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상한 불빛과 지황탕의 거품
내가 평소에 불가佛家의 말을 잘 알지 못하지만 애써 부탁하는지라, 이에 시험삼아 물어 보았다. “여보시게 현랑玄郞! 내가 옛날에 병으로 지황탕地黃湯을 복용할 적에 즙을 걸러 그릇에 따르는데 자잘한 거품이 부글부글 일지 뭔가. 금싸라기나 은별도 같고, 물고기 아가미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 같기도 하고 벌집인가도 싶더군. 거기에 내 모습이 찍혀있는데, 마치 눈동자에 부처가 깃들어 있기나 한 듯이 제각금 상相을 드러내고, 영낙없이 성性을 머금었더란 말일세. 그런데 열이 식고 거품이 잦아들어 마셔 버리자 그릇은 그만 텅 비고 말더란 말이야. 앞서는 또렷하고 분명했는데 누가 자네에게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겠나?” 余雅不解浮圖語, 旣勤其請, 迺嘗試問之曰: “郞! 我疇昔而病, 服地黃湯, 漉汁注器, 泡沫細漲, 金粟銀星, 魚呷蜂房. 印我膚髮, 如瞳栖佛, 各各現相, 如如含性. 熱退泡止, 吸盡器空, 昔者惺惺, 誰證爾公.” |
다시 여기에 두 번째 단락이 이어진다. 연암은 현랑의 요청에 불교를 잘 모른다며 사양한다. 통상적으로 이 대목은 주공麈公의 일생 사적事跡이 기술되어야 할 장면인데, 연암은 정작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주공 스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든다. 그것은 지황탕의 비유이다.
이 비유를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지황탕을 복용할 때, 약탕관에 끓여 건巾으로 받쳐 내어 막대를 엇걸어 즙을 짜내면, 부글부글 거품이 일어 그릇 위를 덮는다. 그 모양은 꼭 물고기가 뱉어내는 물방울 같고 벌집 모양인가도 싶다. 그런데 그 거품방울 하나하나 마다 신기하게도 내 모습이 모두 찍혀 있다. 현상함성現相含性이란 말 그대로 내가 어떻게 백이 되고 천이 되어 헤일 수 없는 상相 속에 제각금 성性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런데 약이 식어 거품이 잦아들어 다 마셔 버리자, 거품 위에 떠있던 수백 수천의 나는 그만 간곳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많던 나들은 어디로 갔을까? 좀 전엔 분명히 있었는데 금세 찾을 길이 없는 나, 좀전에 내가 보았던 것은 허깨비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나 거품이 사라지고 난 지금, 금방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그 많던 나의 실체를 증명해 보일 방법이 없다.
무슨 얘길까? 주공이 며칠 밤을 이상한 빛으로 떠돌다가 세 개의 사리를 남기고 떠났듯이,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은 지황탕 위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거품과도 같은 것일 뿐이다. 밤마다 허공을 떠돌던 이상한 빛을 누가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주공이 남긴 단 세 개의 사리가 그것의 증명이 될 수 있을까? 그 사리를 담은 부도를 세워 거기에 내 글을 적어 새기면 주공이 이 세상에 왔다 간 존재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주공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 그가 죽은 뒤에는 밤마다 이상한 빛이 떠돌았었다. 이 사리탑이, 또 거기에 새긴 탑명이 그것을 증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도 분명히 있었지만 있지 않은 지황탕 위의 거품, 또 거기에 비쳐 보이던 나의 모습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우리는 앞서 「관재기觀齋記」에서 살펴 본 바 있는 치준緇俊 스님과 동자童子와의 문답을 떠올리게 된다. 향을 피우자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연기가 마침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재만 남은 것을 두고 묘오妙悟를 발한 동자에게, 향을 맡지 말고 재를 보며 연기를 기뻐하지 말고 공空을 바라보라고 하던 치준 스님의 일갈과 이 대목은 매우 유사하다.
▲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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