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筑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 보면 아무도 없고, 게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입니다.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嘗讀其心耳. 何也? 讀項羽, 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股半跽, 後脚斜翹, 丫指以前, 手猶然疑, 蝶則去矣. 四顧無人, 哦然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 |
「답경지答京之」의 세 번째 편지이다. 아마 경지가 보내온 먼저번 편지에 이런 사연이 있었던 듯하다. “요즘 사마천의 『사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항우본기」을 읽노라면 제후들이 항우의 용맹에 얼이 빠져 감히 함께 나가 싸울 생각도 못하고 성벽 위에 붙어 서서 그 싸우는 모습을 넋 놓고 구경하던 장면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이수易水 강가에서 자객 형가荊軻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나면서, ‘가을바람 쓸쓸하고 이수는 찬데, 장사는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나니’ 하고 노래를 부를 때 그 곁에서 축을 타던 고점리의 그 비장한 연주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사마천의 문장 솜씨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군요.”
그러자 연암은 대뜸 이렇게 지적하고 나선다. “그대가 『사기』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아직 읽지 못했구료. 『사기』를 읽고 단지 그 문장력에 감탄하여 손뼉을 치는 것은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하나 줏어들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숫가락 줏었다!’하고 외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사기』를 제대로 읽으려면 그 글 속에 담긴 사마천의 그 마음을 읽어야지요. 내가 하나의 비유로 들려드리리다. 어린아이가 꽃잎에 앉은 나비를 잡으려고 집게손을 조심조심 내밀며 숨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에 손가락을 뻗치지만 나비는 그만 손가락 끝에 허망한 감촉만을 남기고 날아가 버립니다. 아이는 게면쩍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누가 보았나 싶어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으므로, 그제야 멋쩍게 씩 웃습니다. 나는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도 꼭 이런 마음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 마음은 읽지 못하고 그저 그 문장력에 감탄만 하고 앉았다면 그대가 읽은 것은 사마천의 껍데기일 뿐입니다.”
「항우본기」와 「자객열전」, 결국 이들 실패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다던 항우는 왜 해하 싸움에서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끝에 제 손으로 제 목을 찌르고 말았을까? 자객 형가의 독 묻은 칼끝에 폭군 진시황이 죽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글을 쓸 때에 사마천의 마음속에서 휘돌아나가던 상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의는 왜 반드시 승리하지 못하는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작 붓을 떼고 나서도 사마천은 나비를 놓치고 만 소년의 안타까움을 지녔을 것이다. 나비를 잡으려는 아이의 간절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이 역사 앞에 선 그의 마음이었다면, 눈앞에서 나비를 놓쳐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나는 것은 어느 한 순간 뜻하지 않게 역사가 제 궤도를 벗어나 빗겨갈 때에 느끼는 좌절감과 무력감이었으리라. 과연 역사의 신은 있는가? 역사 속에 정의의 힘은 존재하는가?
우리가 사마천과 만나는 것은 그의 문장기교나 표현 역량으로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으로 통하게 하는 사다리일 뿐이다. 그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에만 감탄하는 것은 『사기』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에 현혹되지 말아라. 나비를 놓친 소년의 그 마음을 읽어라. 진실은 글자 속에 있지 않다.
인용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4-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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