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불교나라를 다녀온 주흘옹의 이야기
주흘옹몽기(酒吃翁夢記)
허균(許筠)
내 친구 주흘옹
酒吃翁(柳淵叔)者, 二十年前, 余始交於場屋, 甚相押, 中歲俱登第. 吃翁仕或顯, 而僕則浮沈索長安米, 故蹤跡不相値, 或遇諸友家, 驩然無間,
頃歲同僚於西塞, 以僕不持時論, 多吐盡心蘊. 有時談及三敎, 則君或爲之涇渭, 亦不甚力也.
꿈속에서 불교의 나라에 초대된 주흘옹
今年省于兔山, 宿湍州民舍, 夢有皁衣, 引翁行甚疾, 乞免不顧.
至大官府, 戟衛甚嚴, 歷四重門, 俱夾戺屯甲盾, 大殿垂簾, 燃蠟炬. 左右廡, 綠衫象簡而治文書, 殆數百人分庭而辨牒訴. 男女雜沓, 肅不譁.
皁衣令翁跪於中陛, 少選, 有淡黃方袍小和尙四人, 從西階下指曰: “夫夫, 嘗闢我法者.” 環立而視之
불교나라에서 심판을 받은 주흘옹과 대변한 나
俄而殿上軸簾, 遙見遠遊冠紫衫玉帶者. 據案問曰: “鞫夫己氏.” 緋衣吏一人從中下, 操紙筆命置對. 翁莫喩所以, 操筆不肯.
下吏若舊相識者, 以指瓜畫牘背曰: “平生未嘗謗佛, 同僚許某知之.” 翁卽以是對, 殿上坐者曰: “可屈某來.”
俄闢東廊第一門, 微聞璜佩音, 有華陽巾ㆍ白氅ㆍ紺裳ㆍ紅紗中單ㆍ珠履ㆍ紫鞓者, 升自東階, 立左楹, 顧睨翁而微哂, 仰睇之則余也. 殿上問曰: “是人引卿, 證其不謗法, 信否?” 曰: “渠雖未達禪敎, 亦不能深排也.” 殿上笑曰: “然則亟釋之.”
皁衣牽出門而驚窹, 鷄已鳴矣.
주흘옹의 꿈 이야기에 불교에 대한 생각을 붙이다
吃翁回朝首訪余, 道其詳且曰: “君雖在人世, 而名則錄於上淸也.”
余曰: “仙釋二家, 吾儒所不道者, 吾當自盡誠明之學, 以措治平之業而已. 不必呶呶強與辨斥之也. 余嘗以佞佛見抨, 余豈業佛者也. 不過不謗而已, 世人顧不之察耳. 斯夢也亦偶然, 何足據信? 然亦可爲俗子不知道, 而強自爲知者之戒也.” 因筆而識之.
翁喜酒, 醉則輒吃不能語, 故以自號云. 『惺所覆瓿稿』 卷之六
해석
내 친구 주흘옹
酒吃翁(柳淵叔)者, 二十年前,
주흘옹(주연숙)은 20년 전에
余始交於場屋, 甚相押, 中歲俱登第.
내가 과거시험장에서 처음 사귀어 매우 친해졌고 중년에 함께 급제했다.
吃翁仕或顯, 而僕則浮沈索長安米,
흘옹은 벼슬이 간혹 현달했지만 나는 부침이 있어 벼슬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장안미(長安米): ‘서울에 올라가 벼슬을 구한다’는 의미다. 당(唐)의 백거이(白居易)가 약관 시절에 고황(顧況)이라는 이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더니 그는 백거이의 성명을 한참 보더니만 하는 말이, “장안에는 쌀이 귀해서 살기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네[長安米貴 居大不易].” 하였다. 『전당시화(全唐詩話)』】
故蹤跡不相値,
종적이 서로간에 만나질 못했는데,
或遇諸友家, 驩然無間,
혹 친구집에서 만나면 기뻐하며 서로 간격조차 없었다.
頃歲同僚於西塞, 以僕不持時論,
근자에 서쪽 변방에서 함께 벼슬하는데 나는 당시의 의론을 지지하지 않아
多吐盡心蘊.
많이 토로하여 마음 속 쌓인 것을 다했다.
有時談及三敎,
이따금 이야기가 유ㆍ불ㆍ도의 삼교에 이르면
則君或爲之涇渭, 亦不甚力也.
그는 간혹 시비를 가리긴 했지만【경위(涇渭): 탁한 경수(涇水)와 맑은 위수(渭水)라는 말로,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으므로 인물의 우열(優劣)과 청탁(淸濁)이나 사물의 진위(眞僞)와 시비(是非)를 가리킨다.】 또한 매우 힘을 쏟진 않았다.
꿈속에서 불교의 나라에 초대된 주흘옹
今年省于兔山, 宿湍州民舍,
올해 토산에 성묘하러 가서 단주의 민가에서 묵었다.
夢有皁衣, 引翁行甚疾,
꿈속에 검은 비단옷 입은 사람이 옹을 끌고 가는 게 매우 빨랐는데
乞免不顧.
옹이 놓아달라 애걸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至大官府, 戟衛甚嚴,
큰 관청에 이르자 창을 든 호위병은 매우 삼엄했고
歷四重門, 俱夾戺屯甲盾,
네 겹문을 지나는데 모두 문지방에 갑옷과 방패로 진을 쳤고
大殿垂簾, 燃蠟炬.
대전엔 발이 드리워져 있었고 촛불은 켜져 있었다.
左右廡, 綠衫象簡而治文書,
좌우의 행랑에서 녹색 저고리를 입고 조홀【상간(象簡): 조홀(朝笏)과 같은 뜻이다. 상아(象牙)로 만든 수판(手版). 수판은 관원이 조정에 등청할 때 손에 드는 판으로, 조홀(朝笏)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주청할 일이 있으면 기록해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도구이다.】을 든 채 문서를 처리하니
殆數百人分庭而辨牒訴.
거의 수백 사람이 뜰에 나누어서서 소장【첩소(牒訴): 소송을 다룬 문서를 말한다.】을 분별했다.
男女雜沓, 肅不譁.
남녀는 섞여 있었는데 고요하여 떠들진 않았다.
皁衣令翁跪於中陛,
검은 비단옷 입은 사람이 옹에게 중간 계단에 무릎 꿇게 하고
少選, 有淡黃方袍小和尙四人,
조금 있다가 엷은 황색 방포【방포(方袍): 가사(袈裟)의 모양이 네모졌기 때문에 일컬어진 말로, 스님의 옷을 일컫는다.】를 입은 젊은 스님 네 사람이
從西階下指曰:
서쪽 계단으로부터 내려와 손가질하며 말했다.
“夫夫, 嘗闢我法者.”
“저 사람은 일찍이 우리의 법도를 물리친 사람이다.”
環立而視之
둘러서서 그를 응시했다.
불교나라에서 심판을 받은 주흘옹과 대변한 나
俄而殿上軸簾,
잠시 후에 전 위에 발이 걷히더니
遙見遠遊冠紫衫玉帶者.
아스라이 원유관【원유관(遠遊冠): 제후가 쓰는 관(冠)의 이름으로, 위진(魏晉) 이후부터 원(元) 나라까지 이 관을 썼다.】을 쓰고 자주빛 저고리를 입고 옥으로 만든 띠를 두른 사람이 보였다.
據案問曰: “鞫夫己氏.”
책상에 기댄 채 “저 사내를 국문하라.”고 하니,
緋衣吏一人從中下,
붉은 옷을 입은 관리 한 사람이 중앙으로부터 내려와
操紙筆命置對.
종이와 붓을 잡고 대답을 쓰도록 명하였다.
翁莫喩所以, 操筆不肯.
옹은 까닭을 알지 못하여 붓을 잡고도 기꺼이 하지 않았다.
下吏若舊相識者, 以指瓜畫牘背曰:
하급관리는 예전에 서로 알던 사람 같았는데 손가락으로 종이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平生未嘗謗佛, 同僚許某知之.”
“평생 일찍이 불교를 비방하지 않았으니 동료인 허모가 그걸 압니다.”
翁卽以是對, 殿上坐者曰:
옹이 곧 이것으로 대답하니 전 위에 앉은 사람이 말했다.
“可屈某來.”
“허모가 와야 노기를 꺾을 수 있다.”
俄闢東廊第一門, 微聞璜佩音,
잠시 후에 대궐의 동쪽 행랑의 첫 번째 문에서 희미하게 패옥소리가 들리며
有華陽巾ㆍ白氅ㆍ紺裳ㆍ
화양건에 흰 창의와 감색 치마
紅紗中單ㆍ珠履ㆍ紫鞓者,
붉은 깃의 중단【중단(中單): 남자의 상복(喪服) 속에 입는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를 말한다.】을 입고 구슬 달린 신을 신고서 자주빛 가죽 띠를 두른 사람이
升自東階, 立左楹,
동쪽 계단으로부터 올라와 좌측 기둥에서 서서
顧睨翁而微哂,
옹을 노려보며 희미하게 웃었고
仰睇之則余也.
올려서 흘끗 보는 데, 그 대상이 바로 나였다.
殿上問曰: “是人引卿,
전상에서 물었다. “이 사람이 그대를 끌어들여
證其不謗法, 信否?”
불법을 비방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던데 참인가?”
曰: “渠雖未達禪敎, 亦不能深排也.”
“그가 비록 불교에 통달하지 못했지만 또한 깊이 배척하지도 않았사옵니다.”라고 말했다.
殿上笑曰: “然則亟釋之.”
전상에서 웃으며 “그러하다면 빨리 그를 놓아주어라.”라고 말했다.
皁衣牽出門而驚窹,
검은 비단옷 입은 사람이 끌어 문을 나가니 놀라 깨었고
鷄已鳴矣.
닭이 이미 울고 있었다.
주흘옹의 꿈 이야기에 불교에 대한 생각을 붙이다
吃翁回朝首訪余, 道其詳且曰:
흘옹이 아침에 맨 먼저 나를 방문하고 상세한 걸 얘기했다.
“君雖在人世, 而名則錄於上淸也.”
“그대가 비록 인간세상에 있지만 이름은 상청【상청(上淸): 도가(道家) 삼청(三淸)의 하나. 삼청은 상청ㆍ옥청(玉淸)ㆍ태청(太淸). 『운급칠첨(雲笈七籤)』에 “상청의 하늘은 끊어진 노을 밖에 있는데 팔황노군(八皇老君)이 있어 구천(九天)의 선(仙)을 운용(運用)하며 상청의 궁(宮)에 거처한다.” 하였다.】에 기록되어 있다.”
余曰: “仙釋二家, 吾儒所不道者,
내가 말했다. “신선학과 불교 두 종교는 우리 유교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니,
吾當自盡誠明之學,
나는 마땅히 스스로 성명의 학문을 다하고
以措治平之業而已.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사업을 실행할 뿐이니,
不必呶呶強與辨斥之也.
반드시 떠들썩하게 억지로 더불어 분별하며 배척할 건 아니라네.
余嘗以佞佛見抨,
내가 일찍이 불교에 아첨했다 하여 탄핵을 당했으니
余豈業佛者也.
내가 어찌 불교를 전념할 수 있겠는가.
不過不謗而已, 世人顧不之察耳.
비방하지 않는데 지나지 않을 뿐인데 세상 사람은 다만 살피지 않을 뿐이네.
斯夢也亦偶然, 何足據信?
이 꿈도 또한 우연한 것이니 어찌 족히 근거하여 믿을 만하겠는가.
然亦可爲俗子不知道,
그러나 또한 속인으로 도를 알지 못하지만
而強自爲知者之戒也.”
억지로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경계는 될 수 있을 것이네.”
因筆而識之.
붓을 가져다 그것을 기록했다.
翁喜酒, 醉則輒吃不能語,
옹은 술을 좋아해서 곤드레만드레하면 문득 말을 더듬어 말하질 못하였기 때문에
故以自號云. 『惺所覆瓿稿』 卷之六
자호하였다고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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