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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 7. 동문서답의 선시들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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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 7. 동문서답의 선시들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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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문서답의 선시들

 

 

의미가 도처에서 단절된 것은 현대시 속에도 있다. 이승훈의 를 읽는다.

 

 

캄캄한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를 만났을 때도 캄캄했다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났고 캄캄한 밤 허공에 글을 쓰며 살았다 오늘도 캄캄한 대낮 마당에 글을 쓰며 산다 아마 돌들이 읽으리라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나,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 글을 써왔다. 오늘은 캄캄한 대낮 마당에 글을 쓴다. 내 글은 돌들이 읽을 것이다. 역시 요령부득이다. 시인은 그리고라고 말해야 할 때 그러나를 말하고, ‘오늘은하지 않고 오늘도라고 말한다. ‘캄캄한 밤 허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캄캄한 대낮 마당으로 미끌어진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 쓴 글은 쓰나마나 한 글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만난 너는 만나나 마나한 존재다. 만나나 마나 한 존재를 위해 쓰나마나한 글을 쓰며 살았다. 무슨 말인가? 너는 누구인가? 왜 내가 쓴 글을 가 읽지 않고 돌들이 읽는가? 이런 언어 앞에 의미화의 노력은 대부분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너머에 무언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음은 이성선의 뿔을 물어뜯다이다.

 

 

진흙 묻은 소가

빗줄기 몇 가닥에 목을 씻고 지나간다

 

번개 짐승이

달려들어 소의 뿔을 물어뜯는다

 

깜깜한 지상

연꽃 피는 소리 들린다

 

 

진흙 묻은 소가 빗속을 지나가자 짐승 같은 번개가 소뿔을 물어뜯고, 그 서슬에 깜깜한 지상에선 연꽃이 핀다. 참 희한한 말이다. 동사만 연결해서, 지나가는데 물어뜯더니 소리 들린다로 읽으면, 각각의 이미지들이 얼마나 뚱딴지같이 결합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인이 세상이 이렇듯 보이지 않는 유기체적 질서 속에 배열되어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깜깜한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연꽃이 피어나는 그 소리만큼은 번개가 소뿔을 물어뜯듯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이런 것이 선시다.

 

그렇다고 선시가 늘 이렇게 반상합도(反常合道)의 넌센스만을 말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말 안 되는 내용을 담은 시만을 선시로 이해하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종종 초현실주의 시에 선시를 견주기도 하는데, 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은 언어의 일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점뿐이다. 진짜 선시는 말장난에 머물지 않는다. 때로 선시가 말장난의 외양을 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선사들이 깨달음의 순간 시를 선택하는 이유

2. 학시와 학선의 원리

3. 학시와 학선의 원리

4. 학시와 학선의 원리

5. 학시와 학선의 원리

6. 동문서답의 선시들

7. 동문서답의 선시들

8. 동문서답의 선시들

9. 동문서답의 선시들

10. 동문서답의 선시들

11. 달마가 오지 않았는데도 도연명은 선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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