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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연암을 읽는다 - 4. ‘주영염수재’라는 집의 기문 본문

책/한문(漢文)

연암을 읽는다 - 4. ‘주영염수재’라는 집의 기문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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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규모의 집에 있을 건 다 있다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각주:1]는 양군梁君 인수仁叟[각주:2]의 초당草堂이다.
이 집은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 검푸른 절벽 아래에 있으며 기둥이 여덟 개인데, 깊숙한 안쪽을 막아서 심방深房[각주:3] 만들고, 격자창格子窓을 통하게 하여 탁 트인 대청을 만들었다. 높다랗게 다락을 만들고 아담하게 곁방을 둔 데다 대나무 난간을 두르고 이엉으로 지붕을 덮었으며 오른쪽엔 둥근창을 내고 왼쪽엔 빗살창을 내었으니, 집의 몸체는 비록 작아도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어 겨울에는 환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집 뒤에는 배나무 십여 그루가 있고, 대나무 사립문 안팎으론 모두 오래된 살구나무와 붉은 과실이 열리는 복사나무다. 개울 머리에 흰 돌을 두어 맑은 물이 돌에 부딪쳐 세차게 흐르게 했고 멀리 있는 물을 섬돌 아래까지 끌어와 네모난 연못을 만들었다.
晝永簾垂齋, 梁君仁叟草堂也. 齋在古松蒼壁之下, 凡八楹, 隔其奧, 爲深房; 踈其欞, 爲暢軒. 高而爲層樓, 穩而爲夾室, 周以竹欄, 覆以茅茨, 右圓牖, 左交窓. 軆微事備, 冬明夏陰. 齋後有雪梨十餘株, 竹扉內外, 皆古杏緋桃. 白石鋪前, 淸流激激, 引遠泉入階下, 爲方池.

이 단락은 주영염수재라는 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누구의 집인지를 밝히고, 그 다음 집의 규모가 어떠한지를 서술했으며, 끝으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집 주변의 풍경이 어떠한지를 묘사했다.

 

주영염주재는 양군 인수의 초당이다이처럼 이 글은 단도직입적으로 그 서두를 열고 있다. 어떤 에두르는 말 없이 곧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하는 형국이다. 이어서 조곤조곤 집 내부를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집의 심방에서 시작해 대청, 다락, 곁방, 대나무로 만든 난간, 초가지붕, 둥근창, 빗살창을 두루 구경하게 된다. 그래서 비록 작은 초당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아담하고 그윽한 집임을 알게 된다.

 

집에 대한 서술이 끝나면 집 주변의 경관이 소개된다. 집 뒤편으론 배나무 십여 그루가 심겨 있고,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안팎으론 오래된 살구나무와 발그레한 복숭아가 열리는 복사나무가 심겨 있다. 그리고 근처의 개울에 흰 돌을 두어 일부러 물소리를 크게 나게 만들어 사는 곳이 더욱 깊고 그윽하게 느껴지며, 섬돌 곁에는 연못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과실나무와 시냇물과 연못은 초당과 알맞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드럽고 고즈넉한 자연 경관으로 인해 초당은 더욱 그윽하며, 또한 규모 있게 지어진 초당으로 인해 자연 경관은 더욱 운치가 있게 되었다.

 

이 자연 경관에 대한 묘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색채감이다. 연암은 이 점을 대단히 의식하면서 이 대목을 서술하고 있다. 가령 배나무의 원문은 설리雪梨인데 이 말은 새하얀 색을 연상하게 하며, 또한 붉은 과실이 열리는 복사나무(緋桃)라든가, 흰 돌(白石)이라든가 하는 말에서도 뚜렷한 색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이 단락은 주영염수재라는 집과 그 집 주변의 경관에 대한 객관적 묘사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만 읽어 가지고서는 이 단락에 내재된 숨은 의미까지 읽은 것이라곤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연암이 이 단락의 심층에 부여하고 있는 숨은 의미는 무얼까? 두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 집의 규모다. 비록 아담한 집이기는 하나 이 집은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으며, 게다가 창은 멋을 부려 둥근창과 빗살창을 좌우에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둥근창의 원문은 원유圓牖인데, 문틀을 둥글게 짜서 만든 창으로 상당히 멋을 부린 것이며, 빗살창의 원문은 교창交窓인데, 이는 일명 횡창橫窓이라고도 하는바 살을 어긋나게 맞추어 촘촘하게 짠 창으로 문틀이 가로로 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 집은 산중에 은거한 가난한 선비의 집은 아니며, 지조나 절개를 강조하는 고사高士나 일민逸民의 집도 아니다.

다른 하나는, 제시된 나무들이다. 이 글에서 제시된 나무들은 모두 온화한 이미지의 나무들이며, 소나무, 잣나무, 매화나무 등과 같이 굳세거나 강건하거나 단아하거나 고고한 이미지를 풍기는 나무들은 아니다. 연암은 이 두 가지 점을 통해 은근히 이 집 주인의 성격, 취향, 경제력 따위를 암시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 단락은 표면적으로는 집주인의 성격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그에 대한 복선을 깔아 놓고 있다.

 

 

겸재 정선의 '탕제제시' 

 

 

  1.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 긴 낮 동안 주렴(=발)이 드리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도학자인 소강절邵康節의 「늦은 봄을 읊다(暮春吟)」라는 시에 “봄 깊어 긴 낮에 주렴을 드리웠네(春深晝永簾垂地)”라는 구절이 있는바, 여기서 따온 말이다. 이 시는 자연을 읊고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은자의 생활을 읊은 시이다. [본문으로]
  2. 인수仁叟: 개성 사람 양현교梁顯敎의 자다. 「죽오라는 집의 기문」에 나오는 양호맹과 재종간이다. [본문으로]
  3. 심방深房: 깊숙이 안에 있는 방을 말하며, ‘곁방’은 안방에 딸린 방을 말한다. [본문으로]

 

 

2. 개성 지식인의 하릴없음

 

 

양군은 성품이 게으르고, 깊은 곳에 거처하길 좋아하는데, 권태로워지면 문득 주렴을 내리고, 오피궤烏皮几[각주:1] 하나, 거문고 하나, 하나, 향로 하나, 술병 하나, 다관茶罐[각주:2] 하나, 고서화古書畵 두루마리 하나, 바둑판 하나가 있는 사이에 벌렁 눕는다.
梁君性懶而好深居, 倦至輒下簾, 頹然臥乎烏几一琴一劒一香爐一酒壺一茶竈一古書畵軸一碁局一之間.
 
매양 자다 일어나 주렴을 걷고 해가 어디쯤 걸렸는지를 보는데, 섬돌 위로 나무 그늘이 언뜻 옮겨가고 울타리 아래 한낮의 닭이 처음 운다. 그러면 안석에 기대어 검을 살피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 몇 곡조를 타 보기도 하고, 한 잔 술을 조금씩 마시기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혹은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며, 혹은 서화를 펼쳐 보고, 혹은 옛 기보棋譜[각주:3]에 따라 바둑돌을 놓는데, 몇 판을 두다가 그만두면 하품이 밀물처럼 쏟아지고 눈꺼풀이 구름처럼 무거워져 다시 벌렁 눕는다.
每睡起, 揭簾看日早晏, 則階上樹陰乍轉, 籬下午鷄初唱矣. 於是乎據几看劒, 或弄琴數引, 細吸一盃, 以自暢懷. 或點香烹茗, 或展觀書畵, 或棋按古譜, 擺列數局已焉, 久來如納潮, 睫重若垂雲, 復頹然而臥.
 
객이 찾아와 문에 들어오면 주렴이 조용히 드리워져 있고 낙화가 뜰에 가득하며 풍경風磬[각주:4]이 절로 운다. “인수! 인수!”하고 서너 번 주인의 자를 부른 후에야 양군은 일어나 앉아 다시 나무 그늘과 처마 그림자를 보는데, 해는 아직도 서산에 걸려 있다.
客至入門, 則簾垂寂然, 落花滿庭, 簷鐸自鳴. 字呼主人三四聲, 然後起坐, 復觀樹陰簷影, 則日猶未西矣.

이 단락에 와서 비로소 집주인이 등장한다.

집주인은 몹시 게으른 사람이다. 그는 권태로워지면 방에 벌렁 드러눕고, 자다가 일어나면 해가 어디쯤 걸렸나 하고 살핀다. 유감스럽게도 해는 아직 중천에 있다. 그는 하릴없는 섬돌 위로 나무 그늘이 옮겨 가는 모습이며 한낮에 우는 닭 울음소리 따위에 마음을 쏟는다. 하지만 그것도 곧 싫증이 난다. 그러면 이제 방에 잔뜩 늘어놓은 기물들, 이를테면 거문고라든가 검이라든가 향로라든가 다관이라든가 고서화라든가 바둑판이라든가 이런 걸 가지고 소일을 한다. 검을 들고 와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이리저리 살피다가 그게 싫증이 나면 이번엔 거문고를 몇 곡조 타 보기도 하고, 술을 한 잔 따라 홀짝홀짝 마셔 보기도 하고, 좋은 향을 피워 놓고 가만히 차를 마셔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무료해진다. 그래서 이번엔 기보를 봐 가며 혼자 바둑을 두어 본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권태가 엄습하면서 하품이 나고 졸음이 쏟아진다. 이제 다시 벌렁 드러누워 잔다. 이때 객이 찾아와 주인을 찾는다. 꿈결에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앉아 다시 나무 그늘과 처마 그림자를 보는데, 아직도 저놈의 해는 지지 않고 서산에 걸려 있다.

 

이처럼 이 단락은 집주인의 무료한 삶, 하릴없음을 곡진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얼핏 보아 집주인은 세속을 벗어나 산중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고인高人ㆍ일사逸士처럼 보인다. 그가 거처하는 방 안에는 온갖 고상하고 아취 있는 기물들이 갖추어져 있다. 갖추어짐1에서 집은 작지만 있을 것은 다 갖추어져 있다라고 한 말과 서로 호응한다. 그가 보여주는 이런 취미는 이른바 골동ㆍ예술 취향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런 취향은 특히 18세기 서울의 사대부들에게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개성은 서울과 가까운 곳이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들의 예술 취향이 개성으로까지 확대되어 간 것일 터이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1. 오피궤烏皮几: 검은 염소 가죽으로 싼 작은 궤석几席(=안석)을 말한다. 몸을 기대는 데 사용했다. [본문으로]
  2. 다관茶罐: 찻주전자, 즉 찻물을 끓이는 그릇을 말한다. [본문으로]
  3. 기보棋譜: 바둑 두는 법에 대해 기술해 놓은 책이다. [본문으로]
  4. 풍경風磬: 처마 끝에 매다는 작은 종을 말한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려 정취 있는 소리를 낸다. [본문으로]

 

 

3. 조선의 사대부, 개인 취향에 빠지다

 

 

중국지식인들 밀실로 들어가다

 

그런데 18세기 조선 사대부들이 보여주는 이런 취향의 문화적 진원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명말明末에 이런 취향이 대대적으로 성행했으니, 당시 중국 사대부들은 정원을 그럴 듯하게 조성하여 그 속에 누각이나 서재를 지어 놓고 거기다 각종 고기古器나 고서화를 비치하여 수시로 감상했으며, 고급 향을 피우고 좋은 차를 마시면서 고상하고 운치 있는 생활을 추구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동시에 그들은 명리나 세속을 초월한 깨끗하고 담박한 정신세계를 강조했다.

 

이런 태도나 취향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내면세계와 감수성을 확장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으로서의 사대부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다시 말해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고 생각해야 하는 사대부 본연의 책무와 덕목을 방기하거나 소홀히 하게 만든 측면도 없지 않다.

 

그 결과 명말의 사대부들은 대체로 개인적인 신변잡사에 매몰되면서 퇴영적인 의식이나 공허한 문예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내면적 세계와 외면적 정치의식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균형을 상실해 버리고, 내면으로 달아나 버리고(혹은 침잠해 버리고) 만 것이다. 요컨대 광장을 버리고 밀실속으로 들어가 버린 셈이다.

 

 

 

환관의 발호, 양명학의 발생, 물질적 기반의 충족

 

명말의 중국 사대부들이 이런 성향을 보이게 된 이유는 그리 단순치 않지만,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특히 주목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이 시기 환관의 발호로 인해 사대부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양명학 등의 영향으로 인간 본연의 감정과 욕망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쪽으로 문학과 예술의 사조가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취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18세기 조선 사대부들은 어떻게 이런 물적 기반을 갖출 수 있었을까? 물론 조선 사대부 전체가 아니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근기近畿 지역의 일부 사대부들에 한정되는 현상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이런 취향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물적 기반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었는지는 역시 궁금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17세기 후반 이래 역관배譯官輩를 통한 대청對淸 무역을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대청 무역을 통해 수입된 중국 물건은 부산에 있는 왜관에서 네댓 배의 이문을 붙여 일본에 수출되었다. 그리고 그 대금은 은으로 결제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중개무역으로 조선은 큰 이익을 얻었고, 이렇게 얻어진 이익은 주로 서울과 근기 지역의 지배층 사대부와 중인층 수중에 떨어졌다.

이런 막대한 상업적 이익은 조선의 문화공간에서 두 가지 괄목할 만한 변화를 초래했다. 하나는 서적 및 서화골동을 수장收藏하고 완상하는 취향의 대두요, 다른 하나는 중인층의 소비적ㆍ향락적 문예 공간의 형성이다. 일본 막부가 18세기 중반 이후 정책을 바꿔 나가사키 항을 통해 중국과 직거래함으로써 이후 조선의 상업적 거품은 빠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18세기가 끝날 때까지 그 여파는 이어졌다.

 

 

  김홍도, 사인초상士人肖像. 

 

 

4. 양인수의 취미가 경화세족과 다른 점

 

 

사회적 출구가 닫혀 있는 양인수

 

주영염수재의 주인 양인수는 개성의 사족士族이다. 개성은 전 왕조인 고려의 수도인지라 조선 시대 내내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따라서 개성 사족은 비록 사족이라고는 하나 그 처지가 영남이나 기호畿湖[각주:1] 사족과는 지체가 달랐다. 그래서 인삼 밭을 경영하는 등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재理財 활동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삼은 대청 무역에서 우리 측이 중국에 가지고 간 물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양인수의 물적 기반, 그리고 그런 물적 기반으로 인해 가능했으리라 짐작되는 그 서화골동 취향은 일정하게 당대에 이루어진 대청 무역의 상업적 잉여와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기는 하나, 양인수의 서화골동 취향이나 일견 명리를 돌아보지 않는 듯한 한가로우며 탈속적인 생활 태도는,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서울의 명문가 집안)의 고답적이고 여유로운 예술 취향과는 내면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양자의 사회 정치적 조건의 차이에서 연유할 터이다. 경화 세족과 달리 양인수는 소외된 지역의 사족이다. 그는 비록 경제력은 있으되 사회적ㆍ정치적 출구는 닫혀 있었다. 이 점에서 그의 처지는 서얼이나 중인층의 사회적 처지보다 나을 게 없었다. 양인수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권태감, 그리고 그 하릴없어 함은 바로 이런 그의 사회적 처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락은 얼핏 보면 일사ㆍ고인의 한가롭고 유유자적하는 사람을 그려 놓은 것 같다. 하지만 양인수 일사ㆍ고인이 아니다. 그가 일사ㆍ고인이 아님은 이미 1에서 넌지시 시사된 바 있다. 더군다나 거문고ㆍ검ㆍ향로ㆍ술병 등 쭉 열거하고 있는 기물들 가운데 책이 들어 있어야 마땅한데 이상하게도 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고사처럼 보이지만 기실 고사는 아닌 것이다. 이처럼 양인수의 삶에는 어떤 심각한 균열, 내면과 외면의 심각한 분열이 존재한다. 양인수는 사회적 출구가 닫혀 있음으로 인해 무늬만 일사ㆍ고인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돈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실현할 사회적 출구가 닫혀 있을 때,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향락이나 유흥이 아니면 혹 양인수처럼 예술 취향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기에 실로 무료하고 권태롭다.

 

 

 

글을 통해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드러내는 방법

 

끝으로, 표현미에 대해 몇 군데 살펴보자. 연암은 기물을 나열하면서 무엇 하나 무엇 하나라는 식()으로 하나라는 말을 무려 여덟 번이나 되풀이해 사용하고 있다(烏几一琴一劒一香爐一酒壺一茶竈一古書畵軸一碁局一). 이 말은 사물의 구체성을 부각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동시에 이 단락 전체가 풍기는 권태로움의 뉘앙스를 증폭하는 데 언어미학적으로 일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나라는 말을 똑같이 몇 번이고 되풀이함으로써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이 단락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획되는데, 그 첫 번째 부분과 둘째 부분이 똑같이 벌렁 눕는다는 말로 종결된다. ‘벌렁이라는 말의 원문은 퇴연頹然이다. ‘퇴연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물이 무너지는 모양을 형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양인수가 권태로운 나머지 자기 몸도 못 가눈 채 벌렁 쓰러져 잠드는 광경을 약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만하다.

 

 

  심사정, 유선도船遊圖.   

 

 

  1. 畿湖: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대와 황해도 남부 및 충청남도 북부를 포함한 지역 [본문으로]

 

 

5. 총평

 

 

1

이 글은 개성인 양인수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연암의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당대 개성인의 내면 초상을 접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1에서는 집을 그리고 있고, 2에서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풍경과 사람은 서로 잘 부합된다. 흡사 산수화 속의 점경인물點景人物처럼, 그 풍경에 그 인물이다. 이 집 이름이 왜 주영염수재인지는 글 어디에도 언급이 없지만, 사실은 글 전체를 통해 그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연암이 지어준 게 아닐까 싶은 이 집 이름은 하릴없는 양인수의 처지와 기분, 그 일상을 잘 집약해 놓고 있다고 여겨진다.

 

 

3

연암은 그 스스로도 평생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이기에 양인수와 같이 자신의 능력을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나 사회적 비주류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특히 잘 포착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양인수는 연암이 홍국영을 피해 연암협에 은거할 무렵 알게 된 사람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절 연암 스스로도 정말 하릴없음에 몸서리쳤을 터이다. 하릴없는 사람이 하릴없는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일종의 자기 연민이랄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글에는 연암의 기분이 얼마간 투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용

지도 / 목차 / 작가 /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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