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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정리기 - 5. 소소한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본문

건빵/일상의 삶

2016년 정리기 - 5. 소소한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건방진방랑자 2020. 2. 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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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소한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2015년에 흥행했던 킹스맨이란 영화에서 명대사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Manners make the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이란 대사를 꼽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이 대사만 읽어보면 언뜻 매너의 품격같이 매너를 다룬 영화인 줄 착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저 흔하디흔한 치고 박고 때려 부수는 할리우드식 액션영화일 뿐이다. 멀쑥하게 슈트를 차려 입은 중년 남성이 위와 같은 대사를 날린 후 자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들을 첨단 무기와 날렵한 싸움기술로 혼꾸녕을 내주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 결코 아니지만, 이 장면에선 되게 의미심장하고 무섭게 들린다.   

 

 

 

사람을 만드는 무엇에 대하여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문장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당신이라면 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장에서 에 어떤 말을 채워 넣을까? 당연히 이런 식의 질문에 정답이란 없으니, 각자가 생각한 대로 빈칸을 채워 넣으면 된다. 바로 그 는 자신이 최근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이라 할 수 있다.

나처럼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번에 교육을 채워 넣을 것이다. 교육의 최전선에 서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 셈이다. 물론 교육만능주의처럼 교육만 받으면 완벽하게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 사람이 변하기까진 한 교사의 능력이 아닌, 수많은 교사들의 능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학생도 적극적으로 변하려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치다 타츠루는 아예 교사단敎師團(교사는 혼자가 아닌 집단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충분히 공감되는 얘기다.

이렇게 이상적인 단어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를 채우라고 하면, 아무래도 능력이나 과 같은 단어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만큼 사람에게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것들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빈칸에 들어갈 말은 다양할 것이다. 그때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자신의 역량이자 크기라 할 수 있다.   

 

 

 

신나게 글쓰기 위해 지구에 왔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에 무얼 채워 넣을 것인가? 겨우 이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나 힘들게 돌고 돌아왔다. 언젠가 무슨 TV프로에서 당신은 왜 지구에 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박진영에게 던지자, 그는 조금도 뜸을 들이지 않고 나는 지구에 춤추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질문은 난데없고, 황당하며, 포괄적이어서 누구든 듣는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설령 입을 떼게 될지라도 중언부언하며 장광설을 펼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박진영은 그 질문에 아주 간단명료하게,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치가 적절하게 드러나는 대답을 한 것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처럼 누군가 나에게 박진영에게 던진 질문을 던진다면, 나도 단번에 신나게 글쓰기 위해 지구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글쓰기를 통해 나는 조금 더 사람다워졌고, 조금 더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사회를 조금 더 알게 됐기 때문이다.

 

 

춤추러 왔다는 박진영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단순명료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보통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일처럼 여겨지곤 한다. 일류의 역사에서 글자라는 것은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글을 안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으며, 더욱이 자유자재로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런 풍조는 2000년대에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와 같은 글쓰기 플랫폼이 들어서면서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장문의 글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이러하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된 계기들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멋들어지지 않다. 그저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9년에 한 달 동안 걸었던 여행의 경우 친구의 ~ 하고 싶으면 그냥 한 번 해봐라는 말이 방아쇠가 되어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해야지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그 한 마디는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무작정 길로 나서게 만들었다. 이런 예들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이방인이란 소설에선 이방인을 총으로 죽인 이유에 대해 햇살이 뜨거워서라고 재판정에서 말하며, 홍권의 군이란 영화에선 학교에 지각한 이유에 대해 햇빛이 너무 좋아서 햇볕을 쬐다가 학교 오는 걸 까먹었어요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이렇듯 별일 아닌 소소한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게 하고,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을 하게 만든다. 계획은 늘 어그러지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 인생은 완벽한 통제 하에 예측한 대로, 생각한 대로 흘러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에 하나의 줄거리로 짜 맞춰진 것에 불과하다.

 

 

학습발표회 때 [홍권의군]에 대해 발표하는 승빈이의 모습. 어떤 일들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일어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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