지도법은 학생들을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가 좀 급작스런 감이 없지 않다. 누군가가 내 생각에 같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는 까닭이다. 더욱이 자신의 모든 기반을 바꾸는 그런 일에 있어선 더욱 힘들다.
▲ 재작년에 도보여행을 갔었다. 아이들이 계획을 열심히 짜고 있다. 이렇게 나름의 여유로 바라볼 수 있었던 데엔 키팅의 가르침이 있다.
카르페디엠의 수업은, 학생들의 억압된 열망을 끓어오르게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빨리 그들이 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그들도 이미 자신의 삶이 심하게 꼬여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든 조금씩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불씨는 있었던 셈이니, 거기에 바람을 더해주거나 기름을 껴 얹어만 준다면, 불은 어느새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거였다. 바로 키팅 선생님의 말이 기름 역할을 했음을 볼 수 있다.
키팅의 지도 방법은 일정 부분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런 영감은 단재학교에서 교사로 생활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줘서 점차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했다. 왠지 키팅이 아이들에게 수업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베토벤 바이러스』란 드라마에서 연주의 즐거움을 ‘화창한 야외에서 기쁨에 취해 연주하는 기쁨’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수업이란 그 장면처럼 함께 빠져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가지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이 비록 소설이기에, 또는 드라마이기에 가능했다 하더라도 그런 수업시간이 되길 꿈꾸며 늘 노력하는 교사라면 나쁘진 않을 것이다.
▲ '넬라 판타지아'를 연주하며 단원들로 연주의 맛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배후를 찾는 사회에선 진정성이란 없어진다
닐은 연극을 잘 마쳤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자신의 꿈이 무너지게 되자 자살한다. 그 후에 어떻게 됐을까? 상식적으로는 그렇게 만든 아버지의 교육관을 탓해야하며 그렇게 아이들을 획일화의 늪에 빠뜨린 학교의 교육관이 욕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키팅 선생님이 쫓겨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말속에 그 사건의 내막이 잘 드러난다.
“학교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할 거야.”
“희생양?”
“그래, 이런 사건이 생겼는데 학교 평판이 좋을 리 있겠니? 누군가 책임질 사람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거라고!”
‘(토드의 독백) 닐의 죽음은 본인의 적성이나 꿈은 무시하고 억지로 갈 길을 강요했던 그의 아버지와 학교 공통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반성은커녕 책임을 떠넘길 사람을 물색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그건 닐 혼자만의 문제로 덮어둘 수는 없는, 어쩌면 그들 모두의 문제이기도 했기에 더욱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pp 258
사건이 발생하면 우린 너무도 익숙하게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찾기에 바쁘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땐 선장과 선원만을,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땐 가해자만을 처벌하려 한다.
그건 지난 6월 29일 서울시민청에서 열린 ‘청소년 대안교육, 새로운 전환의 모색’이란 주제의 포럼에서 이현숙쌤이 “우리 사회는 분노해야 할 대상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주동자가 누구인가?’, ‘배후가 누구인가?’를 먼저 묻고 그 사람에게만 철퇴를 가하려 하지,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원인은 무엇인지 아무도 물으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할 것 없이 이런 식의 문제 해결은 당연시 되어 왔던 것이다.
▲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지리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힘내라, 이 시대의 키팅이여
그렇기 때문에 키팅은 마땅한 명분이 없음에도 잘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교실에서 나가는 순간에 카메론을 뺀 나머지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들은 목 놓아 울면서 그를 “선장님! 오 나의 선장님!”이라고 부른다. 그 장면을 읽는 순간, 온 몸에 닭살이 돋으며 절로 감동이 될 정도였다.
일제고사를 치루며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로 8명의 선생님들이 해직되는 비운의 사건이 있었다. 교육당국의 대응은 웰튼 아카데미의 대응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면밀히 살펴보지 않았고 단순히 희생양만을 찾아, 사건의 본질을 흐려버렸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떠나가자 아이들은 덩달아 눈물을 흘렸고, 그 선생님이 주는 졸업장을 받기 위해 늦게까지 남기도 했다. 과연 어떤 교사가 진정 이 시대의 사표師表인 교사인지 교육당국에 물을 수밖에 없고, 교육의 의미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 교육을 추구하면 내쳐지고, 현실을 따르면 살아남는다. 그게 과연 옳기만 할까?
인용
1. 참을 수 없는 울분으로
3. 힘내라 키팅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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