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많던 거품 속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네
박영철본 『연암집』에서는 이것으로 글이 끝난다. 그러나 『병세집』과 『시가점등』에는 게송 부분이 여기에 덧붙어 있다. 네 번째 단락은 지황탕의 비유를 부연하여 설명하겠다는 말로 시작된다. 승려의 탑명이기에 게송의 형식을 빌어 왔다. 이 게송의 부연으로 해서 지황탕의 비유는 다시금 생생하게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지황탕의 비유를 부연하여 게송偈頌으로 말해 보리라.
“我服地黃湯, “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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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은 다시 세 개의 의미단락을 이룬다. 첫 부분은 지황탕 위 거품의 현상함성現相含性 하는 실상實相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거품 속의 나를 바라보고, 거품 속의 나는 또 나를 바라본다. 내 눈동자 속에 거품이 있고, 거품 속에는 내 눈동자가 있다. 거품 속의 나와 내 눈 속의 거품은 같은가 다른가? 어느 것이 실상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가? 내가 웃으면 거품 속의 나도 웃고, 내가 눈을 감으면 저도 따라 눈을 감는다. 그러니 나는 거품이고 거품은 곧 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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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두 번째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는 그 상相을 형상으로 나타내는 일이 불가능하며, 직접 파악하려 들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더라는 이야기를 적었다. 거품 위의 상을 어떻게 그려내고, 조각하고, 아로새길 수 있으랴! 분명히 존재하던 거품이 잠깐 사이에 스러져 자취를 감추자, 거품 속에 깃들어 있던 천백의 나도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디로 갔는가? 좀 전의 나는 내가 아니었던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 있던 주공은 이제 세 알의 사리만 남겨 놓고 사라져 버렸다. 과연 주공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 곁에 있던 주공은 주공이 아니었던가?
▲ 전문
인용
- 이하의 게송偈頌 부분은 박영철본 『연암집燕巖集』에는 누락되어 있다. 연암 재세시在世時에 윤광심尹光心(1751-1817)이 당대 문장가들의 시문을 엮어 펴낸 『병세집幷世集』과, 이덕무李德懋의 손자인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시가점등詩家點燈』에는 이 대목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이 부분이 어떤 이유로 『연암집』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전체 글의 주제와 미묘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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