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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벽부(前赤壁賦) - 解說. 우언을 본떴기에 정론이 되긴 어렵다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전적벽부(前赤壁賦) - 解說. 우언을 본떴기에 정론이 되긴 어렵다

건방진방랑자 2020. 5. 1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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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에 배 띄우고 그까짓 삶이라 외치다

전적벽부(前赤壁賦)

 

소식(蘇軾)

 

 

解說. 우언을 본떴기에 정론이 되긴 어렵다

 

陳靜觀, “二賦, 東坡黃州時作. 是時, 放情事外, 寄興風月, 直將無意於人世.

是故, 皆托仙以爲言, 前篇, 謂風月之常新, 吾亦樂之, 亦不必羨於仙; 後篇, 驚江山之忽異, 凜不可以久樂, 又復有羨於仙矣. 二篇大意 皆倣寓言之, 遠遊, 賦鵩, 未爲正論,

但其凌厲飄逸之言, 無一句類食烟火人語, 讀之, 令人亦覺有登閬風蓬萊氣象. 蓋眞可與造物遊者, 非可執筆學爲如此也.”

 

自書此賦後云, ‘黃州少西山麓, 斗入江中, 石色, 如丹. 傳云公敗處所謂赤壁者, 或曰非也. 公敗歸, 由華容路, 今赤壁少西對岸, 卽華容鎭, 庶幾是也. 岳州, 復有華容縣, 竟不知孰是.’

 

○ 『江夏辨疑: “江漢之間, 指赤壁者三. 一在漢水之側, 竟陵之東, 卽今復州; 一在齊安郡步下, 卽今黃州; 一在江夏西南二百里許, 今屬漢陽縣.”

予謂江夏西南者, 正曹公所敗之地也. 三國志, 劉琮, 走夏口, 自江陵征, 至赤壁, 戰不利. 周瑜傳, 進住夏口, , 幷力迎, 遇於赤壁. 自江陵下, 由夏口往逆, 則赤壁, 竟陵之東者與齊安步下者明矣.

 

 

 

 

 

 

해석

陳靜觀, “二賦, 東坡黃州時作.

진정관이 비평했다. “두 편의 부는 모두 동파가 황주에 귀양 갔을 때 지은 것이다.

 

是時, 放情事外, 寄興風月,

이때에 뜻을 일 밖에 놓고 흥을 풍월에 붙였으니

 

直將無意於人世.

다만 장차 인간 세상에 뜻을 없애려 했다.

 

是故, 皆托仙以爲言,

이런 이유로 모두 신선에 의탁하여 말했으니,

 

前篇, 謂風月之常新, 吾亦樂之,

전편에선 풍월이 항상 새로워 나 또한 즐거우니

 

亦不必羨於仙;

또한 반드시 신선을 부러워할 건 없다고 말했고,

 

後篇, 驚江山之忽異, 凜不可以久樂,

후편에선 강산이 갑자기 달라지는 게 놀라 두려워하며 오래 즐길 수 없으니

 

又復有羨於仙矣.

또한 다시 신선에 부러워할 게 있다.’고 말했다.

 

二篇大意 皆倣寓言之, 遠遊,

두 편의 큰 뜻은 모두 장자의 우언과 굴원의 원유부(遠遊賦)

 

賦鵩, 未爲正論,

가도의 붕조부(鵬鳥賦)를 본떴기에 정론이 될 수는 없다.

 

但其凌厲飄逸之言,

다만 허공을 박차 오르는 기상과 얽매이지 않는 말로

 

無一句類食烟火人語,

하나의 구절도 속세인食烟火: 익힌 음식을 먹다의 말과 유사한 게 없으니,

 

讀之, 令人亦覺有登閬風蓬萊氣象.

읽어보면 사람에게 또한 낭풍에 오르고 봉래산을 건너는 기상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蓋眞可與造物遊者,

아마도 참으로 조물주와 함께 노닐 수 있는 사람이니

 

非可執筆學爲如此也.”

붓을 잡고 배워도 이와 같이 지을 순 없다.”

 

 

自書此賦後云,

동파가 스스로 이 부 뒤에 썼다.

 

黃州少西山麓, 斗入江中, 石色, 如丹.

황주의 소서산 기슭이 강 가운데로 쏙 들어갔으니斗入: 산의 형세가 유난히 바다 쪽으로 깊숙하게 쑥 들어간 모양 바위색이 붉은 듯했다.

 

傳云公敗處所謂赤壁者, 或曰非也.

전해져 내려오길 조조가 패한 곳인 적벽강이라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한다.

 

公敗歸, 由華容路,

조조가 패전하여 복귀할 때 화용로를 따라갔는데

 

今赤壁少西對岸, 卽華容鎭, 庶幾是也.

지금 적벽 소서 건너편 언덕이 곧 화용진으로 아마도 이곳일 듯하다.

 

岳州, 復有華容縣, 竟不知孰是.’

그러나 악주에도 다시 화용현이 있으니 마침내 누가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 『江夏辨疑: “江漢之間, 指赤壁者三.

강하변의에서 말했다. “양자강과 한수의 사이에 적벽이라 지목받는 곳은 세 군데다.

 

一在漢水之側, 竟陵之東, 卽今復州;

한 군데는 한수 곁, 경릉의 동쪽에 있으니 곧 지금의 복주이고,

 

一在齊安郡步下, 卽今黃州;

한 군데는 제안군 보하현에 있으니 곧 지금의 황주이며,

 

一在江夏西南二百里許, 今屬漢陽縣.”

한 군데는 강하의 서남쪽 200리쯤에 있으니, 지금은 한양현에 속해 있다.”

 

予謂江夏西南者, 正曹公所敗之地也.

내가 생각하기론 강하의 서남쪽이 바로 조조가 패전한 곳이다.

 

三國志, 劉琮, 走夏口,

삼국지를 살펴보면 유종이 항복하자 유비는 하구로 달아났고

 

自江陵征, 至赤壁, 戰不利.

조조는 강릉에서부터 유비를 정벌하러 적벽에 왔지만 싸워 이기질 못했다.’라고 써 있고,

 

周瑜傳, 進住夏口, ,

주유전에서 말했다. ‘유비가 하구로 진주하자 손권은 주유를 보내

 

幷力迎, 遇於赤壁.

힘을 모아 조조를 맞아 적벽에서 조우했다.’

 

自江陵下, 由夏口往逆,

조조가 강릉으로부터 내려왔고 주유가 하구로부터 거슬러왔다면,

 

則赤壁, 竟陵之東者與齊安步下者明矣.

적벽은 경릉의 동쪽과 제안군 보하현이 아닌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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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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