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
書奏, 子酷等卽日飮酖自殺, 聖坐廢爲庶人, 鴟夷子亦嘗善聖, 故亦墮車自死. 初, 鴟夷子以滑稽見幸, 與麴聖相友. 每上出入, 託於屬車. 鴟夷子嘗困臥, 聖戲曰: “卿腹雖大, 空洞何有?” 答曰: “足容卿輩數百.” 其相戲謔如此
聖旣免, 齊郡鬲州間, 盜賊群起. 上欲命討, 難其人, 復起聖爲元帥. 聖持軍嚴, 與士卒同甘苦, 灌愁城一戰而援, 築長樂阪而還, 帝以功封爲湘東侯.
一年, 上疏乞退曰: “臣本甕牖之子, 少貧賤, 爲人轉賣, 偶逢聖主虛心優納, 拯於沈溺, 容若江湖. 有忝洪造, 無潤國體. 前以不謹, 退安鄕里, 雖薄露之垂盡, 幸餘滴之得存, 敢欣日月之明, 更發醘鷄之覆. 且器盈則覆, 物之常理. 今臣遇痟渴之病, 命迫浮漚, 庶一吐兪音, 使退保餘生.”
帝優詔不允, 遣中使齎松桂菖蒲等藥物, 就其第省病. 聖累表固辭, 上不得已許之, 遂歸老故鄕, 以壽終.
弟賢官至二千石, 子䣧ㆍ酘ㆍ醠ㆍ醂, 服桃花汁學仙, 族子𨡑䤍醶, 皆籍屬萍氏云
史臣曰: “麴氏世本農家. 聖以醇德淸才, 作王心腹, 斟酌國政, 有沃帝心, 幾致大平. 旣醉之功, 盛哉. 及其泰寵, 幾亂國經, 雖禍及於子, 無憾. 然晚節知足自退, 能以壽終. 『易』曰: ‘見幾而作.’ 聖庶幾焉.” 『東文選』 卷之一百
해석
書奏, 子酷等卽日飮酖自殺,
상소가 알려지자 아들 혹 등은 곧 그날에 짐독을 마셔 자살했고
聖坐廢爲庶人,
성은 연좌되어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鴟夷子亦嘗善聖, 故亦墮車自死.
치이자【치이(鴟夷): 가죽 주머니로 만든 술 담는 그릇이다】 또한 일찍이 성과 잘 지냈기 때문에 또한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初, 鴟夷子以滑稽見幸, 與麴聖相友.
처음에 치이자는 골계로 총애를 받아 국성과 서로 친해졌다.
每上出入, 託於屬車.
매번 임금이 출입할 적에 속거【속거(屬車): 임금이 출행할 때 시종(侍從)하는 수레를 말한다】에 의탁하니,
鴟夷子嘗困臥, 聖戲曰:
치이자가 일찍이 피곤하여 누워 있으니 성이 장난스레 말했다.
“卿腹雖大, 空洞何有?”
“그대 배는 비록 크지만 비어 있는 건 무엇이 있는가?”
答曰: “足容卿輩數百.”
“자네들 수백을 담을 만하네.”라고 대답했으니,
其相戲謔如此
서로 농담 따먹기 하는 게 이와 같았다.
聖旣免, 齊郡鬲州間,
성이 이미 면직되자 제(臍: 배꼽) 고을과 격(膈: 가슴) 고을 사이에
盜賊群起.
도적의 무리가 일어났다.
上欲命討, 難其人,
임금이 토벌을 명하려 하였지만 마땅한 사람이 어렵자
復起聖爲元帥.
다시 성을 기용하여 원수로 삼았다.
聖持軍嚴, 與士卒同甘苦,
성은 군사를 지휘함에 엄격했고 사졸과 함께 동고동락하였으며
灌愁城一戰而援, 築長樂阪而還,
수성에 물대어 한 번 싸움에 지원해주었고 장락판에 쌓고 돌아오니,
帝以功封爲湘東侯.
임금은 공으로 상동후에 봉해주었다.
一年, 上疏乞退曰: “臣本甕牖之子,
일년이 흘러 퇴직을 바라며 상소를 올렸다. “신은 본래 가난한 집【옹유(甕牖): 깨진 항아리의 입을 창으로 한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형용하는 말이다】 자식으로
少貧賤, 爲人轉賣,
어려선 빈천하여 사람을 바꿔가며 팔렸는데
偶逢聖主虛心優納,
우연히 성스런 임금의 허심탄회한 넉넉한 용납됨을 만나
拯於沈溺, 容若江湖.
잠기고 빠진 데서 건져주어 강호와 같이 너른 마음으로 포용해주셨습니다.
有忝洪造, 無潤國體.
너른 나아감을 더럽히며 나라의 몸을 윤택하게 못합니다.
前以不謹, 退安鄕里,
이전에 조심하지 못해 물러나 시골에서 편안해할 때
雖薄露之垂盡, 幸餘滴之得存,
비록 엷은 이슬이 드리워진 게 다 말랐음에도 다행히 남은 물방울이 남아 있어
敢欣日月之明, 更發醘鷄之覆.
감히 일월이 밝음에 기뻐하며 다시 파리【혜계(醘鷄): 술에 잘 덤벼드는 파리의 명칭이다】의 덮개를 열었습니다.
且器盈則覆, 物之常理.
또한 그릇이 차면 엎어지는 것은 사물의 일상적인 이치입니다.
今臣遇痟渴之病, 命迫浮漚,
이제 신은 소갈병에 걸려 목숨이 뜬 거품처럼 급박하니
庶一吐兪音, 使退保餘生.”
거의 한 번 부드런 소리 뱉어주셔서 물러나 여생을 보전케 하오소서.”
帝優詔不允, 遣中使齎松桂菖蒲等藥物,
임금은 넉넉한 조서를 윤허하지 않고 중사【중사(中使): 예전에, 궁중에서 왕명을 전하는 내시를 이르던 말이다】를 보내 송계와 창포 등의 약물을 주어
就其第省病.
집에 가서 병을 살피게 했다.
聖累表固辭, 上不得已許之,
성은 자주 짐짓 사양함을 표시하자 임금은 부득이하게 윤허하여
遂歸老故鄕, 以壽終.
마침내 고향에 늙어 돌아와 운수에 따라 마쳤다.
弟賢官至二千石, 子䣧ㆍ酘ㆍ醠ㆍ醂,
아우 현의 관직은 이천석에 이르렀고 아들 익과 두와 앙과 남은
服桃花汁學仙, 族子𨡑䤍醶, 皆籍屬萍氏云
도화즙을 복용하고 신선술을 배웠고 친척의 아들인 추와 미와 엄은 다 족적이 평씨에 속했다고 한다.
史臣曰: “麴氏世本農家.
사신이 말한다. “국씨는 대대로 본래 농가였다.
聖以醇德淸才, 作王心腹,
성은 순한 덕과 맑은 재주로 임금의 심복이 되어
斟酌國政, 有沃帝心, 幾致大平.
국정을 다스렸고 임금의 마음을 부드럽게 함으로 거의 태평한 시대에 이르게 했으니
旣醉之功, 盛哉.
이미 이룬 공이 성대하구나.
及其泰寵, 幾亂國經,
엄청난 총애에 미쳐 거의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으니
雖禍及於子, 無憾.
비록 화가 자식에 미쳤더라도 섭섭할 게 없었다.
然晚節知足自退, 能以壽終.
그러나 느즈막에 만족함을 아는 걸로 절제하여 스스로 물러나 운수에 따라 마칠 수 있었다.
『易』曰: ‘見幾而作.’ 聖庶幾焉.” 『東文選』 卷之一百
『주역』에서 ‘기미를 보고 일어난다.’고 했으니 성이야말로 이 말에 가깝구나.”
인용
3화: 지족으로 지혜로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잘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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