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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 9. 동문서답의 선시들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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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 9. 동문서답의 선시들④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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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문서답의 선시들

 

 

이렇듯 선시의 세계는 칼끝 같은 깨달음을 노래한다. 언어가 무력화되고 의미가 힘을 잃는다. 다시 정진규의 모기 친구를 읽어 본다.

 

 

진종일 뛰어 놀고서도 씻지 않으려 하기에 얼굴엔 온통 암괭이를 그리고서도 말을 듣지 않기에 지난 밤 모기에 물린 자리가 발갛게 부어 올랐기에 모기는 깨끗한 것보다는 더러운 걸 더 맛있어 한다고 겁을 주었더니, 그럼 모기에겐 깨끗한 것이 더러운 거고 더러운 것이 깨끗한 거네, 모기가 목욕을 해주었잖아! 더러운 걸 먹어버렸잖아! 난 모기 친구가 될 거야 그러곤 여섯 살짜리 내 상욱이는 깔깔깔 달아나버렸다.

 

 

깨끗하고 더럽다는 말의 의미가 한 순간에 증발해버리는 상쾌함이 있다. 내게 깨끗한 것이 남에겐 더럽고, 내가 더러워 못 견딜 것도 남에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한 번 바꾸면 모든 것이 시원스럽게 된다. 깔깔깔 웃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선시는 선승들의 전유물이란 생각은 큰 잘못이다. 선시는 하나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불교가 있기 전에도 선시는 있었고, 불교를 믿지 않아도 선시를 쓸 수 있다. 도연명(陶淵明)음주(飮酒)5를 읽어 본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사람 사는 마을에 집을 엮어도 수레와 말 떠들썩함 찾을 길 없네.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묻노라 그대 어이 그럴 수 있나 마음 멀면 땅은 절로 구석져지리.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캐다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 기운 저물녘 더욱더 곱고 나는 새 짝지어 돌아가누나.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이 가운데 참다운 뜻이 있으나 따지려다 어느새 말을 잊었네.

 

깊은 산속 인적 없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 부대끼며 사는 마을에 집을 지었다. 고관대작들의 수레소리 말소리의 시끄러움은 찾을 수가 없다. 누가 묻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살면서 어찌 세상일에 그리 초연할 수 있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마음을 멀리 하면 시정(市井) 속에 살아도 산림에 든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문제는 늘 마음에 있는데, 해법을 장소에서 찾으려 드니, 어딜 가나 지옥이요, 무얼 해도 감옥 속이 아니냐고.

 

동쪽 울타리 아래 심어둔 국화꽃을 캐다가 무심히 뒷짐 지고 남산을 바라본다. 석양빛을 받은 산 기운이 더욱 곱고, 저물녘의 잔영 속으로 새들은 둥지를 찾아 돌아간다. 걸릴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다. 순간 마음속에 아! 저거다 싶은 깨달음 하나가 불쑥 들어선다. 나는 따지려는 생각을 접고 말을 잊고 서 있다. 시인은 장자(莊子)가 말한 득의망언(得意忘言)의 경계를 맛본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선사들이 깨달음의 순간 시를 선택하는 이유

2. 학시와 학선의 원리

3. 학시와 학선의 원리

4. 학시와 학선의 원리

5. 학시와 학선의 원리

6. 동문서답의 선시들

7. 동문서답의 선시들

8. 동문서답의 선시들

9. 동문서답의 선시들

10. 동문서답의 선시들

11. 달마가 오지 않았는데도 도연명은 선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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