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다산과 같지만 다르게 순차적으로 묘사하다
황상은 다산의 사실적 시풍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가장 뚜렷한 사례로서 다산의 특이한 서사시 작품인 「애절양(哀絶陽)」과 「승발송행(僧拔松行)」, 이 두편을 제목까지 그대로 따서 다시 쓴 경우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승발송행(僧拔松行)」을 소개한다.
소나무는 병선(兵船)을 제조하는 재료로 필요하기 때문에 특별보호의 대상으로 지적한 송림(松林)이 있었다. 이를 봉산(封山)이라 하는데 수영(水營)에서 감시하게 되어 있었다. 다산초당(茶山草堂)의 소재처인 만덕산(萬德山)이 봉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었는데, 만력산 백련사(白蓮寺)의 중들은 그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침학(侵虐)을 당해야 했다. 백련사의 중들은 침학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소나무를 뽑아 침학의 원천을 제거하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묘사, 고발한 것이 바로 다산의 「승발송행(僧拔松行)」이다.
황상 또한 동일한 사건을 직접 목도한 데다가 자기 선생님이 지은 이 작품을 읽고 더욱 감동하여 자기의 소리로 한번 표출해본 것이다. 다산은 중들이 소나무의 어린 싹까지 뽑아내는 정경(情景)에 처음부터 끝까지 초점을 맞춰서 극적인 효과를 십분 발휘했다. 황상은 동일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접근방식을 달리해서 사태의 자초지종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수영의 절도사 나리의 명령이 떨어지는 데서 시작해 백련사에 들이닥친 무리들의 형태를 자못 회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 행패와 탐학에 견디다 못한 중들이 원인 제거를 위해 소나무를 뽑아버리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하여 “중으로서 소나무 씨를 말리다니 어찌 그럴 수 있나? / 숲속의 해충들아, 너희를 미워하지 않겠노라[僧拔松違師戒 林樹蟲汝莫嫌].”라고, 응당 자비심을 가져야 할 승려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임을 언급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운 것이다.
동일한 사건을 동일한 제목으로 다시 쓴다는 일이 오히려 어려운데 황상의 「승발송행(僧拔松行)」 또한 독자성을 가진 작품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410~41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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