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으로 가득 찬 감정과 세상
어둑어둑해진 길을 계속 가니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대신면이란다. 6시가 넘자 비가 조금씩 세지기 시작한다. 마을로 들어서며 교회가 있나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는데도 보이지 않더라. 그렇다고 해도 ‘면소재지인 이곳에 교회가 없을 리가 있겠어?’하는 생각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지나온 면소재지엔 교회가 한 두 곳은 있었으니 마음을 놓고 찾아본다.
최초로 목사님이 아닌 신도님에게 허락을 받다
조금 더 걸으니, 역시나 교회 안내판이 보이더라.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안내판을 따라서 갔다. 교회도 큰 편이고 부속 건물들도 있다. 이런 곳이면 쫓아내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당당히 사택의 초인종을 눌렀다. 우의를 입어 좀 ‘추리’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강도로나 오해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안에선 아무 반응도 없더라. 아무도 없다는 건가? 그래도 얘기나 해보고 가자는 생각에 무작정 기다렸다. 비도 오고 갈 곳도 마땅치 않을 땐 막무가내가 최고다^^ 저녁이 되니 신도들이 기도를 하러 오시더라.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먼저 인사를 건네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시며 목사님이 늦게 오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러면서 쪽방에라도 들어가 쉬라고 하시는 거다.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릴 줄이야. 목사님이 늦게 오신다고 하셨을 때,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런 상황에선 목사님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보통인데, 이번엔 특이하게도 먼저 쪽방에 들어가 쉬라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교회를 목사님 사적 재산쯤으로 여기는 일반 풍토에서는 더더욱 들을 수 없는 말이라 생각되어서 깜짝 놀랐다. 그분들의 주인의식(?) 덕에 난 편히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교회는 모든 이를 위한 공간이라는 걸, 그곳에서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외로울 땐 같이 있길, 같이 있을 땐 홀로 있길 바라는 인간의 심리
쪽방이어서 한기가 가득했다. 장롱이 있기에 이불이 있나 살펴봤더니 다행히도 이불이 있더라. 이불을 잘 깔고 화장실에서 씻고 왔다. 좀 춥겠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조금씩 이런 상황들에 몸을 맞춰가고 있다. ‘낯선 천장’과 ‘한기 가득한 작은 방’,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빗소리’, 이 모든 게 이 여행의 성격을 이야기해주는 표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많이 비우고 낮아지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그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 외로움을 깊이 맛보고 있다. 외로운 이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열망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은 이는 홀로 누리는 자유를 열망한다. 내 자신도 모순덩어리이듯, 세상 사람들도 모순적이다.
지출내역
내용 |
수입 |
지출 |
친구가 돈 주움 |
1.000원 |
|
찜질방 |
|
5.000원 |
해장국 |
|
6.000원 |
총합 |
10.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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