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고경명의 충절이 담긴 책이기에 간행되어야 한다
정기록서(正氣錄序)
윤근수(尹根壽)
자식들이 엮어낸 고경명의 유집에 담긴 가치
嗚呼! 壬辰賊變之初, 參議高公倡湖南, 起義旅.
凡檄書通文往復赤牘, 彙爲一帙, 不出於參議手筆, 則出於臨陂兄弟之手. 一家忠義之辭, 萃於此編, 烈烈之氣溢於言外.
嗚呼! 其可敬也夫. 熄滅之綱常, 賴此以存, 匪直言之, 終允蹈之, 其所以勸臣子臨難盡節之擧者, 殆無窮矣.
이 문집을 읽으면 한 글자마다 한 줄기의 눈물이 나리
噫! 公與其子俱死王事, 實同於卞成陽, 而文章則卞無傳焉. 以大科壯元而死節於賊手, 公又同於文信國, 而信國二子, 只病死於道路而已, 又非公之二子先後殉節者比也. 公之一家所成就, 豈不亦卓絶鮮覯哉.
處承明賜長暇而以文章著, 綰黃綬典鉅郡而以廉白聞, 提烏合之兵, 抗猋銳之賊, 徒以大義激勵之, 成敗在天, 旣不效矣則以身殉之, 終以忠節顯, 公豈非一代之全人哉. 世之日訾薄文人, 鮮實用者至此, 其有不爽然自失者乎.
昔羅一峯跋文山帖, 自謂: ‘一字一涕’, 讀斯錄者, 字字可以釀淚矣, 非夫一字一涕者哉.
책의 이름을 지은 이유와 이 책이 간행되어야 하는 이유
歲乙未, 余有嶺南之行, 回駐鳳城. 公之子由厚氏, 謬以余爲公之知己, 來見余客館, 出示斯編而請名. 余題曰: 『正氣錄』, 而倂諾其序文之請, 乃未卽就, 荏苒數歲, 而由厚氏亦已下世, 悲夫!
今其弟用厚氏又申前請, 余豈敢已諾於逝者乎. 抑因此而竊有槪矣.
印行靖節ㆍ文山等集者, 出於特命, 而乃在兵亂之前. 淵衷若知有今日而預爲培植節義計者, 謂非默契天心而何哉. 斯錄之有關於世敎者, 實與是集竝, 則此豈但藏於一家而止哉. 兵塵稍息而議及文事, 則爲臣勸忠, 莫先是編, 剞劂而行於世. 余斯拱而竢之耳.
萬曆紀元之己亥十月, 某官某, 序. 『月汀先生集』 卷之五
해석
자식들이 엮어낸 고경명의 유집에 담긴 가치
嗚呼! 壬辰賊變之初,
아! 임진왜란이 초기에
參議高公倡湖南, 起義旅.
참의 고공이 호남에서 성하였고 의병을 일으켰다.
凡檄書通文往復赤牘, 彙爲一帙,
대체로 격서와 통문으로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드니
不出於參議手筆, 則出於臨陂兄弟之手.
참의의 손에서 나온 게 아니고 임피 형제【임피형제(臨陂兄弟):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와 고인후(高仁厚)를 말한다.】의 손에서 나왔다.
一家忠義之辭, 萃於此編,
일가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말이 이 책에 모아져서
烈烈之氣溢於言外.
뜨겁디 뜨거운 기운이 말 밖에서 넘쳐난다.
嗚呼! 其可敬也夫.
아! 공경할 만하구나.
熄滅之綱常, 賴此以存,
꺼져 사라지려던 강상【강상(綱常): 유교 도덕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말함. 삼강은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부부(夫婦)이고 오상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이 이에 힘입어 보존되었고
匪直言之, 終允蹈之,
다만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끝내 진실로 그것을 실천했으니,
其所以勸臣子臨難盡節之擧者,
신하와 자식이 어려움에 임해 절개를 다 하는 행동거지를 권하는 까닭이
殆無窮矣.
아마 끝이 없으리라.
이 문집을 읽으면 한 글자마다 한 줄기의 눈물이 나리
噫! 公與其子俱死王事, 實同於卞成陽,
아! 공과 그 자식이 함께 왕의 일로 죽은 것은 실제로 변성양【변성양(卞成陽): 진(晉)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변호(卞壺)이다. 소준(蘇峻)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거느리고 맞서다가 두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과 같지만,
而文章則卞無傳焉.
문장에 있어서 변성양은 전하는 게 없다.
以大科壯元而死節於賊手, 公又同於文信國,
대과에 장원하여 적의 손에 죽으면서 절개를 지킨 것【사절(死節):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킨다는 뜻이다.】은 공이 또한 문신국【문신국(文信國): 송(宋) 나라 문천상(文天祥)을 말하며, 문신(文信)은 그의 자이다. 원(元) 나라 군대에 대항하여 패하여 억류되었는데, 원(元) 세조가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죽였다. 죽기 전에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을 뜻을 보이고 죽었다.】과 같지만,
而信國二子, 只病死於道路而已,
문신국의 두 아들은 다만 도로에서 병사했을 뿐이니,
又非公之二子先後殉節者比也.
또한 공의 두 아이들이 앞서거나 뒤서거나 순절한 것과는 견주지 못한다.
公之一家所成就, 豈不亦卓絶鮮覯哉.
공의 일가가 성취한 것이 어찌 또한 탁월하고 우뚝하여 보기 드문 게 아니겠는가.
處承明賜長暇而以文章著,
승명【승명(承明): 조정의 신하들이 쉬는 곳을 말한다.】에서 거처하며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여 문장으로 드러냈고
綰黃綬典鉅郡而以廉白聞,
노란 인끈을 매고 큰 고을을 다스리니 청렴결백으로 소문이 났으며
提烏合之兵, 抗猋銳之賊,
오합지졸의 병사를 끌고 날쌘 정예의 적들을 대항함에
徒以大義激勵之, 成敗在天,
다만 대의로 그들을 격려했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기에
旣不效矣則以身殉之, 終以忠節顯,
이미 효험이 없게 되자 몸으로 순절하여 마침내 충절로 드러냈으니,
公豈非一代之全人哉.
공은 어찌 한 시대의 온전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世之日訾薄文人,
세상에서 날마다 문인을 헐뜯고 박대(薄待)하여
鮮實用者至此,
실용이 적다고 하는 자들도 여기에 이르러
其有不爽然自失者乎.
망연하게【상연(爽然): ① 멍하다 ② 망연(茫然)하다】 스스로를 잃지 않았겠는가.
昔羅一峯跋文山帖,
옛적에 나일봉【라일봉(羅一峯): 명나라 사람으로 라윤(羅倫)을 말한다.】이 문천상의 시첩에 발문을 지으며
自謂: ‘一字一涕’,
스스로 ‘한 글자에 한 눈물’이라 말했는데,
讀斯錄者, 字字可以釀淚矣,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글자마다 눈물범벅이 되리니,
非夫一字一涕者哉.
대체로 ‘한 글자에 한 눈물’이라고 말한 게 아니겠는가.
책의 이름을 지은 이유와 이 책이 간행되어야 하는 이유
歲乙未, 余有嶺南之行, 回駐鳳城.
을미(1595)년에 내가 영남으로 갔다가 돌아와 봉성에 머물렀다.
公之子由厚氏, 謬以余爲公之知己,
공의 아들인 유후가 오인하여 내가 공의 지기라 여기고
來見余客館, 出示斯編而請名.
나의 여관으로 와서 보고 이 책을 꺼내 보여주며 이름을 청하였다.
余題曰: 『正氣錄』, 而倂諾其序文之請,
나는 『정기록』이라 지었고 아울러 서문을 지어달란 청에도 허락했지만
乃未卽就, 荏苒數歲,
이에 곧 짓질 못하고 여러 해가 흘러【임엽(荏苒): 시간을 자꾸 끈다는 뜻이다.】
而由厚氏亦已下世, 悲夫!
유후씨가 또한 이미 세상을 등졌으니 슬프다.
今其弟用厚氏又申前請,
이제 아우 용후가 또한 예전의 청을 아뢰었는데,
余豈敢已諾於逝者乎.
나는 아마도 떠난 이에게 이미 허락한 것이로다.
抑因此而竊有槪矣.
또한 이로 인하여 남몰래 감개함이 있었다.
印行靖節ㆍ文山等集者, 出於特命,
도연명과 문천상 등의 문집을 간행하는데 특명을 내리셨는데
而乃在兵亂之前.
곧 전란 전의 일이었다.
淵衷若知有今日而預爲培植節義計者,
임금의 깊은 마음【연충(淵衷): 연못처럼 깊은 마음이라는 말로 임금의 마음을 일컫는다.】으로 오늘의 일을 아시고 미리 절의를 배양키 위한 계책으로 삼은 듯하니
謂非默契天心而何哉.
하늘의 마음과 암묵적으로 합한 게 아니면 무엇이랴.
斯錄之有關於世敎者, 實與是集竝,
이 『정기록』이 세교와 관계가 있는 것은 실제로 도잠ㆍ문천상의 문집과 나란하니
則此豈但藏於一家而止哉.
이것이 어찌 다만 한 가족에 저장하는 데에 그칠쏘냐.
兵塵稍息而議及文事,
전쟁의 티끌이 사라지고 의론이 문사에 이르르면
則爲臣勸忠, 莫先是編,
신하에게 충성을 권하려 할 적에 이 책보다 먼저 할 게 없으리니,
剞劂而行於世.
판각하여 세상에 간행해야 하리.
余斯拱而竢之耳.
나는 이제 팔짱 끼고 그것을 기다릴 뿐이다.
萬曆紀元之己亥十月, 某官某, 序. 『月汀先生集』 卷之五
만력 기원【기원(紀元): 연수를 기산(起算)하는 첫 해를 말한다.】 기해(1599)년 10월에 모관 모가 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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