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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 동심설(童心說)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이지 - 동심설(童心說)

건방진방랑자 2020. 3. 3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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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와 견문을 멀리하고 동심을 회복하라

동심설(童心說)

 

이지(李贄)

 

 

동심은 진심이다

龍洞山農敍西廂, 末語云: “知者勿謂我尙有童心可也.”

夫童心者, 眞心也. 若以童心爲不可, 是以眞心爲不可也. 夫童心者, 絶假純眞, 最初一念之本心也. 若失却童心, 便失却眞心; 失却眞心, 便失却眞人. 人而非眞, 全不復有初矣.

 

인위적인 노력이 동심을 잃게 한다

童子者, 人之初也; 童心者, 心之初也. 夫心之初, 曷可失也,

然童心胡然而遽失也? 盖方其始也, 有聞見從耳目而入, 而以爲主于其內而童心失; 其長也, 有道理從聞見而入, 而以爲主于其內而童心失.

其久也, 道理聞見日以益多, 則所知所覺日以益廣, 于是焉又知美名之可好也, 而務欲以揚之而童心失; 知不美之名之可醜也, 而務欲以掩之而童心失.

夫道理聞見, 皆自多讀書識義理而來也. 古之聖人, 曷嘗不讀書哉! 然縱不讀書, 童心固自在也, 縱多讀書, 亦以護此童心而使之勿失焉耳, 非若學者反以多讀書識義理而反障之也.

 

동심 없이 읽는 책은 헛되다

夫學者旣以多讀書識義理障其童心矣, 聖人又何用多著書立言以障學人爲耶?

童心旣障, 于是發而爲言語, 則言語不由衷; 見而爲政事, 則政事無根柢; 著而爲文辭, 則文辭不能達. 非內含以章美也, 非篤實生輝光也, 欲求一句有德之言, 卒不可得.

所以者何? 以童心旣障, 而以從外入者聞見道理爲之心也. 夫旣以聞見道理爲心矣, 則所言者皆聞見道理之言, 非童心自出之言也. 言雖工, 于我何與? 豈非以假人言假言, 而事假事, 文假文乎?

 

가짜 사람이 된 후엔 그의 언행에 가짜 사람이 기뻐한다

盖其人旣假, 則無所不假矣. 由是而以假言與假人言, 則假人喜; 以假事與假人道, 則假人喜; 以假文與假人談, 則假人喜. 無所不假, 則無所不喜. 滿場是假, 矮人何辯也? 然則雖有天下之至文, 其湮滅于假人而不盡見于後世者, 又豈少哉!

 

동심을 지닌다면 어느 시대, 어느 글에 구속될 게 없다

何也? 天下之至文, 未有不出于童心焉者也. 苟童心常存, 則道理不行, 聞見不立, 無時不文, 無人不文, 無一樣創制體格文字而非文者.

詩何必古選, 文何必先秦. 降而爲六朝, 變而爲近體, 又變而爲傳奇; 變則爲院本, 爲雜劇, 西廂曲, 水滸傳, 爲今之擧子業, 大賢言聖人之道皆古今至文, 不可得而時勢先後論也.

 

성인의 말조차 그 당시의 진심어린 말일 뿐

故吾因是而有感于童心者之自文也, 更說甚麽六經, 更說甚麽?

六經, 非其史官過爲褒崇之詞, 則其臣子極爲贊美之語. 又不然, 則其迂闊門徒, 懵懂弟子, 記憶師說, 有頭無尾, 得後遺前, 隨其所見, 筆之於書. 後學不察, 便謂出自聖人之口也, 決定目之爲經矣, 孰知其大半非聖人之言乎?

縱出自聖人, 要亦有爲而發, 不過因病發藥, 隨時處方, 以求此一等懵懂弟子, 迂闊門徒云耳. 藥醫假病, 方難定執, 是豈可遽以爲萬世之至論乎?

然則六經, 乃道學之口實, 假人之淵藪, 斷斷乎其不可以語於童心之言明矣.

嗚呼! 吾又安得眞正大聖人童心未曾失者, 而與之一言文哉!

 

 

 

 

 

 

해석

 

동심은 진심이다

 

龍洞山農敍西廂, 末語云:

용동산농(龍洞山農)서상(西廂)을 서술하며 말미에 썼다.

 

知者勿謂我尙有童心可也.”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오히려 동심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게 가하리라.”

 

夫童心者, 眞心也.

대체로 동심이라는 것은 진심인 것이다.

 

若以童心爲不可, 是以眞心爲不可也.

만약 동심이 불가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심이 불가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夫童心者, 絶假純眞, 最初一念之本心也.

대체로 동심이라는 것은 거짓을 끊어낸 순전하고 참된 것으로 처음 한결같은 생각의 본심이다.

 

若失却童心, 便失却眞心;

만약 동심을 잃거나 버린다면 곧 진심을 잃거나 버리는 것이고

 

失却眞心, 便失却眞人.

진심을 잃거나 버리는 것이라면 곧 진인(眞人, 참 인간)을 잃거나 버리는 것이다.

 

人而非眞, 全不復有初矣.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온전히 처음의 한결같은 본심을 회복할 길이 없어진다.

 

 

 

인위적인 노력이 동심을 잃게 한다

 

童子者, 人之初也;

어린이란 사람의 처음이고

 

童心者, 心之初也.

동심이란 마음의 처음이다.

 

夫心之初, 曷可失也,

대체로 마음의 처음을 어찌 잃을 수 있겠는가?

 

然童心胡然而遽失也?

그러나 동심이 어찌 그러하듯이 갑자기 잃게 되는 것이겠는가?

 

盖方其始也, 有聞見從耳目而入,

일반적으로 곧 처음에 듣고 보는 것이 있어 귀와 눈으로부터 들어와

 

而以爲主于其內而童心失;

내면을 주관하게 되면서 동심이 상실되는 것이다.

 

其長也, 有道理從聞見而入,

성장하며 도리가 있고 듣고 보는 것을 따라 들어와

 

而以爲主于其內而童心失.

내면을 주관하게 되면서 동심이 상실되는 것이다.

 

其久也, 道理聞見日以益多,

오래되면 도리와 듣고 보는 날마다 더욱 많아지면

 

則所知所覺日以益廣, 于是焉又知美名之可好也,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 날마다 더욱 넓어져서 이에 또한 아름다운 명성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而務欲以揚之而童心失;

힘써서 명성을 드날리려하기에 동심이 상실되고

 

知不美之名之可醜也, 而務欲以掩之而童心失.

아름답지 않은 명성이 밉다는 것을 알게 되어 힘써서 그것을 가리려 하기에 동심이 상실된다.

 

夫道理聞見, 皆自多讀書識義理而來也.

대체로 도리와 견문은 모두 스스로 독서를 많이 하고 의리를 아는 것으로부터 온다.

 

古之聖人, 曷嘗不讀書哉!

옛적의 성인이 어찌 일찍이 독서하지 않았겠는가?

 

然縱不讀書, 童心固自在也,

그러나 가령 독서하지 않더라도 동심은 진실로 스스로 있는 것이고

 

縱多讀書, 亦以護此童心而使之勿失焉耳,

가령 독서를 많이 했더라도 또한 이 동심을 보호하여 잃지 말도록 할 뿐이니

 

非若學者反以多讀書識義理而反障之也.

배운 사람이 도리어 독서를 많이 하고 의리를 알면서도 도리어 동심을 막아버린 것보단 낫다.

 

 

 

동심 없이 읽는 책은 헛되다

 

夫學者旣以多讀書識義理障其童心矣,

대체로 배우는 사람은 이미 독서를 많이 하고 의리를 아는 것으로 동심을 막아버리니,

 

聖人又何用多著書立言以障學人爲耶?

성인은 또한 어찌 책을 많이 저술하고 말을 많이 하여 배우는 사람을 막으려 하였겠는가?

 

童心旣障, 于是發而爲言語, 則言語不由衷;

동심이 이미 막히면 이에 발설하여 말을 하더라도 말은 속마음의 진심을 담아내지 못하고

 

見而爲政事, 則政事無根柢;

드러나 정치를 하면 정치는 뿌리가 없게 되며

 

著而爲文辭, 則文辭不能達.

저술하여 문사가 되면 문사는 도달할 수 없게 된다.

 

非內含以章美也, 非篤實生輝光也,

그러니 내면으로 머금어도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못하고 독실하여도 빛남이 반짝이지 않으며

 

欲求一句有德之言, 卒不可得.

한 구절의 덕스런 말을 구하려 해도 마침내 얻을 수가 없다.

 

所以者何?

그러한 까닭은 무엇인가?

 

以童心旣障, 而以從外入者聞見道理爲之心也.

동심이 이미 막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견문과 도리로 자기의 마음을 삼았기 때문이다.

 

夫旣以聞見道理爲心矣,

대체로 이미 견문과 도리로 마음을 삼으면

 

則所言者皆聞見道理之言, 非童心自出之言也.

말하는 것이 모두 견문과 도리에 따른 말이지 동심이 스스로 나오는 말은 아닌 것이다.

 

言雖工, 于我何與?

그 말이 비록 달변이어도 내가 무슨 관여를 하겠는가?

 

豈非以假人言假言, 而事假事, 文假文乎?

어찌 가짜 사람이 가짜 말을 말하고 가짜 일을 일하며 가짜 문장을 짓는 게 아니겠는가?

 

 

 

가짜 사람이 된 후엔 그의 언행에 가짜 사람이 기뻐한다

 

盖其人旣假, 則無所不假矣.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이미 가짜가 되면 가짜가 아닌 게 없다.

 

由是而以假言與假人言, 則假人喜;

이로 말미암아 가짜 말로 가짜 사람과 말하면 가짜 사람이 기뻐하고

 

以假事與假人道, 則假人喜;

가짜 일로 가짜 사람과 말하면 가짜 사람이 기뻐하며

 

以假文與假人談, 則假人喜.

가짜 문장으로 가짜 사람과 담소하면 가짜 사람이 기뻐한다.

 

無所不假, 則無所不喜.

가짜가 아닌 게 없으면 기뻐하지 않을 게 없는 것이다.

 

滿場是假, 矮人何辯也?

온 장소가 가짜이니 인식이 왜소한 사람이 어찌 분별하겠는가?

 

然則雖有天下之至文,

그렇다면 비록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 있더라도

 

其湮滅于假人而不盡見于後世者, 又豈少哉!

가짜 사람에게 인멸되어져 후세에 모두 드러나지 못한 것이 또한 어찌 적겠는가?

 

 

 

동심을 지닌다면 어느 시대, 어느 글에 구속될 게 없다

 

何也?

왜일까?

 

天下之至文, 未有不出于童心焉者也.

천하의 지극한 문장은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게 없기 때문이다.

 

苟童心常存, 則道理不行, 聞見不立,

만약 동심이 항상 보존된다면 도리는 행해질 필요가 없고 견문이 설 필요도 없으며

 

無時不文, 無人不文,

때로 문장이 아닌 게 없고 사람이 문장이 아닌 게 없으니

 

無一樣創制體格文字而非文者.

한결같은 모양으로 체격과 문자를 만들어도 문장이 아닌 게 없을 것이다.

 

詩何必古選, 文何必先秦.

시는 어찌하여 옛날의 선집만을 기필하고 문장은 어찌하여 선진만을 기필하겠는가?

 

降而爲六朝, 變而爲近體, 又變而爲傳奇;

시대가 흘러 육조가 되고 변하여 근체시가 되었으며 또한 변하여 전기가 되었다.

 

變則爲院本, 爲雜劇,

변화하면 원본이 되고 잡극이 되며

 

西廂曲, 水滸傳, 爲今之擧子業,

서상곡도 되고 수호전(水滸傳)도 되고, 지금의 과거 시험도 되니

 

大賢言聖人之道皆古今至文,

크나큰 현인들이 성인의 도를 말한 것이 모두 고금의 지극한 문장으로

 

不可得而時勢先後論也.

시기와 세태의 빠르고 늦음만으로 논의할 순 없다.

 

 

 

성인의 말조차 그 당시의 진심어린 말일 뿐

 

故吾因是而有感于童心者之自文也,

그런 까닭은 나는 이를 따라 동심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문장이 됨에 느낌이 있었으니

 

更說甚麽六經, 更說甚麽?

다시 무슨 육경을 말하며 다시 무슨 논어(論語)맹자(孟子)를 말하리오?

 

六經, 非其史官過爲褒崇之詞,

대체로 육경과 논어(論語)맹자(孟子)는 역사관료가 지나치게 높인 말이 아니라면

 

則其臣子極爲贊美之語.

신하와 자식이 지극히 찬미한 말일 것이다.

 

又不然, 則其迂闊門徒,

또한 그렇지 않다면 우활한 문도들과

 

懵懂弟子, 記憶師說,

흐리멍덩한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기억한 것으로

 

有頭無尾, 得後遺前,

처음만 있고 끝은 없으며 후편은 얻었지만 전편은 잃어

 

隨其所見, 筆之於書.

본 것에 따라 책에 써놓은 것이리라.

 

後學不察, 便謂出自聖人之口也,

후학들이 살피지 않고서 곧 성인의 입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말하여

 

決定目之爲經矣, 孰知其大半非聖人之言乎?

결정하고 지목하여 경전으로 삼았으니 누가 태반이 성인의 말이 아닌 줄 알겠는가?

 

縱出自聖人, 要亦有爲而發,

가령 성인으로부터 나왔다 해도 요컨대 또한 행동한 것에 따라 발설했고

 

不過因病發藥, 隨時處方,

병통에 따라 약을 내준 것이고 때에 따라 처방을 처리한 것으로

 

以求此一等懵懂弟子, 迂闊門徒云耳.

이러한 부류의 흐리멍덩한 제자들과 우활한 문도를 구하려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藥醫假病, 方難定執,

약으로 가짜 병을 치료하고 처방으로 정해진 아집을 논란한 것이니,

 

是豈可遽以爲萬世之至論乎?

이것이 어찌 갑자기 만세의 지극한 논의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然則六經, 乃道學之口實, 假人之淵藪,

그렇다면 육경과 논어맹자는 바로 도학의 구실이고 가짜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니

 

斷斷乎其不可以語於童心之言明矣.

단연코 동심의 말을 말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嗚呼! 吾又安得眞正大聖人童心未曾失者,

! 내가 또한 어찌 진정 큰 성인과 동심을 잃지 않은 사람을 만나

 

而與之一言文哉!

그와 함께 문장을 말해볼거나?

 

 

 

 

 

 

인용

목차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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