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 부자 같은 목가산
목가산기(木假山記)
소순(蘇洵)
山谷云: “往嘗觀明允「木假山記」, 以爲文章氣, 自似莊周ㆍ韓非.”
○ 迂齋云: “首尾不過四百以下字. 而起伏開闔, 有無限曲折, 此老可謂妙於文字者矣. 其終, 盖以三峰, 比其父子三人云.”
산속 나무의 다행과 불행
木之生或蘖而殤, 或拱而夭. 幸而至於任爲棟樑則伐, 不幸而爲風之所拔, 水之所漂, 或破折或腐. 幸而得不破折不腐, 則爲人之所材, 而有斧斤之患. 其最幸者, 漂沈汨沒於湍沙之間, 不知其幾百年, 而其激射齧食之餘, 或髣髴於山者, 則爲好事者取去, 强之以爲山. 然後可以脫泥沙而遠斧斤. 而荒江之濱, 如此者幾何, 不爲好事者所見. 而爲樵夫野人所薪者, 何可勝數. 則其最幸者之中, 又有不幸者焉.
우리 집의 목가산
予家有三峰, 予每思之, 則疑其有數存乎其間. 且其蘖而不殤, 拱而不夭. 任爲棟樑而不伐, 風拔水漂而不破折不腐. 不破折不腐. 而不爲人所材以及於斧斤. 出於湍沙之間而不爲樵夫野人之所薪而後, 得至乎此, 則其理似不偶然也.
세 봉우리 모두 위엄이 있다
然予之愛之, 則非徒愛其似山. 而又有所感焉. 非徒感之. 而又有所敬焉. 予見中峰, 魁岸踞肆, 意氣端重, 若有以服其旁之二峰. 二峰者 莊栗刻削, 凜乎不可犯, 雖其勢服於中峰, 而岌然決無阿附意. 吁其可敬也夫, 其可以有所感也夫.
해석
山谷云: “往嘗觀明允「木假山記」,
산곡이 말했다. “옛날에 일찍이 명윤 소순의 「목가산기」를 보니,
문장의 기운이 절로 장주와 한비자와 유사했다.”
○ 迂齋云: “首尾不過四百以下字.
우재가 말했다. “처음과 끝은 400자 이하에 불과하다.
而起伏開闔, 有無限曲折,
그러나 문의(文義)를 일으키고 누르며 열고 닫는 것이 무한히 꺾여 있으니,
此老可謂妙於文字者矣.
이 노인은 문자에 오묘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其終, 盖以三峰, 比其父子三人云.”
마무리는 대체로 세 봉우리로 부자 3인을 비유했다.”
산속 나무의 다행과 불행
木之生或蘖而殤,
나무가 자랄 때 혹 싹이 나서 죽거나
或拱而夭.
혹은 한 손아귀에 들어올 정도로 조금 자라 요절하기도 한다.
幸而至於任爲棟樑則伐,
다행히 동량을 맡을 수 있는 데에 이르면 베여지게 되고
不幸而爲風之所拔, 水之所漂,
불행히 바람에 뽑히거나 물에 표류하여
或破折或腐.
혹은 쪼개지고 혹은 부패하기도 한다.
幸而得不破折不腐,
다행히 쪼개지지 않고 부패하지 않으면
則爲人之所材, 而有斧斤之患.
사람이 재목이라 여겨 도끼로 베이는 근심이 있다.
其最幸者, 漂沈汨沒於湍沙之間,
그러니 최고로 다행스러운 경우는 여울과 모래톱 사이에서 잠겼지만
不知其幾百年,
몇 백 년인지를 알지 못하고,
而其激射齧食之餘, 或髣髴於山者,
세찬 물에 부딪혀 파먹은 나머지가 혹 산과 엇비슷해지면
則爲好事者取去, 强之以爲山.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취하여 가서 억지로 산이라 생각하는 경우다.
然後可以脫泥沙而遠斧斤.
그런 뒤에야 진흙과 모래에서 벗어나고 도끼로 베이는 데서 멀어진다.
而荒江之濱, 如此者幾何,
그러니 큰 강가에 이러한 나무가 몇 개나 되며,
不爲好事者所見.
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고
而爲樵夫野人所薪者, 何可勝數.
나무꾼과 촌사람의 땔감이 되는 것을 어찌 이루 다 세겠는가?
則其最幸者之中, 又有不幸者焉.
그렇다면 가장 다행인 중에도 또한 불행이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의 목가산
予家有三峰, 予每思之,
우리 집에 세 봉우리가 있으니 나는 매일 그것을 생각하면
則疑其有數存乎其間.
운수가 그 사이에 있는 듯했다.
且其蘖而不殤, 拱而不夭.
또한 싹이 나서 죽지 않았고 한 손아귀에 들어올 정도인데도 요절하지 않았다.
任爲棟樑而不伐,
동량을 맡을 수 있음에도 베여지지 않고
風拔水漂而不破折不腐.
바람이 뽑고 물이 떠다니게 했으나, 쪼개지지 않고 부패하지 않았다.
不破折不腐. 而不爲人所材以及於斧斤.
쪼개지지 않고 부패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재목으로 여겨 도끼로 베임에 미치지 않았다.
出於湍沙之間而不爲樵夫野人之所薪而後,
여울과 모래톱 사이에 나와 나무꾼과 촌사람에게 땔감으로 여겨지지 않은 후에
得至乎此, 則其理似不偶然也.
여기에 이를 수 있었으니, 그 이치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세 봉우리 모두 위엄이 있다
然予之愛之, 則非徒愛其似山.
그러나 내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은 다만 산과 같아 아끼는 것이 아니고,
而又有所感焉.
또한 느낀 것이 있어서다.
非徒感之. 而又有所敬焉.
다만 느낀 것이 아니고 또한 공경한 것이 있어서다.
予見中峰, 魁岸踞肆,
내가 보니 가운데 봉우리는 큰 언덕에 얹어 있어,
意氣端重, 若有以服其旁之二峰.
의기가 단정하고 무게감이 있어 마치 그 곁의 두 봉우리가 복종하는 것 같았다.
二峰者 莊栗刻削, 凜乎不可犯,
두 봉우리는 장중하고 엄하며 깎아질러 늠름하여 범접할 수 없으니,
雖其勢服於中峰,
비록 형세는 가운데 봉우리에 복종하더라도
而岌然決無阿附意.
우뚝하게 결단코 아부하려는 뜻은 없었다.
吁其可敬也夫, 其可以有所感也夫.
아! 공경할 만하구나. 느낀 것이 있을 만하구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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