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연암을 읽는다 - 3. ‘죽오’라는 집의 기문 본문

책/한문(漢文)

연암을 읽는다 - 3. ‘죽오’라는 집의 기문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13:52
728x90
반응형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각주:1]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각주:2]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각주:3]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각주:4]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도 대나무의 덕성을 찬양하고 대나무의 소리와 빛깔을 형용한 시문詩文을 여러 편 지었거늘, 다시 글을 지어 무엇 하겠는가.
古來讚竹者甚多. 淇澳, 歌咏之嗟嘆之不足, 至有而尊之者, 竹遂以病矣. 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 又從以文而記之. 則雖使蔡倫削牘, 蒙恬束毫, 不離乎風霜不變之操, 䟽簡偃仰之態. 頭白汗靑, 盡屬飣餖, 竹於是乎餒矣. 顧以余之不文, 讚竹之德性, 以形容竹之聲色, 作爲詩文者多矣, 更何能文爲.

연암은 몹시 단언적인 어조로 첫 문장을 시작하고 있다. 서두를 어떻게 여는가에 따라 글은 그 느낌과 뉘앙스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옛날의 문장가들은 글을 쓸 때 서두를 어떻게 열 것인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 단락은 단언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첫 문장에 대해 쭉 부연 설명한 다음 맨 끝에다 그러니 대나무에 관한 글을 지어 무엇 하겠는가라는 말로 종결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이 단락은 다음 단락을 위한 복선을 깔면서, 왜 자신이 죽오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앞질러서 밝혀 놓고 있다.

대나무가 피폐해지게 되었다(竹遂以病矣)’라거나 대나무가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竹於是乎餒矣)’라는 말은, 대나무에 대한 수많은 시문이 쏟아져 나오면서 급기야 대나무에 대한 표현이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되어 대나무가 그만 무색해져 버렸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연암의 독특한 생각이 깃들여 있다. 연암은 언어에 상투성의 때가 끼면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고 보았다. 사물을 표현하는 어떤 말은 비록 처음에는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점점 상투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언어의 운명이다. 연암은 상투적인 언어는 이른바 죽은 언어로서, 사물의 생동하는 모습이나 그 내적 본질을 결코 드러낼 수 없다고 믿었다.

 

 

 

 

 

  1. 『시경』 위풍衛風 「기욱」편의 시를 말하는데, 그 중에 “저 기수淇水 모롱이 바라보니 / 푸른 대나무 무성하네(瞻彼淇奧, 綠竹猗猗)”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는 대나무에 대한 읊조림을 담고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중국 문헌에 해당된다. [본문으로]
  2. 차군此君: 중국 동진東晉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를 너무도 사랑하여 ‘차군此君(이 친구라는 뜻)’이라고 불렀으며, “어찌 하루라도 차군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3. 기문記文: 그냥 ‘기記’라고도 하는데, 어떤 일의 경과를 기술하든가 정자나 누각의 조성 경위 등을 밝힌 글을 말한다. [본문으로]
  4. 채윤蔡倫: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전하며, ‘몽염蒙恬’은 진秦의 장군으로 붓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한다. [본문으로]

 

 

2. 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도 대나무의 덕성을 찬양하고 대나무의 소리와 빛깔을 형용한 시문詩文을 여러 편 지었거늘, 다시 글을 지어 무엇 하겠는가.
古來讚竹者甚多. 淇澳, 歌咏之嗟嘆之不足, 至有而尊之者, 竹遂以病矣. 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 又從以文而記之. 則雖使蔡倫削牘, 蒙恬束毫, 不離乎風霜不變之操, 䟽簡偃仰之態. 頭白汗靑, 盡屬飣餖, 竹於是乎餒矣. 顧以余之不文, 讚竹之德性, 以形容竹之聲色, 作爲詩文者多矣, 更何能文爲.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연암은 언어 자체를 어떤 식으로든 쇄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의 쇄신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해 연암은 여러 가지 구상과 실천을 보여주는데, 그 가운데 다음의 두 가지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실감의 중시. 실감이란 무엇인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절실한 느낌을 말한다. 그러므로 실감은 진실성을 지니며, 진실성을 지니기에 상투성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연암의 경우 실감의 강조는 체험 및 감수성에 대한 강조와 연결되면서 상상력의 확장과 혁신을 낳고, 상상력의 확장과 혁신은 급기야 언어에 참신성과 생기를 부여한다.

 

둘째, 비유ㆍ풍자ㆍ해학ㆍ역설ㆍ알레고리 등 글쓰기 방법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비유는 종종 사물의 표상과 의미를 확장하고, 사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연암은 글쓰기에서 비유를 대단히 애용하고 있는데, 이는 편견과 고정관념, 경직된 사고와 의식을 탈피해 유연한 자세와 열린 눈으로 사물의 생기발랄한 모습과 기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다. 말하자면 비유는 연암에게 있어 상투성과 관습적 사고를 넘어서게 하는 인식론적ㆍ미학적 도구다. 그것은 언어의 쇄신이면서 동시에 상상력의 쇄신이다. 연암 문학의 상상력의 특질, 즉 자유롭고 분방하며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면모는 연암이 구사하는 저 대담하고도 놀라운 비유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유는 연암의 글을 죽은 글이 아니라 생기 가득한 글로 만드는 데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풍자와 해학, 역설과 알레고리는 권위, 엄숙성, 허위의식, 경직된 생각 따위를 깨뜨리는 데 아주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연암은 이 점과 관련해 패관소설체를 구사한다는 비난을 받곤 했지만, 연암의 이 패관소설체야말로 기실 언어의 쇄신, 사상과 사고방식의 쇄신을 향한 일대 중요한 진전이었던 것이다.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인 다시 글을 지어 무엇 하겠는가(更何能文爲)”라는 말은 이 단락을 맺는말임과 동시에 다음 단락을 여는 말이기도 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군 양직養直[각주:1]은 개결하고 곧으며 지조와 절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죽오竹塢[각주:2]라 자호自號하고 그 호를 편액扁額[각주:3]에다 써서 자기 집에 걸고는 나에게 기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나는 끝내 응하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대나무를 소재로 한 글들에 대해 정말 괴로워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만일 편액의 글을 고친다면 내 당장 글을 쓰리다.”
나는 그를 위하여 고금古今의 사람들이 쓴 기이한 호나 운치 있는 이름, 이를테면 연상각烟湘閣[각주:4],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각주:5], 행화춘 우림정杏花春雨林亭[각주:6], 소엄화계小罨畫溪[각주:7],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각주:8],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각주:9] 등등 수십ㆍ수백 가지를 뇌까리며 그 중에 하나를 골라잡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양직은 그 모두에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앉으나 누우나 죽오’, 자나 깨나 죽오였다. 매번 글씨 잘 쓰는 이를 만나면 그때마다 죽오를 써 달래서 벽에 거니 벽의 네 귀퉁이가 죄다 죽오였다. 향리에는 죽오를 놀리는 이도 많았지만 그는 느긋하니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편안히 받아들였다.
梁君養直, 介直有志節者也. 甞自號曰竹塢’, 而扁其所居之室, 請余爲記. 而果未有以應之者, 吾於竹, 誠有所病焉故耳. 余笑曰: “君改其額, 文當立就爾.” 爲誦古今人奇號韻題之如烟湘閣百尺梧桐閣杏花春雨林亭小罨畫溪晝永簾垂齋雨今雲古樓者, 屢數十百, 勸其自擇焉. 養直皆掉頭而否否坐臥焉竹塢, 造次焉竹塢. 每一遇能書者, 輒書竹塢而揭之壁, 壁之四隅, 盡是竹塢. 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 恬不知恥, 安而受之.

문의文意가 확 전환되면서 본론이 전개된다.

양호맹이 개결하고 지조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의 이런 성품은 그 자인 양직養直(곧음을 기르다)’에 잘 압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양직이라는 자는 대나무가 우거진 언덕이라는 의미인 죽오라는 당호와도 잘 어울린다. 대나무의 본성은 곧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양호맹은 그 품성과 자와 호, 이 셋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런 삼위일체에 부합이라도 하듯 양호맹은 대나무에 대해 놀라운 집착을 보여준다. 연암은 이 점을 이 단락의 뒷부분에서 대단히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앉으나 누우나 죽오, 자나 깨나 죽오라는 표현이나 벽의 네 귀퉁이가 죄다 죽오였다라는 표현은, 흡사 천지사방이 온통 죽오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냄으로써, 대나무에 대한 양호맹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익살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단락의 중간 부분, 즉 수십ㆍ수백 가지(이는 얼마나 과장된 표현인가!)의 근사한 당호를 제시하며 그 중의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으라는 연암의 제의와 이들 당호 모두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는 양호맹의 반응을 서술한 대목 역시 대단히 해학적이어서, 웃음보를 터뜨리게 한다. 비단 연암의 어투와 행태가 강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양호맹이라는 인간의 개성이 잘 느껴진다. 이 점에서, 이 대목의 서술은 아주 이채를 띠고 있으며, 시공간을 뛰어넘어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때 그 자리를 엿보게 하는 듯한 미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필치는 생동하고, 묘사는 핍진하다.

 

향리에는 죽오를 놀리는 이도 많았(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다고 했는데, 이건 뭘 말하는 걸까? 아마도 고지식할 정도로 대나무를 혹애하며 죽오라는 당호를 집착했던 양호맹의 성벽을 사람들이 비웃었다는 말일 터이다. 그럼에도 그는 느긋하니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편안히 받아들였다(恬不知恥, 安而受之)”고 했는데, 이 말은 양호맹의 또 다른 성품에 대한 기술일 뿐만 아니라, 양호맹의 인간 됨됨이를 작가 연암이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연암은 이 마지막 구절에서, 양호맹의 대나무 사랑이 그냥 폼으로 하는 짓이거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짓이 아니라, 진정으로 제가 좋아서 하는 짓이요, 그러기에 남들이 뭐라고 하든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음을, 나직하긴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마지막 구절은 이 단락의 첫 문장, 양군 양직은 개결하고 곧으며 지조와 절재가 있는 사람이다(梁君養直, 介直有志節者也)”라는 문장과 정확히 호응한다.

 

 

 

 

 

  1. 양직養直: 양호맹梁浩孟(1738~1795)의 자字다. 본관은 남원이며, 개성 사람이다. [본문으로]
  2. 죽오竹塢: 양호맹의 당호堂號(집에 붙인 이름)이다. 박지원은 연암협燕巖峽에 은거한 첫 해인 1778년, 당시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와 있던 친구 유언호俞彦鎬(1730~1796)의 배려로 잠시 개성의 금학동琴鶴洞에 있던 양호맹의 별장을 거처로 삼았다. [본문으로]
  3. 편액扁額: 종이나 나무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를 말한다. [본문으로]
  4. 연상각烟湘閣: 안개가 낀 상수湘水(중국 강남의 강 이름) 가의 집이란 뜻이다. [본문으로]
  5.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 백 척이나 되는 높다란 오동나무 곁에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6. 행화춘 우림정杏花春雨林亭: 살구꽃이 핀 봄날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숲 속의 집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7. 소엄화계小罨畫溪: 작은 엄화계罨畵溪라는 뜻이다. ‘엄화’는 채색한 그림을 뜻하는 말인바, ‘엄화계’란 중국 절강성浙江省 장흥현長興縣에 있는 경치가 썩 좋은 시내 이름이다. [본문으로]
  8.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 긴 낮 동안 주렴(=발)이 드리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도학자인 소강절邵康節의 「늦은 봄을 읊다(暮春吟)」라는 시에 “봄 깊어 긴 낮에 주렴을 드리웠네(春深晝永簾垂地)”라는 구절이 있는바, 여기서 따온 말이다. 이 시는 자연을 읊고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은자의 생활을 읊은 시이다. [본문으로]
  9.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 비는 지금의 비가 내리는데 구름은 옛날 구름이 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연암은 연암협에 있는 시내에 ‘엄화계’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고, 또 훗날 안의현감安義縣監으로 있을 때 관아의 새로 지은 건물들에 ‘연상각’과 ‘백척오동각’이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 [본문으로]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양직이 나에게 글을 부탁한 지 어언 10년이 되었건만 그는 여전히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천 번 좌절되고 백 번 억눌려도 그 뜻이 바뀌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절해졌다. 심지어 그는 술을 따라주며 나를 달래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촉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묵묵히 응하지 않자 발끈하여 화를 내며 팔을 쳐들어[각주:1] 노려보는데, 눈썹은 찡그려 자 같고 손가락은 메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뾰족한 게 홀연 대나무 모양이 되었다.
所以請余文者, 今已十年之久, 而猶不少變. 千挫百抑, 不移其志, 彌久而罙切. 至酹酒而說之, 聲氣而加之, 余輒默而不應, 則奮然作色, 戟手疾視, 眉拂个字, 指若枯節, 勁峭槎枒, 忽成竹形.

시간은 훌쩍 건너뛰어 10년이 지났다. 이 단락은 크게 보아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연암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양호맹을 대나무로 느끼게 되었다는 내용이고, 둘째 부분은 그래서 양호맹에게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첫 부분 첫 번째 문장을 통해 독자는 양호맹이 10년 동안 변함없이 연암에게 글을 써 달라고 졸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 번 좌절되고 백 번 억눌려도 그 뜻이 바뀌지 않았으며(千挫百抑, 不移其志)”라는 말은, 연암이 거듭 거절해도 그에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 집요하게 글을 부탁했다는 뜻이다. 연암은 이 구절의 서술을 통해 양호맹의 대나무성’, 다시 말해 양호맹의 대나무 같음을 은근히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나무가 표상하는 저 절개나 지조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연암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구절을 서술했음이 틀림없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양호맹의 이런 면모는 그 절정에 이른다. “심지어 그는 술을 따라주며 나를 달래기도 하고(至酹酒而說之)”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대단히 유머러스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이 문장에서 양호맹은 대나무로 표상되고, 대나무로 현현된다. 양호맹은, 대나무 같다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대나무 그 자체로 인지되고, 그리하여 그와 대나무 사이엔 어떤 간극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 문장은 양호맹의 대나무 기질에 대한 묘사의 최정점이자 그 완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죽오라는 집의 기문을 한 폭의 그림이라 친다면 이 대목은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하며, 따라서 가장 신채神彩를 발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대나무 그림, 혹은 양호맹의 초상화는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었다. 연암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우리 한시를 읽다를 끝내다

건빵의 죽오기, 건빵재를 열다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2. 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5.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를 담아 기문을 쓰다

6. 총평

 

 

  1. 팔을 쳐들어(戟手): 이 단어는 화가 나서 사람을 치려고 할 때 한 손은 위로 하고 한 손은 아래로 하여 마치 창 모양처럼 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5.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를 담아 기문을 쓰다

 

 

아아, 양직은 정말 대나무에 벽[각주:1]이 있어 그것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로구나! 겉으로만 봐도 그는 마음이 우뚝하고 커서 마치 기암괴석 같은데 그 속에는 아마 조릿대 떨기와 그윽한 왕대가 무성하리라. 이러하니 내가 글을 안 지을 수 있겠는가. 옛사람 가운데 대나무를 숭상하여 차군此君이라 부른 이가 있었거니와, 양직과 같은 이는 백세百世의 뒤에 차군의 충신이 되었다 할 만하다. 이에 나는 대서특필하여 정려旌閭[각주:2]하기를, ‘고고하며 곧고 편안할손, 양처사梁處士[각주:3]의 집이라 하였다.
嗚呼! 養直豈眞癖於竹, 而愛之至哉. 觀於外可見其肝腎肺胃, 磐矹犖确, 如奇巖巉石, 而叢篠幽篁, 森鬱其中也. 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 古之人旣有尊竹而之者, 則如養直者, 百世之下, 可爲此君之忠臣矣. 吾乃大書特書而旌之曰: “高孤貞靖, 梁處士之廬.”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대목에 이르도록 연암은 대나무(=양호맹)를 계속 관찰하면서 자기대로 느끼고, 판단하고,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연암은 대나무(=양호맹)의 본질, 그 내면적 진정성을 스스로 체득體得(몸으로 깨달음)해 나가고 대나무에 대한 실감을 고조시켜 간바, 그 마지막 국면에서 홀연 최고의 미적 흥취를 느끼면서 흉중에서 대나무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도를 닦는 사람이 오랜 수행의 어느 순간에 갑작스런 깨달음, 즉 돈오를 맛보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연암은 10년 동안 대나무를 관찰했고 그 과정에서 대나무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이른바 흉중일기胸中逸氣(가슴 속의 빼어난 기운)’가 형성되어 한 폭의 그림을 고도의 사의寫意로 그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하므로 이 대나무 그림은 여느 대나무 그림과는 달리 상투적이거나 진부하지 않고, 참신하고 독창적이며 생기발랄하다. 다시 말해 연암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상투성의 때를 벗고, 언어의 쇄신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이 바로 죽오라는 집의 기문이다.

 

눈썹은 찡그려 자 같고 손가락은 메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뾰족한 게 홀연 대나무 모양이 되었다라는 문장은 더 깊이 음미될 필요가 있다. “란 대잎을 말한다. 대나무 잎을 그리는 법에 개자엽个字葉이라 하여 자 모양으로 그리는 법이 있다. “메마른 마디란 대나무의 마디를 말한다. 대나무 그림에서 마디를 생동감 있게 그리기란 쉽지 않은데, 연암은 양호맹의 늙은 손가락 마디에서 수일秀逸한 대나무 마디를 떠올린 것이다.

 

네 번째 단락의 이런 고조된 미적 흥취에 이어 아아, 양직은 정말 대나무에 벽이 있어 그것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로구나!(嗚呼! 養直豈眞癖於竹, 而愛之至哉)”라는 부분이 시작된다. 이 문장은, 고조 상태의 흥취를 아아라는 감탄사로 연결시키고 있긴 하지만, 돈오처럼 찾아온 잠시의 물아일체에서 빠져나와 다시 심미적 거리를 두고 대상을 판단하는 자리로 연암이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앞부분이 대상과의 직관적 조우遭遇를 통한 심미적 체험을 보여준다면, 이 부분은 그것을 다시 이성적으로 음미하고 판단하는 자리다. 그리하여 대나무에 대한 글이 수두룩한데 내가 뭣 땜에 그런 글을 또 한 편 보탠단 말인가(以形容竹之聲色, 作爲詩文者多矣, 更何能文爲)’라는 서술을 스스로 뒤집으면서 이러하니 내가 글을 안 지을 수 있겠는가(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글은 대나무에 대한 글을 안 쓰겠노라던 연암 자신의 그토록 단호한 생각이 왜,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뒤집혀지는지를 유쾌한 필치로 보여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차군이라는 말이 나온 바 있거니와 이 단락에서는 그 말에 호응하되, ‘차군친구라는 뜻도 가지지만 임금이라는 뜻 또한 가짐을 이용해 이 말에 전혀 새로운 뉘앙스를 부여하면서 양호맹을 차군의 충성스런 신하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지극한 을 정려하는 말을 글의 맨 마지막에 붙이고 있다. 이 부분의 필치에도 유머와 해학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 이르기까지의 여로旅路에서 독자는 이미 눈치 챘을 줄 알지만, 이 해학은 결코 양호맹에 대한 조롱이나 비아냥거림이 아니다. 이 부분은, 그리고 이 글 전체는, 연암 특유의 해학적 필치에 의한, 양호맹이라는 일견 단순하지만 순실하고 변함없는 한 인간에 대한 헌사獻辭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1. 벽癖: ‘방랑벽’이니 ‘등산벽’이니 할 때의 ‘벽’인데, 무엇을 지나치게 즐기는 버릇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정려旌閭: 충신ㆍ효자ㆍ열녀 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3. 처사處士: 벼슬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본문으로]

 

 

6. 총평

 

 

1

이 글은 전체적으로 볼 때 굴곡과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글이 더욱 생기 있고, 재미있다. 그리고 1단락의 문의文意마지막 단락에서 뒤집히는 극적 반전의 구조를 취함으로써 글 전체의 파란波瀾이 풍부하게 되었다.

 

 

2

박지원은 정치적인 이유로 한 때 연암협에 은거하였다. 박지원은 이 무렵 양호맹을 알게 되고, 그의 신세를 지게 된다. 박지원이 연암협으로 옮겨 간 것은 42세 때인 1778년이다. 하지만 2년 뒤, 자신을 박해하려는 뜻을 품고 있던 홍국영洪國榮이 정계에서 축출되자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그 후에도 박지원은 연암협을 들락날락하지만, 이 글 중 양호맹이 기문을 부탁한 지 어언 10년이나 된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 53세 때인 1789년에 이 글이 씌어진 게 아닌가 추정된다. 평시서平市署 주부主簿로 있던 박지원은 이 해 가을 공무의 여가를 얻어 연암협에 머물렀으며, 자기와 인연이 있는 개성 사람들을 위해 몇 편의 글을 써 주었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3

이 글은 전체적으로 볼 때 장난기같은 게 많이 느껴진다. 연암의 글에서는 종종 이런 장난기가 발견된다. 이 장난기는, 조금 고상한 말로 하면 해학미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연암의 장난스런 필치는 한갓 언어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세계를 느끼고 표현하는 창조적인 하나의 미적 방식이다. 이를 통해 연암은 상상력 및 언어의 상투성과 진부함을 깨뜨리면서 새로운 감수성과 살아 숨 쉬는 언어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만일 이 글을 엄숙한 필치로 썼다면 이런 미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겠는가. 필시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글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4

이 글은 연암 산문이 창조되는 미묘한 지점, 다시 말해 그 창조과정의 비의秘義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연암은 상투적인 글은 절대 쓰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연암은 안이하게 글을 쓰지 않고, 가슴에 영감과 흥취가 가득 차오를 때를 기다려 비로소 붓을 들어 흉중의 뜻을 토해 내고 있다. 글이 진실되고, 펄펄 살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연암의 글이 귀신같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닌 것이다.

 

 

5

연암의 동시대인은 이 글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익살스러운 글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깔깔 웃느라 몸을 가누지 못하게 하고, 웃다 쓰러지게 하며, 배꼽을 잡고 웃게 할 터이다.”

 

 

 

 

 

 

인용

지도 / 목차 / 작가 / 비슷한 것은 가짜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