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정석치 제문 -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본문

책/한문(漢文)

정석치 제문 -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0. 4. 18. 08:27
728x90
반응형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이제 끝으로, 연암이 정석치의 제문을 왜 그리도 파격적으로 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 하나는, 제문의 대상 인물인 석치 자체가 몹시 파격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제문의 대상 인물이 음전하고 순순한 인간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석치는 방달불기放達不羈(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고 예법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 태도)한 인간 타입이었다. 박제가가 그를 청동 술잔으로 3백 잔을 마신 술꾼이어라(靑銅三百酒人乎)”라고 읊었듯이, 그는 당대의 주호酒豪였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연암이 처해 있었던 상황과 그 심경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에서 말했듯 연암은 이 시기에 매우 울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2년 전 연암협에 은거할 때로 소급된다. 당시 홍국영이 권력을 잡자 사람들은 그에게 아부하면서 연암을 마구 비방하였다. 과정록에서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당시 아버지를 비방하는 소리가 세상에 가득하였다. 대개 평소부터 질투하고 시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세가에 아첨하여 따라 떠드는 자도 있었으며, 또 옛날의 친분을 꺼림칙하게 여겨 비방하는 자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이러쿵저러쿵 입을 쉬지 않고 놀리며 아버지를 헐뜯었다. -130

時先君訿謗溢世. 蓋有素所嫉媢者, 又有諂口隨唱者, 又有遠嫌宿契者, 喙喙不已, 哆若南箕.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홍국영이 제거되고 나서도 연암은 퍽 소조蕭條하게 지내며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속에서 연암과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사람은, 적어도 연암 동급의 인물로는 홍대용과 정철조 두 사람밖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특히 정철조는 기질적으로 연암과 잘 통했던바, 실학의 동지로서, 술친구로서, 각별한 관계에 있었다. 이런 그가 죽었으니 연암으로서는 꼭 자신의 절반을 잃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절망적이고, 참담하기 그지없으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 현실을 대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 제문이 그 형식에서든 문체나 어조에서든 파격 중의 파격을 보이게 된 데에는 이처럼 당시 연암의 처지와 심경, 연암과 석치와의 특별한 관계가 작용한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파격적인 제문

2. 일상 속 빈자리를 통해 너의 부재를 확인하다

3. 자유분방하게 감정을 토로하다

4. 천문학ㆍ수학ㆍ지리학 등 학문에 뛰어났던 그대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6. 머리로 아는 죽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죽음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9.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친구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1. 파격적인 제문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

12. 총평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