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禹貢)
上之所取를 謂之賦요 下之所供을 謂之貢이라 是篇은 有貢有賦로되 而獨以貢名篇者는 孟子曰 夏后氏는 五十而貢하니 貢者는 較數歲之中하여 以爲常이라하시니 則貢又夏后氏田賦之總名이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제1장(第一章)
禹敷土하시고 隨山刊木하사 奠高山大川하시다
敷는 分也니 分別土地하여 以爲九州也라 奠은 定也니 定高山大川하여 以別州境也니 若兗之濟河, 靑之海岱, 揚之淮海, 雍之黑水西河, 荊之荊衡, 徐之海岱淮, 豫之荊河, 梁之華陽黑水가 是也라 方洪水橫流하여 不辨區域일새 禹分九州之地하여 隨山之勢하여 相其便宜하여 斬木通道以治之하시고 又定其山之高者와 與其川之大者하여 以爲之紀綱하시니 此三者는 禹治水之要라 故作書者首述之하니라
○ 曾氏曰 禹別九州는 非用其私智요 天文地理에 區域各定이라 故星土之法은 則有九野하고 而在地者는 必有高山大川이 爲之限隔하여 風氣爲之不通하니 民生其間에 亦各異俗이라 故禹因高山大川之所限者하여 別爲九州하고 又定其山之高峻과 水之深大者하여 爲其州之鎭하고 秩其祭而使其國主之也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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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第二章)
冀州라
冀州는 帝都之地라 三面距河하니 兗河之西요 雍河之東이요 豫河之北이니 周禮職方에 河內曰冀州 是也라 八州에 皆言疆界로되 而冀不言者는 以餘州所至로 可見일새라 鼂氏曰 亦所以尊京師니 示王者無外之意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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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第三章)
旣載壺口하사
經始治之를 謂之載라 壺口는 山名이니 漢地志에 在河東郡北屈縣東南이라하니 今隰州吉鄕縣也라
○ 今按旣載云者는 冀州는 帝都之地니 禹受命治水所始에 在所當先이라 經始壺口等處하여 以殺(쇄)河勢라 故로 曰旣載라 然이나 禹治水施功之序는 則皆自下流始라 故로 次兗次靑次徐次揚次荊次豫次梁次雍이니 兗最下라 故로 所先이요 雍最高라 故로 獨後라 禹言予決九川하며 距四海하며 濬畎澮하여 距川이라하시니 卽其用工之本末이라 先決九川之水하여 以距海면 則水之大者有所歸요 又濬畎澮하여 以距川이면 則水之小者有所泄이니 皆自下流로 以疏殺其勢라 讀禹貢之書하고 求禹功之序인댄 當於此詳之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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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第四章)
治梁及岐하시며
梁岐는 皆冀州山이라 梁山은 呂梁山也니 在今石州離石縣東北하니라 爾雅云 梁山은 晉望이라하니 卽冀州呂梁也라 呂不韋曰 龍門未闢하고 呂梁未鑿에 河出孟門之上이라하고 又春秋에 梁山崩이라하여늘 左氏穀梁이 皆以爲晉山이라하니 則亦指呂梁矣라 酈道元謂 呂梁之石이 崇竦하여 河流激盪하여 震動天地라하니 此는 禹旣事壺口하고 乃卽治梁也라 岐山은 在今汾州介休縣하니 狐岐之山으로 勝水所出이니 東北流하여 注于汾이라 酈道元云 後魏於胡岐에 置六壁하고 防離石諸胡하여 因爲大鎭이라하니 今六壁城은 在勝水之側하니 實古河逕之險촰이라 二山은 河水所經이니 治之는 所以開河道也라 先儒以爲雍州梁岐者는 非是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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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第五章)
旣修太原하사 至于岳陽하시며
修는 因鯀之功而修之也라 廣平曰原이니 今河東路太原府也라 岳은 太岳也라 周職方에 冀州其山鎭曰霍山이라하고 地志에 謂 霍太山은 卽太岳이니 在河東郡彘縣東이라하니 今晉州霍邑也라 山南曰陽이니 卽今岳陽縣地也니 堯之所都라 揚子雲冀州箴曰 岳陽是都라하니 是也라 蓋汾水는 出於太原하여 經於太岳하여 東入于河하니 此則導汾水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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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第六章)
覃懷에 底績하사 至于衡(횡)漳하시다
覃懷는 地名이니 地志에 河內郡에 有懷縣이라하니 今懷州也라 曾氏曰 覃懷는 平地也니 當在孟津之東, 太行之西하니 淶水出乎其西하고 淇水出乎其東이라 方洪水懷山襄陵之時하여 而平地致功爲難이라 故로 曰底績이라 衡漳은 水名이니 衡은 古橫字라 地志에 漳水二니 一은 出上黨沾縣大黽谷이라하니 今平定軍樂平縣少山也니 名爲淸漳이요 一은 出上黨長子縣鹿谷山이라하니 今潞州長子縣發鳩山也니 名爲濁漳이라 酈道元은 謂之衡水라하고 又謂之橫水라하니 東至鄴하여 合淸漳하고 東北至阜城하여 入北河라 鄴은 今潞州涉縣也요 阜城은 今定遠軍東光縣也라
○ 又按桑欽云 二漳異源而下流相合하여 同歸于海라하고 唐人亦言漳水能獨達于海하니 請以爲瀆이라하여 而不云入河者는 蓋禹之導河에 自洚(강)水大陸으로 至碣石入于海하여 本隨西山下東北去라 周定王五年에 河徙砱礫하니 則漸遷而東이로되 漢初에 漳猶入河러니 其後에 河徙日東하여 而取漳水益遠이라 至欽時하여 河自大伾而下가 已非故道하여 而漳自入海矣라 故로 欽與唐人所言者如此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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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第七章)
厥土는 惟白壤이요
漢孔氏曰 無塊曰壤이라하고 顔氏曰 柔土曰壤이라 夏氏曰 周官大司 徒辨十有二壤之物하여 而知其種하여 以敎稼穡樹藝하고 以土均之法으로 辨五物九等하여 制天下之地征이라하니 則夫敎民樹藝와 與因地制貢은 固不可不先於辨土也라 然이나 辨土之宜有二하니 白은 以辨其色이요 壤은 以辨其性也라 蓋草人糞壤之法에 騂剛用牛하고 赤緹用羊하고 墳壤用쭾하고 渴澤用鹿하니 糞治田疇에 各因色性하여 而辨其所當用也라 曾氏曰 冀州之土 豈皆白壤이리오마는 云然者는 土會之法이 從其多者論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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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第八章)
厥賦는 惟上에 上이니 錯하며 厥田은 惟中에 中이니라
賦는 田所出穀米兵車之類라 錯은 雜也니 賦第一等而錯出第二等也라 田第五等也니 賦高於田四等者는 地廣而人稠也라 林氏曰 冀州先賦後田者는 冀는 王畿之地니 天子所自治라 倂與場圃園田漆林之類而征之니 如周官載師所載賦非盡出於田也라 故로 以賦屬于厥土之下요 餘州는 皆田之賦也라 故로 先田而後賦하니라 又按 九州九等之賦는 皆每州歲入總數를 以九州多寡相較하여 而爲九等이요 非以是等田而責其出是等賦也라 冀獨不言貢篚者는 冀는 天子封內之地라 無所事於貢篚也일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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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第九章)
恒衛旣從하며 大陸旣作하니라
恒衛는 二水名이라 恒水는 地志에 出常山郡上曲陽縣恒山北谷이라하니 在今定州曲陽縣西北恒山也니 東入滱水라 薛氏曰 東流合滱水하여 至瀛州高陽縣하여 入易水라하고 鼂氏曰 今之恒水는 西南流하여 至眞定府行唐縣하여 東流入于滋水하고 又南流入于衡水라하니 非古逕矣라 衛水는 地志에 出常山郡靈壽縣東北이라하니 卽今眞定府靈壽縣也니 東入滹沱河라 薛氏曰 東北合滹沱河하여 過信安軍하여 入易水라 從은 從其道也라 大陸은 孫炎曰 鉅鹿北廣阿澤이니 河所經也라하고 程氏曰 鉅鹿은 去古河絶遠하니 河未嘗逕邢以行하니 鉅鹿之廣阿는 非是라하니라 按爾雅컨대 高平曰陸이라하니 大陸云者는 四無山阜하여 曠然平地라 蓋禹河自澶相以北으로 皆行西山之麓이라 故로 班馬王橫이 皆謂載之高地하니 則古河之在貝冀以及枯洚之南히 率皆穿西山踵趾以行이라가 及其已過信洚之北하여는 則西山勢斷하여 曠然四平일새 蓋以此地로 謂之大陸하니 乃與下文北至大陸者合이라 故로 隋改趙之昭慶하여 以爲大陸縣하고 唐又割鹿城하여 置陸渾縣하니 皆疑鉅鹿之大陸이 不與河應하여 而亦求之向北之地하니 杜佑李吉甫以爲邢趙深三州爲大陸者得之라 作者는 言可耕治니 水患旣息에 而平地之廣衍者 亦可耕治也라 恒衛는 水小而地遠하고 大陸은 地平而近河라 故로 其成功於田賦之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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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第十章)
島夷는 皮服이로다
海曲曰島니 海島之夷가 以皮服來貢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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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第十一章)
夾右碣石하여 入于河하나니라
碣石은 地志에 在北平郡驪城縣西南河口之地라하니 今平州之南也라 冀州는 北方貢賦之來에 自北海入河하여 南向西轉而碣石在其右轉屈之間이라 故로 曰夾右也라 程氏曰 冀爲帝都하여 東西南三面距河하니 他州貢賦가 皆以達河爲至라 故로 此三方을 亦不必書요 而其北境則漢遼東西右北平漁陽上谷之地니 其水如遼濡滹易이 皆中高하여 不與河通이라 故로 必自北海然後에 能達河也라 又按 酈道元言驪城枕海에 有石如甬道數十里요 當山頂에 有大石하여 如柱形하니 韋昭以爲碣石이라 其山이 昔在河口海濱이라 故로 以誌其入貢河道러니 歷世旣久에 爲水所漸淪하여 入于海하니 已去岸五百餘里矣라 戰國策에 以碣石在常山郡九門縣者는 恐名偶同이요 而鄭氏以爲九門無此山也라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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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第十二章)
濟河에 惟兗州라
兗州之域은 東南據濟하고 西北距河하니라 濟河는 見導水라 蘇氏曰 河濟之間은 相去不遠이라 兗州之境은 東南跨濟하니 非止於濟也라 愚謂 河昔北流하여 兗州之境이 北盡碣石河右之地러니 後에 碣石之地는 淪入於海하고 河益徙而南하여 濟河之間이 始相去不遠하니 蘇氏之說이 未必然也라
○ 林氏曰 濟는 古文作泲하니 說文註云 此兗州之濟也라 其從水從齊者는 說文註云 出常山房子縣贊皇山이라하니 則此二字音同義異하니 當以古文爲正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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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第十三章)
九河旣道하며
九河는 爾雅에 一曰徒駭요 二曰太史요 三曰馬頰이요 四曰覆鬴요 五曰胡蘇요 六曰簡潔이요 七曰鉤盤이요 八曰鬲津이요 其一則河之經流也어늘 先儒는 不知河之經流하고 遂分簡潔爲二하니라 旣道者는 旣順其道也라
○ 按 徒駭河는 地志云 滹沱河라하고 寰宇記云 在滄州淸池南이라하고 許商云 在平城이라하니라 馬頰河는 元和志에 在德州安德平原南東이라하고 寰宇記云 在棣州滴河北이라하고 輿地記云 卽篤馬河也라하니라 覆鬴河는 通典云 在德州安德이라 胡蘇河는 寰宇記云 在滄之饒安, 無棣, 臨津三縣이라하고 許商云 在東光이라하니라 簡潔河는 輿地記云 在臨津이라 鉤盤河는 寰宇記云 在樂陵東南하니 從德州平昌來라하고 輿地記云 在樂陵이라하니라 鬲津河는 寰宇記云 在樂陵東하니 西北流入饒安이라하고 許商云 在鬲縣이라하고 輿地記云 在無棣라하니라 太史河는 不知所在라 自漢以來로 講求九河者甚詳이나 漢世近古로되 止得其三이러니 唐人이 集累世積傳之語하여 遂得其六하고 歐陽忞輿地記에 又得其一이라 或新河而載以舊名하고 或一地而互爲兩說하니 要之컨대 皆似是而非하여 無所依據요 至其顯然謬誤者하여는 則班固以滹沱爲徒駭하니 而不知滹沱不與古河相涉이요 樂史는 馬頰을 乃以漢篤馬河當之라 鄭氏는 求之不得일새 又以爲九河는 齊桓이 塞其八流以自廣이라하니 夫曲防은 齊之所禁이니 塞河는 宜非桓公之所爲也라 河水可塞이어니와 而河道를 果能盡平乎아 皆無稽考之言也라 惟程氏以爲九河之地는 已淪於海라하고 引碣石爲九河之證하여 以謂今滄州之地는 北與平州接境하여 相去五百餘里하니 禹之九河 當在其地라 後爲海水淪沒故로 其迹不存이라 方九河未沒於海之時엔 從今海岸하여 東北更五百里平地니 河播爲九는 在此五百里中이라 又上文言夾右碣石이라하니 則九河入海之處에 有碣石在其西北岸이라 九河는 水道變遷하여 難於推考로되 而碣石은 通趾頂皆石이니 不應仆沒이어늘 今兗冀之地에 旣無此石이요 而平州正南에 有山而名碣石者 尙在海中하니 去岸五百餘里요 卓立可見이니 則是古河自今以爲海處로 向北斜行하여 始分爲九니 其河道已淪入於海가 明矣라 漢王橫이 言昔天常連雨하고 東北風하여 海水溢西南하여 出浸數百里라하니 九河之地 已爲海水所漸이라 酈道元이 亦謂九河碣石이 苞淪於海라하니라 後世儒者는 知求九河於平地하고 而不知求碣石有無以爲之證이라 故로 前後異說이 竟無歸宿이라 蓋非九河之地而强鑿求之하니 宜其支離而不能得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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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第十四章)
雷夏旣澤하며
澤者는 水之鍾也라 雷夏는 地志에 在濟陰郡城陽縣西北이라하니 今濮州雷澤縣西北也라 山海經云 澤中有雷神하니 龍身而人頰이니 鼓其腹則雷라하니 然則本夏澤也어늘 因其神하여 名之曰雷夏也라 洪水橫流而入于澤에 澤不能受하니 則亦泛濫奔潰라 故로 水治而後에 雷夏爲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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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第十五章)
灉沮會同이로다
灉沮는 二水名이라 灉水는 曾氏曰 爾雅에 水自河出爲灉이라하고 許愼云 河灉水는 在宋이라하고 又曰 汳水는 受陳留浚儀陰溝하여 至蒙爲灉水하여 東入于泗라하고 水經에 汳水出陰溝하여 東至蒙爲狙獾이라하니 則灉水卽汳水也라 灉之下流는 入于雎水하니라 沮水는 地志에 雎水出沛國芒縣이라하니 雎水其沮水歟아 鼂氏曰 爾雅云 自河出爲灉이요 濟出爲濋라하니 求之於韻컨대 沮有楚音하니 二水는 河濟之別也라하니 二說이 未詳孰是라 會者는 水之合也요 同者는 合而一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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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第十六章)
桑土旣蠶하니 是降丘宅土로다
桑土는 宜桑之土라 旣蠶者는 可以蠶桑也라 蠶性惡(오)濕이라 故로 水退而後可蠶이라 然九州皆賴其利로되 而獨於兗言之者는 兗地宜桑하니 後世之濮上桑間에 猶可驗也라 地高曰丘라 兗地多在卑下하여 水害尤甚하여 民皆依丘陵以居러니 至是에 始得下居平地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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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第十七章)
厥土는 黑墳이니 厥草는 惟繇(요)요 厥木은 惟條로다
墳은 土脈墳起也니 如左氏所謂祭之地에 地墳이 是也라 繇는 茂라 條는 長也라
○ 林氏曰 九州之勢는 西北多山하고 東南多水하니 多山則草木爲宜는 不待書也라 兗徐揚三州는 最居東南下流하니 其地卑濕沮洳하여 洪水爲患하여 草木不得其生이러니 至是에 或繇或條或夭或喬而或漸苞라 故로 於三州에 特言之하여 以見水土平하여 草木亦得遂其性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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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第十八章)
厥田은 惟中에 下요 厥賦는 貞이로소니 作十有三載라사 乃同이로다
田은 第六等이요 賦는 第九等이라 貞은 正也니 兗賦最薄하니 言君天下者는 以薄賦爲正也라 作十有三載乃同者는 兗當河下流之衝하여 水激而湍悍하고 地平而土疎하여 被害尤劇하니 今水患雖平이나 而卑濕沮洳는 未必盡去하여 土曠人稀하여 生理鮮少하니 必作治十有三載然後에 賦法同於他州라 此는 爲田賦而言이라 故로 其文屬於厥賦之下라 先儒는 以爲禹治水所歷之年이라하고 且謂此州治水 最在後畢하여 州爲第九成功이라하여 因以上文厥賦貞者로 謂賦亦第九하여 與州正爲相當이라하니 殊無意義하니 其說非是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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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第十九章)
厥貢은 漆絲요 厥篚는 織文이로다
貢者는 下獻其土所有於上也라 兗地는 宜漆宜桑이라 故로 貢漆絲也라 篚는 竹器니 筐屬也라 古者에 幣帛之屬을 則盛之以筐篚而貢焉하니 經曰 篚厥玄黃이 是也라 織文者는 織而有文이니 錦綺之屬也니 以非一色이라 故로 以織文總之라 林氏曰 有貢又有篚者는 所貢之物을 入於篚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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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第二十章)
浮于濟漯하여 達于河하나니라
舟行水曰浮라 漯者는 河之枝流也라 兗之貢賦를 浮濟浮漯하여 以達於河也라 帝都冀州는 三面距河하니 達河則達帝都矣라 又按地志曰 漯水는 出東郡東武陽하여 至千乘入海라하고 程氏는 以爲此乃漢河니 與漯殊異라 然亦不能明言漯河所在하니 未詳其地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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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第二十一章)
海岱에 惟靑州라
靑州之域은 東北至海하고 西南距岱라 岱는 泰山也니 在今襲慶府奉符縣西北三十里라
인용
제22장(第二十二章)
嵎夷旣略하니
嵎夷는 薛氏曰 今登州之地라 略은 經略하여 爲之封畛也니 卽堯典之嵎夷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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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第二十三章)
濰淄其道하도다
濰淄는 二水名이라 濰水는 地志云 出瑯琊郡箕縣이라하니 今密州莒縣東北濰山也요 北至(都昌)[昌都]하여 入海라하니 今濰州昌邑也라 淄水는 地志云 出泰山郡萊蕪縣原山이라하니 今淄州淄川縣東南七十里原山也요 東至博昌縣하여 入濟라하니 今靑州壽光縣也라 其道者는 水循其道也라 上文言旣道者는 禹爲之道也요 此言其道者는 泛濫旣去에 水得其故道也라 林氏曰 河濟下流를 徐受之하고 淮下流를 徐受之하고 江漢下流를 揚受之라 靑雖近海나 然不當衆流之衝하여 但濰淄二水 順其故道면 則其功畢矣니 比之他州하면 用力最省者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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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第二十四章)
厥土는 白墳이니 海濱은 廣斥이로다
濱은 涯也니 海涯之地 廣漠而斥鹵라 許愼曰 東方謂之斥이요 西方謂之鹵니 斥鹵는 鹹地可煮爲鹽者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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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第二十五章)
厥田은 惟上에 下요 厥賦는 中에 上이로다
田은 第三이요 賦는 第四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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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第二十六章)
厥貢은 鹽絺요 海物은 惟錯이로다 岱畎에 絲枲와 鉛松과 怪石이로다 萊夷作牧하니 厥篚는 檿絲로다
鹽은 斥地所出이라 絺는 細葛也라 錯은 雜也니 海物非一種이라 故로 曰錯이라 林氏曰 旣總謂之海物이면 則固非一物矣라 此與揚州齒革羽毛惟木으로 文勢正同하니 錯은 蓋別爲一物이니 如錫貢磬錯之錯이라하니 理或然也라 畎은 谷也니 岱山之谷也라 枲는 麻也라 怪石은 怪異之石也라 林氏曰 怪石之貢은 誠爲可疑하니 意其必須以爲器用之飾하여 而有不可闕者요 非特貢其怪異之石하여 以爲玩好也라 萊夷는 顔師古曰 萊山之夷니 齊有萊侯萊人하니 卽今萊州之地라 作牧者는 言可牧放이니 夷人以畜牧爲生也라 檿은 山桑也니 山桑之絲는 其靭이 中琴瑟之絃이라 蘇氏曰 惟東萊爲有此絲하니 以之爲繒이면 其堅靭異常하니 萊人謂之山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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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第二十七章)
浮于汶하여 達于濟하나니라
汶水는 出泰山郡萊蕪縣原山하니 今襲慶府萊蕪縣也요 西南入濟하니 在今鄆州中都縣也라 蓋淄水는 出萊蕪原山之陰하여 東北而入海하고 汶水는 出萊蕪原山之陽하여 西南而入濟라 不言達河者는 因於兗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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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第二十八章)
海岱及淮에 惟徐州라
徐州之域은 東至海하고 南至淮하고 北至岱而西不言濟者는 岱之陽濟東은 爲徐요 岱之北濟東은 爲靑하니 言濟면 不足以辨이라 故로 略之也라 爾雅에 濟東曰徐州者는 商無靑하여 幷靑於徐也요 周禮에 正東曰靑州者는 周無徐하여 幷徐於靑也라 林氏曰 一州之境은 必有四至어늘 七州皆止二至는 蓋以隣州互見이요 至此州하여 獨載其三邊者는 止言海岱則嫌於靑이요 止言淮海則嫌於揚이라 故로 必曰海岱及淮而後에 徐州之疆境이 始別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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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第二十九章)
淮沂其乂하니
淮沂는 二水名이라 淮는 見導水하니라 曾氏曰 淮之源은 出于豫之境하여 至揚徐之間하여 始大하니 其泛濫爲患이 尤在於徐라 故로 淮之治를 於徐에 言之也라 沂水는 地志云 出泰山郡蓋縣艾山이라하니 今沂州沂水縣也니 南至于下邳하여 西南而入于泗라 曾氏曰 徐州에 水以沂名者非一이니 酈道元謂 水出尼丘山西北하여 徑魯之雩門을 亦謂之沂水라하고 水出太公武陽之冠石山을 亦謂之沂水라하나 而沂水之大는 則出於泰山也라 又按 徐之水는 有泗, 有汶, 有汴, 有漷이로되 而獨以淮沂言者는 周職方氏에 靑州其川淮泗요 其浸沂沭이라하니 周無徐州하여 兼之於靑하니 周之靑은 卽禹之徐라 則徐之川이 莫大於淮하니 淮乂면 則自泗而下凡爲川者를 可知矣요 徐之浸이 莫大於沂하니 沂乂면 則自沭而下凡爲浸者를 可知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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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第三十章)
蒙羽其藝하도다
蒙羽는 二山名이라 蒙山은 地志에 在泰山郡蒙陰縣西南이라하니 今沂州費縣也요 羽山은 地志에 在東海郡祝其縣南이라하니 今海州朐山縣也라 藝者는 言可種藝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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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第三十一章)
大野旣豬하니
大野는 澤名이니 地志에 在山陽郡鉅野縣北이라하니 今濟州鉅野縣也니 鉅는 卽大也라 水蓄而復流者를 謂之豬라 按水經컨대 濟水至乘氏縣하여 分爲二하여 南爲菏하고 北爲濟라 酈道元謂 一水는 東南流하고 一水는 東北流하여 入鉅野澤이라하니 則大野는 爲濟之所絶하니 其所聚也大矣라 何承天曰 鉅野廣大하여 南導洙泗하고 北連淸濟라하니 徐之有濟를 於是乎見이라 又鄆州中都西南에 亦有大野陂하니 或皆大野之地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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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第三十二章)
東原이 底(지)平하도다
東原은 漢之東平國이니 今之鄆州也라 鼂氏曰 東平은 自古多水患하여 數(삭)徙其城이라 咸平中에 又徙城於東南하니 則其下濕을 可知라 底平者는 水患已去하여 而底於平也라 後人이 以其地之平이라 故로 謂之東平이라 又按 東原은 在徐之西北이어늘 而謂之東者는 以在濟東故也라 東平國은 在景帝에 亦謂濟東國云하니 益知大野東原이 所以志濟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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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第三十三章)
厥土는 赤埴墳이니 草木은 漸包(苞)로다
土黏曰埴이라 埴은 膩也니 黏泥如脂之膩也라 周有摶埴之工하고 老氏言 埏埴以爲器라하니 惟土性黏膩細密이라 故로 可搏可埏也라 漸은 進長也니 如易所謂木漸이니 言其日進於茂而不已也라 包는 叢生也니 如詩之所謂如竹包矣니 言其叢生而稹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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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第三十四章)
厥田은 惟上에 中이요 厥賦는 中에 中이로다
田은 第二等이요 賦는 第五等也라
인용
제35장(第三十五章)
厥貢은 惟土五色과 羽畎에 夏翟과 嶧陽에 孤桐과 泗濱에 浮磬이로다 淮夷는 蠙珠曁魚로소니 厥篚는 玄纖縞로다
徐州之土雖赤이나 而五色之土亦間有之라 故로 制以爲貢이라 周書作雒曰 諸侯受命于周라야 乃建大社于國中하니 其壝는 東靑土요 南赤土요 西白土요 北驪土요 中央疊以黃土라 將建諸侯에 鑿取其方面之土하여 苞以黃土하고 苴以白茅하여 以爲土封이라 故로 曰受削土于周室이라하니 此貢土五色도 意亦爲是用也라 羽畎은 羽山之谷也라 夏翟은 雉具五色하니 其羽中旌旄者也라 染人之職에 秋染夏라하니 鄭氏曰 染夏者는 染五色也라 林氏曰 古之車服器用에 以雉爲飾者多하니 不但旌旄也라 曾氏曰 山雉具五色이 出于羽山之畎이라하니 則其名山以羽者는 以此歟아 嶧은 山名이라 地志云 東海郡下邳縣西에 有葛嶧山하고 古文에 以爲嶧山이라하니 下邳는 今淮陽軍下邳縣也라 陽者는 山南也라 孤桐은 特生之桐이니 其材中琴瑟이라 詩曰 梧桐生矣여 于彼朝陽이라하니 蓋草木之生은 以向日爲貴也라 泗는 水名이니 出魯國卞縣桃墟西北陪尾山이라 源有泉四하니 四泉俱導하여 因以爲名이라 西南過彭城하고 又東南過下邳하여 入淮하니 卞縣은 今襲慶府泗水縣也라 濱은 水旁也라 浮磬은 石露水濱하여 若浮於水然이라 或曰 非也라 泗濱은 非必水中이요 泗水之旁近浮者니 石浮生土中하여 不根著(착)者也라 今下邳에 有石磬山하니 或以爲古取磬之地라 曾氏曰 不謂之石者는 成磬而後貢也라 淮夷는 淮之夷也라 蠙은 蚌之別名也라 曁는 及也라 珠爲服飾하고 魚用祭祀라 今濠泗楚皆貢淮白魚하니 亦古之遺制歟인저 夏翟之出于羽畎하고 孤桐之生於嶧陽하고 浮磬之出於泗濱하고 珠魚之出於淮夷하여 各有所産之地하니 非他處所有라 故로 詳其地而使貢也라 玄은 赤黑色幣也니 武成曰 篚厥玄黃이라하니라 纖縞는 皆繒也니 禮曰 及期而大祥하니 素縞麻衣하고 中月而禫하니 禫而纖이라하고 記曰 有虞氏縞衣而養老라하니 則知纖縞皆繒之名也라 曾氏曰 玄은 赤而有黑色이니 以之爲袞은 所以祭也요 以之爲端은 所以齊也요 以之爲冠은 以爲首服也라 黑經白緯曰纖이니 纖也, 縞也는 皆去凶卽吉之所服也라
인용
제36장(第三十六章)
浮于淮泗하여 達于河하나니라
許愼曰 汳水受陳留浚儀陰溝하여 至夢爲灉水하여 東入于泗라하니 則淮泗之可以達于河者는 以灉至于泗也라 許愼又曰 泗受泲水하여 東入淮라하니 蓋泗水至大野而合泲니 然則泗之上源自泲하여 亦可以通河也라
인용
제37장(第三十七章)
淮海에 惟揚州라
揚州之域은 北至淮하고 東南至于海라
인용
제38장(第三十八章)
彭蠡旣豬하니
彭蠡는 地志에 在豫章郡彭澤縣東이라하니 合江西江東諸水하여 跨豫章饒州南康軍三州之地하니 所謂鄱陽湖者 是也라 詳見導水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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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第三十九章)
陽鳥의 攸居로다
陽鳥는 隨陽之鳥니 謂雁也라 今惟彭蠡洲渚之間에 千百爲群하니 記陽鳥所居는 猶夏小正에 記雁北鄕(向)也라 言澤水旣豬하여 洲渚旣平하니 而禽鳥亦得其居止하여 而遂其性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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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第四十章)
三江이 旣入하니
唐仲初吳都賦註에 松江下七十里에 分流하여 東北入海者를 爲婁江이요 東南流者를 爲東江이며 倂松江爲三江이라하니 其地今亦名三江口라 吳越春秋에 所謂范蠡乘舟하여 出三江之口者是也라
○ 又按 蘇氏謂 岷山之江을 爲中江하고 嶓冢之江을 爲北江하고 豫章之江을 爲南江하니 卽導水所謂東爲北江하고 東爲中江者라 旣有中北二江이면 則豫章之江爲南江을 可知라 今按 此爲三江은 若可依據라 然이나 江漢會於漢陽하여 合流數百里하여 至湖口而後에 與豫章江會하고 又合流千餘里而後에 入海하니 不復可指爲三矣라 蘇氏知其說不通일새 遂有味別之說이나 禹之治水는 本爲民去害니 豈如陸羽輩辨味烹茶하여 爲口腹計耶아 亦可見其說之窮矣니 以其說易以惑人이라 故幷及之하노라 或曰 江漢之水는 揚州巨浸이어늘 何以不書오 曰 禹貢書法이 費疏鑿者는 雖小나 必記하고 無施勞者는 雖大나 亦略하니 江漢은 荊州而下安於故道하여 無俟濬治라 故로 在不書라 況朝宗于海를 荊州에 固備言之하니 是亦可以互見矣니 此正禹貢之書法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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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장(第四十一章)
震澤이 底(지)定하도다
震澤은 太湖也라 周職方에 揚州藪曰具區라하고 地志에 在吳縣西南五十里라하니 今蘇州吳縣也라 曾氏曰 震은 如三川震之震이니 若今湖翻이 是也라 具區之水는 多震而難定이라 故로 謂之震澤이라 底定者는 言底於定而不震蕩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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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장(第四十二章)
篠簜이 旣敷하니 厥草는 惟夭며 厥木은 惟喬요 厥土는 惟塗泥로다
篠는 箭竹이요 簜은 大竹이라 郭璞曰 竹闊節曰簜이라 敷는 布也니 水去에 竹已布生也라 少長曰夭라 喬는 高也라 塗泥는 水泉濕也니 下地多水하여 其土淖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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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第四十三章)
厥田은 惟下에 下요 厥賦는 下에 上이로소니 上錯이로다
田은 第九等이요 賦는 第七等이로되 雜出第六等也라 言下上上錯者는 以本設賦九等하여 分爲三品하니 下上與中下는 異品이라 故變文하여 言下上上錯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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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第四十四章)
厥貢은 惟金三品과 瑤琨篠簜과 齒革羽毛와 惟木이로다 島夷는 卉服이로소니 厥篚는 織貝요 厥包橘柚는 錫貢이로다
三品은 金銀銅也라 瑤琨은 玉石名이니 詩曰 何以舟之오 惟玉及瑤라하니라 琨은 說文云 石之美似玉者라하니 取之可以爲禮器라 篠之材는 中於矢之笴요 簜之材는 中於樂之管이라 簜은 亦可爲符節이니 周官掌節에 有英簜이라 象有齒하고 犀兕有革하며 鳥有羽하고 獸有毛라 木은 楩梓豫章之屬이라 齒革은 可以成車甲이요 羽毛는 可以爲旌旄요 木은 可以備棟宇器械之用也라 島夷는 東南海島之夷라 卉는 草也니 葛越木綿之屬이라 織貝는 錦名이니 織爲貝文이니 詩曰貝錦이 是也라 今南夷木綿之精好者를 亦謂之吉貝라하니 海島之夷以卉服來貢호되 而織貝之精者를 則入篚焉이라 包는 裹也라 小曰橘이요 大曰柚라 錫者는 必待錫命而後貢이요 非歲貢之常也라 張氏曰 必錫命乃貢者는 供祭祀, 燕賓客則詔之요 口腹之欲則難於出令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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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第四十五章)
沿于江海하여 達于淮泗하나니라
順流而下曰沿이라 沿江入海하여 自海而入淮泗라 不言達于河者는 因於徐也라 禹時에 江淮未通이라 故로 沿於海러니 至吳하여 始開邗溝하고 隋人廣之하여 而江淮舟船始通也라 孟子言 排淮泗而注之江은 記者之誤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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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第四十六章)
荊及衡陽에 惟荊州라
荊州之域은 北距南條荊山하고 南盡衡山之陽이라 荊衡은 各見導山하니라 唐孔氏曰 荊州以衡山之陽爲至者는 蓋南方에 惟衡山爲大하여 以衡陽言之하니 見其地不止此山이로되 而猶包其南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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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第四十七章)
江漢이 朝宗于海하며
江漢은 見導水하니라 春見曰朝요 夏見曰宗이니 朝宗은 諸侯見天子之名也라 江漢이 合流于荊하니 去海尙遠이라 然이나 水道已安하여 而無有壅塞橫決之患이라 雖未至海나 而其勢已奔趨於海하니 猶諸侯之朝宗于王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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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第四十八章)
九江이 孔殷하도다
九江은 卽今之洞庭也라 水經에 言 九江在長沙下雋西北이라하고 楚地記曰 巴陵瀟湘之淵이 在九江之間이라하니 今岳州巴陵縣은 卽楚之巴陵이요 漢之下雋也라 洞庭이 正在其西北하니 則洞庭之爲九江이 審矣라 今沅水, 漸水, 元水, 辰水, 敍水, 酉水, 澧水, 資水, 湘水 皆合於洞庭하니 意以是名九江也라 孔은 甚이요 殷은 正也니 九江水道甚得其正也라
○ 按漢志에 九江은 在廬江郡之尋陽縣이라하고 尋陽記에 九江之名은 一曰烏江이요 二曰蜯江이요 三曰烏白江이요 四曰嘉靡江이요 五曰畎江이요 六曰源江이요 七曰廩江이요 八曰提江이요 九曰箘江이라하니라 今詳漢九江郡之尋陽은 乃禹貢揚州之境이어늘 而唐孔氏又以爲九江之名이 起於近代라하니 未足爲據라 且九江派別取之耶인댄 亦必首尾短長이 大略均布然後에 可目之爲九라 然이나 其一水之間에 當有一洲로되 九江之間은 沙水相間하여 乃爲十有七道하니 而今尋陽之地는 將無所容이라 況沙洲出沒하여 其勢不常하니 果可以爲地理之定名乎아 設使派別爲九라도 則當曰九江旣道요 不應曰孔殷이며 於導江에 當曰播九江이요 不應曰過九江이니 反復參攷컨대 則九江은 非尋陽이 明甚이니 本朝胡氏以洞庭爲九江者得之라 曾氏亦謂 導江曰 過九江하여 至于東陵이라하니 東陵은 今之巴陵이니 今巴陵之上은 卽洞庭也라 因九水所合하여 遂名九江이라 故로 下文導水曰 過九江이라 經之例에 大水合小水를 謂之過라하니 則洞庭之爲九江이 益以明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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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장(第四十九章)
沱潛이 旣道하니
『爾雅』曰 水自江出爲沱요 自漢出爲潛이라하니 凡水之出於江漢者皆有此名이니 此則荊州江漢之出者也라 今按 南郡枝江縣에 有沱水라 然이나 其流入江이요 而非出於江也라 華容縣에 有夏水하니 首出于江하고 尾入于沔하니 亦謂之沱라 若潛水則未有見也니라
인용
제50장(第五十章)
雲土요 夢作乂하도다
雲夢은 澤名이라 周官職方에 荊州其澤藪曰雲夢이니 方八九百里요 跨江南北이라하니 華容枝江江夏安陸이 皆其地也라 左傳楚子濟江入于雲中이라하고 又楚子以鄭伯으로 田于江南之夢이라하니 合而言之則爲一이요 別而言之則二澤也라 雲土者는 雲之地는 土見而已요 夢作乂者는 夢之地已可耕治也라 蓋雲夢之澤은 地勢有高卑라 故로 水落에 有先後요 人工에 有早晩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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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장(第五十一章)
厥土는 惟塗泥니 厥田은 惟下에 中이요 厥賦는 上에 下로다
荊州之土는 與揚州同이라 故로 田比揚에 只加一等이로되 而賦爲第三等者는 地闊而人工修也일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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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第五十二章)
厥貢은 羽毛齒革과 惟金三品과 杶榦栝柏과 礪砥砮丹이로다 惟箘簵楛는 三邦이 底(지)貢厥名하나니라 包匭菁茅며 厥篚는 玄纁璣組로소니 九江이 納錫大龜로다
荊之貢은 與揚州로 大抵多同이라 然이나 荊先言羽毛者는 漢孔氏所謂善者爲先也라 按職方氏에 揚州는 其利金錫이요 荊州는 其利丹銀齒革이라하니 則荊揚所産이 不無優劣矣라 杶栝柏은 三木名也니 杶木은 似樗而可爲弓榦이요 栝木은 柏葉松身이라 礪砥는 皆磨石이니 砥는 以細密爲名이요 礪는 以麤糲爲稱이라 砮者는 中矢鏃之用이니 肅愼氏貢石砮者 是也라 丹은 丹砂也라 箘簵는 竹名이요 楛는 木名이니 皆可以爲矢라 董安于之治晉陽也에 公宮之垣을 皆以荻蒿苫楚廩之하니 其高丈餘라 趙襄子發而試之에 其堅則箘簵不能過也라하니 則箘簵는 蓋竹之堅者니 其材中矢之笴라 楛는 肅愼氏貢篚矢者是也라 三邦은 未詳其地라 底는 致也니 致貢箘簵楛之有名者也라 匭는 匣也라 菁茅는 有刺而三脊이니 所以供祭祀縮酒之用이니 旣包而又匣之는 所以示敬也라 齊桓公이 責楚貢包茅不入하여 王祭不供하여 無以縮酒하고 又管子云 江淮之間에 一茅而三脊을 名曰菁茅라하니 菁茅는 一物也라 孔氏謂 菁以爲葅者非是라 今辰州麻陽縣苞茅山에 出苞茅하니 有刺而三脊이라 纁은 周禮染人에 夏纁玄하니 纁은 絳色幣也라 璣는 珠不圓者라 組는 綬類라 大龜는 尺有二寸이니 所謂國之守龜니 非可常得이라 故로 不爲常貢이요 若偶得之면 則使之納錫於上이라 謂之納錫者는 下與上之辭니 重其事也라
인용
제53장(第五十三章)
浮于江沱潛漢하여 逾于洛하여 至于南河하나니라
江沱潛漢은 其水道之出入이 不可詳이로되 而大勢則自江沱而入潛漢也라 逾는 越也라 漢與洛不通이라 故로 舍舟而陸하여 以達于洛하고 自洛而至于南河也라 程氏曰 不徑浮江漢하고 兼用沱潛者는 隨其貢物所出之便하여 或由經流하고 或循枝派하여 期於便事而已라
인용
제54장(第五十四章)
荊河에 惟豫州라
豫州之域은 西南至南條荊山하고 北距大河라
인용
제55장(第五十五章)
伊洛瀍澗이 旣入于河하며
伊水는 山海經曰 熊耳之山에 伊水出焉하니 東北至洛陽縣南하여 北入于洛이라하니라 郭璞云 熊耳는 在上洛縣南이라하니 今商州上洛縣也라 地志에 言 伊水出弘農盧氏之熊耳者는 非是라 洛水는 地志云 出弘農郡上洛縣冢領山이라하고 水經에 謂之讙擧山이라하니 今商州洛南縣冢領山也요 至鞏縣하여 入河라하니 今河南府鞏縣也라 瀍水는 地志云 出河南郡穀城縣替亭北이라하니 今河南府河南縣西北에 有古穀城縣하니 其北山은 實瀍水所出也라 至偃師縣하여 入洛이라하니 今河南府偃師縣也라 澗水는 地志云 出弘農郡新安縣東하여 南入于洛이라하니 新安은 在今河南府新安澠池之間하니 今澠池縣東二十三里新安城이 是也요 城東北에 有白石山하니 卽澗水所出이라 酈道元云 世謂之廣陽山이라하니 然則澗水出今之澠池하여 至新安入洛也라 伊瀍澗水는 入于洛하고 而洛水는 入于河어늘 此言伊洛瀍澗入于河라하여 若四水不相合而各入河者는 猶漢入江, 江入海로되 而荊州에 言江漢朝宗于海로 意同하니 蓋四水竝流하여 小大相敵故也라 詳見下文하니라
인용
제56장(第五十六章)
滎波旣豬로다
滎波는 二水名이라 濟水는 自今孟州溫縣入河하고 潛行絶河하여 南溢爲滎하니 在今鄭州滎澤縣西五里敖倉東南하니 敖倉者는 古之敖山也라 按今濟水는 但入河하고 不復過河之南하며 滎瀆水受河水에 有石門하니 謂之滎口石門也라 鄭康成謂 滎은 今塞爲平地로되 滎陽民은 猶謂其處爲滎澤이라하니라 酈道元曰 禹塞淫水하여 於滎陽下에 引河東南하여 以通淮泗濟水하여 分河東南流러니 漢明帝使王景으로 卽滎水故瀆하여 東注浚儀하고 謂之浚儀渠라 漢志에 謂滎陽縣에 有狼蕩渠하니 首受濟者 是也라 南曰狼蕩이요 北曰浚儀니 其實은 一也라 波水는 周職方에 豫州는 其川滎雒이요 其浸波溠라하고 爾雅云 水自洛出爲波라하며 山海經曰 婁涿之山에 波水出其陰하여 北流注于穀이라하여 二說不同하니 未詳孰是라 孔氏以滎波爲一水者는 非也라
인용
제57장(第五十七章)
導菏澤하사 被孟豬하시다
菏澤은 地志에 在濟陰郡定陶縣東이라하니 今興仁府濟陰縣南三里라 其地有渮山이라 故로 名其澤爲渮澤也라 蓋濟水所經이니 水經謂 南濟는 東過寃句縣南하고 又東過定陶縣南하고 又東北에 菏水東出焉이 是也라 被는 及也라 孟豬는 爾雅에 作孟諸라 地志에 在梁國雎陽縣東北이라하니 今南京虞城縣西北孟諸澤이 是也라 曾氏曰 被는 覆也니 菏水衍溢일새 導其餘波하여 入于孟豬하니 不常入也라 故로 曰被라
인용
제58장(第五十八章)
厥土는 惟壤이니 下土는 墳壚로다
土不言色者는 其色雜也라 壚는 疏也라 顔氏曰 玄而疏者를 謂之壚라 其土有高下之不同이라 故로 別言之라
인용
제59장(第五十九章)
厥田은 惟中에 上이요 厥賦는 錯이로소니 上에 中이로다
田은 第四等이요 賦는 第二等이로되 雜出第一等也라
인용
제60장(第六十章)
厥貢은 漆枲絺紵요 厥篚는 纖纊이로소니 錫貢磬錯이로다(하놋다)
林氏曰 周官載師에 漆林之征이 二十(有)[而]五하니 周以爲征이로되 而此乃貢者는 蓋豫州在周엔 爲畿內라 故로 載師掌其征而不制貢이요 禹時엔 豫在畿外라 故로 有貢也라하니 推此義하면 則冀不言貢者를 可知라 顔師古曰 織紵以爲布及練이라 然이나 經但言貢枲與紵하니 成布與未成布를 不可詳也라 纊은 細綿也라 磬錯은 治磬之錯也니 非所常用之物이라 故로 非常貢이요 必待錫命而後納也니 與揚州橘柚로 同이라 然이나 揚州先言橘柚而此先言錫貢者는 橘柚言包하니 則於厥篚之文에 無嫌이라 故로 言錫貢在後요 磬錯則與厥篚之文으로 嫌於相屬이라 故로 言錫貢在先이니 蓋立言之法也라
인용
제61장(第六十一章)
浮于洛하여 達于河하나니라
豫州는 去帝都最近하여 豫之東境은 徑自入河하고 豫之西境은 則浮于洛而後에 至河也라
인용
제62장(第六十二章)
華陽黑水에 惟梁州라
梁州之境은 東距華山之南하고 西據黑水라 華山은 卽太華니 見導山하고 黑水는 見導水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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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장(第六十三章)
岷嶓旣藝하며
岷嶓는 二山名이라 岷山은 地志에 在蜀郡湔氐道西徼外라하니 在今茂州汶山縣이니 江水所出也라 鼂氏曰 蜀은 以山近江源者를 通爲岷山하니 連峯接岫하여 重疊險阻하여 不詳遠近이라 靑城天彭諸山之所環遶가 皆古之岷山이니 靑城은 乃其第一峰也라 嶓冢山은 地志云 在隴西郡氐道縣이라하니 漾水所出이요 又云在西縣이라하니 今興元府西縣三泉縣也라 蓋嶓冢一山이 跨于兩縣云이라 川原旣滌하여 水去不滯하여 而無泛溢之患하니 其山이 已可種藝也라
인용
제64장(第六十四章)
沱潛이 旣道하도다
此는 江漢別流之在梁州者라 沱水는 地志에 蜀郡郫縣에 江沱在東하니 西入大江이라하니 郫縣은 今成都府郫縣也라 又地志云 蜀郡汶江縣에 江沱在西南하니 東入江이라하니 汶江縣은 今永康軍導江縣也라 潛水는 地志云 巴郡宕渠縣에 潛水西南入江이라하니 宕渠는 今渠州流江縣也라 酈道元謂 宕渠縣에 有大穴하여 潛水入焉하니 通罡山下하여 西南潛出하여 南入于江이라하니라 又地志에 漢中郡安陽縣에 灊谷水出西南入漢이라하니 灊은 音潛이요 安陽縣은 今洋州眞符縣也라
○ 又按 梁州는 乃江漢之原이어늘 此不志者는 岷之藝는 導江也요 嶓之藝는 導漾也며 道沱則江悉矣요 道潛則漢悉矣라 上志岷嶓하고 下志沱潛하니 江漢源流를 於是而見이라
인용
제65장(第六十五章)
蔡蒙에 旅平하시며
蔡蒙은 二山名이라 蔡山은 輿地記에 在今雅州嚴道縣이라 蒙山은 地志에 蜀郡靑衣縣이라하니 今雅州名山縣也라 酈道元謂 山이 上合下開하고 沫水逕其間하여 溷崖水脈漂疾하여 歷代爲患이러니 蜀郡太守李氷이 發卒鑿平溷崖라하니 則此二山은 在禹에 爲用功多也라 祭山曰旅니 旅平者는 治功畢而旅祭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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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장(第六十六章)
和夷에 底績하시다
和夷는 地名이라 嚴道以西에 有和川하고 有夷道하니 或其地也라 又按 鼂氏曰 和夷는 二水名이라 和水는 今雅州滎經縣北和川이니 水自蠻界羅嵒州東西來하여 逕蒙山하니 所謂靑衣水而入岷江者也라 夷水는 出巴郡魚腹縣하여 東南過佷山縣南하고 又東過夷道縣北하여 東入于江이라 今詳二說컨대 皆未可必이로되 但經言底績者三에 覃懷原隰이 旣皆地名이니 則此恐爲地名이요 或地名因水니 亦不可知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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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장(第六十七章)
厥土는 靑黎니
黎는 黑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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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장(第六十八章)
厥田은 惟下에 上이요 厥賦는 下에 中이로소니 三錯이로다
田은 第七等이요 賦는 第八等이로되 雜出第七第九等也라 按賦雜出他等者는 或以爲歲有豊凶이라하고 或以爲戶有增減이라하니 皆非也라 意者컨대 地力有上下하여 年分不同하니 如周官에 田一易再易之類라 故로 賦之等第 亦有上下年分하니 冀之正賦는 第一等이로되 而間歲第二等也요 揚之正賦는 第七等이로되 而間歲第六等也며 豫之正賦는 第二等이로되 而間歲第一等也요 梁之正賦는 第八等이로되 而間歲出第七第九等也라 當時에 必有條目詳具어늘 今不存矣요 書之所載는 特凡例也라 若謂歲之豊凶, 戶之增減이면 則九州皆然이니 何獨於冀揚豫梁四州言哉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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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장(第六十九章)
厥貢은 璆鐵과 銀鏤와 砮磬과 熊羆와 狐狸와 織皮로다
璆는 玉磬이요 鐵은 柔鐵也라 鏤는 剛鐵이니 可以刻鏤者也라 磬은 石磬也라 言鐵而先於銀者는 鐵之利多於銀也니 後世에 蜀之卓氏程氏以鐵冶로 富擬封君하니 則梁之利尤在於鐵也라 織皮者는 梁州之地는 山林爲多하니 獸之所走라 熊羆狐狸四獸之皮는 製之면 可以爲裘요 其毳毛는 織之면 可以爲줓也라
○ 林氏曰 徐州는 貢浮磬이요 此州는 旣貢玉磬하고 又貢石磬하며 豫州는 又貢磬錯하니 以此觀之면 則知當時樂器는 磬最爲重이니 豈非以其聲角而在淸濁小大之間하여 最難得其和者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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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장(第七十章)
西傾으로 因桓是來하여 浮于潛하며 逾于沔하며 入于渭하여 亂于河하나니라
西傾은 山名이라 地志에 在隴西郡臨洮縣西라하니 今洮州臨潭縣西南이라 桓은 水名이니 水經曰 西傾之南에 桓水出焉이라하니라 蘇氏曰 漢은 始出爲漾이요 東南流爲沔이요 至漢中하여 東行爲漢沔이라 酈道元曰 自西傾而至葭萌하여 浮于西漢하니 西漢은 卽潛水也라 自西漢遡流而屆于晉壽界하여 阻漾枝津하고 南歷岡北하여 迤邐接漢沔하며 歷漢川하여 至于褒水하고 逾褒而曁于衙嶺之南溪하며 灌于斜川하고 屆于武功하여 而北以入于渭라 漢武帝時에 人有上書하여 欲通褒斜道及漕어늘 事下張湯問之하니 云 褒水는 通沔하고 斜水는 通渭하니 皆可以漕라 從南陽하여 上沔入褒하고 褒絶水至斜하여 間百餘里에 以車轉하여 從斜下渭하니 如此則漢中穀可致라하니라 經言沔渭而不言褒斜者는 因大以見小也라 褒斜之間에 絶水百餘里라 故로 曰逾라 然이나 於經文則當曰逾于渭어늘 今曰逾于沔은 此又未可曉也라 絶河而渡曰亂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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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장(第七十一章)
黑水西河에 惟雍州라
雍州之域은 西據黑水하고 東距西河하니 謂之西河者는 主冀都而言也라
인용
제72장(第七十二章)
弱水旣西하며
柳宗元曰 西海之山에 有水焉하니 散渙無力하여 不能負芥하여 投之則委靡墊沒하여 及底而後止라 故로 名曰弱이라하니라 旣西者는 導之西流也라 地志云 在張掖郡刪丹縣이라하고 薛氏曰 弱水는 出吐谷渾界窮石山하여 自刪丹西로 至合黎山하여 與張掖縣河合이라하니라 又按 通鑑에 魏太武擊柔然할새 至栗水하여 西行至菟園水하여 分軍收(搜)討하고 又循弱水하여 西行至涿邪山이라하니 則弱水는 在菟園水之西, 涿邪山之東矣라 北史에 載太武至菟園水하여 分軍搜討하여 東至瀚海하고 西接張掖水하고 北度燕然山이라하니 與通鑑小異라 豈瀚海張掖水 於弱水에 爲近乎아 程氏據西域傳하여 以弱水爲在條支라하여 援引甚悉이라 然이나 長安西行一萬二千二百里하고 又百餘日에 方至條支라 其去雍州如此之遠하니 禹豈應窮荒而導其流也哉아 其說이 非是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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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장(第七十三章)
涇이 屬渭汭하며
涇渭汭는 三水名이라 涇水는 地志에 出安定郡涇陽縣西라하니 今原州百泉縣岍頭山也요 東南至馮翊陽陵縣하여 入渭라하니 今永興軍高陵縣也라 渭水는 地志에 出隴西郡首陽縣西南이라하니 今渭州渭源縣鳥鼠山西北南谷山也요 東至京兆船司空縣하여 入河라하니 今華州華陰縣也라 汭水는 地志에 作芮하니 扶風汧縣弦蒲藪에 芮水出其西北하여 東入涇이라하니 今隴州汧源縣弦蒲藪에 有汭水焉이라 周職方에 雍州其川은 涇汭라하고 詩曰 汭鞠之卽이라하니 皆謂是也라 屬은 連屬也니 涇水連屬渭汭二水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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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장(第七十四章)
漆沮旣從하며
漆沮는 二水名이라 漆水는 寰宇記에 自耀州同官縣東北界來하여 經華原縣하여 合沮水라하니라 沮水는 地志에 出北地郡直路縣東이라하니 今坊州宜君縣西北境也라 寰宇記에 沮水는 自坊州昇平縣北子午嶺出하니 俗號子午水요 下合楡谷慈馬等川하여 遂爲沮水하며 至耀州華原縣하여 合漆水하고 至同州朝邑縣하여 東南入渭라하니라 二水相敵이라 故로 竝言之하니라 旣從者는 從於渭也라 又按 地志에 謂漆水出扶風縣이라하니 鼂氏曰 此는 豳之漆也라하고 水經에 漆水는 出扶風杜陽縣이라하니 程氏曰 杜陽은 今岐山普潤縣之地라하니 亦漢漆縣之境이라 其水入渭가 在酆水之上하여 與經序渭水節次로 不合하니 非禹貢之漆水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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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장(第七十五章)
灃水攸同이로다
灃水는 地志에 作酆하니 出扶風鄠縣終南山하니 今永興軍鄠縣山也라 東至咸陽縣하여 入渭라 同者는 同於渭也라 渭水自鳥鼠而東에 灃水는 南注之하고 涇水는 北注之하고 漆沮는 東北注之하니 曰屬, 曰從, 曰同은 皆主渭而言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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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장(第七十六章)
荊岐에 旣旅하시고 終南惇物로 至于鳥鼠하시며
荊岐는 二山名이라 荊山은 卽北條之荊이라 地志에 在馮翊懷德縣南이라하니 今耀州富平縣掘陵原也라 岐山은 地志에 在扶風美陽縣西北이라하니 今鳳翔府岐山縣東北十里也라 終南, 惇物, 鳥鼠는 亦皆山名이라 終南은 地志에 古文은 以太一山爲終南山하니 在扶風武功縣이라하니 今永興軍萬年縣南五十里也라 惇物은 地志에 古文은 以垂山爲惇物하니 在扶風武功縣이라하니 今永興軍武功縣也라 鳥鼠는 地志에 在隴西郡首陽縣西南이라하니 今渭州渭源縣西也니 俗呼爲靑雀山이라 擧三山而不言所治者는 蒙上旣旅之文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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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장(第七十七章)
原隰에 底績하사 至于豬野하시다
廣平曰原이요 下濕曰隰이니 詩曰 度其隰原이 卽指此也라 鄭氏曰 其地在豳하니 今邠州也라 豬野는 地志云 武威縣東北에 有休屠澤하니 古(今)[文]에 以爲豬野라하니 今凉州姑臧縣也라 治水成功은 自高而下라 故로 先言山하고 次原隰하고 次陂澤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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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장(第七十八章)
三危旣宅하니 三苗丕敍하도다
三危는 卽舜竄三苗之地니 或以爲燉煌이라하니 未詳其地라 三苗之竄은 在洪水未平之前이러니 及是하여 三危已旣可居하니 三苗於是大有功敍라 今按 舜竄三苗는 以其惡之尤甚者를 遷之하고 而立其次者於舊都러니 今旣竄者已丕敍로되 而居於舊都者尙桀驁不服이라 蓋三苗舊都는 山川險阻하니 氣習使然이라 今湖南猺洞에 時猶竊發하여 俘而詢之하면 多爲猫姓하니 豈其遺種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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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장(第七十九章)
厥土는 惟黃壤이니
黃者는 土之正色이라 林氏曰 物得其常性者最貴하니 雍州之土는 黃壤이라 故로 其田이 非他州所及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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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장(第八十章)
厥田은 惟上에 上이요 厥賦는 中에 下요
田은 第一等이로되 而賦는 第六等者는 地狹而人功少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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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장(第八十一章)
厥貢은 惟球琳琅玕이로다
球琳은 美玉也요 琅玕은 石之似珠者라 『爾雅』曰 西北之美者는 有昆侖虛之球琳琅玕이라하니라 今南海에 有靑琅玕하니 珊瑚屬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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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장(第八十二章)
浮于積石하여 至于龍門西河하여 會于渭汭하나니라
積石은 地志에 在金城郡河關縣西南羌中이라하니 今鄯州龍支縣界也라 龍門山은 地志에 在馮翊夏陽縣이라하니 今河中府龍門縣也라 西河는 冀之西河也라 雍之貢道有二하니 其東北境은 則自積石至于西河요 其西南境은 則會于渭汭라 言渭汭하고 不言河者는 蒙梁州之文也라 他州貢賦도 亦當不止一道니 發此例하여 以互見耳라
○ 按 邢恕奏乞下熙河路하여 打造船五百隻하여 於黃河에 順流放下하여 至會州西小河內藏하여 放熙河路라한대 漕使李復이 奏 竊知邢恕欲用此船하여 載兵順流而下하여 去取興州하오니 契勘會州之西小河鹹水는 其闊이 不及一丈이요 深止於三尺하니 豈能藏船이리잇고 黃河過會州하여 入韋精山이면 石峽嶮窄하여 自上垂流直下에 高數十丈이니 船豈可過리잇고 至西安州之東하여 大河分爲六七道하여 散流渭之南山하되 逆流數十里하여 方再合하니 逆溜는 水淺灘磧하여 不勝舟載라 此聲若出이면 必爲夏國侮笑리이다하니 事遂寢이라 邢恕之策이 如李復之言인댄 可謂謬矣라 然이나 此言貢賦之路에도 亦曰浮于積石하여 至于龍門西河라하니 則古來此處河道가 固通舟楫矣어늘 而復之言이 乃如此는 何也오 姑錄之하여 以備參考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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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장(第八十三章)
織皮는 崑崙과 析支와 渠搜와 西戎이 卽敍하도다
崑崙은 卽河源所出이니 在臨羌이라 析支는 在河關西千餘里라 渠搜는 水經曰 河自朔方東轉하여 經渠搜縣故城北이라하니 蓋近朔方之地也라 三國이 皆貢皮衣라 故로 以織皮冠之하고 皆西方戎落이라 故로 以西戎總之라 卽은 就也라 雍州水土旣平에 而餘功及於西戎이라 故로 附于末이라
○ 蘇氏曰 靑徐揚三州는 皆萊夷淮夷島夷所篚요 此三國도 亦篚織皮어늘 但古語에 有顚倒詳略爾라 其文이 當在厥貢惟球琳琅玕之下, 浮于積石之上이니 簡編脫誤라 不可不正이니라 愚謂 梁州도 亦篚織皮하니 恐蘇氏之說爲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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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장(第八十四章)
導岍하사되 及岐하여 至于荊山하시며 逾于河하사 壺口, 雷首로 至于太岳하시며 底柱, 析城으로 至于王屋하시며 太行, 恒山으로 至于碣石하사 入于海하시다
此下는 隨山也라 岍岐荊三山은 皆雍州山이라 岍山은 地志에 扶風岍縣西吳山이요 古文에 以爲汧山이라하니 今隴州吳山縣吳嶽山也라 周禮에 雍州山鎭曰嶽山이라하니라 又按 寰宇記에 隴州汧源에 有岍山하니 岍水所出이니 禹貢所謂岍山也라 鼂氏以爲今之隴山, 天井, 金門, 秦嶺山者는 皆古之岍也라하니라 岐荊은 見雍州하니라 壺口, 雷首, 太岳, 底柱, 析城, 王屋, 太行, 恒山은 皆冀州山이니 壺口, 太岳, 碣石은 見冀州하니라 雷首는 地志에 在河東郡蒲坂縣南이라하니 今河中府河東縣也라 底柱는 石在大河中流하니 其形如柱하니 今陝州陝縣三門山이 是也라 析城은 地志에 在河東郡濩澤縣西라하니 今澤州陽城縣也니 鼂氏曰 山峰이 四面如城이라하니라 王屋은 地志에 在河東郡垣縣東北이라하니 今絳州垣曲縣也니 鼂氏曰 山狀如屋이라하니라 太行山은 地志에 在河內郡山陽縣西北이라하니 今懷州河內也라 恒山은 地志에 在常山郡上曲陽縣西北이라하니 今定州曲陽也라 逾者는 禹自荊山而過于河也라 孔氏以爲荊山之脈이 逾河而爲壺口雷首者는 非是라 蓋禹之治水에 隨山刊木하시니 其所表識(지)諸山之名은 必其高大하여 可以辨疆域하고 廣博하여 可以奠民居라 故로 謹而書之하여 以見其施功之次第요 初非有意推其脈絡之所自來하여 若今之葬法所言也라 若必實以山脈言之면 則尤見其說之謬妄이라 蓋河北諸山은 根本脊脈이 皆自代北寰武嵐憲諸州로 乘高而來하여 其脊以西之水는 則西流以入龍門西河之上流하고 其脊以東之水는 則東流而爲桑乾幽冀하여 以入于海하며 其西一支는 爲壺口太岳하고 次一支는 包汾晉之源而南出하여 以爲析城王屋하고 而又西折하여 以爲雷首하며 又次一支는 乃爲太行하고 又次一支는 乃爲恒山이라 其間에 各隔沁潞諸川하여 不相連屬하니 豈自岍岐로 跨河而爲是諸山哉아 山之經理者已附于逐州之下하고 於此에 又條列而詳記之하니 而山之經緯를 皆可見矣라 王鄭이 有三條四列之名이나 皆爲未當이라 今據導字컨대 分之以爲南北二條하여 而江河以爲之紀요 於二之中에 又分爲二焉하니 此北條大河北境之山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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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장(第八十五章)
西傾, 朱圉, 鳥鼠로 至于太華하시며 熊耳, 外方, 桐柏으로 至于陪尾하시다
西傾, 朱圉, 鳥鼠, 太華는 雍州山也요 熊耳, 外方, 桐柏, 陪尾는 豫州山也라 西傾은 見梁州하니라 朱圉는 地志에 在天水郡冀縣南이라하니 今秦州大潭縣也니 俗呼爲白巖山이라 鳥鼠는 見雍州하니라 太華는 地志에 在京兆華陰縣南이라하니 今華州華陰縣二十里也라 熊耳는 在商州上洛縣이니 詳見豫州하니라 外方은 地志에 潁川郡崇高縣에 有崇高山하니 古文에 以爲外方이라하니 在今西京登封縣也라 桐柏은 地志에 在南陽郡平氏縣東南이라하니 今唐州桐柏縣也라 陪尾는 地志에 江夏郡安陸縣東北에 有橫尾山하니 古文에 以爲陪尾라하니 今安州安陸也라 西傾에 不言導者는 蒙導岍之文也라 此는 北條大河南境之山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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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장(第八十六章)
導嶓冢하사되 至于荊山하시며 內方으로 至于大別하시다
嶓冢은 卽梁州之嶓也니 山形如冢이라 故로 謂之嶓冢이니 詳見梁州하니라 荊山은 南條荊山이니 地志에 在南郡臨沮縣北이라하니 今襄陽府南章縣也라 內方, 大別도 亦山名이라 內方은 地志에 章山이니 古文에 以爲內方山이라 在江夏郡竟陵縣東北이라하니 今荊門軍長林縣也라 『左傳』에 吳與楚戰할새 楚濟漢而陳하여 自小別로 至于大別이라하니 蓋近漢之山이니 今漢陽軍漢陽縣北大別山이 是也라 地志, 水經에 云 在安豊者는 非是라 此는 南條江漢北境之山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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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장(第八十七章)
岷山之陽으로 至于衡山하시며 過九江하사 至于敷淺原하시다
岷山은 見梁州하니라 衡山은 南嶽也라 地志에 在長沙國湘南縣이라하니 今潭州衡山縣也라 九江은 見荊州하니라 敷淺原은 地志에 云 豫章郡歷陵縣南에 有博陽山하니 古文에 以爲敷淺原이라하니 今江州德安縣博陽山也라 鼂氏以爲在鄱陽者는 非是라 今按 鼂氏以鄱陽에 有博陽山하고 又有歷陵山하니 爲應地志歷陵縣之名이라 然이나 鄱陽은 漢舊縣地니 不應又爲歷陵縣이라 山名偶同이니 不足據也라 江州德安이 雖爲近之나 然所謂敷淺原者는 其山甚小而卑하니 亦未見其爲在所表見者라 惟廬阜는 在大江彭蠡之交하고 最高且大하니 宜所當紀志者로되 而皆無考據하니 恐山川之名이 古今或異하여 而傳者未必得其眞也니 姑俟知者하노라 過는 經過也니 與導岍逾于河之義同이라 孔氏以爲衡山之脈이 連延而爲敷淺原者는 亦非是라 蓋岷山之脈이 其北一支는 爲衡山而盡於洞庭之西하고 其南一支는 度桂嶺하여 北經袁筠之地하여 至德安하니 所謂敷淺原者는 二支之間으로 湘水間斷이라 衡山은 在湘水西南하고 敷淺原은 在湘水東北하니 其非衡山之脈이 連延過九江而爲敷淺原者明甚이라 且其山川崗脊源流가 具在眼前이로되 而古今異說이 如此어늘 況殘山斷港으로 歷數千百年者를 尙何自取信哉아 岷山에 不言導者는 蒙導嶓冢之文也라 此는 南條江漢南境之山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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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장(第八十八章)
導弱水하사되 至于合黎하여 餘波를 入于流沙하시다
此下는 濬川也라 弱水는 見雍州하니라 合黎는 山名이니 隋地志에 在張掖縣西北으로 亦名羌谷이라하니라 流沙는 杜佑云 在沙州西八十里하니 其沙隨風流行이라 故로 曰流沙라하니라 水之疏導者를 已附于逐州之下하고 於此에 又派別而詳記之하니 而水之經緯를 皆可見矣라 濬川之功이 自隨山始라 故로 導水次於導山也라 又按 山水皆原於西北이라 故로 禹敍山敍水에 皆自西北而東南하여 導山則先岍岐하고 導水則先弱水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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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장(第八十九章)
導黑水하사되 至于三危하사 入于南海하시다
黑水는 地志에 出犍爲郡南廣縣汾關山이라하고 水經에 出張掖鷄山하여 南至燉煌하고 過三危山하여 南流入于南海라하고 唐樊綽云 西夷之水에 南流入于南海者凡四니 曰區江, 曰西珥河, 曰麗水, 曰瀰渃江이니 皆入于南海라 其曰麗水者는 卽古之黑水也니 三危山이 臨峙其上이라하니라 按梁雍二州는 西邊이 皆以黑水爲界하니 是黑水自雍之西北而直出梁之西南也라 中國은 山勢岡脊이 大抵皆自西北而來하니 積石西傾岷山岡脊以東之水는 旣入于河漢岷江하고 其岡脊以西之水는 卽爲黑水하여 而入于南海라 地志, 水經, 樊氏之說이 雖未詳的實이나 要是其地也라 程氏曰 樊綽이 以麗水爲黑水者는 恐其狹小하여 不足爲界라 其所稱西珥河者는 却與漢志葉楡澤으로 相貫이요 廣處可二十里니 旣足以界別二州라 其流又正趨南海하며 又漢滇池는 卽葉楡之地라 武帝初開滇雟時에 其地에 古有黑水舊祠하니 夷人不知載籍하여 必不能附會요 而綽及道元이 皆謂此澤以楡葉所積得名이라하니 則其水之黑은 似楡葉積漬所成이라 且其地乃在蜀之正西하고 又東北距宕昌이 不遠하니 宕昌은 卽三苗種裔라 與三苗之敍于三危者로 又爲相應하니 其證驗이 莫此之明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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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장(第九十章)
導河하사되 積石으로 至于龍門하며 南至于華陰하며 東至于底柱하며 又東至于孟津하며 東過洛汭하여 至于大伾하며 北過洚水하여 至于大陸하며 又北播爲九河하여 同爲逆河라 入于海하니라
積石, 龍門은 見雍州하니라 華陰은 華山之北也라 底柱는 見導山하니라 孟은 地名이요 津은 渡處也니 杜預云 在河內郡河陽縣南이라하니 今孟州河陽縣也라 武王師渡孟津者卽此니 今亦名富平津이라 洛汭는 洛水交流之內니 在今河南府鞏縣之東이라 洛之入河는 實在東南이로되 河則自西而東過之라 故로 曰東過洛汭라 大伾는 孔氏曰 山再成曰伾라 張揖은 以爲在成皐라하고 鄭玄은 以爲在修武武德이라 臣瓚은 以爲修武武德엔 無此山이요 成皐山은 又不再成이니 今通利軍黎陽縣臨河에 有山하니 蓋大伾也라하니라 按黎陽山은 在大河垂欲趨北之地라 故로 禹記之니 若成皐之山인댄 旣非從東折北之地요 又無險礙如龍門底柱之須疏鑿이며 西去洛汭 旣已大近하고 東距洚水大陸이 又爲絶遠하니 當以黎陽者로 爲是라 洚水는 地志에 在信都縣이라하니 今冀州信都縣枯洚渠也라 程氏曰 周時에 河徙砱礫이라가 至漢에 又改向頓丘하여 東南流하니 與禹河迹으로 大相背戾라 地志에 魏郡鄴縣에 有故大河하니 在東北하여 直達于海라하니 疑卽禹之故河라 孟康以爲王莽河는 非也라 古洚瀆은 自唐貝州로 經城北하여 入南宮하고 貫穿信都하니 大抵北向而入故河於信都之北하여 爲合北過洚水之文하니 當以信都者爲是라 大陸은 見冀州하고 九河는 見兗州하니라 逆河는 意以海水逆潮而得名이라 九河旣淪于海면 則逆河는 在其下流니 固不復有矣라 河上播而爲九라가 下同而爲一하니 其分播合同은 皆水勢之自然이니 禹特順而導之耳라 今按 漢西域傳의 張騫所窮河源에 云 河有兩源하니 一出蔥嶺하고 一出于闐하니 于闐은 在南山下라 其河北流하여 與蔥嶺河合하여 東注蒲昌海라 蒲昌海는 一名鹽澤이니 去玉門陽關三百餘里라 其水停居하여 冬夏에 不增減하고 潛行地中하여 南出積石이라하니라 又唐長慶中에 薛元鼎이 使吐蕃할새 自隴西成紀縣西南으로 出塞二千餘里하여 得河源於莫賀延積尾하니 曰閟磨黎山이라 其山이 中高四下하니 所謂崑崙也라 東北流하여 與積石河로 相連하니 河源澄瑩하고 冬春可涉이라 下稍合流하여 色赤하고 益遠에 他水幷注하여 遂濁이라 吐蕃亦自言 崑崙은 在其國西南이라하니 二說에 恐薛氏爲是라 河自積石으로 三千里而後에 至于龍門이어늘 經에 但一書積石하고 不言方向은 荒遠하여 在所略也라 龍門而下는 因其所經이니 記其自北而南則曰南至華陰이라하고 記其自南而東則曰東至底柱라하고 又詳記其東向所經之地則曰孟津, 曰洛汭, 曰大伾라하고 又記其自東而北則曰北過洚水라하고 又詳記其北向所經之地則曰大陸, 曰九河라하고 又記其入海之處則曰逆河라 自洛汭而上은 河行於山하니 其地皆可攷어니와 自大伾而下는 垠岸高於平地라 故로 決齧流移하여 水陸變遷하니 而伾水大陸九河逆河를 皆難指實이라 然이나 上求大伾하고 下得碣石하여 因其方向하여 辨其故迹이면 則猶可考也라 其詳은 悉見上文하니라
○ 又按 李復云 同州韓城北에 有安國嶺하니 東西四十餘里요 東臨大河라 瀕河에 有禹廟한대 在山斷河出處라 禹鑿龍門에 起於唐張仁愿所築東受降城之東하여 自北而南하여 至此山盡이라 兩岸石壁峭立하고 大河盤束於山峽間千數百里라가 至此하여 山開岸闊하니 豁然奔放하여 怒氣噴風하고 聲如萬雷라하니라 今按 舊說에 禹鑿龍門호되 而不詳其所以鑿이요 誦說相傳에 但謂因舊修闢하여 去其齟齬하여 以決水勢而已라 今詳此說하면 則謂受降以東으로 至於龍門은 皆是禹新開鑿이니 若果如此면 則禹未鑿時에 河之故道는 不知却在何處라 而李氏之學極博하니 不知此說又何所考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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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장(第九十一章)
嶓冢에 導漾하사 東流爲漢하며 又東爲滄浪之水하며 過三澨하여 至于大別하여 南入于江하며 東匯澤하여 爲彭蠡하며 東爲北江하여 入于海하니라
漾은 水名이니 水經曰 漾水는 出隴西郡氐道縣嶓冢山하여 東至武都라 常璩曰 漢水有兩源하니 此東源也니 卽禹貢所謂嶓冢導漾者요 其西源은 出隴西嶓冢山會泉하니 始源曰沔이라 逕葭萌하여 入漢이라하니 東源은 在今西縣之西하고 西源은 在今三泉縣之東也라 酈道元謂 東西兩川이 俱出嶓冢하여 而同爲漢水者是也라 水源發于嶓冢하여 爲漾하고 至武都爲漢하고 又東流爲滄浪之水라 酈道元云 武當縣北四十里漢水中에 有洲하니 曰滄浪洲요 水曰滄浪水 是也라 蓋水之經歷은 隨地得名이니 謂之爲者는 明非他水也라 三澨는 水名이니 今郢州長壽縣磨石山에 發源하여 東南流者를 名澨水라하고 至復州景陵縣界來를 又名汊水하니 疑卽三澨之一이라 然이나 據左傳漳澨薳澨하면 則爲水際하니 未可曉也라 大別은 見導山하니 入江은 在今漢陽軍漢陽縣이라 匯는 回也라 彭蠡는 見揚州하니라 北江은 未詳이라 入海는 在今通州靜海縣이라
○ 今按 彭蠡는 古今記載에 皆謂今之鄱陽이라 然이나 其澤在江之南하여 去漢水入江之處 已七百餘里요 所蓄之水則合饒信, 徽撫, 吉贛, 南安, 建昌, 臨江, 袁筠, 隆興, 南康數州之流하니 非自漢入而爲匯者라 又其入江之處는 西則廬阜요 東則湖口로 皆石山峙立하고 水道狹甚하니 不應漢水入江之後七百餘里에 乃橫截而南하여 入于鄱陽하고 又橫截而北流爲北江이라 且鄱陽은 合數州之流하여 豬而爲澤하니 泛溢壅遏이요 初無仰於江漢之匯而後成也라 不惟無所仰於江漢이라 而衆流之積이 日遏月高하니 勢亦不復容江漢之來入矣라 今湖口橫渡之處는 其北則江漢之濁流요 其南則鄱陽之淸漲이니 不見所謂漢水匯澤而爲彭蠡者라 鄱陽之水가 旣出湖口하니 則依南岸하여 與大江相持以東하니 又不見所謂橫截而爲北江者라 又以經文考之컨대 則今之彭蠡旣在大江之南하니 於經에 則宜曰南匯彭蠡요 不應曰東匯며 於導江에 則宜曰南會于匯요 不應曰北會于匯라 匯旣在南이면 於經則宜曰北爲北江이요 不應曰東爲北江이니 以今地望參校컨대 絶爲反戾라 今廬江之北에 有所謂巢湖者하니 湖大而源淺이라 每歲四五月間에 蜀嶺雪消하여 大江泛溢之時에 水淤入湖하고 至七八月하여 大江水落이면 湖水方洩하여 隨江以東하니 爲合東匯北匯之文이라 然이나 鄱陽之湖는 方五六百里니 不應舍此而錄彼하여 記其小而遺其大也라 蓋嘗以事理情勢로 考之컨대 洪水之患이 惟河爲甚하니 意當時龍門九河等處에 事急民困하여 勢重役煩일새 禹親莅而身督之하시고 若江淮則地偏水急하여 不待疏鑿하고 固已通行일새 或分遣官屬하여 往視亦可라 況洞庭彭蠡之間은 乃三苗所居요 水澤山林이 深昧不測이라 彼方負其險阻하여 頑不卽工하니 則官屬之往者도 亦未必遽敢深入이라 是以로 但知彭蠡之爲澤이요 而不知其非漢水所匯하며 但意如巢湖江水之淤요 而不知彭蠡之源이 爲甚衆也라 以此致誤하여 謂之爲匯하고 謂之北江이니 無足怪者라 然則鄱陽之爲彭蠡信矣니라
인용
제92장(第九十二章)
岷山에 導江하사 東別爲沱하며 又東至于澧하며 過九江하여 至于東陵하며 東迆北會하여 爲匯하며 東爲中江하여 入于海하니라
沱는 江之別流於梁者也라 澧는 水名이라 水經에 出武陵充縣하여 西至長沙下雋縣하여 西北入江이라하고 鄭氏云 經에 言道言會者는 水也요 言至者는 或山或澤也니 澧는 宜山澤之名이라하니라 按下文九江에 澧水旣與其一하니 則非水明矣라 九江은 見荊州하니라 東陵은 巴陵也니 今岳州巴陵縣也라 地志에 在廬江西北者는 非是라 會匯, 中江은 見上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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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장(第九十三章)
導沇水하사되 東流爲濟하여 入于河하며 溢爲滎하며 東出于陶丘北하며 又東至于渮하며 又東北으로 會于汶하여 又北東으로 入于海하니라
沇水는 濟水也니 發源爲沇이요 旣東爲濟라 地志云 濟水는 出河東郡垣曲縣王屋山東南이라하니 今絳州垣曲縣山也라 始發源王屋山頂崖下하니 曰沇水요 旣見而伏하여 東出於今孟州濟源縣하니 二源이라 東源은 周廻七百步로 其深不測이요 西源은 周廻六百八十五步로 其深一丈이라 合流至溫縣하니 是爲濟水니 歷虢公臺하여 西南入于河라 溢은 滿也라 復出河之南하여 溢而爲滎하니 滎은 卽滎波之滎이니 見豫州하니라 又東出於陶丘北하니 陶丘는 地名이라 再成曰陶니 在今廣濟軍西요 又東至于渮하니 渮는 卽渮澤이니 亦見豫州하니라 謂之至者는 濟陰縣에 自有渮派하니 濟流至其地爾라 汶은 北汶也니 見靑州하니라 又東北至于東平府壽張縣安民亭하여 合汶水하여 至今靑州博興縣하여 入海라 唐李賢은 謂 濟는 自鄭以東으로 貫滑曹鄆濟齊靑하여 以入于海라하고 本朝樂史는 謂 今東平濟南淄川北海界中에 有水流入海하니 謂之淸河라하니라 酈道元은 謂 濟水는 當王莽之世하여 川瀆枯竭이라 其後에 水流逕通하고 津渠勢改하여 尋梁脈水에 不與昔同이라하니 然則滎澤濟河雖枯나 而濟水未嘗絶流也라 程氏曰 滎水之爲濟는 本無他義라 濟之入河에 適會河滿하여 溢出南岸이니 溢出者는 非濟水요 因濟而溢이라 故로 禹還以元名命之라하니라 按 程氏言溢之一字 固爲有理라 然이나 出於河南者旣非濟水면 則禹不應以河枝流로 而冒稱爲濟니 蓋溢者는 指滎而言이요 非指河也라 且河濁而滎淸하니 則滎之水非河之溢이 明矣라 況經所書는 單立導沇條例하여 若斷若續이나 而實有源流요 或見或伏이나 而脈絡可考라 先儒皆以濟水性下勁疾이라 故로 能入河穴地하여 流注顯伏이라하니라 南豊曾氏齊州二堂記云 泰山之北은 與齊之東南諸谷之水로 西北匯于黑水之灣하고 又西北匯于柏崖之灣하여 而至于渴馬之崖하니 蓋水之來也衆이라 其北折而西也에 悍疾尤甚이라가 及至于崖下면 則泊然而止하며 而自崖以北으로 至于歷城之西하여 蓋五十里而有泉湧出하니 高或致數尺이라 其旁之人이 名之曰趵突之泉이라 齊人皆謂 嘗有棄糠於黑水之灣者러니 而見之於此라하니 蓋泉自渴馬之崖로 潛流地中이라가 而至此復出也라 其注而北은 則謂之濼水니 達于淸河하여 以入于海하니 舟之通於濟者皆於是乎達也라 齊多甘泉하여 其顯名者十數로되 而色味皆同하니 以余驗之컨대 蓋皆濼水之旁出者也라하니라 然則水之伏流地中이 固多有之어늘 奚獨於滎澤에 疑哉리오 吳興沈氏亦言 古說에 濟水는 伏流地中이라하니 今歷下凡發地皆是流水라 世謂濟水經過其下라하고 東阿亦濟所經이라 取其井水하여 煮膠면 謂之阿膠니 用攪濁水則淸하고 人服之면 下膈疏痰이라하니 蓋其水性趨下하여 淸而重故也라 濟水伏流絶河는 乃其物性之常이요 事理之著者어늘 程氏非之하니 顧弗深考耳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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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장(第九十四章)
導淮하사되 自桐柏하여 東會于泗沂하여 東入于海하니라
水經云 淮水는 出南陽平氏縣胎簪山이라하니 禹只自桐柏導之耳라 桐柏은 見導山하고 泗沂는 見徐州하니라 沂入于泗하고 泗入于淮하니 此言會者는 以二水相敵故也라 入海는 在今淮浦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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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장(第九十五章)
導渭하사되 自鳥鼠同穴하여 東會于灃하며 又東會于涇하며 又東過漆沮하여 入于河하니라
同穴은 山名이라 地志云 鳥鼠山者는 同穴之枝山也라하니라 餘는 竝見雍州하니라 孔氏曰 鳥鼠共爲雌雄하여 同穴而處라하니 其說怪誕不經하니 不足信也라 酈道元云 渭水는 出南谷山하니 在鳥鼠山西北이라하니 禹只自鳥鼠同穴로 導之耳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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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장(第九十六章)
導洛하사되 自熊耳하여 東北으로 會于澗瀍하며 又東會于伊하며 又東北으로 入于河하니라
熊耳는 盧氏之熊耳也라 餘는 竝見豫州하니라 洛水는 出冢嶺山하니 禹只自熊耳導之耳라
○ 按經에 言嶓冢導漾하고 岷山導江者는 漾之源出於嶓하고 江之源出於岷이라 故로 先言山而後言水也요 言導河積石하고 導淮自桐柏하고 導渭自鳥鼠同穴하고 導洛自熊耳는 皆非出於其山이요 特自其山以導之耳라 故로 先言水而後言山也라 河不言自者는 河源多伏流하니 積石은 其見處라 故로 言積石而不言自也요 沇水에 不言山者는 沇水伏流하여 其出非一이라 故로 不誌其源也요 弱水黑水에 不言山者는 九州之外라 蓋略之也라 小水合大水를 謂之入이요 大水合小水를 謂之過요 二水勢均相入을 謂之會니 天下之水莫大於河라 故로 於河에 不言會하니 此는 禹貢立言之法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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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장(第九十七章)
九州攸同하니 四隩旣宅하도다 九山에 刊旅하며 九川에 滌源하며 九澤이 旣陂하니 四海會同이로다
隩는 隈也니 李氏曰 涯內近水爲隩라 陂는 障也라 會同은 與灉沮會同으로 同義라 四海之隩에 水涯之地 已可奠居요 九州之山이 槎木通道하여 已可祭告요 九州之川이 濬滌泉源하여 而無壅遏이요 九州之澤이 已有陂障하여 而無決潰요 四海之水가 無不會同하여 而各有所歸하니 此는 蓋總結上文하여 言九州四海水土 無不平治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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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장(第九十八章)
六府孔修하여 庶土交正이어늘 底(지)愼財賦하사되 咸則(칙)三壤하사 成賦中邦하시다
孔은 大也니 水火金木土穀이 皆大修治也라 土者는 財之自生이니 謂之庶土면 則非特穀土也라 庶土有等하니 當以肥瘠高下名物로 交相正焉하여 以任土事라 底는 致也니 因庶土所出之財하여 而致謹其財賦之入이니 如周大司徒以土宜之法으로 辨十有二土之名物하여 以任土事之類라 咸은 皆也요 則은 品節之也라 九州穀土를 又皆品節之以上中下三等이니 如周大司徒辨十有二壤之名物하여 以(致)[敎]稼穡之類라 中邦은 中國也니 蓋土賦는 或及於四夷호되 而田賦則止於中國而已라 故曰 成賦中邦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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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장(第九十九章)
錫土姓하시다
錫土姓者는 言錫之土하여 以立國하고 錫之姓하여 以立宗이니 左傳所謂天子建德하여 因生以賜姓하고 胙之土而命之氏者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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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장(第百章)
祗台(이)德先하신대 不距朕行하니라
台는 我요 距는 違也라 禹平水土하고 定土賦하고 建諸侯하여 治已定하고 功已成矣니 當此之時하여 惟敬德以先天下하면 則天下自不能違越我之所行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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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장(第百一章)
五百里는 甸服이니 百里는 賦納總하고 二百里는 納銍하고 三百里는 納秸服하고 四百里는 粟하고 五百里는 米니라
甸服은 畿內之地也라 甸은 田이요 服은 事也니 以皆田賦之事라 故로 謂之甸服이라 五百里者는 王城之外에 四面이 皆五百里也라 禾本全曰總이요 刈禾曰銍이니 半藁也요 半藁去皮曰秸이라 謂之服者는 三百里內는 去王城爲近이니 非惟納總銍秸이라 而又使之服輸將之事也라 獨於秸言之者는 總前二者而言也라 粟은 穀也라 內百里爲最近이라 故로 幷禾本總賦之요 外百里次之니 只刈禾半藁納也요 外百里又次之니 去藁麤皮納也요 外百里爲遠하니 去其穗而納穀이요 外百里爲尤遠하니 去其穀而納米라 蓋量其地之遠近하여 而爲納賦之輕重精麤也라 此는 分甸服五百里而爲五等者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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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장(第百二章)
五百里는 侯服이니 百里는 采요 二百里는 男邦이요 三百里는 諸侯니라
侯服者는 侯國之服이니 甸服外에 四面이 又各五百里也라 采者는 卿大夫邑地라 男邦은 男爵이니 小國也요 諸侯는 諸侯之爵이니 大國, 次國也라 先小國而後大國者는 大可以禦外侮요 小得以安內附也라 此는 分侯服五百里而爲三等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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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장(第百三章)
五百里는 綏服이니 三百里는 揆文敎하고 二百里는 奮武衛하나니라
綏는 安也니 謂之綏者는 漸遠王畿而取撫安之義라 侯服外에 四面이 又各五百里也라 揆는 度也라 綏服은 內取王城千里하고 外取荒服千里하여 介於內外之間이라 故로 以內三百里로 揆文敎하고 外二百里로 奮武衛하여 文以治內하고 武以治外하니 聖人所以嚴華夏之辨者如此라 此는 分綏服五百里而爲二等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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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장(第百四章)
五百里는 要服이니 三百里는 夷요 二百里는 蔡(살)이니라
要服은 去王畿已遠하여 皆夷狄之地니 其文法이 略於中國이라 謂之要者는 取要約之義니 特羈縻之而已라 綏服外에 四面이 又各五百里也라 蔡은 放也니 左傳云 蔡蔡叔이 是也니 流放罪人於此也라 此는 分要服五百里而爲二等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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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장(第百五章)
五百里는 荒服이니 三百里는 蠻이요 二百里는 流니라
荒服은 去王畿益遠하여 而經略之者 視要服에 爲尤略也라 以其荒野라 故로 謂之荒服이라 要服外에 四面이 又各五百里也라 流는 流放罪人之地니 蔡與流皆所以處罪人이나 而罪有輕重이라 故로 地有遠近之別也라 此는 分荒服五百里而爲二等也라
○ 今按 每服五百里니 五服則二千五百里요 南北東西相距五千里라 故로 益稷篇에 言弼成五服호되 至于五千이라 然이나 堯都冀州하니 冀之北境은 幷雲中涿易이라도 亦恐無二千五百里며 藉使有之라도 亦皆沙漠不毛之地요 而東南財賦所出은 則反棄於要荒이니 以地勢考之컨대 殊未可曉라 但意古今土地盛衰不同하니 當舜之時에 冀北之地 未必荒落如後世耳라 亦猶閩浙之間이 舊爲蠻夷淵藪러니 而今富庶繁衍하여 遂爲上國하니 土地興廢는 不可以一時槪也라 周制에 九畿曰侯甸男采衛蠻夷鎭藩이요 每畿亦五百里며 而王畿는 又不在其中하니 倂之則一方五千里라 四方相距爲萬里니 蓋倍禹服之數也라 漢地志에 亦言東西九千里요 南北一萬三千里라하니 先儒皆疑禹服之狹而周漢地廣이라 或以周服里數는 皆以方言이라하고 或以古今尺有長短이라하고 或以禹直方計어늘 而後世以人迹屈曲取之라하니 要之컨대 皆非的論이라 蓋禹聲敎所及則地盡四海나 而其疆理則止以五服爲制하고 至荒服之外하여는 又別爲區畫이니 如所謂咸建五長이 是已라 若周漢則盡其地之所至而疆畫之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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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장(第百六章)
東漸于海하며 西被于流沙하며 朔南에 曁하여 聲敎訖于四海어늘 禹錫玄圭하사 告厥成功하시다
漸은 漬요 被는 覆(부)요 曁는 及也라 地有遠近이라 故로 言有淺深也라 聲은 謂風聲이요 敎는 謂敎化라 林氏曰 振擧於此而遠者聞焉이라 故로 謂之聲이요 軌範於此而遠者效焉이라 故로 謂之敎라 上言五服之制하고 此言聲敎所及하니 蓋法制有限이요 而敎化無窮也라 錫은 與師錫之錫同하니 水土旣平에 禹以玄圭爲贄하여 而告成功于舜也라 水色黑이라 故로 圭以玄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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