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보다 많아진 교회의 불편한 진실
오늘도 교회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시골에 있는 교회치고는 엄청 큰 교회다. 수요 예배도 드렸는데 목사님이 꽤 젊으시고 야망도 있어 보이시더라. 전도사님은 예배가 끝나자 나를 중국집에 데리고 가서 먹고 싶은 걸 시키라고 하셨다. 난 그냥 볶음밥을 시켰는데 더 맛있는 거 먹으라며 삼선볶음밥을 시켜주시더라. 그러면서 여행하는데 보태라며 여행경비까지 챙겨주셨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전도사님은 그걸 지켜보시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해주시더라.
건빵이 만난 사람⑬: 상업화된 신학교와 현실
전도사님은 늦깎이 신학도다. 목사님보다도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이 일, 저 일 하시다가 집안에 어려운 일이 겹쳐서 그걸 해결하던 중에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단다. 여기까지는 늦깎이 신학도들의 ‘평범한’ 개인사에 해당된다. 갑자기 진로를 바꿀 땐 누구나 그와 같은 고비들이 있을 터. 더욱이 내가 그 사건들의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뭐라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신학교에 들어갈 땐, 나이 제한 없이 경쟁을 통해 선발하더니 막상 교회에 전도사로 지원 원서를 넣으려고 하니 35세의 나이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조차 하지 못하다가 다행히 이 교회에 올 수 있었다고 말하셨다. 대학은 교수의 봉급을 충당해주는 구실에 그치고 있다. 학생들은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할 뿐 그들이 배출된 후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상업주의에 물든 일반대학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직자를 배출하는 신학교도 그런 모양새라니~
그 부조리한 현실에 말을 잃었다. 나이 제한이 없는 신학교와 나이 제한이 있는 교회. 막상 졸업은 하지만 일은 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현실인 셈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그런데 그 나이 제한이란 건 누가 정한 것일까? 35세는 전도사가 될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만약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다면 그런 사람조차 받아들이는 신학교는 또 뭔가? 혹 목사보다 나이가 많은 전도사가 들어오면 서로 간에 불편해지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런 조항을 만든 게 아닐까? 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조차 인간의 이해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세속화된, 너무나 세속화된~
건빵이 만난 사람⑬: 인본주의 교회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신학교에서 목사를 무분별하게 배출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누군 은혜받았다고 갑자기 성직자가 되고 누군 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고 성직자가 된다. 그만큼 목사 되기가 쉽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톨릭 대학교’처럼 체계적으로 배우며 한정된 범위 안에서 주의 종이 된다면, 그리 쉽게 맘먹고 ‘하나님의 소리’ 운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목사가 된다 해도 ‘주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대형교회들은 미국학위를 가진 목사가 아니면 받지 않으려 하니 대부분의 목사들은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교회는 우후죽순처럼 ‘범람’한다. 한 마을에 교회가 4~5개 있을 정도다. 그런 상태에서 ‘좋은 교회’, ‘나쁜 교회’란 이분법으로 자기 교회로만 끌어들이려 상대 교회를 비난한다. 성경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을 끌어모을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된다. 그러니 교회는 점점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는 악순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모습이 개선되지 않고선 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진정 성경에 따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그 비젼을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전도사님의 근심 어린 표정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
현실을 이야기하면 참 맘 아픈 일들이 많다. 그래서 우울해진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쯤에서 줄이고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문제의식이 있다면 언젠가 내가 여건이 될 때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거겠지. 이제 그만~
지출내역
내용 |
수입 |
지출 |
전도사님이 줌 |
30.000원 |
|
아침 |
|
5.000원 |
점심 |
|
3.000원 |
총합 |
+22.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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