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초평면 고추 심기 여행 - 1. 우연 따라 1년 만에 초평으로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초평면 고추 심기 여행 - 1. 우연 따라 1년 만에 초평으로

건방진방랑자 2020. 2. 9. 16:44
728x90
반응형

1. 우연 따라 1년 만에 초평으로

 

잠에 푹 빠져 있어야 할 새벽인데 매시간 눈이 떠진다. 그래서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530분에 알람을 맞춰뒀으니 그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면 되는데도 이상하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그건 알람소리를 못 듣고 잘까봐서 그런 건 아니다. 설레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소풍 가기 전야에 들뜬 마음으로 설잠을 자게 되듯 나도 그런 것이다. 1년 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 벅차다. 뒤척이다가 520분에 일어났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기분은 유쾌했다. 뒤척였다곤 하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2008년 9월부터 나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녀석. 이름을 하진이라 지었다. 어느 곳이든 함께 가자는 의미로 말이다.    

 

 

 

남부시장에서 보는 우리네 일상

 

밥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서 집을 나섰다.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봄이 왔는데도 아직 아침 바람은 서늘하다. 하긴 요 며칠 이상하게도 쌀쌀했었다. 그 여파가 아직도 있는 걸 테다.

남부시장 천변을 따라 달린다. 남부시장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 3대 시장(대구, 공주) 중 하나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역시나 남부시장하면 새벽시장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소리치고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이야기를 나눈다. 말과 말이 부딪히고 어우러져 우리네 일상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야말로 새벽시장의 정경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산다는 건 저런 옥신각신, 왁자지껄함이 아닐까? 마트도 시끄럽긴 매한가지이지만, 시장과 확연히 다르다. 시장의 시끄러움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함께 내는 화음인데 반해, 마트의 시끄러움은 판촉사원의 일방적인 고성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시장의 아우성은 양쪽이 함께 소리치고 응답하는 소통인데 반해, 마트의 시끄러움은 한쪽만 일방적으로 소리치는 소음이라 할 수 있다.

우리네 일상이란 이와 같은 왁자지껄함 속에서 꽃 핀다고 할 수 있다. 어우러짐이 때론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 상처가 두려워 혼자만의 세상에 침잠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일 것이다.

 

 

새벽의 아직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그래도 남부시장은 열기가 가득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내가 가는 까닭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어디에 가냐고?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신은 우연을 믿는가? 필연을 믿는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갑작스럽다고 당황해하지 말고 자신이 평소에 어느 쪽의 생각에 가까운지 한 번 되돌아보면 된다.

 

 

200951일 금요일이었어(갑자기 대화체 말투를 쓰니 황당할 거다. 근데 이건 과거 회상이기에 문체를 바꿔서 편안히 써보려 한다). 황금연휴라며 여기저기 시끄럽던 때였지.

그때 난 도보여행 중이었고 그 날 코스는 청주증평이었어. 그런데 좀 더 빨리 걸어 월요일에 친구를 만나야겠단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걷는 목표량을 최대한 늘리기로 했지. 이번 여행 자체가 우연한계기에 의해 하게 된 것이고 하루 경로도 우연히설정된 것인데 거기에 난데없이 또 다른 우연이 끼어 든 거야. 목표가 생겼으니 그저 열심히 걷는 수밖에는.

해가 질 때까지 걸어 도착한 곳은 초평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었는데 경찰관 아저씨의 도움으로 우연하게저수지 근처의 마을회관에서 자게 되었지. 그 때 이장님 댁엔 사람들이 참 많았거든. 알고 보니깐 다음날 고추를 심는다는 거야. 이런 상황을 꿈만 꿨었는데 진짜 겪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런 우연덕에 계획과 상관없이 다음 날 도보여행을 떠나지 않고 함께 고추를 심게 됐어. 도보여행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바로 이런 이야기인데 난 우연을 강조한데 반해 어떤 이는 이걸 운명이고 인연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뭐 각자의 관점이 있으니깐 시시비비를 가릴 필욘 없다. 그런데 그 곳에서 자게 된 것도, 그리고 그 다음날이 고추 심는 날이라는 것도, 내가 고추를 심게 되어 하루 더 머물게 될 것이라는 것도, 그 모든 게 우연을 가정하지 않고선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우연에 의한 것이었듯이, 내가 국토종단을 떠난 것도, 초평면에서 고추를 심게 된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작년 도보여행 중 우연하게 고추를 심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으로 심오 놓은 고추들.    

 

 

인용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