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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물을 잊은 물고기 -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본문

책/한문(漢文)

물을 잊은 물고기 -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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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이제 큰 소리로 스스로를 비유하여 사슴이라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다시금 형체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보는 바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려 한다면, 그대나 나나 모두 망녕될 뿐이리이다. 사슴이 과연 파리보다야 크겠지만, 코끼리가 있지 않습니까? 파리가 과연 사슴보다야 작겠지만 만약 개미로 본다면 코끼리의 사슴에 있어서와 한 가지일 겝니다.

今乃大言自况曰麋, 何其愚也? 宜其見笑於大方之家也. 若復較其形之大小, 辨所見之遠近, 足下與僕, 皆妄也. 麋果大於蠅矣, 不有象乎? 蠅果小於麋矣, 若視諸蟻, 則象之於麋矣.

연암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제 내가 스스로 사슴이라 비유한데 대해, 그대가 크기로 따져서 자신을 파리에 비교한다면 이 또한 산꼭대기의 사람과 산 아래 사람이 서로를 비웃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사슴이 파리보다야 엄청나게 크겠지요. 그렇지만 코끼리는 어떻습니까? 파리가 작기는 해도 개미보다는 훨씬 크니, 코끼리와 사슴의 차이에다 견줄 수 있을 겝니다. 이제 내가 다시 스스로를 개미에 견준다면 그대는 장차 어찌 하시렵니까?

 

 

이제 저 코끼리는 서면 집채만 하고, 가면 비바람 휘몰아치는 듯 하며, 귀는 드리운 구름같고, 눈은 초승달만합니다. 발가락 사이에 낀 진흙은 흙더미가 언덕과 같아 개미가 그 속에 집을 짓지요. 개미가 비가 오나 싶어 줄지어 나와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코끼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보는 바의 것이 멀기 때문일 뿐입니다. 코끼리가 한쪽 눈을 찡그리고 보아도 개미를 못보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보는 바의 것이 가까운 까닭일 뿐입니다. 만약 조금 큰 안목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금 백리 먼데로부터 바라보게 한다면 아마득하고 가물가물해서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을 겝니다. 어찌 이른바 사슴과 파리, 개미와 코끼리를 족히 분간해낼 수 있겠습니까?

今夫象立如室屋, 行若風雨, 耳若垂雲, 眼如初月, 趾間有泥, 墳若邱壟, 蟻穴其中. 占雨出陣, 瞋雙眼而不見象, 何也? 所見者遠故耳. 象矉一目而不見蟻, 此無他. 所見者近故耳. 若使稍大眼目者, 復自百里之遠而望之, 則窅窅玄玄, 都無所見矣. 安有所謂麋蠅蟻象之足辨哉.

!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작은 개미와 가장 큰 코끼리를 가지고 말씀드리지요. 코끼리의 집채 만한 몸집이 한 번 어슬렁거릴제면 마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듯 하고, 그 큰 귀를 한 번 뒤채면 구름이 드리운 것만 같고, 몸집에 비해 작기만 한 눈도 초승달 만하게 보이겠지요. 개미는 그 코끼리의 발가락 사이에 낀 흙덩어리 속에 집을 짓고 삽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면 비라도 오려나 싶어 개미떼가 줄을 지어 내다 보는 것이지만, 암만 봐도 제가 부치어 사는 코끼리는 안중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코끼리가 너무 크고, 제 눈에서 아득히 멀기 때문이지요. 보이지 않기는 코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은 개미가 너무 작은데다, 제 눈에서 너무 가까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너무 큰 것과 너무 작은 것, 아주 먼 것과 아주 가까운 것은 결국 한가지인 셈입니다. 개미에게는 코끼리가 안중에 없고, 코끼리 또한 개미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만이 그 중간에 서서 이것은 저것보다 얼마나 크니, 저것은 이것보다 얼마나 작으니 하며 따지길 좋아합니다. 조금 크면 그 앞에서 그만 주눅이 들고, 조금 작다 싶으면 만만이 보아 업수이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설령 아주 먼데를 볼 수 있는 큰 안목을 갖춘 사람이 있다 해도 백리 먼 곳에서 본다면 그 큰 코끼리가 보이겠습니까? 그 작은 개미가 보이겠습니까? 제 아무리 뛰어난 시력을 갖추었어도 백리 밖에서는 아무 것도 분간해 낼 수가 없을겝니다. 그러니 이제 내가 스스로 사슴에 견준 것을 두고 자신을 파리에 견주어, 이것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증거로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렇다! 우리의 눈이란 종시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우리의 귀만 해도 그렇다. 조금 큰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때로는 고막이 터질까봐 귀를 막으면서도, 그보다 더 큰 우주의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 것이다.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에 예민한 신경이 화들짝 놀라 무더운 잠을 깨기도 하지만, 개미가 제 먹이를 통째로 우걱우걱 씹어대는 그 큰 소리는 하나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디부터가 작은 소리고 어디까지가 큰 소리인가? 무엇이 작은 것이고, 무엇이 큰 것인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세계가 있고, 천체 망원경으로만 볼 수 있는 아득한 세계도 있다. 그 미세하고 광대한 세계 속에서 유독 인간만이 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이것은 크니 저것은 작으니 하면서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 따지고 잰다. 내가 직접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이렇듯 믿을 수 없을진대, 그 눈과 귀를 믿고 따라서 움직이는 마음이란 것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황지우가 살찐 소파에 앉아서 하루 종일 격조 있게 혼자 놀다가, “수족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얼굴에/ 횡으로 도열한 수마트라 두 마리, 열대어 화석처럼 박혀 들어왔을 때/ 나는 내가 담겨 있는 공기족관空氣族館을 느꼈다”(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고 한 것도 아마 이런 종류의 깨달음이었으리라. 수족관 속의 물고기가 답답하기나, 공기족관 속의 내가 안스럽기나 결국은 그게 그거라는 거다. 사람이 물고기를 불쌍해할 하등의 자격이 없다는 거다. 그는 조금 씁쓸하게 말을 했지만, 결국은 개미가 코끼리를 안중에 두지 않고 살 듯 그렇게 저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거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고정의 가치는 없다.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유동하는 가운데 있다. 놓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진다. 꼭 이래야만 한다고 우기지 말아라. 이것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라. 여룡은 제 여의주를 가지고 말똥구리의 말똥을 웃지 않는다. 말똥구리는 제 말똥을 소중히 알아 여룡의 여의주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말똥구리에게는 말똥만이 소중할 뿐인데, 그것을 하찮고 더럽게 여기는 것은 오직 우리 가련한 공기족空氣族들 뿐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321

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3. 넓게 읽되 요약해야 하고 번뜩 깨우쳐야 한다

4.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재

4-1. 총평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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