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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지황탕地黃湯 위의 거품 - 5. 수많던 거품 속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네 본문

책/한문(漢文)

지황탕地黃湯 위의 거품 - 5. 수많던 거품 속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네

건방진방랑자 2020. 4. 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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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수많던 거품 속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네

 

 

박영철본 연암집에서는 이것으로 글이 끝난다. 그러나 병세집시가점등에는 게송 부분이 여기에 덧붙어 있다. 네 번째 단락은 지황탕의 비유를 부연하여 설명하겠다는 말로 시작된다. 승려의 탑명이기에 게송의 형식을 빌어 왔다. 이 게송의 부연으로 해서 지황탕의 비유는 다시금 생생하게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地黃湯喩, 演而說偈曰[각주:1]:

지황탕의 비유를 부연하여 게송偈頌으로 말해 보리라.

 

我服地黃湯,

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泡騰沫漲 印我顴顙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도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을 찍어 놓았네.

一泡一我 一沫一吾

거품 하나마다 한 사람의 내가 있고 방울 하나에도 한 사람의 내가 있네.

大泡大我 小沫小吾

거품이 크고 보니 내 모습도 커다랗고 방울이 작아지자 내 모습도 조그맣다.

我各有瞳 泡在瞳中

내게는 각각 눈동자가 박혀 있고 눈동자 속에는 거품이 담겼구나.

泡中有我 我又有瞳

거품 속에도 내 모습이 들었는데 내가 또 눈동자를 지녀 있구나.

게송은 다시 세 개의 의미단락을 이룬다. 첫 부분은 지황탕 위 거품의 현상함성現相含性 하는 실상實相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거품 속의 나를 바라보고, 거품 속의 나는 또 나를 바라본다. 내 눈동자 속에 거품이 있고, 거품 속에는 내 눈동자가 있다. 거품 속의 나와 내 눈 속의 거품은 같은가 다른가? 어느 것이 실상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가? 내가 웃으면 거품 속의 나도 웃고, 내가 눈을 감으면 저도 따라 눈을 감는다. 그러니 나는 거품이고 거품은 곧 나가 아닌가?

 

 

我試嚬焉 一齊蹙眉

시험 삼아 얼굴을 찡기어 보니 일제히 눈썹을 찌푸리누나.

我試笑焉 一齊解頤

어쩌나 보려고 웃어 봤더니 모두들 웃음을 터뜨려댄다.

我試怒焉 一齊搤腕

내가 짐짓 성낸체 해보았더니 한꺼번에 팔뚝을 부르걷는다.

我試眠焉 一齊闔眼

장난으로 잠자는 시늉했더니 모두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謂厥塑身 安施堊泥

그 모습을 진흙으로 빚는다면은 흰 흙으로 어떻게 모양 만들까.

謂厥繡面 安施鍼絲

수틀에다 그 모습 수놓는다면 바늘과 실 어디에 베푼단말가.

謂畵筆描 安施彩色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하면 빛깔을 어떻게 펼쳐볼거나.

謂檀木鐫 安施彫刻

박달나무 위에다 새긴다면은 어떻게 아로새겨 조각을 하나.

謂金銅鑄 安施鼓橐

쇠를 부어 주물을 뜬다하면은 풀무질을 어떻게 하여야 하나.

我欲撥泡 欲按其腰

내가 그 거품을 터뜨리려고 거품의 중간을 눌러도 보고,

我欲穿沫 欲持其髮

내가 그 방울에 구멍을 내려 머리털 끝으로 찔러도 봤지.

斯須器淸 香歇光定

이윽고 그릇이 깨끗해지자 향기도 사라지고 빛도 스러져

百我千吾 了無聲影

백 명의 나와 천 명의 나는 마침내 어디에도 자취가 없네.

이어지는 두 번째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는 그 상을 형상으로 나타내는 일이 불가능하며, 직접 파악하려 들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더라는 이야기를 적었다. 거품 위의 상을 어떻게 그려내고, 조각하고, 아로새길 수 있으랴! 분명히 존재하던 거품이 잠깐 사이에 스러져 자취를 감추자, 거품 속에 깃들어 있던 천백의 나도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디로 갔는가? 좀 전의 나는 내가 아니었던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 있던 주공은 이제 세 알의 사리만 남겨 놓고 사라져 버렸다. 과연 주공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 곁에 있던 주공은 주공이 아니었던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음산한 빛에 놀라 명문을 부탁하다

2. 이상한 불빛과 지황탕의 거품

3. 현학적인 수사의 한계를 간파하다

4. 스님의 죽음은 사리가 아닌 씨 속에 담겨있다

5. 수많던 거품 속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네

6.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1. 이하의 게송偈頌 부분은 박영철본 『연암집燕巖集』에는 누락되어 있다. 연암 재세시在世時에 윤광심尹光心(1751-1817)이 당대 문장가들의 시문을 엮어 펴낸 『병세집幷世集』과, 이덕무李德懋의 손자인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시가점등詩家點燈』에는 이 대목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이 부분이 어떤 이유로 『연암집』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전체 글의 주제와 미묘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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