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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09.12.05 - 낙방하던 날, 무작정 격포에 가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09.12.05 - 낙방하던 날, 무작정 격포에 가다

건방진방랑자 2020. 2. 1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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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난 그 순간, 다시 시작된다

 

어제 시험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당연히 떨어졌더라. 이번엔 합격선 주위에도 가보지 못했으니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눈앞이 아찔했다. 마음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그래서 짐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금요일 저녁에 떠나고 싶은 곳(순천만, 옥정호, 경주)을 알아보긴 했지만, 딱히 마음이 기울어지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터미널에서 제일 먼저 출발하는 차를 타고 가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왔다.

 

 

 

격포에서의 추억

 

12시가 좀 안 되어 터미널에 도착했고 시간표를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격포가 눈에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바다가 보고 싶어 어떻게든 바다로 나갈 궁리만 했었다. 바로 바다로 가는 차가 있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다.

격포하면 생각나는 추억은 두 가지다. 067월에 목련ㆍ아연ㆍ정임이와 함께 왔었다. 한교과 삼인방과의 여행은 급조된 것이었지만 스터디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운전하며 떠난 최초의 장거리 여행이기도 하기에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는 올해 3월에 지리산을 등반하자던 계획이 급히 변경되어 유정 선배와 미란 쌤과 함께 온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그때 또 한 번 격포에서 추억을 쌓았다. 그 후 이렇게 다시 오게 될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이곳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니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천천히 만조가 되어가는 파도

 

전주에서 격포까지는 시외버스로 2시간이 걸리더라. 버스는 두 곳에서 정차를 한다. 김제에서 쉬고 부안에서 쉬고서 격포에 도착한다. 지나는 길목엔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시기상으로 겨울의 시작이지만 아직 겨울이라 하기에 정취는 변치 않았다. 좀 서늘한 듯하지만 햇살이 비쳐 기온을 높여주고 있었다. 그러니 몸으로 느껴지는 기온은 온화하기만 했다. 조금은 나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막상 격포에 내리고 나니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애초에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온 것이니 당연한 것이리라. 한 번 삥 돌고나서 다시 터미널 쪽으로 온 다음에 소주와 오감자라는 과자, 그리고 찐만두를 사서 대명리조트가 있는 쪽으로 길을 나섰다. 그쪽으로 가면 올해 3월에 온 적이 있는 적벽강이 있다고 하기에 그 길을 따라간 것이다. 조금 갔더니 곧바로 벤치가 있는 곳이 나오더라.

아무도 없이 나만이 덩그러니 있기에 그 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한 커플이 거기에 있었지만, 내가 소주를 마시며 만두를 먹자 곧 떠났다. 그 이후론 거의 1시간 동안 혼자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주를 병째 들고서 마시니 금방 취하여 정신도 흐리멍덩해진다.

거기서 과자를 다 먹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를 보고 있었다. 햇볕은 따뜻했고 미지근한 바람은 안아줬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파도를 봤다. 그 파도에 밀려 데굴데굴 굴러가는 자갈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듣고 있노라니, 소리와 찬란한 정취가 하나가 되는 환상적인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앉아 모든 걸 물끄러미 보고 듣고 있다. 파도는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했다. 때론 적은 양이, 때론 많은 양이 쉴 새 없이 말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잔잔한 듯했지만 그 안에 이와 같은 힘의 이동이 있었던 거다. 그렇게 계속 끊임없이 반복되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물이 점점 절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장시간 보고 있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기에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던 거다. 시나브로, 그 속에 나의 길이 있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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