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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코는 베였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을 기록하다
임진왜란의 잔혹상을 민중의 피해에 초점을 맞춰서 클로즈업시킨 작품으로 앞의 「부시행(負尸行)」과 나란히 「무비자(無鼻者)」를 들어볼 수 있다.
당시 왜군은 전과를 허위로 과장하기 위해 무고한 백성들의 코를 마구 잘라갔다는 것이다. 전래(傳來)의 일반적인 방식은 귀를 가지고 전과를 계산했는데 귀 대신 코였던 셈이다. 그때 잘라갔던 코를 모아 만든 무덤이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京都市 東山区 茶屋町]에 조선인이총(朝鮮人耳塚)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시인은 왜군의 칼날이 번득인 마당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얼굴에 코가 무수히 달아나는 사실을 고발하여, 하늘도 응당 벌을 내려서 괴수는 천형을 받을 터요, 졸개들까지 모조리 도륙이 나 독수리밥이 되고야 말리라고 증오심을 불태운다. 그러면서도 “거룩한 상제님 인류를 내실 적에 이목구비 갖춰야 온전한 사람이거늘[皇矣上帝賦下民 耳目口鼻期全形].”이라고 인류적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코 없는 자, 누구 집 자식인고? 홀로 산모퉁이에서 얼굴 가리고 우네[無鼻者誰家子 掩面坐泣荒山隅].”라고 시의 서두에서 이 서사의 주인공인 ‘코 없는 자’는 전란이 휩쓸고 간 현장에서 용케 살아남았으니 크게 행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더 처연한 비극성을 느끼게 만든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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