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재
내가 또 말하였다. “대저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이 모두 이 서책의 정기일세. 그럴진대 본시 바싹 가로막고 보아 한 방 가운데서 구할 수 있는 바가 아닐세. 그래서 포희씨가 문장을 봄을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살폈다’고 한 것이야. 공자께서 그 문장을 봄을 크게 여겨 이를 이어 말씀하시기를, ‘편안히 거처할 때는 그 말을 익힌다[玩]’고 하셨지. 대저 익힌다 함이 어찌 눈으로만 보아 살피는 것이겠는가? 입으로 음미하여 그 맛을 얻고, 귀로 들어 그 소리를 얻으며, 마음으로 마주하여 그 정채로움을 얻는 것일세. 이제 자네가 창에 구멍을 뚫고서 눈으로 이를 전일하게하고, 유리알로 받아 마음으로 이를 깨닫는다고 하세. 비록 그러나 방과 창이 텅비지 않고는 밝은 빛을 받을 수가 없고, 유리알이 비지 않으면 정기를 모을 수가 없을 것이네. 대저 뜻을 밝히는 도리는 진실로 비움에 있나니, 물건을 받음이 담박하여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네. 이것이 자네가 바탕을 익히겠다는[素玩] 까닭인가?” 낙서가 말하였다. “제가 장차 벽에 붙이렵니다. 써주십시오.” 드디어 그를 위해 써주었다. 余又曰: “夫散在天地之間者, 皆此書之精, 則固非逼礙之觀, 而所可求之於一室之中也. 故包犧氏之觀文也曰, ‘仰而觀乎天, 俯而察乎地.’ 孔子大其觀文而係之曰: ‘居則玩其辭.’ 夫玩者, 豈目視而審之哉? 口以味之, 則得其旨矣, 耳而聽之, 則得其音矣, 心以會之, 則得其精矣. 今子穴牖而專之於目, 承珠而悟之於心矣. 雖然, 室牖非虛, 則不能受明, 晶珠非虛, 則不能聚精. 夫明志之道, 固在於虛, 而受物澹而無私. 此其所以素玩也歟.” 洛瑞曰: “吾將付諸壁, 子其書之.” 遂爲之書. |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책은 문자로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천지 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책이다. 어찌 문자 속에서만 찾으려 하는가? 포희씨는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살펴, 천지만물의 비밀을 읽었다. 그가 읽어 팔괘로 읽어낸 천지만물이란 텍스트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어찌 방안에서만 찾으려 하는가? 공자께서 『주역』 「계사전繫辭傳」에서 가만히 있을 때마다 그 말을 익혔다고 하신 것은 그 문자를 익혔다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정신, 그 오성을 익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눈으로만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 음미하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마주하고 전신으로 만나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햇빛과 렌즈, 그리고 불이 붙으려면 초점이 필요하다. 서책에 담긴 지식과 내 마음의 눈, 그리고 그것이 오성으로 타오르려면 집약이 필요하다. 물건으로 가득찬 방은 빛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렌즈가 깨끗지 않고서는 초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텅 비어 있지 않으면 서책의 정보는 그 안에 깃들일 수가 없다. 내 눈빛이 맑지 않고서는 그 정보가 오성으로 불붙을 수가 없다. 그런 독서를 나는 ‘죽은 독서’라고 부르리라.
‘전목오심專目悟心’ 할 수 있으려면 먼저 ‘담이무사澹而無私’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어 어디에 써 먹겠다는 생각, 이것을 가지고 출세의 밑천을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렌즈가 아무리 좋아도 거기에 때가 끼어 있으면 빛을 모을 수가 없다. 투명한 오목렌즈에 많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어 불을 붙이듯, 내 마음에 천지만물이라는 서책이 주는 모든 지식이 쏟아져 들어와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방안에도 있지 않고, 책 속에도 있지 않으며, 내 마음 안에 있고, 천지만물 속에 있다. 여보게, 낙서! 그렇다면 자네 우선 그 방안에서 나오게. 문자의 질곡, 언어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논어』 「옹야」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널리 글을 배우고, 예禮로써 이를 요약하나니, 또한 도에서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 말하자면 연암의 「소완정기」는 이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가르침을 부연해 설명한 글이다. 명나라 때 귀유광歸有光은 「군자존덕성이도문학君子尊德性而道問學」이란 글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공자의 가르침에 박문약례라 하였으니, 정精으로써 일一로 돌아가고, 의義로써 예禮를 온전히 하며, 박博으로써 약約을 이루라. 모든 성인들께서 서로 전하여온 비결이 여기에 있나니!” 연암이 이 글에서 하고자 한 말은 귀유광의 이 한 마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장서와 잡다한 지식, 사회적 명성만을 뽐낼 뿐 그것으로 하나의 정채로운 불길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모든 가짜들을 위해 던지는 정문의 일침이다.
▲ 전문
인용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4-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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