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옛 시를 현대적 관점으로 새롭게 쓰다
『취록당유고』를 보면 다산이 초당에 머물던 시절을 회상한 「정석행(丁石行)」이란 제목의 장시와 함께 「밭 가는 여자[女耕田]」와 「나뭇짐 진 여자[負薪行]」 두편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두편 모두 노동하는 여성의 괴로움을 표현한 내용이어서 다산의 시정신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편은 현실에서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고 옛사람의 시제를 따서 쓴 작품이다. 여기에 나뭇짐 진 여자를 소개하는데 이는 두보의 동명의 시에 감동해서 자기 방식으로 재현한 경우이다.
두보의 원작은 삼협(三峽)을 따라 내려가다가 무산 기슭에 당도해서 그곳의 풍속을 보고 지은 것이었다. 일종의 기행시 내지 풍속시다. 그 고장 여자들이 평생 나뭇짐을 져서 살아가느라 시집도 못 가는 실태를 안타깝게 여겨 “만약 무산의 여자들이 생래적으로 추악하다 하면 이곳에 어찌 왕소군이 태어난 마을이 있으랴”라는 말로 두보의 시는 끝을 맺는다. 윤종억은 이 구절을 열쇠말로 삼아서 옛 시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셈이다. 나뭇짐을 진 그 여자를 지금 호출, 대화를 하여 그녀의 호소하는 말을 시인의 소리로 전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서사성을 확보한 것이다.
물론 시인은 이 테마를 먼 옛날의 일로 그치지 않고 오늘의 현실의 문제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환경적 요인에 크게 관계가 있음을 역설하는 것으로 작품을 끝맺게 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42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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