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물을 잊은 물고기 -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본문

책/한문(漢文)

물을 잊은 물고기 -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13:52
728x90
반응형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우연히 거친 성질을 기리다가 스스로를 사슴에다 견준 것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놀라는 까닭에서였지 감히 스스로 크다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주신 글월을 받자오매, 스스로를 말 꼬리에 붙은 파리에다 비유하셨으니 또 어찌 그다지도 작단 말입니까? 그대가 진실로 작게 되기를 구한다면 파리도 오히려 크지요. 개미가 있지 않습니까?

偶頌野性, 自况於麋, 所以近人則驚, 非敢自大也. 今承明敎, 自比於驥尾之蠅, 又何其小也? 苟足下求爲小也, 蠅猶大也. 不有蟻乎?

윗 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역시 바라봄의 문제에 대해 논한 글을 한 편 더 읽어본다.

답모答某는 연암이 누군가에게 답장으로 보낸 편지글이다. 아마 이보다 앞선 편지에서 연암이 스스로를 겁 많은 사슴에 견준 것을 두고 상대가 스스로 크다고 여긴 것으로 오해하여, 나는 사슴은커녕 말꼬리에 붙은 파리만하다고 낮추자 이에 대해 해명을 겸하여 쓴 글인 듯 싶다. 언어는 종종 이런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연암은 앞서 답경지에서, 글쓴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표면의 문자에만 현혹되는 죽은 독서를 나무랐다. 소완정기에서는 늘 물속에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물의 존재를 잊고 마는 물고기의 관성화된 삶의 태도를 질타하고, 깨달음으로 점화되지 못하는 지식의 허망함을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번에 살핀 환희기후지에서는 눈을 뜨는 순간 눈이 멀어버린 눈 뜬 장님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 장님은 오히려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보통 사람에게서 눈을 빼앗아 간다면 그 불편함을 단 하루도 견딜 수 없겠으나, 습관이 된 장님에게는 눈 없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지가 않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님은 손으로도 볼 수 있고, 발로도 볼 수 있으며, 마음으로도 볼 수 있으니, 꼭 눈으로 보아야만 보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눈을 빤히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가 하면 보지 않고도 모두 알아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럴진대 보고 못보고, 보이고 안 보이고는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제가 일찍이 약산에 올라가 그 도읍을 굽어보니, 사람들이 내달리고 달음질치는 것이 땅에 엎디어 꿈틀대는 개미집의 개미와 같아, 한 번 크게 숨을 내쉬면 흩어져 버릴 것만 같더이다. 그러나 다시금 고을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바라보게 한다면, 벼랑을 더위잡고 바위를 에돌아 덩쿨을 붙잡고 나무를 끼고서 산꼭대기에 올라가 망녕되이 스스로 높고 큰체 하는 것이 또한 머리의 이가 머리카락을 타고 오르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僕嘗登藥山, 俯其都邑, 其人物之若馳若騖者, 撲地蠕蠕, 若屯垤之蟻, 可能一噓而散也. 然復使邑人而望吾, 則攀崖循巖, 捫蘿緣樹, 旣躋絶頂, 妄自高大者, 亦何異乎頭蝨之緣髮耶?

이제 이 글에서 연암은 다시 크기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언젠가 약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약산 읍내를 내려다 본 일이 있었다. 그 아래서 북적대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떼와 다를 바 없었다. 훅 불면 전부 날려가 버릴 것만 같이 통쾌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저 개미 굴 속에서 개미떼들과 더불어 아웅다웅 이익을 다투고 손해를 따지느라 바둥거렸나 생각하니 그만 그들이 불쌍하고 가소로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어떨까? 그 아슬아슬한 산비탈을 낑낑대며 기어, 바위를 돌고 덩쿨을 더위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마치 구름 속의 신선이나 된 듯 아래를 굽어보는 내 모습을 보고, 그들은 마치 이 한 마리가 머리카락을 타고 오르듯 우습고 같잖게 볼 것이 아닌가? 올라가본들 다시 내려올 것을 뭐하자고 저렇게 제 몸을 괴롭힌단 말인가 하고 가소로워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개미로 보기나, 저들이 나를 머리카락에 붙은 이로 보기나 서로를 하찮게 여기기는 매 일반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드니, 제 것만 좋고 남의 것이 우습게 보인다. 모든 문제는 언제나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321

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3. 넓게 읽되 요약해야 하고 번뜩 깨우쳐야 한다

4.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재

4-1. 총평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