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을 담아내는 신채나는 표현
글머리를 아주 간결하게 열고 있다. “비로소(始)” “겨우(纔)” “문득(忽)” “얼마 지나지 않아(須臾)” 등등 시간을 나타내는 말을 빈번히 사용함으로써 자연의 급격한 변화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침침하고 어둑하여 한을 품은 것 같기도 하고, 수심에 잠긴 것 같기도 한데, 잔뜩 찡그려 편치 않은 모습이었다(慘憺窅冥, 如恨如愁, 頻蹙不寧.)”라는 구절은, 자연의 의인화다. 이 글에서는 자연의 의인화한 이런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의인화와 반대로 인간이 자연물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건 ‘의물화擬物化’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의인화든 의물화든 모두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는 미적 방식이다.
시커먼 구름에 반쯤 가려진 해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발을 “성난 폭포 같았다(如怒瀑)”라고 형용했는데, 대단히 힘이 있고 신채神彩 나는 표현으로 느껴진다. 연암은 이처럼 기운이 펄펄한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이 단락은 전체적으로 아주 빠른 템포로 급변하는 자연의 자태를 포착해보이고 있다. 그 구사하는 이미지는 퍽 감각적이고 구체적이며, 대단히 선연하다. 그리고 뒤로 가면 갈수록 독자는 마음이 위축되면서 일말의 불안감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연암이 활달하고 빠른 필치로 소묘해 놓은 험상궂은 풍경화가 우리의 마음에 스며듦으로써다.
- 봉상촌鳳翔村: 지금의 김포군 통진면의 고을 이름이다. 이곳에는 연암가家의 전장田庄이 있었다. 이 전장은 연암의 6대조인 박동량朴東亮(1569~1635)이 처음 마련한 것으로서, 연암 증조부의 묘도 여기에 있었다. 봉상촌에서 강화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북쪽으로 15리쯤에 있는 문수산을 향해 간 다음, 문수산의 서쪽 산자락을 돌아 다시 2, 3리를 가 지금의 강화대교 부근에 있던 나루에서 물을 건너야 했다. 조선 시대 당시의 길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 길은 툭 트인 김포평야 사이로 난 길인데, 연암은 이 평야지대를 지나면서 목도한 광경을 글로 적고 있다. -『연암을 읽는다』, 34쪽 [본문으로]
2. 동양화의 화법으로 구름을 묘사하다
바다 밖의 뭇 산에는 저마다 작은 구름이 피어올라 멀리서 서로 응하며 마구 독기를 품고 있었다. 간혹 번갯불이 무섭게 번쩍거렸고 해 아래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으니 사방이 온통 컴컴해져서 한 치의 틈도 없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번개가 번쩍여, 겹겹이 쌓여 있어 주름이 잡힌 구름 1천 송이와 1만 이파리가 비로소 보였는데, 흡사 옷의 가장자리에 선을 두른 것 같기도 하고, 꽃에 윤곽이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모두가 농담濃淡이 있었다. 천둥소리는 찢어질 듯하여 흑룡이라도 뛰쳐나올 성 싶었다. 그러나 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멀리 바라보니 연안延安과 배천白川 사이에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워 있었다. 海外諸山, 各出小雲遙相應, 蓬蓬有毒. 或出電, 耀威日下, 殷殷有聲矣. 少焉, 四面䢔遝正黑, 無縫罅. 電出其間, 始見雲之積疊襞褶者, 千朶萬葉, 如衣之有緣, 如花之有暈, 皆有淺深. 雷聲若裂, 疑有墨龍跳出, 然雨不甚猛, 遙望延ㆍ白之間, 雨脚如垂疋練. |
점입가경이다. 이 단락은 번쩍거리는 번개와 요란한 천둥소리로 가득 차 있다. 연암의 시선은 처음에는 남쪽 먼 바다의 섬을 향하고, 그 다음에는 가고 있는 길 위의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서북쪽으로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연안과 배천을 향하고 있다. 남쪽 먼 바다의 섬이란 영종도나 시도나 무의도 등 서해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섬들을 말한다. 황해도 연안과 배천은 이른바 연백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봤을 때 툭 트인 시야가 몽몽한 빗줄기가 한눈에 들어왔을 터이다.
하늘이 노하기라도 한 듯 독기를 잔뜩 품은 구름들이 멀리 피어오르고, 번갯불은 번쩍거리고, 천둥은 우르르 쾅쾅 귀를 찢는다. 그러다가 이내 천지가 꽉 닫혀 버린 듯 사방이 시커메져 빛 하나 없다. 바로 그때 다시 번갯불이 치면서 그 섬광에 잠시 구름이 힐끗 보인다. 찰나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이 구름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래서 연암은 겹겹이 쌓인 그 구름의 무늬며 질감이며 음영을 안간힘을 써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옷의 주름 같기도 하고, 1천 송이 꽃 같기도 하고, 1만 개의 잎사귀 같기도 한데, 저마다 모두 농담濃淡을 갖고 있다. 연암이 구름을 이렇게 묘사할 때 그는 심중에 동양화의 화법畵法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의 묘사 방법은 구름에 준皴(무늬)을 넣는다든지 수묵水墨의 농담濃淡을 이용해 선염渲染(바림)을 함으로써 구름의 음영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저 동양화의 화법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편,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를 흑룡이 뛰쳐나올 것 같다는 심상心象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소리를 구체적 형상과 연결 지음으로써 동세動勢가 넘치고 생동감이 강한 필치를 보여준다.
이 단락은 “그러나(然)”로 시작되는 마지막 문장에서 문세文勢가 전환되는 바, 이 점 묘미가 있다. “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라는 말이나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워 있었다”라는 말에서, 지금처럼 무섭고 천지가 닫힌 듯한 상태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느낌이 전달된다.
“연안과 배천 사이에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워 있었다(延ㆍ白之間, 雨脚如垂疋練).” 이 시적 표현은 너무나 신묘해 거듭 탄성을 발하게 된다. ‘빗발’이라는 말의 원문은 ‘우각雨脚’인데, ‘우雨’에 ‘각脚’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멀리서 바라본 비 내리는 모양을 회화적으로 운치 있게 표현해 냈다. 연암 필법의 용의주도함이 이 한 글자에서도 잘 확인된다.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웠다는 표현은 대단히 부드럽고 온화한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런 뉘앙스는 이 대목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래서 뭔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한다.
3. 능청스러워 보일 정도로 깔끔하고 절제된 미학
이 단락은 변화로 가득하다. 시시각각 바뀌는 눈앞의 정경을 따라잡기 위해 연암은 “문득(忽)” “잠깐 새에(指顧之間)” “갑자기(忽)” “처음(初)” “이윽고(已而)” 등등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부사어들을 숨 가쁘게 동원하고 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어느새 활짝 개고, 고운 해가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똑같은 구름이건만 조금 전에는 험상궂던 것이 지금은 밝고 상서로운 빛으로 싹 바뀌었다. 하늘의 조화란 이런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연암의 필치는 아주 경쾌하고 명랑하다. 청초하고 산뜻한 풍경을 대하면서 그 마음이 환해져서일 것이다.
바로 이때다, 무지개가 하늘에 쫙 떠오르는 건, 그것은 처음에 말 머리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하늘까지 쭉 뻗친다. 연암은 문득 생각한다. 이것을 문으로 삼아 저편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이것을 다리로 삼아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겠구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을 듯이 보임에도,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 무지개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린 시절 무지개를 잡아보려고 얼마나 달음박질치곤 했던가. 그리고 그것이 허망한 일임을 이내 깨닫고 망연자실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때 그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답던가.
더구나 연암이 본 무지개는 그 아치arch가 말 머리에서 시작되어 평야를 가로질러 강화해협에 꽂힌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기 앞에서 시작되어 물에서 끝나는 모양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으리라 상상된다. 연암이 느낀 미감은 마지막 구절, 즉 “산기슭을 돌아 나오며 바라보니 강 따라 백 리 사이에 강화부 외성의 흰 성가퀴가 햇빛에 반짝거리고, 무지개 발은 아직도 강 한가운데 꽂혀 있었다(轉出山足, 望見沁府外城, 緣江百里, 粉堞照日, 而虹脚猶揷江中也.)”라는 구절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바로 이 절정에서 이 글은 단 한마디의 말도 덧붙이지 않고 종결된다. 이처럼 미감의 절정에서 느닷없이 글이 끝나기 때문에 독자는 한 편으로는 아연하고, 한편으로는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 당혹감은 금새 긴 여운과 선연한 인상으로 전환된다. 이처럼, 능청스러워 보일 정도로 깔끔하고 절제된 종결부의 미학은 이 글 전편全篇을 이 마지막 구절에 수렴되게 하고, 이 마지막 구절에 초점이 맺히도록 만들고 있다. 연암은 사진으로 치면 몇 컷의 사진을 찍은 셈이고, 그림으로 치면 몇 폭의 그림을 그린 셈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마지막 장면을 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의 언어는 아주 형상적이고, 생신하다. 특히, “꽂혀 있었다(揷)”라는 표현은 대단히 참신하고 뾰족하다. 그래서 정말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암이 구사하는 언어의 생명력이 이런 데서 잘 드러난다.
사족 한 마디, 연암의 무지개를 문이나 다리로 상념한 것을 두고, 이상세계를 희구했다느니,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상상했다느니 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적 무지개의 관념을 연암의 글에 덧씌운, 따라서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다. 이글에서 연암이 무지개를 문이나 다리로 상념한 것은, 자신이 곧 해협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김포평야에서 시작해 해협을 가로질러서 떠 있는 무지개를 보면서, 문득 홍예교虹蜺橋(=무지개 다리)처럼 저걸 밟고 해협을 건널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 것이다.
- 문수산文殊山: 김포시 월곶면 강화대교 바로 앞에 있는데 해발 376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김포평야 가운데 불쑥 솟아 있어 아담한 운치가 있으며, 산등성이에는 숙종 때 쌓은 산성이 있었다. 이 산성은 고종 3년인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문수산 산자락의 서쪽을 돌아 조금만 가면 나루가 나온다. 이 나루는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갑곶과 마주보고 있다. 갑곳에서 동으로 10리를 가면 바로 강화읍이다. [본문으로]
- 강江: 곧 강화해협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심부외성沁府外城: 강화도의 동쪽 해협을 따라 긴 성이 축조되어 있었던바, 이것이 곧 강화부 외성이다. 이 성은 고려 제23대 고종이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처음 쌓았으며, 조선조 광해군 10년(1618)에 수축하고 영조 21년(1745)에 고쳐 쌓았다. 연암이 본 건 영조 때 고쳐 쌓은 성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다 무너졌으며 오직 하점면 망월리와 불은면 오두리에 그 일부가 남아 있다. 한편 현재의 강화읍을 둘러싸고 있는 성을 강화 내성內城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 성가퀴(堞):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말한다. [본문으로]
- 무지개 발(虹脚): 무지개의 밑동, 즉 무지개의 지상에 닿은 부분을 말한다. 앞에 나온 빗발이라는 말과 서로 호응을 이루는 말이다. [본문으로]
4. 총평
1
동아시아에서의 고대 이래 무지개를 상서롭지 못한 자연 현상으로 간주해 왔다. 그래서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글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주류적 관점과는 달리 무지개를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삼은 문이나 예술가가 전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17세기에 활동한 중국의 걸출한 화가 석도石濤의 「수홍도垂虹圖」 같은 그림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무 밑 석파石坡(평평한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는 두 고사高士는 무지개에서 어떤 황홀경을 맛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연암의 이 글은 석도의 무지개 그림처럼 무지개를 미적 관조의 본격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희귀한 글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2
이글에는 진부한 글자가 하나도 없고 모든 글자가 문맥 속에서 펄펄 살아 있는 글자로 창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의 마술사로서의 연암 특유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말은 연암이 현란한 언어와 수사를 구사하는 데 능했다는 말이 아니다. 평범한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그 언어에 새로운 느낌과 이미지, 새로운 뉘앙스와 빛깔을 부여하면서 대상의 본질을 간결하면서도 정채 있게, 그리고 깊숙이 묘파해 냈다는 점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이 글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감각적ㆍ비유적인 언어로 생동감 있게 잘 그려 냈다. 일찍이 중국 북송의 소동파는 당나라의 시인인 왕유王維를 평하면서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라는 말을 한 바 있지만, 연암의 경우 가히 “문文 가운데 그림이 있다”라고 할 만하다.
3
전근대 동아시아의 문학 장르 가운데 ‘산수유기山水遊記’라는 것이 있으니, 곧 산수에 노닌 일을 기록한 글을 이르는 말이다. 연암은 아마도 당시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강화에 들어간 것 같고 놀러 갈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닌 듯하므로(놀러 가서 쓴 글은 대개 그 점을 명기한다), 이 글을 산수유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객관적 묘사와 주관의 토로가 표 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 노정露程 및 관찰점觀察點이 비교적 명시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산수유기의 창작 전통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용
지도 / 목차 / 작가 /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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