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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4. 놀이하는 인간, 잡체시의 세계 - 2. 바로 읽고 돌려 읽고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4. 놀이하는 인간, 잡체시의 세계 - 2. 바로 읽고 돌려 읽고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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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로 읽고 돌려 읽고

 

 

청나라 때 북경에 천연거(天然居)’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건륭황제가 이것을 제목으로 하여 시를 짓게 하였다.

 

客上天然居 居然天上客 나그네 천연거에 올라가더니 느긋히 천상의 객이 되었네.

 

두 구절의 글자 배열을 보면 둘째 구는 첫 구를 뒤집어 읽은 것이다. 말하자면 바로 읽고 거꾸로 읽어 두 구를 만들었다. 그러자 기효람(紀曉嵐)이 이렇게 받았다.

 

人過大佛寺 寺佛大過人 사람이 큰 절간을 지나가는데 절의 부처 사람보다 훨씬 크더라.

 

역시 첫 구를 거꾸로 하여 둘째 구로 얹은 것이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

 

雁飛平頂山 山頂平飛雁 기러기 평정산을 날아가는데 산꼭대기 기러기 떼 가지런하네.

 

花香滿園亭 亭園滿香花 꽃이 만원정에 향기로우니 정원이 꽃 향기로 가득하구나.

 

위의 구절들 또한 앞서와 같은 원리로 이루어졌다. 한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재미있는 구절들이다.

 

한시 가운데 회문체라는 것이 있는데, 내리 읽으나 치읽으나 의미가 통하는 형식의 시체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평측이나 압운이 흐트러져서는 안 되므로 그 제한이 몹시 까다롭다. 보통 회문체는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배열하여 바로 읽거나 거꾸로 읽거나 모두 자연스레 의미가 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밖에도 특별히 바둑판처럼 시문을 배열한다든지 중앙으로부터 선회하여 읽는다든지, 순환 반복하여 읽어야 의미가 통한다던지 하는 것도 있다.

 

 

먼저 기본 형태의 회문시를 한 수 읽어보자.

 

腸斷啼鶯春 落花紅蔟地 꾀꼬리 우는 봄날 애끊는 마음 진 꽃은 온 땅을 붉게 덮었네.
香衾曉枕孤 玉臉雙流淚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해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네.
郎信薄如雲 妾情搖似水 님의 약속 믿음 없기 뜬구름인 듯 제 마음은 일렁이는 강물 같네요.
長日度與誰 皺却愁眉翠 긴 날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근심 겨워 찡그린 상 물리쳐 볼까.

 

이규보(李奎報)미인원(美人怨)이란 작품이다. 창밖에는 이른 새벽부터 꾀꼬리가 울고, 방안 이불 속에는 이른 아침부터 두 뺨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누워 있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뒤숭숭한 꿈에서 막 깨어났는데, 그녀의 잠을 깨운 것은 꾀꼬리의 울음소리였다. 설레이는 마음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간밤 비에 떨어진 꽃잎이 마당을 붉게 덮었다. 떨어진 꽃잎은 그녀로 하여금 불길한 예감과 함께 하염없는 이별의 슬픔에 잠겨들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뜬 구름 같은 님의 약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번연히 안 오실 것을 알면서도 강물처럼 출렁대는 기다림으로 그녀는 하루하루를 지탱해 간다. 새벽부터 그녀는 또 이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다. 진 꽃을 바라보는 상심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을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고 노래했던 영랑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翠眉愁却皺 誰與度日長 눈썹은 근심 겨워 찌푸려 있어 뉘와 함께 긴 날을 지내어 볼까.
水似搖情妾 雲如薄信郞 강물은 내 마음인 양 넘실거리고 구름은 믿음 없는 님 마음 같네.
淚流雙臉玉 孤枕曉衾香 두 뺨에 옥 같은 눈물 흐르고 외론 베개 새벽 이불 향기롭구나.
地蔟紅花落 春鶯啼斷腸 땅에 가득 붉은 꽃이 떨어지더니 봄 꾀꼬리 애 끊을 듯 울어대누나.

 

이번엔 앞서의 시를 거꾸로 읽어 보자. 즉 앞 시의 첫 자가 끝 자가 되고, 끝 자가 첫 자가 되도록 뒤집어 읽으면 위와 같이 된다. 그녀는 근심 속에 인상을 쓰고 있는데, 긴 날을 함께 보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꼭 그녀의 마음인 듯 하고,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신의 없는 님의 약속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새벽녘 외로운 베개를 적시고 있다. 창밖에선 그녀의 시드는 청춘을 조상하듯 분분히 꽃잎이 지고, 꾀꼬리도 가는 봄이 아쉬워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운자를 앞뒤로 맞춰야 하고, 의미도 거꾸로 읽을 때를 대비해야 하나 제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상이 전개가 자연스럽고, 앞뒤로 읽어 어느 것 하나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없다.

 

 

회문시 중에는 글자를 하나씩 밀려서 읽어도 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차 주전자에 흔히 써넣는 다호시(茶壺詩)이다. ‘가이청심야(可以淸心也)’라는 다섯 글자가 써 있는데, 이를 한 글자씩 밀면서 읽으면 이렇게 된다.

 

可以淸心也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있고
以淸心也可 맑은 마음으로 마셔도 좋다.
淸心也可以 맑은 마음으로도 괜찮으니
心也可以淸 마음도 맑아질 수가 있고
也可以淸心 또한 마음을 맑게 해준다.

 

둥근 차 주전자에 돌려가며 쓴 글이니 사실 어느 글자로부터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 글자부터 읽더라도 뜻이 통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자자회문시(字字廻文詩)’라고 한다.

 

 

 

 

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문시는 제()ㆍ량()에서 시작되었으니 대개 문자의 유희일 뿐이다. 옛날 두도(竇滔)의 아내 소혜(蘇惠)가 비단을 짠 뒤에도 그 법이 오히려 남아 있어, 송 삼현(三賢)이 또한 모두 뛰어났다. 대저 회문시란 바로 읽어도 순조롭고 쉬우며, 거꾸로 읽더라도 뻑뻑하거나 껄끄러운 태가 없이 말과 뜻이 모두 묘한 뒤라야 좋다고 할 수 있다.

回文詩起, 盖文字中戱耳. 竇稻妻織錦之後, 杼袖猶存, 而宋三賢亦皆工焉.

夫回文者, 順讀則和易, 而逆讀之亦無聲牙艱澁之態, 語意俱妙, 然後謂之工.

 

 

여기서 이인로(李仁老)가 말한 소혜의 직금이란 회문선기도직금(回文璇璣圖織錦)’이 본래 이름인데, 하늘의 별자리 문양인 선기도안(璇璣圖案) 위에 가로 세로 각 29자 씩 841자를 바둑판처럼 수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841자를 수놓은 것을 돌려 읽거나 가로 세로로 읽거나 대각선으로 읽거나 건너 뛰어 읽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읽게 되면 무려 200여수의 아름다운 시를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역대로 이를 읽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 여러 편 제출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의 직금도가 널리 성행하였다. 개화기 때는 아예 소약란직금도(蘇若蘭織錦圖)란 제목의 딱지본 소설까지 나왔다. 이후로 이를 응용하거나 변용한 다양한 형태의 작금도가 선보였다. 몇 예를 보이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위의 두 그림은 필사본 고전소설 옥린몽(玉麟夢)에 나오는 삽화이고, 아래 두 그림은 규방미담(閨房美談)에 보인다. 이 작품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 수십 수에서 수백 수의 시를 조합해낼 수 있다. 직금(織錦)이라 한 것은 남편을 멀리 떠나보낸 아낙이 비단에 한 글자씩 수를 놓아 편지 대신에 부치곤 했던 전통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거북 모양으로 수놓은 직금도의 일종으로 당나라 때 변방의 장수였던 장규(張壄)의 아내가 지은 시이다.

 

 

鄕 離

還 已

早 是

敎 征 客 十 秋 强

天 子 願 對 鏡 那

獻 堪

形 龜 作 妝 理 重

繡 聞

腸 雁

砧 更 斷 幾 廻 修

調 尺

杵 拂 淚 霜 見 素

垂 先 練 製 爲 先

疊 衣

箱 裳

 

 

글자의 배열을 따라 선을 이으면 완연한 거북의 모양이 이루어진다. 남편 장규가 변방으로 떠난 지 10여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아내 후씨(侯氏)는 이 시를 수놓아 대궐에 가서 천자께 바쳤다. 이를 받아본 당 무종(武宗)은 그녀의 재주를 높이 사, 남편을 고향에 돌아오게 하였다. 아울러 비단 삼백필의 부상을 내렸다. 위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제일 위 글자로부터 오른편 시계방향으로 빙 돌면서 차례로 읽는다. 아래 원문과 위 거북이 형태를 비교해 보자.

 

睽離已是十秋强 우리 님과 헤어진지 10년도 넘어
對鏡那堪重理妝 거울 보며 화장함이 그 언제던가.
聞雁幾廻修尺素 기러기 울어 옐 제 편지 쓰기 몇 번이며
見霜先爲製衣裳 서리 지면 서둘러 님의 옷을 지었다오.
開箱疊練先垂淚 상자 열면 명주옷에 눈물이 먼저 지고
拂杵調砧更斷腸 방망이로 다듬이질 다시 애가 끊누나.
繡作龜形獻天子 거북 모양 수를 놓아 천자께 바치오니
願敎征客早還鄕 수자리 군사 일찍 돌아오게 해주옵소서.

 

직금도란 비단에 한 땀 한 땀 글자를 수놓아 이루는 것이므로, 자연히 여인네의 규정을 노래하는 것이 보편적 관습이 되었던 듯하다.

 

 

이제 그 한 예를 보기로 하자. 다음은 한나라 때 소백옥(蘇伯玉)의 아내가 멀리 촉 땅에 있는 남편을 그리며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쟁반 가운데 써서 보냈다는 반중시(盤中詩)이다.

 

이 시는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정 중앙의 ()’자에서 아래 ()’자로 내려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다시 그 다음 원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해 읽으면 다음과 같은 3자시가 된다.

 

山樹高 산엔 나무가 높이 솟았고
鳥鳴悲 새는 구슬피 울음 우누나.
泉水深 흐르는 샘물은 깊기도 한데
鯉魚肥 뛰노는 잉어는 살이 올랐네.
空倉雀 텅빈 창고에 사는 참새가
常苦飢 언제나 주림으로 괴로워 하듯,
吏人婦 벼슬살이 떠나간 이의 아내는
會夫稀 지아비 만나보기 정말 힘드네.
出門望 문을 나가 멀리를 바라보자니
見白衣 흰 옷 입은 사람이 멀리 뵈길래,
謂當是 바로 우리 님이야 소리쳤더니
而更非 가까이 와서 보니 다시 아닐세.
還入門 돌아와 문 닫고 들어서자니
中心悲 이 내 마음은 슬퍼만 지네.
北上堂 북으로 당() 위에 올라가서는
西入階 서편의 계단으로 들어온다오.
急機絞 서둘러 님께 보낼 비단을 짜니
灎聲催 북 소리 요란히 바쁜 소릴세.
長嘆息 길게 한숨 쉬며 탄식 하지만
當語誰 누구와 더불어 이야길 할까.
君有行 그대 마음 언제나 변치 않을 줄
妾念之 저는 그렇게 믿고 있지요.
出有日 나갈 제는 곧 오마 하시고서는
還無期 도리어 가마득히 기약도 없네.
結巾帶 수건과 띠를 묶고 지내며
長相思 길이 언제나 그리는 마음.
君忘妾 그대가 저를 잊으신다면
天知之 하늘이 가만 있지 않을거예요.
妾忘君 또 제가 그대를 잊는다 해도
罪當治 그 죄를 마땅히 받아야지요.
妾有行 제 마음 교교(躈躈)히 변치 않음은
宜知之 그대도 마땅히 아시겠지요.
黃者金 누런 것은 금이요
白者玉 흰 것은 옥.
高者山 높은 것은 산
下者谷 낮은 것은 골짜기.
姓爲蘇 님의 성은 소씨(蘇氏)
字伯玉 이름은 백옥(伯玉).
人才多 사람이 재주도 많이 지녔고
智謀足 속에 든 지혜와 꾀 충분하지요.
家居長安身在蜀 장안에 집 두고도 촉()에 가 있어
何惜馬蹄歸不數 말달려 자주 못옴 얼마나 애석하리.
羊肉千斤酒百斛 양고기 천근에다 술이 또 천 말
令君馬肥麥與粟 보리 콩을 먹여서 말은 살졌네.
今時人 지금 세상 사람들
智不足 지혜가 부족해서
與其書 이 편지 주어도
不能讀 능히 읽지 못하리.
當從中央周四角 마땅히 중앙에서 사방으로 돌도록.

 

단 석자 구로 자신의 남편을 향한 절절한 기다림을 표현해낸 솜씨도 절묘하려니와, 끝에 가서는 아예 이 시를 읽는 법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달았다.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한 예를 하나 더 읽어보자. 명나라 장조(張潮)가 엮은 해낭촌금(奚囊寸錦)에 실린 영기(令旗)란 작품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깃발 안에 49자가 적혀 있고, 정중앙의 ()’ 자만 검게 표시했다. 이 시를 읽는 방법은 좀 복잡하다. 중앙의 자에서 출발해서 아래로 내려와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7자씩 끊어 읽는다. 그리고 다음 구의 첫 자는 전 구의 끝 글자를 반으로 갈라서 따온다. 예를 들어 첫 구의 끝 글자 ()’에서 ()’을 취하고, 둘째 구의 끝 글자 ()’에서 ()’ 자를 취하는 방식이다. 퍼즐을 풀면 다음과 같다.

 

令出功成好勒銘 영 내리면 공 이루어 공 새기기 좋은데
金戈鐵馬靜瑽琤 쇠 창과 갑옷 말이 고요히 쟁글댄다
王侯仗此安邊檄 왕후께서 이를 기대 변방 격서 안돈하고
文武憑伊致太平 문무가 너를 빌려 태평을 이루도다
一面巧排龍虎勢 한 면으로 용호 형세 교묘히 물리치고
執宮分列斗牛横 궁을 지켜 두우진(斗牛陳)을 나누어 벌인다네
黃藍紅白仍兼綠 황색 남색 홍색 백색 녹색마저 아우르니
彔隊元戎總擅名 좋은 부대 무기들이 온통 이름 떨치누나

 

각 구절의 끝 글자와 다음 글자의 첫 글자를 보면 절반씩 갈라 꼬리따기 식으로 접속된다. 시의 내용은 군령기의 효용과 의미를 기렸다. 그림 자체를 설명한 셈이다. 단순한 화문에 다시 하나의 파자퍼즐을 보탠 난이도가 높은 형태다.

 

 

 

 

해낭촌금(奚囊寸錦)에 수록된 시 한 수 더 보자. 삼각형 안에 다시 삼각형을 넣은 모습이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 유석도(儒釋道)’ 세 글자를 넣었다. 제목은 함삼위일(函三爲一)읽는 법은 꼭대기 ()’에서 시작 한 바퀴 돌아 ()’에서 안쪽 삼각형을 돌아 처음 ()’에서 맺는다. 시를 읽으면 다음과 같다.

 

儒家萬券高於釋 유가의 만 권이 불가 보다 높으니
佛典咸通看道書 불전에 모두 통해 도서를 본다네
仙子丹藏券石內 신선의 단서 경전 석실 안에 간직되니
咸邀納子拜吾儒 납자를 다 맞이해 오유(吾儒)에서 절 올린다

 

세 개의 꼭지점에 나란했던 학문이 한 줄기로 회통하여 유학으로 일원화되는 과정을 내용뿐 아니라 읽는 순서를 통해서도 드러내 보였다.

 

 

 

 

이런 형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면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된다.

 

 

雨 冷

藏 雲 睄

山 望 紅

遠 花

水 流 春 老 吟 殘 蘂

窪 軟

東 鬪 含

隱 叉 香

荀 吐

 

 

중국의 이공시격(李公詩格)이란 책에 수록된 반복시(反覆詩)이다. 이 시를 읽는 법 또한 절묘하기 짝이 없다. 겉 마름모꼴은 모두 20자로 되어 있는데, 아무 글자 아무 방향으로 읽어도 시가 된다. 대개 5언절구 30수 가량을 얻을 수 있다. 또 가운데 십자가 모양에는 모두 13개의 글자가 있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읽어 7언절구 4수가 이루어진다. 그런가 하면 위에서 내려오다가 가운데 ()’자에서 왼편으로 혹은 오른편으로 읽던지, 왼편에서 읽어오다가 ()’에서 위로 또는 아래로 읽던지 하는 방법으로 다시 4수를 얻을 수 있다. 그밖에 전체 스물 아홉 자 가운데 임의로 한 글자를 취하여 좌우로 압운을 취해 5언 혹은 7, 또는 장단구로 읽어 다시 수십 수를 만들 수 있다. 희한한 문자유희이다.

 

지면상 마름모꼴 한 수만 읽어 본다.

 

冷睄紅花蘂 軟含香吐尖 서늘함 붉은 꽃 떨기에 서려 있고 부드러운 향기는 봉오리 끝에.
筍隱東窪水 遠山藏雨烟 죽순은 동쪽 물가에 숨어 자라고 먼 산은 비 안개를 감추고 있네.

 

현대까지도 이런 회문시는 창작된다. 중국의 주책종(周策縱)1962년 싱가포르를 여행한 뒤 그 소감을 담은 성도기유(星島紀遊)란 작품을 남겼다. 시의 원문은 스무 글자를 동그랗게 원형으로 써 놓았다. 이 시 또한 자자회문시이다.

 

 

荒渡斜舟繞亂沙白岸晴芳樹椰幽島艶華月淡星

 

 

작가는 아무 글자로 시작해도 괜찮고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좋다고 주를 달아 놓았다. 이밖에 한 글자나 두 글자, 세 글자 씩 건너 뛰어 읽거나, 7언 또는 장단구로 읽을 수도 있다. 일일이 소개하자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분량의 책이 한 권 될 터이므로 여기서는 몇 가지 용례만 제시키로 한다. 우선 시계 방향으로 읽어보자.

 

荒渡斜舟繞 亂沙白岸晴 황량한 나루엔 배가 비스듬 매어 있고 어지런 모래사장 흰 언덕 개었구나.
芳樹椰幽島 艶華月淡星 향기론 야자나무 그윽한 섬엔 아름다운 달빛과 희미한 별빛.

 

한 글자씩 밀려서 읽으면 순독(順讀)ㆍ도독(倒讀)으로 40수를 얻을 수 있다. 한 글자씩 건너뛰며 읽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해서 다시 수십 수의 시를 얻을 수 있다. 그 한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星月艶幽樹 淡華島椰芳 별빛 달빛 희미한 나무에 곱게 비치고 엷은 꽃 핀 섬에는 야자나무 향기롭네.
晴白亂舟渡 岸沙繞斜荒 맑은 날 나루엔 배가 어지럽고 언덕 모래는 들판을 비스듬히 둘러 있네.

 

이것을 다시 7언절구로 읽어 약 40수 가량의 작품을 얻을 수 있다.

 

渡荒星淡月華艶 빈 나루 별빛 맑고 달빛이 휘황하니
華艶島幽椰樹芳 꽃 고운 섬 고요하고 야자나무 향기롭네.
樹芳晴岸白沙亂 나무 향기 개인 언덕, 백사장은 어지럽고
沙亂繞舟斜渡荒 모래사장 배를 두른 저녁 나루 쓸쓸해라.

 

더욱이 위 시는 각 구의 처음과 끝이 꼬리따기 식으로 연결되어 있어 읽는 묘미를 더해준다. 이런 저런 여러가지 방법으로 읽어, 20 글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의 조합이 놀랍게도 각체를 망라하여 무려 1천수가 넘는다고 하니,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하다.

 

 

인용

목차

1. 글자로 쌓은 탑

2. 바로 읽고 돌려 읽고

3.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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