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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래교 - 김성기전(金聖基傳) 본문

문집/이향견문록

정래교 - 김성기전(金聖基傳)

건방진방랑자 2021. 5. 2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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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아부하지 않던 거문고 전문가 김성기 이야기

김성기전(金聖基傳)

 

정래교(鄭來僑)

 

 

거문고 전문가가 된 사연과 그의 탁월한 실력

琴師金聖基, 初爲尙方弓人, 性嗜音律, 居肆執工, 而從人學琴, 得精其法, 遂棄弓而專琴. 樂工之善者, 皆出其下, 又旁解洞簫琵琶, 皆極其妙, 能自爲新聲, 學其譜擅名者亦衆, 於是洛下有金聖基新譜. 人家會客讌飮, 雖衆伎充堂, 而無聖基則以爲歉焉.

 

만년에 은둔한 채 자적하며 살다

聖基家貧浪遊, 妻子不免飢寒. 晩乃僦居西湖上, 買小艇篛簑, 手一竿往來, 釣魚以自給, 自號釣隱. 每夜風靜月朗, 搖櫓中流, 引洞簫三四弄, 哀怨瀏亮, 聲徹雲霄, 岸上聞者, 多徘徊不能去.

 

실력자 호룡의 협박을 되받아친 호기로움

宮奴虎龍者者, 上變起大獄, 屠戮搢紳, 爲功臣封君, 氣焰熏人. 嘗大會其徒飮, 具鞍馬禮請金琴師聖基, 聖基以疾不往, 使者至數輩, 猶堅卧不動. 虎龍者怒甚, 乃脅之曰: “不來, 吾且大辱汝.” 聖基方與客鼔琵琶, 聞而大恚, 擲琵琶使者前, 罵曰: “歸語虎龍. 吾年七十矣, 何以汝爲愳? 汝善告變, 其亦告變, 我殺之.” 虎龍者色沮, 爲之罷會.

自是聖基不入城, 罕詣人作伎, 然有會心者, 訪至江上, 則用洞簫爲歡, 而亦數弄而止, 未嘗爛漫.

 

김성기와의 인연

余自幼少時習聞金琴師名, 嘗於知舊家遇之, 鬚髮皓白, 肩高骨稜, 口喘喘不絶咳聲. 然強使操琵琶, 靈山變徵之音, 座客無不悲惋隕涕. 雖老且死, 而手爪之妙, 能感人如此, 其盛壯時可知也.

 

지조 있는 김성기의 일화를 듣고 무뢰배들은 부끄러워하라

爲人精介少言語, 不喜飮酒, 竆居江上, 若將終身, 是豈無守而然哉? 况其憤罵虎賊, 凜然有不可犯者.

嗚呼! 其亦雷海淸者流歟. 世之士大夫, 奊詬去就, 以汚迹於匪人者, 其視金琴師, 亦可以知媿哉. 浣巖集卷之四

 

 

조선의 악사, 김성기 라인업.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출처/ 한겨레21

 

 

 

 

해석

 

거문고 전문가가 된 사연과 그의 탁월한 실력

 

琴師金聖基, 初爲尙方弓人,

거문고의 전문가 김성기김성기(金聖基, ?~?): 일명 성기(聲起). 자는 자호(子湖, 子豪대재(大哉), 호는 낭옹(浪翁어옹(漁翁어은(漁隱조은(釣隱강호객(江湖客). 젊어서는 활을 만드는 조궁장(造弓匠)이었으나 거문고를 배워 뛰어난 기량을 보여, 노년에는 서호(西湖)에 배를 띄우고 소일하면서 제자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쳤다. 당시의 시조작가 김천택(金天澤)과 교분이 있었으며, 자연을 읊은 강호가(江湖歌)다섯 수 등 여덟수의 시조작품이청구영언등에 전한다. 특히, 병화로 인하여 전승이 끊어져 부르는 사람이 없던 평조삭대엽(平調數大葉)의 곡을 전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거문고를 배운 제자 남원군(南原君) 이설(李樆) 등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락들을 정리하여, 1728년에낭옹신보(浪翁新譜)를 만들었다. 1779년에 편찬된 어은보(漁隱譜)낭옹신보를 저본으로 필사된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는 사람은 처음엔 상의원(尙衣院)상방(尙方): 상의원(尙衣院)의 별칭이다. 궁중의 기물과 의복, 음식 등을 관장하는 임무, 또는 이를 관장하는 관청. 조선 시대 임금의 의복을 진공(進供)하고 궁중의 재물과 어보(御寶) 등을 관리하던 기관이다.의 활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性嗜音律, 居肆執工,

성품이 음률을 좋아해 작업장에 있으면서 일을 집행하지 않았고

 

而從人學琴, 得精其法,

사람을 따라다니며 거문고를 배워 연주법을 정밀하게 할 수 있었기에

 

遂棄弓而專琴.

마침내 활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거문고에 전념했다.

 

樂工之善者, 皆出其下,

악공 중에 잘하는 이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는데

 

又旁解洞簫琵琶, 皆極其妙,

또한 퉁소와 비파도 곁가지로 이해하여 모두 오묘함을 다함으로

 

能自爲新聲, 學其譜擅名者亦衆,

스스로 새로운 소리를 지을 수 있었으니 (김성기의) 악보를 배워 이름을 떨친 이들이 또한 많았고

 

於是洛下有金聖基新譜.

이때 서울에 김성기의 새로운 악보들이 있게 되었다.

 

人家會客讌飮,

인가에서 손님을 모아 잔치하며 마실 적에

 

雖衆伎充堂, 而無聖基則以爲歉焉.

비록 뭇 광대들이 당을 채우더라도 성기가 없으면 부족하다고들 생각했다.

 

 

 

만년에 은둔한 채 자적하며 살다

 

聖基家貧浪遊, 妻子不免飢寒.

그러나 성기의 집은 가난하여 유랑해야 했기 때문에 처자식은 주림과 추위를 피하질 못했다.

 

晩乃僦居西湖上, 買小艇篛簑,

만년에 서호마포서강양화진 일대 가에 세내어 기거했고 작은 거룻배를 사고 대껍질로 만든 도롱이를 쓴 채

 

手一竿往來, 釣魚以自給,

한 낚시대를 가지고 왕래하며 물고기를 낚시질하여 자급자족하면서

 

自號釣隱.

조은(釣隱, 낚시터로 은둔한 이)이라고 자호했다.

 

每夜風靜月朗, 搖櫓中流,

매일 밤 바람은 고요하고 달은 휘영청 떠 있을 적엔 중류로 노를 저어

 

引洞簫三四弄, 哀怨瀏亮,

퉁소를 가져다 3~4곡조를 불어대니 애절하고 원통하지만 맑고도 밝은

 

聲徹雲霄,

소리가 구름을 뚫을 정도였으니

 

岸上聞者, 多徘徊不能去.

언덕 위에서 듣는 이들이 많이들 배회하며 돌아가질 못했다.

 

 

 

실력자 호룡의 협박을 되받아친 호기로움

 

宮奴虎龍, 上變起大獄,

궁궐의 머슴인 목호룡목호룡(睦虎龍, 1684~1724): 지관(地官)으로서 신임사화의 고변자(告變者)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며 서얼 출신으로 어려서 풍수술(風水術)을 배워 지사(地師)가 되었다. 처음에는 노론인 김용택(金龍澤)ㆍ이천기(李天紀) 등과 왕세제(王世弟 영조)를 옹호했으나, 소론에 가담하게 되었다. 1722(경종2) 김일경(金一鏡)의 사주를 받고, 경종을 시해하려는 역모에 자신도 가담했다고 고변했다. 이 고변으로 노론 4대신인 이이명(李頤命)ㆍ김창집(金昌集)ㆍ이건명(李健命)ㆍ조태채(趙泰采) 등이 사형에 처해지고, 관련자 60여 명이 처벌되는 신임사화가 일어났다. 이 고변의 공으로 부사 공신(扶社功臣) 3등으로 동성군(東城君)에 봉해지고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뒤 노론의 상소로 신임사화가 무고로 밝혀지고, 김일경과 함께 체포되어 옥중에서 죽었다. 죽은 뒤 당고개에서 효수되었다.이란 사람이 반역행위를 고발함상변(上變): 반역행위를 고발한다는 뜻이다.으로 큰 옥사대옥(大獄): 살인, 반역의 중대한 범죄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일을 말한다.를 일으켰고

 

屠戮搢紳, 爲功臣封君,

관료들을 도륙하여 공신이 되어 군에 봉해졌으니

 

氣焰熏人.

기운의 불꽃이 사람을 그을릴 정도였다.

 

嘗大會其徒飮,

일찍이 그 무리를 크게 모아 마실 적에

 

具鞍馬禮請金琴師聖基,

안장 달린 말을 갖추어 예의로 금사 김성기를 초청했지만,

 

聖基以疾不往,

성기는 병 들었다고 핑계대고 가지 않았고

 

使者至數輩, 猶堅卧不動.

불러올 사람이 몇 무리에 이르도록 오히려 뻗대고 누운 채 움직이질 않았다.

 

虎龍者怒甚, 乃脅之曰:

호룡은 화가 몹시 나서 이에 그를 협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不來, 吾且大辱汝.”

오지 않는다면 내가 장차 너를 크게 욕 보일 테다.”

 

聖基方與客鼔琵琶, 聞而大恚,

성기는 그때 손님과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듣고 크게 화내며

 

擲琵琶使者前, 罵曰: “歸語虎龍.

비파를 심부름꾼의 앞에 던지고서 욕지거리했다. “돌아가 호룡에게 말하게.

 

吾年七十矣, 何以汝爲愳?

내 나이 일흔인데 어찌 너 따위를 두려워하겠나?

 

汝善告變, 其亦告變,

너는 반란을 고발하는 걸고변(告變): 정권을 뒤엎으려는 반역 행위를 고발한다는 말이다. 좋아하는데 또 반란을 고발해서

 

我殺之.”

나를 죽여라.”

 

도치(倒置)

한문의 문장 구조를 살펴볼 때는 제일 먼저 어순(語順)을 보고, 그 다음에 성분들 사이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 어순이 바뀌면 비문(非文)이 되거나 문장의 성분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한문의 문장은 특정한 환경 아래에서 어순이 도치되어도 문장의 성분이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령, 술목 구조의 기본 어순은 서술어가 앞에 놓이고 목적어가 뒤에 놓인다. 그러나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목적어가 서술어 앞에 놓이기도 한다. , 의문(疑問)의 뜻을 나타내는 구문(構文)에서 의문대명사가 목적어로 쓰일 때, 또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구문에서 지시대명사나 인칭대명사가 목적어로 쓰일 때에는 목적어가 서술어 앞에 온다. 또 한문은 문장 안에서 중복을 피하거나 표현을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문장 성분을 생략할 수 있다. 문장 성분의 생략은 앞뒤 문장을 살펴보아 생략된 내용을 알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

殺我

我殺之: ‘를 강조하기 위해 앞으로 뺀 후에 빈 자리에 대명사를 나타내는 를 넣음.

未有不好犯上而 好作亂者也

不好犯上而 好作亂者也를 강조하기 위해 앞으로 뺀 후 빈 자리에 위의 목적어를 받는 를 넣음. 不好犯上而好作亂者 未有之也

不好犯上而好作亂者 未之有也

 

 

虎龍者色沮, 爲之罷會.

호룡은 안색이 질리더니 그것 때문에 모임을 그만뒀다.

 

自是聖基不入城, 罕詣人作伎,

이때로부터 성기는 서울에 들어가지 않고 사람에게 나아가 재주를 보이는 걸 드물게 했지만

 

然有會心者, 訪至江上,

마음이 맞는 사람이 강가에 방문하여 이르면

 

則用洞簫爲歡, 而亦數弄而止,

퉁소를 사용해 환락(歡樂, 즐거움)을 삼았지만 또 몇 곡조만 부르고 그만두니

 

未嘗爛漫.

일찍이 흥이 질펀해지도록 하진 않았다.

 

 

 

김성기와의 인연

 

余自幼少時習聞金琴師名, 嘗於知舊家遇之,

나는 어려서부터 익숙히 김금사의 이름을 들었고 일찍이 친구의 집에서 그를 만났는데

 

鬚髮皓白, 肩高骨稜,

귀밑털과 머리털은 세었고 한 어깨는 솟고 뼈는 불거졌으며

 

口喘喘不絶咳聲.

숨은 헐떡대며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然強使操琵琶, 靈山變徵之音,

그러나 힘주어 비파를 잡고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영산(靈山): 산해경(山海經)천문(天門)의 해와 달 들어가는 곳에 영산(靈山)이 있는데 거기에 무힐(巫肹)ㆍ무팽(巫彭)ㆍ무진(巫眞)ㆍ무례(巫禮)ㆍ무저(巫抵)ㆍ무사(巫謝)ㆍ무라(巫羅) 등 일곱 무당들이 살고 있다.” 하였다. 변치변치(變徵): 중국계 아악에서, 칠성 음계 중 넷째 음을 이르는 말이다의 음악을 연주하면

 

座客無不悲惋隕涕.

좌중이 슬퍼하고 탄식하며 눈물을 떨구지 않음이 없었다.

 

雖老且死, 而手爪之妙,

비록 늙어 장차 죽을 때가 되었지만 손과 손톱의 오묘함은

 

能感人如此, 其盛壯時可知也.

사람을 감동시킴이 이와 같을 수 있으니 전성기 때는 알 만하다.

 

 

 

지조 있는 김성기의 일화를 듣고 무뢰배들은 부끄러워하라

 

爲人精介少言語, 不喜飮酒,

사람됨이 깨끗하고 곧으며 말수가 적었고 음주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竆居江上, 若將終身,

곤궁하게 강가에 살면서 장차 죽을 때까지 그리할 것 같았으니

 

是豈無守而然哉?

이것은 어찌 지킬 게 없어 그리한 것이겠는가?

 

是豈無守而然哉

해석

이것은 어찌 지킬 게 없어 그리한 것이겠는가?

이것은 아마도 지킬 게 없었기에 그리한 것이리라.

의미

예인(藝人)의 지조(志操)와 같이 지킬 게 있었기에 은둔한 채 아부 떨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켜야 할 부귀와 같은 것들이 없었기에 그렇게 곤궁하게 은둔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정리

저자는 이글을 통해 김성기의 지조 있는 삶을 칭송하고 있고 뒷 부분에선 지조 없는 사대부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이 해석이 더 맞는 것 같다.

竆居江上이란 앞 부분 때문에 이런 해석도 생각해봤지만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지킬 게 없었다는 해석은 맞지 않다.

 

 

况其憤罵虎賊, 凜然有不可犯者.

더군다나 호룡과 같은 적에 분노하고 욕할 때에 늠름하여 범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랴.

 

嗚呼! 其亦雷海淸者流歟.

! 그는 또한 뇌해청뇌해청(雷海淸): 당 현종(唐玄宗) 때에 악공(樂工)으로, 임금의 파천(播遷)을 마음 아파하고 역적이 퍼짐을 분해하며 악기를 땅에 던지고 서쪽을 향해 통곡했다.의 무리일 것이다.

 

世之士大夫, 奊詬去就,

세상의 사대부 중 지조(志操)가 없는혈후(奊詬) : 식견이 없음. 지조가 없음 거취로

 

以汚迹於匪人者, 其視金琴師,

부정한 사람비인(匪人): 친근하지 않은 사람[不是親近的人] 고독하여 친한 이가 없는 사람[引申指孤獨無親的人] 행위(行爲)가 부정(不正)한 사람[行為不端正的人]. 도적[盜寇]에게 자취를 더럽히는 사람이 김금사를 본다면

 

亦可以知媿哉. 浣巖集卷之四

또한 부끄러움을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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